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 미술관을 다녀와서 감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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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간송 미술관을 다녀와서 감상문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01. 보물 284호 금동여래입상

02. 국보 073호 금동삼존불감

03. 국보 065호 청자기린형향로(청자기린유개향로)

04. 보물 349호 청자상감국화모란덩물무늬합(청자상감모자합)

05. 국보 068호 청자상감운학문매병

06. 국보 294호 청화백자철사진사국화문병

07. 국보 072호 계미명금동삼존불입상(금동계미명삼존불)

08. 국보 135호 혜원풍속도

09. 단오풍정

10. 미인도

본문내용

실제로 보니 생각보다 작은 사이즈. 모델이 누굴까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나와있지 않았다. 요즘 미인과는 사뭇 다른 생김새지만 이쁘다고는 생각되는 그림. 인터넷 설명으로는 ‘인물화 중에서 여성의 용자(容姿)를 미적 감상의 직접 대상으로 하는 회화를 말한다. 서양에서는 원시시대부터 누드화가 있었고, 회화가 인물화(초상화)로 직결될 만큼 미술상의 비중이 절대적이었다. 동양의 미인화는 단지 여성미의 표현만이 아니라 여자의 머리모양이나 의상 묘사에도 중점을 두어 풍속화·시대화(時代畵)로서의 성격이 짙었다.
중국에서는 예부터 궁정관녀(宮廷官女)의 풍속을 그리는 '사녀도(仕女圖)'의 전통이 있어, 명나라 때의 당인(唐寅)이나 구영(仇英), 청나라 때의 비단욱(費丹旭) 등은 청초하면서도 관능적인 아름다움이 풍기는 사녀화를 많이 그렸다.
한국의 경우, 고구려의 고분벽화에 이미 미인화가 나타나는데 조선시대에는 유교사상에 억눌려 정작 미인화라고 할 만한 작품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조선 중기 이후부터 후기에는 풍속화·유녀화(遊女畵) 등의 형식을 빈 미인화가 등장하였는데, 김시(金?)를 비롯하여 윤두서(尹斗緖)·덕희(德熙)의 부자, 정선(鄭?),심사정(沈師正), 김홍도(金弘道), 신윤복(申潤福), 이인문(李寅文) 등이 이 시기에 활약하였다. 신윤복의 《미인도》(絹本彩色, 45.2×l14cm, 간송미술관 소장)는 본격적인 미인도로 유명하며, 이인문의 《큰머리》(88×184cm)도 뛰어난 작품이다. 1982년 4월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의 고택에서 발견된 미인도(49×120cm, 玉板宜紙)도 일품이어서 학계의 관심을 끌었다.’라고 되어 있었다.
나름대로 열심히 보긴 했으나 제대로 시간을 가지고 볼수 없어서 아쉬웠다. 교과서에서나 보았던 작품들이 나오니 아줌마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그 한작품을 보느라 다른 사람들은 접근을 못하게 했다. 그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서 잠깐보고 나오는 수밖에 없었다. 아쉬웠지만 나름대로 내눈으로 직접 볼수 있어서 좋았다. 하지만 훈민정은 해례본(국보 070호)를 볼수 없어서 아쉬웠다. 어딘가 있었을텐데..... 찾아도 보이질 않았다. 사람들이 워낙 많이 들어오고 내부도 답답해서 빨리 나오는 수밖에 없었다. ‘좀 사람 적을때 보고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더불어 미술관이 저렇게 시설이 낙후되어 있어도 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간송미술관에서 관람하기 편하게 시설을 개조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키워드

간송,   미술관,   미인도,   국보,   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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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6페이지
  • 등록일2006.12.09
  • 저작시기2006.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8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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