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보건윤리]생태학과 현대물리학 측면에서의 패러다임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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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 론

Ⅱ. 본 론
1. 생태학의 내용
2. 생태학적 케인즈주의
3. 생태지향주의적 환경론
4. 생태맑스주의(Eco-Marxism)
5. 생태사회주의(Eco-Socialism)
6. 생태학과 현대물리학 측면의 패러다임
1) 물리학에서의 생태학적 관점변화
2) 사회생태학(Social Ecology)과 생태여성주의(Ecofeminism)
3) 생태학적 패러다임과 새로운 가치관
4) 윤리
5) 물리학에서 생명과학으로..

Ⅲ. 결 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자연적으로 그리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엄격한 환경 윤리의 모범을 따르게 될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세상에 대한 생태학적 인식과 그에 따르는 행동간의 연결은 논리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심리적 연결관계라는 것이다. 논리는 우리가 생명의 망을 이루는 통합된 한 부분이라는 사실로부터 어떻게 살아야하는가(how we 'should' live)라는 모범으로 이끌어주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가 생명의 망을 이루는 부분이라는 심층 생태학적 각성, 혹은 경험을 가지게 된다면... 우리는 자발적으로(will - 앞서 나온 'should(해야만하다)'에 대한 반대 급부로.. - 역주) 모든 살아있는 자연을 보살피게 될 것이다. 그땐 그러한 반응을 보이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생태학적 자아라는 개념에 의하여 생겨난 생태학과 심리학간의 연결이 몇몇 작가들에 의해서 탐구되어지고 있다. 심층 생태학자 Joanna Macy는 '자아의 녹색화(greening of the self)'라는 책을 썼고, 철학자 Warwick Fox는 'transpersonal ecology'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문화사학자인 Theodore Roszak은 두 분야간에 이루어진 깊은 연결을 표현하기 위해서 '생태심리학(eco-psychology)'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이 두 분야는 최근까지도 완전히 분리되어진 것이었다.
5) 물리학에서 생명과학으로..
새로이 등장하는 실재에 대한 새로운 비젼을 심층 생태학적인 의미의 '생태학적'이라고 부르는 것으로써 우리는 생명이 그 중심에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과거의 패러다임에 있어서는 물리학이 다른 모든 과학분야의 모델이자 메타포어(metaphor)의 원천이 되어왔기 때문에 이 점은 특히 과학에 있어서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데카르트는 다음과 같이 썼다. "모든 철학은 나무와도 같다. 뿌리는 형이상학이며, 몸체는 물리학이고, 다른 모든 과학들은 가지에 해당된다."
심층 생태학은 이러한 데카르트의 비유(Cartesian metaphor)를 극복했다. 비록 물리학에서의 패러다임의 변화가 현대 과학에서 가장 먼저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아직도 특별한 관심을 끄는 것은 사실이지만, 물리학은 이제 실재에 대한 가장 근원적인 이해를 제공해주는 과학으로서의 위치를 잃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 역시 현재까지 제대로 인식되어지지 못하고 있다. 비과학자들은 물론이고 과학자들도 종종 다음과 같은 대중적 믿음을 고수 하고 있다. "만일 당신이 궁극적인 해답을 얻고자한다면 물리학자에게 물어봐야할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 데카르트적 착오이다. 오늘날 과학에서의 패러다임의 변화란 가장 깊은 수준에서는 물리학에서 생명과학으로의 이동을 의미하고 있다.
Ⅲ. 결 론
복잡성을 안고 있는 환경문제가 에너지, 물질 그리고 정보의 분포 특성과 어떤 관계가 있다면 그것을 통합하여 특성을 규명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과 방법이 개발하는 데 통합자로서 생태학은 구실을 해야 할 것이다. 그 통합에는 물질정보과 유전정보 그리고 문화정보가 포괄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생태학은 유전정보에서 모든 실마리를 풀어내려고 하는 오늘날의 생물학과 차별성을 가질 수 있고 생물학이 가진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인간의 환경이란 다른 생물들의 유전정보뿐만 아니라 물질과 문화를 모두 포함하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우리는 생태학을 서양의 학문으로 간주하고 에콜로지(ecology)라는 말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때로는 생태라는 말보다는 오히려 에코(eco)라는 접두사를 붙여 말 만들기를 즐긴다. 그래서 생태학에 대한 정의도 eco와 logos 의 합성어에서 찾아 그리스어 기원인 , 즉 <거주지―우리가 살아가는 전체로서의 환경―에 관한 학문>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생태학(生態學)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이 단어를 한문의 뜻 그대로 옮기면 대충 ‘삶의 꼴(생김새나 됨됨이)’, ‘살아가는 꼴’ 또는 ‘살아가는 모습’ 정도가 된다. 서구학문에서 생태학(ecology)을 집(eco)의 학문(logos)이라는 의미라고 보는 경우와 사뭇 다르다. ecology가 그 안에 사는 생물보다 그것을 감싸고 있는 바깥 환경에 더 주목하는 반면에 생태는 생물을 중심으로 말한다. 더 나아가 사람의 생태학으로 오면 사람이 살아가는 생김새나 됨됨이를 말하며, 이는 아마도 사람이 환경에 반응하는 모습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극히 최근에 와서 인간을 생태계의 구성요소로 고려하려는 학문에는 오히려 ecology보다 우리의 말 생태학이라는 이름이 더 걸맞다. 아마도 생태학이 오래 동안 자연 주변에만 맴돌며 인간의 문제를 고려하는 데 긴 세월이 걸린 까닭은 ecology 라는 명칭 탓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왜 동양에서 집의 학문이 아닌 생태학이 되었는지 그 의미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생태라는 단어가 중국이나 일본에서 유래되었든 상관없이 우리가 많이 사용하게 되었다.
생태학이 집(환경)의 학문에서 삶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성향을 바꾸게 되면 또 다른 전망과 함께 더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누구나 만져볼 수 있는 물건으로 전락하면 학문으로서 권위는 없어진다. 오늘날의 생태학은 환경문제라는 막강한 자원을 앞에 놓고 멋지게 공략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을 끌어내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다른 영역의 사람들이 건드려볼 수 있게 쉬운 설명도 보태지 못하고 있다. 쉽게 이루기에는 매우 어려운 많은 내용과 우리의 삶을 아울러 섞어서 무언가 만들어야 하는 통합과학이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비록 그것을 이룰 수 있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많이 걸릴 속성을 지니고 출발한 학문이다.
참고문헌
김진준 옮김, 총·균·쇠, 문학사상사, 1998, 687쪽.
이도원. 떠도는 생태학, 범양사출판부, 1997, 334쪽.
오덤(Odum, E.P.), 생태학·이도원·박은진·김은숙·장현정 옮김, 2001, 382쪽.
Mayr, E., 1997. This is Biology: The Science of Living World, The Belknap Press of Harvard University Press, 1997, 32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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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04.04
  • 저작시기2007.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02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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