목차
문제1~28번
주관식1~10번
정 답
주관식1~10번
정 답
본문내용
즐기는 예술, 이 모든 것이 대체로 서양적인 것이다. 우리가 연구하는 학문 또한 예외가 아니다. 피와 뼈와 살을 조상에게서 물려받았을 뿐, 문화라고 일컬을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이 서양에서 받아들인 것들인 듯싶다. 이러한 현실을 앞에 놓고서 민족 문화의 전통을 찾고 이를 계승하고자 한다면, 이것은 편협한 배타주의(排他主義)나 국수주의(國粹主義)로 오인(誤認)되기에 알맞은 이야기가 될 것 같다.
그러면 민족 문화의 전통을 말하는 것은 반드시 보수적(保守的)이라는 ⓐ멍에를 메어야만 하는 것일까? 이 문제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전통이란 어떤 것이며, 또 그것은 어떻게 계승되어 왔는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전통은 물론 과거로부터 이어 온 것을 말한다. 이 전통은 대체로 그 사회 및 그 사회의 구성원인 개인의 몸에 배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전통은 우리의 현실에 작용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과거에서 이어 온 것을 무턱대고 모두 전통이라고 한다면, 인습(因襲)이라는 것과의 구별이 서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인습을 버려야 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만, 계승해야 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여기서 우리는, 과거에서 이어 온 것을 객관화하고, 이를 비판하는 입장에 서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된다. 그 비판을 통해서 현재의 문화 창조에 이바지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것만을 우리의 전통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이같이, 전통은 인습과 구별될 뿐더러, 또 단순한 유물과도 구별되어야 한다. 현재에 있어서의 문화 창조와 관계가 없는 것을 우리는 문화적 전통이라고 부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느 의미에서는 고정 불변(固定不變)의 신비로운 전통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기보다 오히려 우리 자신이 전통을 찾아 내고 창조한다고도 할 수가 있다. 따라서, 과거에는 훌륭한 문화적 전통의 소산으로 생각되던 것이, 후대에는 버림을 받게 되는 예도 허다하다. 한편, 과거에는 돌보아지지 않던 것이 후대에 높이 평가되는 일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연암의 문학은 바로 그러한 예인 것이다. 비단, 연암의 문학만이 아니다. 우리가 현재 민족 문화의 전통과 명맥(命脈)을 이어 준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의 모두가 그러한 것이다. 신라의 향가(鄕歌), 고려의 가요(歌謠), 조선 시대의 사설시조(辭說時調), 백자(白磁), 풍속화(風俗畵) 같은 것이 다 그러한 것이다.
한편, 우리가 계승해야 할 민족 문화의 전통으로 여겨지는 것들이, 연암의 예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과거의 인습을 타파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려는 노력의 결정(結晶)이었다는 것은 지극히 중대한 사실이다. 세종 대왕의 훈민정음(訓民正音) 창제 과정에서 이 점은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만일, 세종이 고루(固陋)한 보수주의적 유학자들에게 한글 창제의 뜻을 굽혔던들, 우리 민족 문화의 최대 걸작품이 햇빛을 못 보고 말았을 것이 아니겠는가?
원효(元曉)의 불교 신앙이 또한 그러하다. 원효는 당시의 유행(流行)인 서학(西學, 당나라 유학)을 하지 않았다. 그의 '화엄경소(華嚴經疏)'가 중국 화엄종의 제3조 현수(賢首)가 지은 '화엄경탐현기(華嚴經探玄記)'의 본이 되었다. 원효는 여러 종파의 분립(分立)이라는 불교계의 인습에 항거하고, 여러 종파의 교리(敎理)를 통일하여 해동종(海東宗)을 열었다. 그뿐만 아니라, 모든 승려들이 귀족 중심의 불교로 만족할 때에, 스스로 마을과 마을을 돌아다니며 배움 없는 사람들에게 전도하기를 꺼리지 않은, 민중 불교의 창시자였다. 이러한 원효의 정신은 우리가 이어받아야 할 귀중한 재산(財産)이 아닐까?
겸재(謙齋) 정선(鄭敾)이나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 혹은 혜원(惠園) 신윤복(申潤福)의 그림에서도 이런 정신을 찾을 수 있다. 이들은 화보 모방주의(畵報模倣主意)의 인습에 반기(反旗)를 들고, 우리 나라의 정취(情趣)가 넘치는 자연을 묘사하였다. 더욱이 그들은 산수화(山水畵)나 인물화(人物畵)에 말라붙은 조선 시대의 화풍(和風)에 항거하여, '밭 가는 농부', '대장간 풍경', '서당의 모습', '씨름하는 광경', '그네 뛰는 아낙네' 등 현실 생활에서 제재를 취한 풍속화를 대담하게 그렸다. 이것은 당시에 있어서는 혁명과도 같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이들의 그림이 민족 문화의 훌륭한 유산(遺産)으로 생각되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우리 민족 문화의 전통은 부단한 창조 활동 속에서 이어 온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계승해야 할 민족 문화의 전통은 형상화(形象化)된 물건에서 받은 것도 있지만, 한편 창조적 정신 그 자체에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민족 문화의 전통을 무시한다는 것은 지나친 자기 학대에서 나오는 편견(에 자니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첫머리에서 제기한 것과 같이, 민족 문화의 전통을 계승하자는 것이 국수주의나 배타주의가 될 수는 없다. 오히려, 왕성한 창조적 정신은 선진 문화 섭취에 인색하지 않을 것이다.
25. 위 글의 표현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4
① 다양한 역사적 사례를 통해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② 대조의 방법으로 전통의 본질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③ 귀납적 방식으로 논지를 전개하여 결론을 유도하고 있다.
④ 객관적인 자세로 논란이 되고 있는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
⑤ 서론에서 제기한 문제에 대한 대답을 결론에서 제시하고 있다.
26. 다음 중 ⓐ의 문맥적 의미로 옳은 것은? 1
① 비난 ② 격려 ③ 환대 ④ 무시 ⑤ 절망
27. 이 글의 저자가 자신의 주장을 강화하기 위해 주로 사용한 표현 방법은 무엇인가? 2
① 유추 ② 예시 ③ 분류 ④ 비유 ⑤ 반어
28. 위 글의 밑줄 친 인물 중 성격이 다른 사람은? 4
1. ㄴ 언어유희
2. 구장
3. 벙거지, 채찍
4. 보세요 잘 날아가지 않습니까?
5. 그의 작품은 주목할만 하다.
6. 관형어
7. 팽이를 돌린다.
8. 경찰에게 잡혔다.
9. 자식에 대한 부모의 헌신적 사랑
10. 현재의 문화창조에 이바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① 박지원 ② 세종대왕 ③ 원효 ④ 현수 ⑤ 김홍도
[주관식10] 위 글의 저자가 말하는 전통이란 무엇인가? 본문에서 찾아쓰시오.
정 답
그러면 민족 문화의 전통을 말하는 것은 반드시 보수적(保守的)이라는 ⓐ멍에를 메어야만 하는 것일까? 이 문제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전통이란 어떤 것이며, 또 그것은 어떻게 계승되어 왔는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전통은 물론 과거로부터 이어 온 것을 말한다. 이 전통은 대체로 그 사회 및 그 사회의 구성원인 개인의 몸에 배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전통은 우리의 현실에 작용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과거에서 이어 온 것을 무턱대고 모두 전통이라고 한다면, 인습(因襲)이라는 것과의 구별이 서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인습을 버려야 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만, 계승해야 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여기서 우리는, 과거에서 이어 온 것을 객관화하고, 이를 비판하는 입장에 서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된다. 그 비판을 통해서 현재의 문화 창조에 이바지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것만을 우리의 전통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이같이, 전통은 인습과 구별될 뿐더러, 또 단순한 유물과도 구별되어야 한다. 현재에 있어서의 문화 창조와 관계가 없는 것을 우리는 문화적 전통이라고 부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느 의미에서는 고정 불변(固定不變)의 신비로운 전통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기보다 오히려 우리 자신이 전통을 찾아 내고 창조한다고도 할 수가 있다. 따라서, 과거에는 훌륭한 문화적 전통의 소산으로 생각되던 것이, 후대에는 버림을 받게 되는 예도 허다하다. 한편, 과거에는 돌보아지지 않던 것이 후대에 높이 평가되는 일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연암의 문학은 바로 그러한 예인 것이다. 비단, 연암의 문학만이 아니다. 우리가 현재 민족 문화의 전통과 명맥(命脈)을 이어 준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의 모두가 그러한 것이다. 신라의 향가(鄕歌), 고려의 가요(歌謠), 조선 시대의 사설시조(辭說時調), 백자(白磁), 풍속화(風俗畵) 같은 것이 다 그러한 것이다.
한편, 우리가 계승해야 할 민족 문화의 전통으로 여겨지는 것들이, 연암의 예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과거의 인습을 타파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려는 노력의 결정(結晶)이었다는 것은 지극히 중대한 사실이다. 세종 대왕의 훈민정음(訓民正音) 창제 과정에서 이 점은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만일, 세종이 고루(固陋)한 보수주의적 유학자들에게 한글 창제의 뜻을 굽혔던들, 우리 민족 문화의 최대 걸작품이 햇빛을 못 보고 말았을 것이 아니겠는가?
원효(元曉)의 불교 신앙이 또한 그러하다. 원효는 당시의 유행(流行)인 서학(西學, 당나라 유학)을 하지 않았다. 그의 '화엄경소(華嚴經疏)'가 중국 화엄종의 제3조 현수(賢首)가 지은 '화엄경탐현기(華嚴經探玄記)'의 본이 되었다. 원효는 여러 종파의 분립(分立)이라는 불교계의 인습에 항거하고, 여러 종파의 교리(敎理)를 통일하여 해동종(海東宗)을 열었다. 그뿐만 아니라, 모든 승려들이 귀족 중심의 불교로 만족할 때에, 스스로 마을과 마을을 돌아다니며 배움 없는 사람들에게 전도하기를 꺼리지 않은, 민중 불교의 창시자였다. 이러한 원효의 정신은 우리가 이어받아야 할 귀중한 재산(財産)이 아닐까?
겸재(謙齋) 정선(鄭敾)이나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 혹은 혜원(惠園) 신윤복(申潤福)의 그림에서도 이런 정신을 찾을 수 있다. 이들은 화보 모방주의(畵報模倣主意)의 인습에 반기(反旗)를 들고, 우리 나라의 정취(情趣)가 넘치는 자연을 묘사하였다. 더욱이 그들은 산수화(山水畵)나 인물화(人物畵)에 말라붙은 조선 시대의 화풍(和風)에 항거하여, '밭 가는 농부', '대장간 풍경', '서당의 모습', '씨름하는 광경', '그네 뛰는 아낙네' 등 현실 생활에서 제재를 취한 풍속화를 대담하게 그렸다. 이것은 당시에 있어서는 혁명과도 같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이들의 그림이 민족 문화의 훌륭한 유산(遺産)으로 생각되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우리 민족 문화의 전통은 부단한 창조 활동 속에서 이어 온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계승해야 할 민족 문화의 전통은 형상화(形象化)된 물건에서 받은 것도 있지만, 한편 창조적 정신 그 자체에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민족 문화의 전통을 무시한다는 것은 지나친 자기 학대에서 나오는 편견(에 자니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첫머리에서 제기한 것과 같이, 민족 문화의 전통을 계승하자는 것이 국수주의나 배타주의가 될 수는 없다. 오히려, 왕성한 창조적 정신은 선진 문화 섭취에 인색하지 않을 것이다.
25. 위 글의 표현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4
① 다양한 역사적 사례를 통해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② 대조의 방법으로 전통의 본질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③ 귀납적 방식으로 논지를 전개하여 결론을 유도하고 있다.
④ 객관적인 자세로 논란이 되고 있는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
⑤ 서론에서 제기한 문제에 대한 대답을 결론에서 제시하고 있다.
26. 다음 중 ⓐ의 문맥적 의미로 옳은 것은? 1
① 비난 ② 격려 ③ 환대 ④ 무시 ⑤ 절망
27. 이 글의 저자가 자신의 주장을 강화하기 위해 주로 사용한 표현 방법은 무엇인가? 2
① 유추 ② 예시 ③ 분류 ④ 비유 ⑤ 반어
28. 위 글의 밑줄 친 인물 중 성격이 다른 사람은? 4
1. ㄴ 언어유희
2. 구장
3. 벙거지, 채찍
4. 보세요 잘 날아가지 않습니까?
5. 그의 작품은 주목할만 하다.
6. 관형어
7. 팽이를 돌린다.
8. 경찰에게 잡혔다.
9. 자식에 대한 부모의 헌신적 사랑
10. 현재의 문화창조에 이바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① 박지원 ② 세종대왕 ③ 원효 ④ 현수 ⑤ 김홍도
[주관식10] 위 글의 저자가 말하는 전통이란 무엇인가? 본문에서 찾아쓰시오.
정 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