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론
Ⅲ. 본론
1. 루소의 생애
2. 루소의 사상과 저서
(1) 사회계약론
(2) 과학예술론
(3) 인간 불평등 기원론
(4) 자연회귀사상
3. 루소의 활동방향
(1) 루소와 시민혁명
Ⅲ. 결론
Ⅲ. 본론
1. 루소의 생애
2. 루소의 사상과 저서
(1) 사회계약론
(2) 과학예술론
(3) 인간 불평등 기원론
(4) 자연회귀사상
3. 루소의 활동방향
(1) 루소와 시민혁명
Ⅲ. 결론
본문내용
사람은 언제나 자기 자신과 모순되며 항상 자신의 취향과 의무 사이를 방황하며 인간도 시민도 되지 못한다. 이러한 사람은 자신을 위해서나 남을 위해서 필요한 사람이 되지 못한다. 그러한 사람은 오늘날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사람인 것이다.
무엇인가 되기 위하여, 즉 자기 자신이 되고 한 사람의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 한다. 항상 자기가 취해야 항 태도를 확실히 결정하여 언제나 일관성있게 추진해 나가야 한다. 나는 누군가가 비범한 일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그것은 그가 인간이나 시민, 혹은 동시에 양자가 되기 위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알고 싶어서이다.
우리들이 끊임없이 내부에서 겪는 갈등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우리는 자연과 인간 양쪽에 의해 상반되는 길로 이끌리고, 그리하여 여러 다른 충격 사이에서 필연적으로 모순이 드러나서 그 어느 목표에도 도달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들은 일생 동안 시달리고 방황하며 자신과의 조화를 이룰 수도 없고, 또 자신이나 남들을 위해 아무것도 보지 못한 채 일생을 마치는 것이다.
3. 루소의 활동방향
(1) 루소와 시민 혁명
루소가 살았던 프랑스는 제 1 계급인 10만 명의 승족과 제2 계급인 40만의 귀족이 1800만의 시민 및 농민을 지배하고 착취하던 불평등 사회였다. 승족과 귀족은 모든 권력과 재산을 독점하면서 사치와 낭비의 극치를 치닫고 있었다. 여기에 로크를 중심으로 한 영국의 정치 제도와 이념이 프랑스에 소개되고, 루소가 앞장선 혁신적인 계몽주의 사상은 당시 사회를 비판하는데 선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특히 현실 사회의 부도덕과 불행의 근원을 운명이라 하지 않고 인간이 만든 제도에 있으며, 그것은 인간의 이성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주장은 시민과 민중들에게 각성과 희망을 주었고, 이러한 영향은 훗날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는 불씨가 되었다.
프랑스 국민이 절대 왕정의 굴레를 벗어 던지고 자유를 회복하기 위하여 일어난 것은 루소가 죽은 지 11년 후였다. 혁명의 지도자 마라는 파리 거리에서 루소의 "사회 계약론"을 낭독하여 시민의 분기를 촉구했고, 로베스피에르는 3부회의 3신분 대표로 선출되어 파리로 갈 때 "루소에게 바치는 찬사"를 쓰고, 루소의 사상을 충실하게 실천 할 것을 맹세했다. 혁명이 끝나고 감옥에 갇힌 프랑스 황제 루이 16세가 우연히 볼테르와 루소의 저작을 읽고서 "나의 왕국을 쓰러뜨린 것은 바로 이 두 놈이다."라고 외쳤다는 이야기도 있다.
뿐만 아니라 루소의 사상은 독일의 계몽주의 철학자들에게도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대 철학자 칸트가 루소의 저작을 읽다가 산책 시간을 어겼다는 것은 유명한 전설이며, 괴테는 "루소와 함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다."고 까지 하였다.
Ⅲ. 결론
루소는 계몽주의 사상가의 주류에서는 비켜 서 있었지만, 프랑스 전역, 제네바의 급진파, 계몽 유럽의 기타 지역 이탈리아, 스코틀랜드, 독일 등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18세기 생활과 사상에 대한 그의 영향력은 그 절정에 달했다. 루소 당대에 프랑스 혁명 세력의 3대 원칙인 자유, 평등, 박애와 국민 주권의 사상을 루소처럼 분명하게 외친 사상가는 없었다. 프랑스에서는 국민 주권의 사상을 채택하면서 앙시앵레짐이 막을 내렸다. 그는 다가오는 유럽의 위기와 혁명 시대의 도래를 예견하면서, 그런 시대를 가능하면 회피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가 죽고 10년이 지나서야 프랑스 대혁명이 터지자, 혁명 지도자들은 루소 철학을 크게 참고하면서 자신들의 강령과 헌법을 작성하게 된다. 또 사회 계약론에서 주장된 바와 같이, 도덕적 문제의 분야에서 실제로 가능한 일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많다. 인간은 사유 재산 제도를 선택하고 야만에서 문명으로 건너가면서 자신의 완전 가능성을 잘못 사용하여 자기 자유를 크게 제한하게 되었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은 완전 가능성을 갖고 있으므로, 인간이 저지른 실수는 이론상 시정되고 또 극복될 수 있다. 고대사회에서는 시민 사회는 도덕적으로 자유롭고 정치적으로 평등한 시민을 만드는 틀 안에서 형성되었다. 루소처럼 18세기 문명을 강렬하게 비판하면서 그 문명의 절망과 불만을 예리하게 드러내 보인 사상가는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비평이 그저 비평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기 개인의 반성과 원숙한 인품을 통해 하나의 일관된 결론으로 이어졌다는 데 루소의 위대함이 있다.
루소의 주장에 따르면, 이러한 인간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한 근간은 홉즈나 로크가 주장하듯이 이기심이나 계산능력을 뜻하는 의미에서의 이성보다는 느낌 아니 연민의 정이 인간행위의 기준 또는 결집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약하고 유한한 인간이 공동운명을 타고난 같은 인간에 대해 느끼는 연민의 정이야말로 인간의 주정(主情)이며, 따라서 이것이 공동생활의 근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루소가 오늘날 참여 민주주의 이론의 주창자가 된 가장 큰 이유이다. 인간의 저속화를 막고(또는 부르주아 인간상을 극복하고) 참다운 인간의 모급을 회복하는 일은 참다운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고대와 근대의 정치 사상가를 통틀어 루소만큼 그 시대 혁명가들을 흥분시킨 사상가는 없었다. 또한 루소처럼 18세기 문명을 거세게 비판하면서 그 문명의 절망과 불만을 예리하게 드러내 보인 사상가도 없었다. 그러나 그런 비평이 그저 비평만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개인적 반성과 원숙한 인품을 통해 하나의 일관된 결론으로 이어졌다는 데 루소의 위대함이 있는 것 같다. 루소의 개혁 사상은 사유재산 제도가 인간의 선한 본성을 왜곡하고, 예술과 과학의 남용이 인간의 불행의 진정한 원천이라는 사고에서 출발했지만, 그는 인간의 본성이 근본적으로 선량하다는 믿음을 평생 버리지 않았다. 우리는 이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루소의 억압받지 않은 자유 상태에서 이루어진 인간의 자기실현을 핵심 사상으로 유지하며 고전적 공화주의, 고대의 신화학, 신과의 직접적인 영적 소통, 고독 등을 강조함으로써 포스트모너니즘의 도래를 예고한 루소의 사상 전말을 일목요연하고 명쾌하게 살펴볼 수 있었다는 것을 말하면서 이 보고서의 결말을 지으려 한다.
무엇인가 되기 위하여, 즉 자기 자신이 되고 한 사람의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 한다. 항상 자기가 취해야 항 태도를 확실히 결정하여 언제나 일관성있게 추진해 나가야 한다. 나는 누군가가 비범한 일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그것은 그가 인간이나 시민, 혹은 동시에 양자가 되기 위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알고 싶어서이다.
우리들이 끊임없이 내부에서 겪는 갈등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우리는 자연과 인간 양쪽에 의해 상반되는 길로 이끌리고, 그리하여 여러 다른 충격 사이에서 필연적으로 모순이 드러나서 그 어느 목표에도 도달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들은 일생 동안 시달리고 방황하며 자신과의 조화를 이룰 수도 없고, 또 자신이나 남들을 위해 아무것도 보지 못한 채 일생을 마치는 것이다.
3. 루소의 활동방향
(1) 루소와 시민 혁명
루소가 살았던 프랑스는 제 1 계급인 10만 명의 승족과 제2 계급인 40만의 귀족이 1800만의 시민 및 농민을 지배하고 착취하던 불평등 사회였다. 승족과 귀족은 모든 권력과 재산을 독점하면서 사치와 낭비의 극치를 치닫고 있었다. 여기에 로크를 중심으로 한 영국의 정치 제도와 이념이 프랑스에 소개되고, 루소가 앞장선 혁신적인 계몽주의 사상은 당시 사회를 비판하는데 선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특히 현실 사회의 부도덕과 불행의 근원을 운명이라 하지 않고 인간이 만든 제도에 있으며, 그것은 인간의 이성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주장은 시민과 민중들에게 각성과 희망을 주었고, 이러한 영향은 훗날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는 불씨가 되었다.
프랑스 국민이 절대 왕정의 굴레를 벗어 던지고 자유를 회복하기 위하여 일어난 것은 루소가 죽은 지 11년 후였다. 혁명의 지도자 마라는 파리 거리에서 루소의 "사회 계약론"을 낭독하여 시민의 분기를 촉구했고, 로베스피에르는 3부회의 3신분 대표로 선출되어 파리로 갈 때 "루소에게 바치는 찬사"를 쓰고, 루소의 사상을 충실하게 실천 할 것을 맹세했다. 혁명이 끝나고 감옥에 갇힌 프랑스 황제 루이 16세가 우연히 볼테르와 루소의 저작을 읽고서 "나의 왕국을 쓰러뜨린 것은 바로 이 두 놈이다."라고 외쳤다는 이야기도 있다.
뿐만 아니라 루소의 사상은 독일의 계몽주의 철학자들에게도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대 철학자 칸트가 루소의 저작을 읽다가 산책 시간을 어겼다는 것은 유명한 전설이며, 괴테는 "루소와 함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다."고 까지 하였다.
Ⅲ. 결론
루소는 계몽주의 사상가의 주류에서는 비켜 서 있었지만, 프랑스 전역, 제네바의 급진파, 계몽 유럽의 기타 지역 이탈리아, 스코틀랜드, 독일 등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18세기 생활과 사상에 대한 그의 영향력은 그 절정에 달했다. 루소 당대에 프랑스 혁명 세력의 3대 원칙인 자유, 평등, 박애와 국민 주권의 사상을 루소처럼 분명하게 외친 사상가는 없었다. 프랑스에서는 국민 주권의 사상을 채택하면서 앙시앵레짐이 막을 내렸다. 그는 다가오는 유럽의 위기와 혁명 시대의 도래를 예견하면서, 그런 시대를 가능하면 회피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가 죽고 10년이 지나서야 프랑스 대혁명이 터지자, 혁명 지도자들은 루소 철학을 크게 참고하면서 자신들의 강령과 헌법을 작성하게 된다. 또 사회 계약론에서 주장된 바와 같이, 도덕적 문제의 분야에서 실제로 가능한 일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많다. 인간은 사유 재산 제도를 선택하고 야만에서 문명으로 건너가면서 자신의 완전 가능성을 잘못 사용하여 자기 자유를 크게 제한하게 되었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은 완전 가능성을 갖고 있으므로, 인간이 저지른 실수는 이론상 시정되고 또 극복될 수 있다. 고대사회에서는 시민 사회는 도덕적으로 자유롭고 정치적으로 평등한 시민을 만드는 틀 안에서 형성되었다. 루소처럼 18세기 문명을 강렬하게 비판하면서 그 문명의 절망과 불만을 예리하게 드러내 보인 사상가는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비평이 그저 비평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기 개인의 반성과 원숙한 인품을 통해 하나의 일관된 결론으로 이어졌다는 데 루소의 위대함이 있다.
루소의 주장에 따르면, 이러한 인간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한 근간은 홉즈나 로크가 주장하듯이 이기심이나 계산능력을 뜻하는 의미에서의 이성보다는 느낌 아니 연민의 정이 인간행위의 기준 또는 결집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약하고 유한한 인간이 공동운명을 타고난 같은 인간에 대해 느끼는 연민의 정이야말로 인간의 주정(主情)이며, 따라서 이것이 공동생활의 근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루소가 오늘날 참여 민주주의 이론의 주창자가 된 가장 큰 이유이다. 인간의 저속화를 막고(또는 부르주아 인간상을 극복하고) 참다운 인간의 모급을 회복하는 일은 참다운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고대와 근대의 정치 사상가를 통틀어 루소만큼 그 시대 혁명가들을 흥분시킨 사상가는 없었다. 또한 루소처럼 18세기 문명을 거세게 비판하면서 그 문명의 절망과 불만을 예리하게 드러내 보인 사상가도 없었다. 그러나 그런 비평이 그저 비평만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개인적 반성과 원숙한 인품을 통해 하나의 일관된 결론으로 이어졌다는 데 루소의 위대함이 있는 것 같다. 루소의 개혁 사상은 사유재산 제도가 인간의 선한 본성을 왜곡하고, 예술과 과학의 남용이 인간의 불행의 진정한 원천이라는 사고에서 출발했지만, 그는 인간의 본성이 근본적으로 선량하다는 믿음을 평생 버리지 않았다. 우리는 이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루소의 억압받지 않은 자유 상태에서 이루어진 인간의 자기실현을 핵심 사상으로 유지하며 고전적 공화주의, 고대의 신화학, 신과의 직접적인 영적 소통, 고독 등을 강조함으로써 포스트모너니즘의 도래를 예고한 루소의 사상 전말을 일목요연하고 명쾌하게 살펴볼 수 있었다는 것을 말하면서 이 보고서의 결말을 지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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