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악의 새 양상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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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거의 자취를 감추고 그 대신 육보가 중심기보법으로 민간악보에서 사용되는 역사적 변천이 생겼고, 이러한 전통이 20세기 전반까지 계속 되었던 것이다. 생황자보는 조선후기의 생황으로 연주되었던 가곡 반주음악을 후대에 남겨주었을 뿐만아니라. 그 기보법은 정간보처럼 시가를 나타낼 수 있었던 유량 악보였기 때문에 음악사에서 중요시 된다. 연음표는 가곡의 노래선율을 후대에 전하는 유일의 기보법이었다는 이유에서 중요시 된다. 유예지의 생황자보, 이 기보법은 시가를 표시한 검은 점은 짧은 소리를 내었고 하나의 흰점은 중간 길이의 소리를 표시하였으며, 두 개의 흰 점은 긴 소리를 의미했다. 시가의 표시를 위한 생황자보의이러한 표기법은 음악사적인 관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하겠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기보법 중에서 시가에 관련된 기보법은 오직 정간보 뿐이었지만, 유예지의 생황자보도 시가를 나타내는 유량악보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곡원류의 연음표 : 생황자보나 연음표는 모두 19세기 풍류방에서 가곡을 즐기던 가객과 풍류객들에 의해 사용되었던 기보법이고, 그것은 정악이라는 음악문화의 일면을 잘 나타낸 실례들이다. 두 기보법이 현재까지 전승되지는 못했지만, 조선 후기의 음악사적 관점에서 중요시되어야 마땅하다. 두 기보법에 의해서 19세기 가곡의 악보가 현재까지 전승될 수 있었다는 첫째 이유 이외에도 특히 생황자보가 일중의 유량악보였다는 둘째 사실에 주목 할 필요가 있다. 생황자보에서 시가를 표시한 방법이 후대에 전승되어 발전되었다면, 우리나라의 기보법사가 새 양상으로 전개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까닭에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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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07.09
  • 저작시기2007.7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198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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