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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는 하천의 이름도 梅余川에서 栗下川으로 바꾸어 불렀다.
●입석동 立石洞
현재 동촌 비행장이 위치하고 있는 이 지역은 원래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었으며 들판 곳곳에는 선돌 10여 개가 흩어져 있었다. 비행장 건설과 경지정리가 진행되면서 선돌이 모두 없어지고 말았지만 원래 선돌(立石)이 서있었던 마을이란 뜻에서 입석동이라고 불려 지게 되었다.
●중대동 中大洞
현재의 중대동이 자리하고 있는 지역에는 원래 中里, 한걸(大渠洞), 새미골, 택리동 등의 자연부락이 있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이들 자연부락을 합쳐 하나의 행정구역으로 삼고 이들 자연부락의 첫 글자를 합하여 중대동이라 하였다고 한다.
●지묘동 智妙洞
지묘동이라는 마을 이름은 ①팔공산싸움에서 왕건이 견훤에게 패하여 도망하였는데 이 때 신승겸 등 신하들이 기묘한 술책으로 왕건을 탈출시켰다는 데서 유래한 지명이라고 하며, 또는 ② 옛날 이 마을에는 智妙寺라는 절이 있었는데 여기에서 유래한 지명이라고도 한다.
●지저동 枝底洞
원래 지저동은 현재의 지저동이 위치하고 있는 곳의 건너편 산, 곧 향산 밑에 있던 마을이었다. 향산 밑에 위치하고 있었으므로 사람들은 갓밑, 간밑 또는 枝底, 枝底里라 불렀다. 1914년 때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지저동이라 해서 달성군 해안면에 편입되었다가 1957년 대구지역 확장과 더불어 대구시에 편입되었다. 그 후 원래의 지저동이 동촌 비행장으로 편입되어 거주하던 사람들은 현재의 지저동으로 이주하게 되었지만 사람들은 그들이 전에 살던 마을 이름인 지저동을 이주한 지역에도 그대로 붙여 불렀다.
●진인동 眞仁洞
현재의 진인동이 위치하고 있는 지역에는 원래 眞靜洞, 仁山洞, 唐洞 등의 마을이 있었다. 1914년 이들 마을을 합쳐 하나의 행정구역으로 편성하고 그 이름 역시 이들 마을 이름의 첫 자를 합하여 진인동이라고 하였다.
●평광동 坪廣洞
원래 이곳은 대구부 하북촌면 지역으로 坪里洞과 廣洞이 있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이 지역을 하나로 통합하면서 평리와 광동의 이름을 따서 평광동이라 하여 달성군 공산면에 편입하였다. 그 후 1957년 대구시가 확장되면서 대구시에 편입되었다.
●효목동 孝睦洞
본래 이 지역에는 작은 못이 있었으므로 소못골, 소목골 또는 효목리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원래의 효목리와는 전혀 의미가 다른 비슷한 音의 한자어를 붙여 효목동이라 부르고 달성군 수성면에 편입하였다. 그 후 1938년 대구부가 확장되면서 대구부에 편입되었다.
지금까지 대구광역시 동구의 동명의 유래에 관해 알아보았습니다.
무심코 사용하던 동명이 이런 각각의 유래가 있다는 것과, 더구나 모든 동명을 조사하진 못했지만 태어나서 지금까지 대구에서 살면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괴전동’, 금강동‘과 같은 동명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계기가 되는 좋은 기회였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쉬운 건 ‘반야월’ 이라던가 ‘안심’처럼 동명은 아니지만 특정 지역을 나타내는 지역 명에 관해 제가 아는 소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정확한 조사를 못해 아쉬웠습니다.
●입석동 立石洞
현재 동촌 비행장이 위치하고 있는 이 지역은 원래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었으며 들판 곳곳에는 선돌 10여 개가 흩어져 있었다. 비행장 건설과 경지정리가 진행되면서 선돌이 모두 없어지고 말았지만 원래 선돌(立石)이 서있었던 마을이란 뜻에서 입석동이라고 불려 지게 되었다.
●중대동 中大洞
현재의 중대동이 자리하고 있는 지역에는 원래 中里, 한걸(大渠洞), 새미골, 택리동 등의 자연부락이 있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이들 자연부락을 합쳐 하나의 행정구역으로 삼고 이들 자연부락의 첫 글자를 합하여 중대동이라 하였다고 한다.
●지묘동 智妙洞
지묘동이라는 마을 이름은 ①팔공산싸움에서 왕건이 견훤에게 패하여 도망하였는데 이 때 신승겸 등 신하들이 기묘한 술책으로 왕건을 탈출시켰다는 데서 유래한 지명이라고 하며, 또는 ② 옛날 이 마을에는 智妙寺라는 절이 있었는데 여기에서 유래한 지명이라고도 한다.
●지저동 枝底洞
원래 지저동은 현재의 지저동이 위치하고 있는 곳의 건너편 산, 곧 향산 밑에 있던 마을이었다. 향산 밑에 위치하고 있었으므로 사람들은 갓밑, 간밑 또는 枝底, 枝底里라 불렀다. 1914년 때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지저동이라 해서 달성군 해안면에 편입되었다가 1957년 대구지역 확장과 더불어 대구시에 편입되었다. 그 후 원래의 지저동이 동촌 비행장으로 편입되어 거주하던 사람들은 현재의 지저동으로 이주하게 되었지만 사람들은 그들이 전에 살던 마을 이름인 지저동을 이주한 지역에도 그대로 붙여 불렀다.
●진인동 眞仁洞
현재의 진인동이 위치하고 있는 지역에는 원래 眞靜洞, 仁山洞, 唐洞 등의 마을이 있었다. 1914년 이들 마을을 합쳐 하나의 행정구역으로 편성하고 그 이름 역시 이들 마을 이름의 첫 자를 합하여 진인동이라고 하였다.
●평광동 坪廣洞
원래 이곳은 대구부 하북촌면 지역으로 坪里洞과 廣洞이 있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이 지역을 하나로 통합하면서 평리와 광동의 이름을 따서 평광동이라 하여 달성군 공산면에 편입하였다. 그 후 1957년 대구시가 확장되면서 대구시에 편입되었다.
●효목동 孝睦洞
본래 이 지역에는 작은 못이 있었으므로 소못골, 소목골 또는 효목리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원래의 효목리와는 전혀 의미가 다른 비슷한 音의 한자어를 붙여 효목동이라 부르고 달성군 수성면에 편입하였다. 그 후 1938년 대구부가 확장되면서 대구부에 편입되었다.
지금까지 대구광역시 동구의 동명의 유래에 관해 알아보았습니다.
무심코 사용하던 동명이 이런 각각의 유래가 있다는 것과, 더구나 모든 동명을 조사하진 못했지만 태어나서 지금까지 대구에서 살면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괴전동’, 금강동‘과 같은 동명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계기가 되는 좋은 기회였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쉬운 건 ‘반야월’ 이라던가 ‘안심’처럼 동명은 아니지만 특정 지역을 나타내는 지역 명에 관해 제가 아는 소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정확한 조사를 못해 아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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