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들어가며
2. 오리엔탈리즘의 정의
3. 오리엔탈리즘의 용어들
4. 오리엔탈리즘과 영화
5. 오리엔탈리즘과 동도서기론
6. 오리엔탈리즘의 영향
7. 오리엔탈리즘의 극복을 위한 사이드의 입장과 한계점
1) '언설'과 '문화적 헤게모니'로서의 오리엔탈리즘, 그 끈질긴 생명력
2) 오리엔탈리즘의 극복 방안에 대한 사이드의 입장과 한계점
2. 오리엔탈리즘의 정의
3. 오리엔탈리즘의 용어들
4. 오리엔탈리즘과 영화
5. 오리엔탈리즘과 동도서기론
6. 오리엔탈리즘의 영향
7. 오리엔탈리즘의 극복을 위한 사이드의 입장과 한계점
1) '언설'과 '문화적 헤게모니'로서의 오리엔탈리즘, 그 끈질긴 생명력
2) 오리엔탈리즘의 극복 방안에 대한 사이드의 입장과 한계점
본문내용
\'타락하지 않은 학문\'은 어떻게 하면 가능한가?
사이드는 이것은 \'방법론적 자각\'에 의해서 가능하며, 방법론적 자각이란 \"동양에 관한 자신의 연구에 대하여 자기를 열어 가는 하나의 방법은, 자신의 방법을 재귀적으로 비판적인 검토에 붙이는 것\"(1991: 521)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는 구체적으로 이런 방법론적 자각의 특징을 아래의 두 가지로 들고 있다.
첫째 눈앞에 있는 소재에 대한 직접적인 감수성이다. 둘째 스스로의 방법론과 그 실천에 대한 끊임없는 자기 점검, 곧 스스로의 연구를 교조적인 선입관에 의해서가 아니라 소재 그 자체에 대하여 계속 감응하고자 하는 부단한 시도이다(1991: 521~522).
사이드는 동양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방법론적 자각\'과 더불어 \'지구상의 수많은 사람들의 자각\'도 강조하고 있다.
만일 우리들이 20세기에 와서 이 지구상의 수많은 사람들의 정치적 및 역사적인 자각을 올바르게 살릴 수 있다면, 우리들은 오리엔탈리즘 세계의 거대한 헤게모니에 대해서도, 또 그것이 대표하는 모든 사물에 대해서도 이제 하나의 도전을 할 수 있다(1991: 524).
사이드가 제시하는 대처 방안은 모두가 개인적인 자각이나 막연한 기대와 희망에 머물러 있다. 이렇게 기대와 희망에 머물고 있는 것은 사이드 스스로도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오리엔탈리즘이라는 \'하나의 특수한 관념체계를 서술하는 것\'에 그의 작업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의 작업의 한계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결론으로서 말하자면, 오리엔탈리즘을 대신하는 다른 선택은 어떤 것이 있을 수 있겠는가? 이 책은 단순히 무엇에 반대하는 것뿐이고, 적극적으로 무엇을 주장하는 건설적인 논의는 없지 않는가? 나는 이 책의 여러 곳에서 소위 지역 연구의 \'탈식민지\'(decolonializing)를 향한 새로운 출발…… 에 관하여 언급해 왔으나, 그것을 잠깐 언급하든가 시사하는 것 이외에 그 이상의 것을 시도하지 않았다. 나의 프로젝트는 하나의 특수한 관념 체계를 서술하는 것으로서, 그 체계를 새로운 체계로 바꾸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1991: 519~520).
자신의 작업이 \'하나의 특수한 관념체계를 서술하는 것\'에 머물고 있기 때문에 \'그 체계를 새로운 체계로 바꾸는 것\'과 \'적극적으로 무엇을 주장하는 건설적 논의\'에 대해서는 자세한 논의를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앞의 인용문에서 보는 바와 같이 사이드는 학자들과 일반인들의 도덕적 자각에 희망과 기대를 걸고 있는 소극적 방법을 이야기하고 있다. 필자는 오리엔탈리즘의 극복에 대해서 동양과 서양이라는 관념이 동시에 소멸되기를 \'기대\'하고 \'희망\'하는 입장은 사람들의 자발적인 자각을 요구하는 데 머무는 \'도덕적 낭만주의\'에 불과하다고 본다(우실하, 1997c)
그는 이런 도적적 낭만주의를 벗어나기 위한 후속 작업의 필요성도 지적하고 있다. 사이드는 그의 『오리엔탈리즘』에서 행한 작업의 후속 작업을 수행할 학자와 비평가가 나타나기를 기대하면서, 구체적인 후속 작업의 몇 가지를 다음과 같이 열거하고 있다.
나는 이 책이 여러 권으로 구성되는 전집의 한 권이 된다는 점에서 스스로 위안하고 있다. 이 책에 이어지는 책을 쓰고자 하는 학자와 비평가가 나타나기를 기대한다. 제국주의와 문화에 관한 개론도 쓰여질 필요가 있다. 이러한 후속 연구에는 (1) 오리엔탈리즘과 교육의 결합, (2) 이탈리아, 네덜란드, 독일, 스위스의 오리엔탈리즘, (3) 학술서와 문학 작품 사이의 역학적 관계, (4) 통치 사상과 지적 규율?훈련과의 관계 등이 철저히 논의되기를 희망한다. 필경 더욱 중요한 일은 (5) 오늘날 오리엔탈리즘에 대체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라는 연구에서, 어떻게 하면 타인을 억압하고 조작하는 것이 아닌 자유로운 입장에 서서 상이한 문화나 상이한 민족을 연구할 수 있겠는가를 묻는 것이리라. 그러나 그것을 위해서는 지식과 권력이라고 하는 복잡한 문제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유감스럽게도 이 모든 것들은 이 책에서 충분히 논의되지 못했다(1991: 52~53).14)
이 인용문에서 사이드가 후속 작업으로 열거하는 것 가운데서 (1) (2) (3) (4)에 대한 논의는 여러 학문 분과에서 논의가 되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특히 위의 (5)에서 지적하는 후속 작업을 위해서는 \'지식과 권력이라고 하는 복잡한 문제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뿐만이 아니라, 이제까지 오리엔탈리즘에 의해서 왜곡되고, 이 왜곡된 모습이 또 다시 오리엔탈리즘에 의해 재생산되어 온 제3세계 각국의 전통 문화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한국의 경우를 예로 들더라도 우리 시대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의 전통 문화를 구성하고 유지해 온 세계관이나 자연관에 대해서 전혀 모르며, 모든 것은 \'문화의 수수께끼\'가 되어 버린 지 오래다. 오리엔탈리즘의 극복이 단순한 기대나 희망 혹은 개인적 자각이라는 도덕적 요구를 넘어서 구체적으로 실천되기 위해서는, 그 전제 조건으로 자신의 문화에 대한 정당한 읽기, 곧 동양의 텍스트를 동양의 인식틀과 사유 체계를 통해서 읽는 인식론적 전환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므로 오리엔탈리즘을 극복하는 구체적인 실천은 ① 우선적으로는 동양과 서양이라는 거대담론의 부당성을 지속적으로 폭로해 가면서, ② 현실적으로는 동양과 서양이라는 기호의 기의에 깔려 있는 \'가치가 개입된 차별적 이분법으로서의 오리엔탈리즘\'의 재생산 메카니즘을 지속적으로 폭로하고, ③ 동양과 서양이라는 기호에 대한 구별적 이분법으로서의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차별적 이분법에 내재된 평가적 가치 판단을 스스로 극복하고 재정립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본다.
이것은 어떤 정답을 제시하는 권위주의적인 방법이 아니라, 독자들이 스스로 ― 없어지면 더 좋지만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 동양과 서양이라는 기호에 대한 \'구별적 이분법\'을 통해서 서로의 \'다름\'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구체적 실천을 위한 전제 조건이 동양의 문화적 텍스트를 동양의 사유 체계를 통해서 읽어내는 인식론적 전환이다. 필자는 이것을 동도동기론東道東器論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사이드는 이것은 \'방법론적 자각\'에 의해서 가능하며, 방법론적 자각이란 \"동양에 관한 자신의 연구에 대하여 자기를 열어 가는 하나의 방법은, 자신의 방법을 재귀적으로 비판적인 검토에 붙이는 것\"(1991: 521)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는 구체적으로 이런 방법론적 자각의 특징을 아래의 두 가지로 들고 있다.
첫째 눈앞에 있는 소재에 대한 직접적인 감수성이다. 둘째 스스로의 방법론과 그 실천에 대한 끊임없는 자기 점검, 곧 스스로의 연구를 교조적인 선입관에 의해서가 아니라 소재 그 자체에 대하여 계속 감응하고자 하는 부단한 시도이다(1991: 521~522).
사이드는 동양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방법론적 자각\'과 더불어 \'지구상의 수많은 사람들의 자각\'도 강조하고 있다.
만일 우리들이 20세기에 와서 이 지구상의 수많은 사람들의 정치적 및 역사적인 자각을 올바르게 살릴 수 있다면, 우리들은 오리엔탈리즘 세계의 거대한 헤게모니에 대해서도, 또 그것이 대표하는 모든 사물에 대해서도 이제 하나의 도전을 할 수 있다(1991: 524).
사이드가 제시하는 대처 방안은 모두가 개인적인 자각이나 막연한 기대와 희망에 머물러 있다. 이렇게 기대와 희망에 머물고 있는 것은 사이드 스스로도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오리엔탈리즘이라는 \'하나의 특수한 관념체계를 서술하는 것\'에 그의 작업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의 작업의 한계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결론으로서 말하자면, 오리엔탈리즘을 대신하는 다른 선택은 어떤 것이 있을 수 있겠는가? 이 책은 단순히 무엇에 반대하는 것뿐이고, 적극적으로 무엇을 주장하는 건설적인 논의는 없지 않는가? 나는 이 책의 여러 곳에서 소위 지역 연구의 \'탈식민지\'(decolonializing)를 향한 새로운 출발…… 에 관하여 언급해 왔으나, 그것을 잠깐 언급하든가 시사하는 것 이외에 그 이상의 것을 시도하지 않았다. 나의 프로젝트는 하나의 특수한 관념 체계를 서술하는 것으로서, 그 체계를 새로운 체계로 바꾸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1991: 519~520).
자신의 작업이 \'하나의 특수한 관념체계를 서술하는 것\'에 머물고 있기 때문에 \'그 체계를 새로운 체계로 바꾸는 것\'과 \'적극적으로 무엇을 주장하는 건설적 논의\'에 대해서는 자세한 논의를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앞의 인용문에서 보는 바와 같이 사이드는 학자들과 일반인들의 도덕적 자각에 희망과 기대를 걸고 있는 소극적 방법을 이야기하고 있다. 필자는 오리엔탈리즘의 극복에 대해서 동양과 서양이라는 관념이 동시에 소멸되기를 \'기대\'하고 \'희망\'하는 입장은 사람들의 자발적인 자각을 요구하는 데 머무는 \'도덕적 낭만주의\'에 불과하다고 본다(우실하, 1997c)
그는 이런 도적적 낭만주의를 벗어나기 위한 후속 작업의 필요성도 지적하고 있다. 사이드는 그의 『오리엔탈리즘』에서 행한 작업의 후속 작업을 수행할 학자와 비평가가 나타나기를 기대하면서, 구체적인 후속 작업의 몇 가지를 다음과 같이 열거하고 있다.
나는 이 책이 여러 권으로 구성되는 전집의 한 권이 된다는 점에서 스스로 위안하고 있다. 이 책에 이어지는 책을 쓰고자 하는 학자와 비평가가 나타나기를 기대한다. 제국주의와 문화에 관한 개론도 쓰여질 필요가 있다. 이러한 후속 연구에는 (1) 오리엔탈리즘과 교육의 결합, (2) 이탈리아, 네덜란드, 독일, 스위스의 오리엔탈리즘, (3) 학술서와 문학 작품 사이의 역학적 관계, (4) 통치 사상과 지적 규율?훈련과의 관계 등이 철저히 논의되기를 희망한다. 필경 더욱 중요한 일은 (5) 오늘날 오리엔탈리즘에 대체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라는 연구에서, 어떻게 하면 타인을 억압하고 조작하는 것이 아닌 자유로운 입장에 서서 상이한 문화나 상이한 민족을 연구할 수 있겠는가를 묻는 것이리라. 그러나 그것을 위해서는 지식과 권력이라고 하는 복잡한 문제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유감스럽게도 이 모든 것들은 이 책에서 충분히 논의되지 못했다(1991: 52~53).14)
이 인용문에서 사이드가 후속 작업으로 열거하는 것 가운데서 (1) (2) (3) (4)에 대한 논의는 여러 학문 분과에서 논의가 되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특히 위의 (5)에서 지적하는 후속 작업을 위해서는 \'지식과 권력이라고 하는 복잡한 문제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뿐만이 아니라, 이제까지 오리엔탈리즘에 의해서 왜곡되고, 이 왜곡된 모습이 또 다시 오리엔탈리즘에 의해 재생산되어 온 제3세계 각국의 전통 문화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한국의 경우를 예로 들더라도 우리 시대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의 전통 문화를 구성하고 유지해 온 세계관이나 자연관에 대해서 전혀 모르며, 모든 것은 \'문화의 수수께끼\'가 되어 버린 지 오래다. 오리엔탈리즘의 극복이 단순한 기대나 희망 혹은 개인적 자각이라는 도덕적 요구를 넘어서 구체적으로 실천되기 위해서는, 그 전제 조건으로 자신의 문화에 대한 정당한 읽기, 곧 동양의 텍스트를 동양의 인식틀과 사유 체계를 통해서 읽는 인식론적 전환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므로 오리엔탈리즘을 극복하는 구체적인 실천은 ① 우선적으로는 동양과 서양이라는 거대담론의 부당성을 지속적으로 폭로해 가면서, ② 현실적으로는 동양과 서양이라는 기호의 기의에 깔려 있는 \'가치가 개입된 차별적 이분법으로서의 오리엔탈리즘\'의 재생산 메카니즘을 지속적으로 폭로하고, ③ 동양과 서양이라는 기호에 대한 구별적 이분법으로서의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차별적 이분법에 내재된 평가적 가치 판단을 스스로 극복하고 재정립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본다.
이것은 어떤 정답을 제시하는 권위주의적인 방법이 아니라, 독자들이 스스로 ― 없어지면 더 좋지만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 동양과 서양이라는 기호에 대한 \'구별적 이분법\'을 통해서 서로의 \'다름\'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구체적 실천을 위한 전제 조건이 동양의 문화적 텍스트를 동양의 사유 체계를 통해서 읽어내는 인식론적 전환이다. 필자는 이것을 동도동기론東道東器論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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