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론
Ⅱ. 포스트모더니즘과 여성해방
Ⅲ. 여성해방과 페미니즘
Ⅳ. 여성해방운동의 역사적 흐름
1. 외국
1) 자유주의 여권운동
2) 급진적 여성해방주의(극단적인 분리주의)
2. 우리 나라
Ⅴ. 19세기, 20세기 페미니스트들과 출산 통제
Ⅵ. 산아제한과 여성해방
Ⅶ. 결론
Ⅱ. 포스트모더니즘과 여성해방
Ⅲ. 여성해방과 페미니즘
Ⅳ. 여성해방운동의 역사적 흐름
1. 외국
1) 자유주의 여권운동
2) 급진적 여성해방주의(극단적인 분리주의)
2. 우리 나라
Ⅴ. 19세기, 20세기 페미니스트들과 출산 통제
Ⅵ. 산아제한과 여성해방
Ⅶ. 결론
본문내용
다. 실로 생식에 대한 각기 다른 역할이야말로 인류의 가장 근본적인 이분법이며, 이 이분법이 남녀간의 다른 차이점들을 합리화하는 데 이용되어 왔으며, 여성에 대한 억압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되어 왔다.
그러나 여성이 자신의 생식을 스스로 제한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이 없는 한 여성의 다른 “자유들”은 실제로 행사할 수 없는 웃음거리로 남게 될 것이다. 여성이 이 권리를 쟁취했을 때, 여성의 다른 권리들은 부정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들을 부정할 수 있는 타당성이 없기 때문이다.
과거의 여성 해방 운동이 상징적인 성과 이상을 거두지 못한 한 가지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효과적인 피임 방법과 안전한 낙태 수술을 제공할 정도로 의학이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그리고 남성의 법률과 관습이 그런 의학의 발전에 큰 역점을 두지 않았다). 그리하여 생식자가 아닌 존재가 되려는 여성은 성적인 금욕, 자위 행위, 호모 섹스, 요행에 맡기는 삶, 천박한 산아 제한 방법, 혹은 아이를 대신 낳을 수 있는 대리모(씨받이) 중에서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옛날에는 여성이 아이를 낳는 일 이외의 대안에 대하여는 정보가 극히 빈약했으며, 그나마도 그것의 방지를 법률로 정한 정치 및 종교 세력의 박해를 받았다. 하여간 산업 혁명과 더불어 시작된 피임법의 초기의 일반화되지 않는 방법은 주로 남성용이었다. 고무를 가황(加黃)시켜서 만든 콘돔이 그 대표적 실례이다.
물론 피임의 전형적인 방법으로는 성교 중간에 여성의 성기 밖에서 사정하는 금단(禁斷, coitus interruptus)의 방법이 있었다. 비록 종교는 이런 행위를 “오난의 죄”(sin of Onan)라고 비난했지만, 특히 19세기 유럽의 신생아 탄생률의 저하는 - 주로 도시의 노동자들에게 유행했던 - 바로 이 금단 현상의 결과로 알려져 있다. 산업 혁명이 일어나면서 사람들은 굉장한 속도로 도시로 모여들었고, 도시의 과잉 인구는 언제나 서로 세밀한 정보를 교환할 수 있게 만들었다. 하여간 이 경우에 남성의 선량한 동기와 그 민첩함을 감수해야 했던 여성의 처지를 상상해 보라! 그리고 이 금단 현상은 오늘날도 영국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는 피임 기술로 추측되고 있다. 그러므로 여성 스스로 조정할 수 있는 피임법으로 발전한 최근의 사태는 극히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이 사태도 “혼동된 축복”일 뿐이다. 오늘날 많은 남성들은 여성들이 스스로 자신을 “방어”한다는 점에서 분노를 느끼거나 불임의 책임을 여성에게 돌리고 있다.
오늘날 피임 낙태수술이라는 산아 제한의 일반화된 방법은 원래 수세기 동안 산파?마녀?“현명한 여성”들의 역할이었으며, 이런 비밀스러운 방법이 당시에는 굉장히 효과적이었다. 여서의 해산을 돕던 여성들은 대개 사회 속에서 일을 찾을 수 없었던 버림받은 사람들이었다. 임신한 여성을 돕는 일은 성스러운 일이 아니라 더러운 일이었으며, 여성의 생식기와 관련된 것은 모두 두렵고 불결한 것이었다.
그 다음에 의학이란 특수한 분야가 생겼다. 그리고 피임에 대한 지식은 - 모두가 알고 있는 일이지만 - 주로 남성으로 구성된 의사의 손에 맡겨졌으며, 이 현상은 오늘날도 거의 그대로 남아 있다. 그래서 우리는 1930년대 초기에 기록에서까지도 피임에 대한 충고와 자료를 배포할 수 있는 “가능한 조건들”에서 억압적 기시(旣視)현상을 볼 수 있다. 그 조건들은 대개 거대한 가정의 행복, 산모의 건강 악화, 불구아를 많이 낳은 여인, 산모의 생명 위협 등이었으며, 그것들은 참으로 훌륭한 이유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여성 자신의 단순한 욕망은 이긴 목록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러한 여성의 소박한 소망은 수 년 전에 “낙태법 개정”이 일부 지성인들의 토론 대상이 되었을 때도 대중에게는 무시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오늘날 남성 의사들은 피임에 대한 정보와 기술을 “자격이 있는 여성”에게만 제공하는데, 여기서 자격이 있는 여성이란 이미 몇 명의 아이를 낳아서 아이를 돌볼 수 없을 정도로 쇠약해지고 또한 산아를 지속하면 불구나 사망을 초래할 수 있는 여성이다.
한마디로 만약 여성이 희생자라면 그는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찾을 자격이 있다. 그리고 여기서 사망의 가능성은 인간의 생명을 박탈한다는 이유보다는 가정으로부터 모성 노동자를 박탈한다는 이유로 유감스럽게 간주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결국 여성은 자신으로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요구와 관련해서 가치를 갖게 된다.
그러므로 “자격이 없는 여성”은 - 가끔 “시시한 여성”으로 불리는 여성은 - 자신의 이익을 아이를 낳지 않는 방법으로 고수하려는 여인이다. 그리고 이러한 여성의 자기 주장이 건전한 사회의 목표와 일치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다.
Ⅶ. 결론
한국 사회의 여성 해방 운동은 20세기 초반, 소수의 ‘선각자’들에 의해 “여성도 인간이다”라는 이념적 차원에서의 절규로 시작된다. 그러나 이것은 여러 사회적 상황들로 인해 묻혔다가 1960년대와 70년대를 거치면서, 여성 해방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싹트기 시작한다. 노동 운동의 와중에서, 또 학생 운동 내부에서 일기 시작한 해방 논의와 서구 여성 운동과 여성학의 이론을 접하면서 대학 내에서 일기 시작한 움직임이 그것이다.
그러나 현재로서 한국의 여성 해방 운동이 본격적으로 출발했다고 보기는 힘들 것이다. 사회 운동은 변화 가능성이 보일 때 일어나는 것인 만큼 독자적 여성 해방 운동이 전개되기에는 그 동안의 사회적 여건이 심히 각박했다. 그러나 분위기가 형성되어 가고 있는 것은 분명하며, 실제로 움트기 시작한 몇 가지 여성 해방 운동에 대한 논의는 가능하다. 현재 우리 나라의 여성 운동은 목표와 방식상 크게 두 종류로 나누어져 있다. 그 하나는 기존의 민주화 운동권과 관계를 맺어 온 경우이며, 다른 하나는 독자적 운동을 펼치는 경우이다.
그러면 우리가 이 시점에서 함께 풀어가야할 문제는 무엇인가?
여성 운동 크게는 사회 운동에 참여하는 성원으로서 몇 가지 사실을 생각해야 한다. 하나는 여성 해방 운동이 서구적이라는 선입견이고 또 하나는 사회 운동간에 서열을 정하려는 획일적 권위주의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여성이 자신의 생식을 스스로 제한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이 없는 한 여성의 다른 “자유들”은 실제로 행사할 수 없는 웃음거리로 남게 될 것이다. 여성이 이 권리를 쟁취했을 때, 여성의 다른 권리들은 부정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들을 부정할 수 있는 타당성이 없기 때문이다.
과거의 여성 해방 운동이 상징적인 성과 이상을 거두지 못한 한 가지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효과적인 피임 방법과 안전한 낙태 수술을 제공할 정도로 의학이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그리고 남성의 법률과 관습이 그런 의학의 발전에 큰 역점을 두지 않았다). 그리하여 생식자가 아닌 존재가 되려는 여성은 성적인 금욕, 자위 행위, 호모 섹스, 요행에 맡기는 삶, 천박한 산아 제한 방법, 혹은 아이를 대신 낳을 수 있는 대리모(씨받이) 중에서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옛날에는 여성이 아이를 낳는 일 이외의 대안에 대하여는 정보가 극히 빈약했으며, 그나마도 그것의 방지를 법률로 정한 정치 및 종교 세력의 박해를 받았다. 하여간 산업 혁명과 더불어 시작된 피임법의 초기의 일반화되지 않는 방법은 주로 남성용이었다. 고무를 가황(加黃)시켜서 만든 콘돔이 그 대표적 실례이다.
물론 피임의 전형적인 방법으로는 성교 중간에 여성의 성기 밖에서 사정하는 금단(禁斷, coitus interruptus)의 방법이 있었다. 비록 종교는 이런 행위를 “오난의 죄”(sin of Onan)라고 비난했지만, 특히 19세기 유럽의 신생아 탄생률의 저하는 - 주로 도시의 노동자들에게 유행했던 - 바로 이 금단 현상의 결과로 알려져 있다. 산업 혁명이 일어나면서 사람들은 굉장한 속도로 도시로 모여들었고, 도시의 과잉 인구는 언제나 서로 세밀한 정보를 교환할 수 있게 만들었다. 하여간 이 경우에 남성의 선량한 동기와 그 민첩함을 감수해야 했던 여성의 처지를 상상해 보라! 그리고 이 금단 현상은 오늘날도 영국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는 피임 기술로 추측되고 있다. 그러므로 여성 스스로 조정할 수 있는 피임법으로 발전한 최근의 사태는 극히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이 사태도 “혼동된 축복”일 뿐이다. 오늘날 많은 남성들은 여성들이 스스로 자신을 “방어”한다는 점에서 분노를 느끼거나 불임의 책임을 여성에게 돌리고 있다.
오늘날 피임 낙태수술이라는 산아 제한의 일반화된 방법은 원래 수세기 동안 산파?마녀?“현명한 여성”들의 역할이었으며, 이런 비밀스러운 방법이 당시에는 굉장히 효과적이었다. 여서의 해산을 돕던 여성들은 대개 사회 속에서 일을 찾을 수 없었던 버림받은 사람들이었다. 임신한 여성을 돕는 일은 성스러운 일이 아니라 더러운 일이었으며, 여성의 생식기와 관련된 것은 모두 두렵고 불결한 것이었다.
그 다음에 의학이란 특수한 분야가 생겼다. 그리고 피임에 대한 지식은 - 모두가 알고 있는 일이지만 - 주로 남성으로 구성된 의사의 손에 맡겨졌으며, 이 현상은 오늘날도 거의 그대로 남아 있다. 그래서 우리는 1930년대 초기에 기록에서까지도 피임에 대한 충고와 자료를 배포할 수 있는 “가능한 조건들”에서 억압적 기시(旣視)현상을 볼 수 있다. 그 조건들은 대개 거대한 가정의 행복, 산모의 건강 악화, 불구아를 많이 낳은 여인, 산모의 생명 위협 등이었으며, 그것들은 참으로 훌륭한 이유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여성 자신의 단순한 욕망은 이긴 목록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러한 여성의 소박한 소망은 수 년 전에 “낙태법 개정”이 일부 지성인들의 토론 대상이 되었을 때도 대중에게는 무시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오늘날 남성 의사들은 피임에 대한 정보와 기술을 “자격이 있는 여성”에게만 제공하는데, 여기서 자격이 있는 여성이란 이미 몇 명의 아이를 낳아서 아이를 돌볼 수 없을 정도로 쇠약해지고 또한 산아를 지속하면 불구나 사망을 초래할 수 있는 여성이다.
한마디로 만약 여성이 희생자라면 그는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찾을 자격이 있다. 그리고 여기서 사망의 가능성은 인간의 생명을 박탈한다는 이유보다는 가정으로부터 모성 노동자를 박탈한다는 이유로 유감스럽게 간주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결국 여성은 자신으로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요구와 관련해서 가치를 갖게 된다.
그러므로 “자격이 없는 여성”은 - 가끔 “시시한 여성”으로 불리는 여성은 - 자신의 이익을 아이를 낳지 않는 방법으로 고수하려는 여인이다. 그리고 이러한 여성의 자기 주장이 건전한 사회의 목표와 일치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다.
Ⅶ. 결론
한국 사회의 여성 해방 운동은 20세기 초반, 소수의 ‘선각자’들에 의해 “여성도 인간이다”라는 이념적 차원에서의 절규로 시작된다. 그러나 이것은 여러 사회적 상황들로 인해 묻혔다가 1960년대와 70년대를 거치면서, 여성 해방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싹트기 시작한다. 노동 운동의 와중에서, 또 학생 운동 내부에서 일기 시작한 해방 논의와 서구 여성 운동과 여성학의 이론을 접하면서 대학 내에서 일기 시작한 움직임이 그것이다.
그러나 현재로서 한국의 여성 해방 운동이 본격적으로 출발했다고 보기는 힘들 것이다. 사회 운동은 변화 가능성이 보일 때 일어나는 것인 만큼 독자적 여성 해방 운동이 전개되기에는 그 동안의 사회적 여건이 심히 각박했다. 그러나 분위기가 형성되어 가고 있는 것은 분명하며, 실제로 움트기 시작한 몇 가지 여성 해방 운동에 대한 논의는 가능하다. 현재 우리 나라의 여성 운동은 목표와 방식상 크게 두 종류로 나누어져 있다. 그 하나는 기존의 민주화 운동권과 관계를 맺어 온 경우이며, 다른 하나는 독자적 운동을 펼치는 경우이다.
그러면 우리가 이 시점에서 함께 풀어가야할 문제는 무엇인가?
여성 운동 크게는 사회 운동에 참여하는 성원으로서 몇 가지 사실을 생각해야 한다. 하나는 여성 해방 운동이 서구적이라는 선입견이고 또 하나는 사회 운동간에 서열을 정하려는 획일적 권위주의에 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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