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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지 했다. 그러자 지식인들과 호족들이 서서히 그의 곁을 떠나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당시 사회의 중간계층이었기 때문에 급진적인 개혁을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궁예 휘하에서 동궁기실까지 지냈던 박유는 산속으로 숨어버렸으며 장주의 직책에 있던 최응은 궁예가 왕건에게 모반 혐의를 뒤집어씌울 때 왕건을 도와주었다. 그리하여 궁예는 결국 왕위를 왕건에게 내주게 되었다.
이처럼 후삼국시대는 신라의 골품제 사회를 개혁하려는 몸부림 속에서 탄생되었다. 신라의 진골귀족이 권력을 독점하고 백성을 수탈하던 체제에서 벗어나고자 농민들이 봉기하는 과정에서 얻어진 결과였던 것이다. 그러나 궁예는 너무 갑자기 급진적으로 모든 것을 바꾸려 하다 실패하였고 반면 견훤은 큰 개혁 없이 그 시대에 안주하면서 권력만을 탐하다 몰락하였다.
이처럼 후삼국시대는 신라의 골품제 사회를 개혁하려는 몸부림 속에서 탄생되었다. 신라의 진골귀족이 권력을 독점하고 백성을 수탈하던 체제에서 벗어나고자 농민들이 봉기하는 과정에서 얻어진 결과였던 것이다. 그러나 궁예는 너무 갑자기 급진적으로 모든 것을 바꾸려 하다 실패하였고 반면 견훤은 큰 개혁 없이 그 시대에 안주하면서 권력만을 탐하다 몰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