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운사(禪雲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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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선운사 대웅보전(禪雲寺大雄寶殿)

2.선운사 만세루(禪雲寺萬歲樓)

3.선운사 도솔암(禪雲寺兜率庵)

4. 선운사 도솔암 내원궁(禪雲寺兜率庵內院宮)

5.선운사 금동지장보살좌상(禪雲寺金銅菩薩坐像)

6.선운사 지장보살좌상(禪雲寺地藏菩薩坐像)

7.선운사 도솔암 마애불(禪雲寺兜率庵磨崖佛)

8.선운사 참당암 대웅전(禪雲寺懺堂庵大雄殿)

9.강증산의 생애와 사상

본문내용

고 풍작을 이루게 해주었다는 현지농민들의 목격담이 문헌 속에 숱하게 남아 있다. 또한 사람의 의식과 동작을 능히 통제하는 능력도 갖고 있어서 주위사람들의 생각, 겪은 일과 앞으로 겪을 일을 두루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병자들을 치료한 기록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아직도 고향주변에는 그때의 은혜에 대한 기억들이 고스란히 전해 내려와 강증산의 기행이 단순한 신격화가 아니었음을 알게 한다.
그는 스스로를 미륵, 하나님, 옥황상제, 상제등으로 불러 자신의 도가 단순히 특정 종교나 철학의 한계를 넘어 초종교적 구원임을 명시했다. 자신의 도를 무극대도(無極大道)라 지칭한 것과 일치하는 맥락이다.
그의 천지공사의 사상의 대의는 몇 가지로 간략해 볼 수 있다.
우선 동학(東學) 사상이 서양 문명에 대한 자기 성찰에서 나왔던 것과 비교해서 강증산의 사상은 동양과 서양을 동시에 아우르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철학의 대상은 시대의 사변을 넘어 역사와 미래를 동시에 조망할 뿐 아니라, 논의의 대상 역시 우주와 인간, 신(神)과 동물, 해, 달 등 자연과 문화 종교 등을 총체적으로 조망하고 있어 현대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것이다.
또한 인간의 문제를 천지와의 관계 속에서 파악함으로서 지금으로도 상상할 수 없는 우주적 차원의 개벽사상을 만들어 냈다. 이러한 개벽 사상의 총체적이고 현실적인 부분은 증산도의 진리를 참고하면 대략적인 부분을 집어 볼 수 있다. 그러한 강증산의 생애와 사상은 19세기와 20세기 민족 종교에 많은 영향을 주게 된다.
후천개벽을 바탕으로 보천교와 그밖에 여러 증산계열 교단을 양성하였다. 또한 원불교의 개벽사상이라든가 해원, 상생 등과 통일교의 원시반복, 신정정치, 인존시대 등은 강증산의 후천개벽, 원시반본(原始返本), 해원(解寃), 상생(相生)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민족적 운동들은 일제의 탄압과 날조 속에 보천교가 해체되는 등 역사 속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그럼에도 해방 후에는 증산교, 태극도, 대순진리회, 용화교, 증산도 등으로 이어져 사상적 맥을 이어가게 된다.
또한 인간의 문화를 천지질서와의 관계 속에서 모색한 강증산은 지금까지는 양(陽)의 시대로 남자가 역사의 주인공이였으나, 앞으로는 정음정양이 된다고 주장하였다. 당시 유교문화에서 생각할 수도 없는 사상 중에는 정음정양으로 여성의 지위를 격상시킨 것뿐 아니라 문명개화로 서양화 될 것과 천민도 존대 받는 사회가 되게끔 천지공사에서 질정하였고, 온 인류가 한가족이 된다는 세계 통일 사상은 지금도 종교인들에게 많은 기대를 받고 있다.
반면에 당시의 추종 성도들은 당대의 개벽을 굳게 믿었으며, 이러한 종말론적 사고는 비록 그것이 강증산의 사상에 대한 곡해일지라도 민중의 기억 속에 부정적인 각인을 남기기도 하였다. 또한 강증산은 자신의 후계자를 일부러 모호하게 함으로써 수 십개의 종파가 난립하는 결과를 빗기도 했다. 그러나 증산도에서는 이러한 것이 난법(亂法)을 낸 뒤에 참법을 내는 강증산의 천지공사의 의도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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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03.30
  • 저작시기2007.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0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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