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인물의 출생배경
2.시대적 배경
3.리더쉽
4.평
2.시대적 배경
3.리더쉽
4.평
본문내용
군사를 훈련시켜 놓고 있었습니다. 강감찬은 홍화진에 진을 치고, 작전을 짜기 시작하였습니다. 홍화진의 동쪽에는 삼교천이란 큰 내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곳은 장마만 지지 않으면 물이 얕아서 쉽게 걸어 건널 수 있었습니다. "날랜 군사 1만 2천 명을 데리고 산골짜기에 숨어 있다가, 신호가 떨어지면 적을 공격하시오." 강감찬은 강민첨에게 명령하였습니다. 그런 뒤, 강감찬은 수백 장의 쇠가죽을 밧줄로 매어 강의 상류를 막도록 하였습니다. 또 군사를 강 양쪽에 숨겨 놓았습니다. 얼마 뒤, 소배압의 군사들은 강물이 얕은 곳을 골라서 삼교천을 건너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를 노려, 강감찬은 상류에 막아 놓은 물을 터놓았습니다. "아악, 물벼락이다!" "비도 안 오는데 웬 물이냐?" 거란병들은 갑자기 쏟아져 내려오는 물에 휩쓸려 아우성을 치다가, 강 양쪽에서 쏘아 대는 고려군의 화살을 맞았습니다. 비명 소리가 천지를 울렸습니다. "속았다!" 소배압은 고려의 강감찬의 작전에 말려든 것을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많은 병사를 잃은 소배압은 겨우 전열을 정비할 수가 있었습니다. 소배압은 군사들을 이끌고 남쪽으로 향했습니다. "적이다!" 이때, 산골짜기에 숨어 있던 강민첨의 군사들이 튀어나와 공격했습니다. 거란병들은 도망치기에 바빴습니다. 홍화진의 첫 싸움에서 패한 소배압은 개경으로 말머리를 돌렸습니다. 개경을 함락시키고 고려 임금의 항복을 받을 속셈이었습니다. 강민첨의 군사는 남쪽을 향해 지름길로 달려 내구산에 숨어 있다가, 남쪽으로 진군해 오는 적을 무찔렀습니다. 소배압은 또 큰 피해를 입고 서경으로 내달았습니다. 그러나 마탄에 숨어 있던 고려군의 기습을 받아 소배압은 1만여 명의 군사를 잃었습니다. 소배압은 불과 1천여 명의 군사를 데리고 산 속으로 도망쳤습니다. 남은 군사를 모으니, 그래도 5, 6만은 되었습니다. 소배압은 다시 대열을 정비해 가지고 개경을 향하여 진군하기 시작했습니다. 강감찬은 김종현에게 명령하였습니다. "군사 1만여 명을 이끌고 빨리 개경으로 달려가서 지키시오!" 또, 강감찬은 동북면 병마사에게도 3천 3백 명의 군사를 이끌고 개경을 지키도록 하였습니다. 소배압은 마침내 신은현까지 이르렀습니다. 이곳은 개경에서 백리 정도밖에 안 떨어져 있었습니다. 신은현은 현종의 '청야 전술'로써 사람은 물론 곡식 한 톨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거란군이 약탈을 할 것에 대비하여 모든 것을 싹비워 버렸던 것입니다. "이거 굶어 죽겠네!" "나는 지쳐서 한 발짝도 못 옮겨 놓겠어." 거란병들은 당황하였습니다. 소배압은 개경에 염탐꾼을 보내어 그곳의 형편을 알아보았습니다. 염탐꾼이 돌아와 보고했습니다. "개경은 수많은 군사가 철통같이 지키고 있습니다." 보고를 들은 소배압은 힘이 쭉 빠졌습니다. '돌아가서 다시 계획을 세우는 도리밖에 없다.' 소배압은 야율호덕을 개경에 보내어 거짓으로 화의를 제의하게 하고는, 도망갈 길을 엿보았습니다. 또, 기병대를 남쪽으로 내려보내어 고려군이 뒤쫓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남쪽으로 내려보낸 거란의 기마병 척후병들은, 금교역에 도착한 날 밤에 고려군의 야습을 받아서 전멸하였습니다. 소배압은 군사를 이끌고 북쪽으로 달아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들은 고려군의 기습을 받아 많은 군사를 잃어 가며, 마침내 귀주에 이르렀습니다. 이 때, 강감찬은 귀주와 동쪽들에 진을 치고 소배압의 군사를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강감찬은 부하들을 격려했습니다. "이제는 지쳐서 비실비실하는 거란의 주력 부대만 처치하면 된다!" 고려군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뜻하였습니다. 마침내 귀주 벌판에서 양군이 결전을 벌였습니다. 그 때 강감찬의 명령을 받고 달려온 김종현의 부대가 거란병의 뒤를 치기 시작하였습니다. "도망치자!" 거란병들은 일제히 흩어져 북쪽으로 달아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적을 추격하여 오랑캐들을 한 놈도 살려 주지 마라.!" 강감찬의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고려군은 적을 추격하여 마구 무찔렀습니다. 들과 산에는 거란병의 시체가 널렸습니다. 소배압은 갑옷과 투구도 벗어버리고는 석천을 건너 반령으로 말을 달렸습니다. 거란병들도 무기를 버리고 달아나느라고 정신이 없었습니다. 이때, 압록강을 건너 살아 남은 거란병은 겨우 수천 명밖에 안되었습니다. 이 유명한 고려군의 승리를 강감찬의 '귀주 대첩'이라고 합니다. 귀주 대첩은 을지문덕의 살수 대첩과 이순신의 한산도 대첩과 더불어 우리 민족이 외적을 크게 무찌른 3대첩의 하나로 손꼽힙니다. 강감찬은 72살의 늙은 몸으로 우리 민족을 오랑캐의 말발굽에서 구해 냈던 것입니다. 거란은 그 뒤, 두 번 다시 고려를 넘보지 못하였습니다.
평(評)
이 강감찬 조사를 리더쉽 인물연구 때문에 알아보았는데.. 나는 이 강감찬을 그냥 귀주대첩에서 우리를 승리로 이끈 사람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알보고니.. 했던 일이 많았다.. 많은 관직을 지내면서 국방에 힘도 썼고.. 거란의 1차 침입때.. 소손녕이 이끄는 군대를 서희를 보내게 해서 물러나게 했던 것도 뛰어났었다.. 그런데 그런 것 보다 이 리더쉽 인물연구를 해서 알게된 더 놀라운 사실은.. 나이였다.. 벌써 귀주대첩만 치더라도.. 72세이다.. 나는 어떻게 그연세에 그렇게 하셨는지.. 실로 믿을 수가 없었다.. 내가 72세가 되었다라고 생각하면.. 과연 그 나이에 그렇게 힘든 일을 해낼 수 있을까? 하고 의문이 든다.. 72세.. 지금 생명이 연장되고 건강이 좋아졌다고 해도.. 72세는 아직도 많은 나이이다.. 그때 당시라면 그 나이는 더 많은 나이일 것이다.. 그래서 난 이 나이 때문에 놀라웠고.. 대단하다고 느꼈다.. 나이가 어렸을 때 영재이더라도.. 그것을 잘 활용하지 않고 방치해 두고 그러면.. 영재도 평범한 사람이 되는것처럼.. 아무리 리더쉽이 뛰어났던 사람이더라고 그 리더쉽을 갈고 닦지 않는다면 그냥 평범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 세상에는 리더쉽이 뛰어났던 사람들이 많지만.. 그 리더쉽을 얼마나 유지할 수 있는가가.. 제일 중요한 것 같다.. 반짝 리더쉽이 아니라.. 그 리더쉽이 얼마나 오랫동안 계속 유지 될 수 있는가.. 그것이 이 리더쉽 인물연구를 하면서 느꼈던 점이다..
평(評)
이 강감찬 조사를 리더쉽 인물연구 때문에 알아보았는데.. 나는 이 강감찬을 그냥 귀주대첩에서 우리를 승리로 이끈 사람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알보고니.. 했던 일이 많았다.. 많은 관직을 지내면서 국방에 힘도 썼고.. 거란의 1차 침입때.. 소손녕이 이끄는 군대를 서희를 보내게 해서 물러나게 했던 것도 뛰어났었다.. 그런데 그런 것 보다 이 리더쉽 인물연구를 해서 알게된 더 놀라운 사실은.. 나이였다.. 벌써 귀주대첩만 치더라도.. 72세이다.. 나는 어떻게 그연세에 그렇게 하셨는지.. 실로 믿을 수가 없었다.. 내가 72세가 되었다라고 생각하면.. 과연 그 나이에 그렇게 힘든 일을 해낼 수 있을까? 하고 의문이 든다.. 72세.. 지금 생명이 연장되고 건강이 좋아졌다고 해도.. 72세는 아직도 많은 나이이다.. 그때 당시라면 그 나이는 더 많은 나이일 것이다.. 그래서 난 이 나이 때문에 놀라웠고.. 대단하다고 느꼈다.. 나이가 어렸을 때 영재이더라도.. 그것을 잘 활용하지 않고 방치해 두고 그러면.. 영재도 평범한 사람이 되는것처럼.. 아무리 리더쉽이 뛰어났던 사람이더라고 그 리더쉽을 갈고 닦지 않는다면 그냥 평범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 세상에는 리더쉽이 뛰어났던 사람들이 많지만.. 그 리더쉽을 얼마나 유지할 수 있는가가.. 제일 중요한 것 같다.. 반짝 리더쉽이 아니라.. 그 리더쉽이 얼마나 오랫동안 계속 유지 될 수 있는가.. 그것이 이 리더쉽 인물연구를 하면서 느꼈던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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