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비문학과 민중 역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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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머리말

2. 민요와 민중역량
2.1 난리를 구가하는 노래
2.2 近代民謠 아리랑

3. 설화와 민중역량
3.1 진인출현에 대한 열망
3.2 민족적 영웅상과 이념의 창출

4. 가사와 민중역량
4.1 항쟁의 과정과 민란가사
4.2 동학가사

5. 맺음말

본문내용

이노 들어보쇼
白頭山 一肢에
三角山이 샴계잇고
大關嶺 흐른물리
漢江水 되어셔라

본읍 原結 헤아리니
삼천육백여 결이요
열 말 나락 수습하니
이천삼백여 석이라
연년이 이천삼백여 석
백판으로 徵民한다

흉악하다 저 京主人

추상같은 저 호통과
철석같은 저 주먹

무듸무듸 모아서서
원통타 우는 소리

전후 소위 생각하니
분한 마음 둘 데 없다

手足異處 나중하고
우선 鳴鼓 出送하라

위와 같이 당시의 핵심적 모순을 객관화하고 있을 분 아니라, 감정적이고 격한 표현을 구사함으로써 난의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그리고 선동적 표현을 동원하여 항쟁의 집단적 결집을 격정적으로 호소함으로써 전의를 다지고 있다.
이러한 가사를 지은 사람들의 사회적 신분을 일률적으로 파악하기는 어려우나, 가사의 내용으로 미루어보아 몰락한 지식인이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자신의 경험과 지식, 정치적 의식 등을 모두 동원하여 가사는 짓는 것으로 난에, 그것도 주도적 인자로 참여했을 것이다.
상호 소통연락 등의 과정을 겪으면서 난들 사이의 내재적 상호 연계가 확보되고 난이 점차 조직화체계화되고 있었으며, 그 과정에서 가사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떠맡고 있었다. 가사가 형식상 4음보의 장편율문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사실을 객관적으로 충실히 보고하고 전달하기에 적합할 뿐 아니라 그 바탕 위에서 억울하고 분한 심정을 충분히 드러낼 수 있는 특성을 갖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가사의 구송성은 특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을 것이다.
4.2 동학가사
최제우는 동학을 창건하며 득도가 어떻게 해서 이루어졌으며 무엇을 뜻하는지 밝히는 방법을 스스로 찾아 전혀 새로운 경전을 마련해야만 되었다. 국문을 택해서 지체나 학식을 가리지 않고 누구나 알 수 있는 말로 가사를 여러 편 지어 외고 익히기 좋도록 했다. 즉, 한글 가사체의 형식으로 일반 민중과 부녀자가 쉽게 암송하거나 노래로 불러서 전해지도록 한 것이다.『용담유사』라고 총칭되는 최제우의 가사는 모두 아홉 편이다. (「용담가」「안심가」「교훈가」「도수사」「몽중노소문답가」「검결」「권학가」「도덕가」「흥비가」)
억조창 만은 람 람마 이러며
허다 언문 가 노마 이러며
두어 귀 언문 가사 드른다시 외와야
졍심수도 온 후의 잇디 말고 각쇼 - 「권학가」「도덕가」
「권학가」와 「도덕가」에서 자기 가사를 국문이라는 이유로 예사롭게 여기지 말라는 뜻을 이렇게 일렀다.
이후 전봉준이 주동이 되어 전라도 고부에서 일으켜 전국적인 규모로 확산한 사상 초유의 대규모 민란인 동학형명이 발생했다. 동학혁명의 문학은 동학의 문학이라기보다 혁명의 문학이다. 따라서 경전 대신에 격문이 필요했다. 격문으로 거사의 이유를 밝히고, 투쟁의 목표를 제시해 민심을 모으는 것은 최제우가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과업이었다. 동학군의 격문에는 한문인 것도 있고 국문인 것도 있다. 격문처럼 엄숙한 글을 국문으로 쓴 것은 전에 없던 일이며, 어문생활사에서 새로운 시기가 시작되었음을 입증해준다. 한문에 익지 않은 하층민을 모아들여 동지를 널리 얻기 위해서는 국문이 긴요하다고 판단했으며, 동학군 지휘자들 자신도 대체로 같은 처지라 국문 사용이 더욱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 후 동학군이 패배하고 전봉준이 죽는 데까지 이른 비극은 구비문학으로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찼다. 민중적 영웅의 이야기가 그동안 생각했던 규모를 훨씬 넘어서서 사실로 실현되었으니 전승적인 유형을 적용해서 정리하는 것이 부질없는 일이었을 수 있다. 그 대신에 패배의 의미를 되새기는 짧은 노래만 몇 편 은밀하게 유행했다.
야 야 八王야
네가 어이 나왓더냐
솔닙 닙 포릇포릇 辛혀 봄철인가 나왓더니
白雪이 폴폴 헌날린다.
뎌 건너 蒼松綠竹이 속엿다 - 「파랑새노래」
전봉준이 거사할 때 그 노래가 호남에 유행했다면서, 정세를 바로 파악하고 시기를 이용했더라면 목적을 이루었을 터인데 그렇지 못했다는 것을 명백하게 말한 내용이라고 했다. 조동일, 『한국문학통사4』, 지식산업사, (1994) p.10~23
5. 맺음말
이상 구비문학에 드러난 민중의 역량을 민요, 설화, 가사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그것이 형식적으로 또는 내용적으로 세련미를 갖추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치열한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참모습을 드러냈다는데 그 의의가 있다. 특히 구비문학이라는 속성은 여러 사람의 입을 통해 개작이 가능하고, 실생활과 가장 밀접히 닿아있기 때문에 민중의 구체적 실상과 생활감정을 반영하기에 가장 적합한 문학장르이다. 그런 것이 19세기라는 시대적 혼란기를 맞아 민중의 불만은 ‘반란’으로 표출되었고, 그 과정에 있어서도 구비문학이 선동의 역할을 했다. 즉, 민중은 자신의 염원을 담은 노래와 이야기를 은밀히 혹은 공개적이고 집단적으로 부르거나 얘기하면서 반봉건의 횃불을 올렸던 것이다.
구비문학은 언제나 민중의 곁에 있으면서 다양한 양상으로 민중을 드러냈다. 그 중에서 특히 주목받을만한 것은 야담이나 민란가사이다. 야담 등의 단편소설은 반봉건항쟁의 과정 속에서 민중적 영웅상과 이념의 창출을 시도함으로써 그 예술적 성취를 한층 높여주었다. 그리고 민란가사는 민중의 의지를 사회적 운동과 결합시켜 밀고나갔으므로 우리 문학사상 특히 의미있는 갈래라고 할 수 있다. 진경환, 「19세기 반봉건항쟁과 문학적 대응」, 『민족문학사강좌(上)』, 창작과 비평사 (1995) p.357~358
이렇듯 구비문학은 현실인식을 치열하게 드러내는 ‘현실주의’문학 가운데서도 그 담당층이 민중들 자신이라는 점에서 가장 ‘현실적인’ ‘현실주의’문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김시업, 「近代民謠 아리랑의 성격형성」『전환기의 동아시아 문학』 창작과 비평사 (1985)
방종현김사엽최상수, 『朝鮮民謠集成』, 正音社, (1948)
임동권, 『韓國民謠集Ⅲ』
장덕순 외, 『구비문학개설』, 일조각, (1995)
조동일, 『한국문학통사4』, 지식산업사, (1994)
조동일, 「구비문학의 특징과 갈래」, 『구비문학의 세계』
조동일, 「진인 출현설의 구비문학적 이해」『韓國古典散文硏究』
조규익, 『거창가』, 월인 (2000)
진경환, 「19세기 반봉건항쟁과 문학적 대응」『민족문학사강좌(上)』창작과 비평사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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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06.19
  • 저작시기200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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