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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개요
Ⅱ. 신경향파의 의의
Ⅲ. 계급문학 운동의 성립 과정
1. 파스큘라․염군사
2. 파스큘라오 염군사 비교
3. 염군사가 파스큘라와 합작을 요구하는 이유
4. 조선청년총동맹의 창립과 의의
Ⅳ. 프로문학 작품론
Ⅴ. 카프(KAPF) 내용․형식논쟁
1. 절충주의 문학론
2. 아나키스트 문학론의 대두
3. 목적 의식론 및 제 1차 방향 전환론
4. 프로문학론의 실천기
5. 예술 대중화론
6. 예술운동의 볼세비키화론 및 제 2차 방향 전환론
7. 농민 문학론
8. 리얼리즘
9. 동반자작가론
10. 사회주의 리얼리즘론을 둘러싼 창작방법 논쟁
11. 해외문학파와의 논쟁
Ⅵ. 신경향파 문학비평
Ⅱ. 신경향파의 의의
Ⅲ. 계급문학 운동의 성립 과정
1. 파스큘라․염군사
2. 파스큘라오 염군사 비교
3. 염군사가 파스큘라와 합작을 요구하는 이유
4. 조선청년총동맹의 창립과 의의
Ⅳ. 프로문학 작품론
Ⅴ. 카프(KAPF) 내용․형식논쟁
1. 절충주의 문학론
2. 아나키스트 문학론의 대두
3. 목적 의식론 및 제 1차 방향 전환론
4. 프로문학론의 실천기
5. 예술 대중화론
6. 예술운동의 볼세비키화론 및 제 2차 방향 전환론
7. 농민 문학론
8. 리얼리즘
9. 동반자작가론
10. 사회주의 리얼리즘론을 둘러싼 창작방법 논쟁
11. 해외문학파와의 논쟁
Ⅵ. 신경향파 문학비평
본문내용
의가 靈에 폭군”(절대,373)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참다운 예술가는 절대 자유의 세계에 있기에 “도저히 계급의식을 가질 수 없”는데(계급,63), “요새 프로문학 운동자들이 책임 없는 말로 예술지상주의를 부르주아 예술이라 하여 배척”하는 것은 “프로문학 운동자들의 히스테리증”에 지나지 않는다고(계급,62) 한다. 바로 이 점도 있고 “그 시대의 생활 의식만을 표준하는 문학은 영원성이 없을 것”이니(계급,59) 프로문학은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일언하자면 “영원한 미는 즉 계급의식을 초월한 예술”이라는(계급,60) 것이다.
임노월의 이런 예술론은 구경에는 개인주의, 그것도 추상적 人性 파악에 기초한 과도한 개인주의에서 비롯한 것이겠지만, 개인의 절대적 자유를 내세움으로써 신경향파 문학비평에 유일하게 대항하였고, 문학예술의 영원성 같은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신경향파 문학비평이 해결하여야 할 문학적 가치와 연관된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점에서 나름의 의의는 있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개인이 사회와 맺고 있는 관계를 일방적으로 파기하여 그것을 극단화시키고 과도한 퇴폐적 경향으로 몰고감으로써 오히려 스스로의 입지를 좁히고 말았다.
이 시기에 입을 다물고 있던 ‘기성’ 문학자들이 자신의 견해를 논리적으로 드러낼 수 있게 된 계기는 역설적이게도 박영희가 프롤레타리아문학의 독자성을 공개적으로 인준받기 위해 자리를 마련했던 ?계급문학 시비론?에서였다. 이 자리에서 김동인은(?藝術家 自身의 막지 못할 藝術慾에서?) 계급 공기나 계급 음료수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계급문학도 존재치 못할 것이라는, 야유 섞인 비유를 들어 계급문학을 부정하는바, 그러나 그 논리는 계급이 사회적 개념이고 계급문학이 결코 제재상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몰각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응력이 없다. 하지만 김동인이 정작 하고 싶었던 말은 표면적 발언 이전에 있어 보인다. 곧 계급문학이란 아예 고려하고 있지도 않다는 것, 이것이 그의 심중진언으로 보인다. 따라서 논리적인 대응은 아니다. 그리고 그는 예술이란 “예술가 자신의 막지 못할 예술욕 때문”에 나오는 것이라 하여 문학적 행위의 究竟에 작가 개인이 놓여 있음을 주장한다. 이광수는(?階級을 超越한 藝術이라야?) 몇 달 전에 했던, “국가뿐 아니라 모든 단체생활에서는 다 각기 그 단체의 정신(사상과 감정)을 표현하는 문학을 존중하는 것이니” 사회주의 문학이나 프롤레타리아문학이라는 것도 “이러한 범주에서 나온 것”이라는 발언과는 달리, 계급문학을 독자의 취향에 연결시키면서, 모든 계급에게 감동을 주는(즉 “계급을 초월한”) 문학예술이 참다운 것이라 진술한다. 言外言으로 계급문학이란 이류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고 있으니 역시 계급문학에 맞대응하는 것이라 볼 수는 없다. 그 또한 비유로써 작가 우선주의적 태도를 내보인다. 비유와 短文 그리고 無視로 특징지어지는 이 둘과 달리 논리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인물이 염상섭이다(?作家로서는 無意味한 말?). 그는 우선 계급문학이 무산계급문학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정리한 뒤, 그것을 세 가지로 정의한 다음 각각에 대해 문학의 독립성, 제재 제한의 불가능과 작가 재능 제한의 불가, 문학예술의 저속화 우려의 이유를 내세워 이들을 작가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고 한다. “계급문학이 출현되지 못하리라는 것도 아니요, 또 그 출현이 불합리하다는 것도 아니나 다만 일종의 적극적 운동으로 이를 무리히 형성시키려고 애를 쓸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필요가 없다는 것보다도 그리 함은 문학의 根本義에 어그러진다는 말이다”(54면)라는 것이다. 요약컨대 계급문학을 ‘용인’할 수는 있으나 ‘강요’하지는 말라는 것이다. 논리적으로 개진되고는 있으나 그 근본적인 근거는 김동인이나 이광수의 문예론과 같다. 곧 창작은 작가의 개인적 자유에 의존한다는 작가 우위론적 관점이요 개인주의적 사고의 발로라 할 수 있겠다.
결국 임노월까지 포함하여 총괄적으로 말해서 이 시기에 신경향파 문학비평에 대립하였던 논자들은 그 방패로서 개인주의를 내세웠던 것이지 그 어떤 사회적 이데올로기를 내걸지 않았음을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이 시기 벽두에 임정재의 ?문사 제군에게 여하는 일문?으로 신경향파 문학비평의 전면에 나섰던 아나키즘 문학론은 이 시기에는 더 이상 별다른 발전을 보여주지 못한다. 황석우, 원종린, 김기진 등이 아나키즘에 관해 의견을 개진하고는 있지만, 모두 다 문학론 자체는 아니다. 또한 아나키즘을 적극적·긍정적으로 기술하고 있는 것은 아나키스트 원종린의 글 정도이다. 하지만 이들 글이 공통적으로, 아나키즘과 볼쉐비즘(맑시즘)이 사회주의의 두 주류이며, 이들이 서로 대립적인 성격을 갖고 있고, 그 각각의 대립쌍이 개인-조직/국가, 자유주의-전체주의 등이라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는 점 등은 눈여겨 둘 필요가 있다. 아나키즘 문학론이 이처럼 독자성을 확립하지 못하고 미약한 양상을 노정하고 있는 것은 당시 사회주의 운동에서 아나키즘이 차지하는 몫 자체가 크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신경향파 문학이 문학운동의 수준까지 올라서지 않았다는 것에서 기인한다. 신경향파 문학이 어느 정도 문학운동의 성격을 띠게 되는 다음 시기에 가서는, 지금 시기에 운동 일반의 차원에서 준별된 맑스주의와의 차별성이 극히 미약하나마 문학론적으로도 나타나고, 마침내 신경향파 문학이 종료되는 시점에 이르러서는 프롤레타리아문학 지도 이념의 문제를 둘러싸고 문학론적·조직적 분화를 전면화시키게 되는 데서도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끝으로 지적하고 넘어가야 할 것은, 주목할 만하게도 이 시기에 신경향파의 문학 이념을 자신의 이념적 구성 원리로 삼는 문학 단체가 출현하였다는 사실이다. 곧 염군사와 파스큐라의 결성이다. 각각 1923년 10월과 1925년 1월 경에 조직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두 단체는 다음 시기에 카프로 통합된다. 카프와 같이 전 문단적으로 결집된 수준은 아니고 분산적이기는 했지만, 집단적인 방식으로 전개되기 시작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은 적지않은 의미를 지닌다. 비록 써클적인 차윈이기는 하지만 이제 신경향파 문학이 개별자의 선이 아니라 ‘운동’의 선에서 이루어질 가능성을 담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임노월의 이런 예술론은 구경에는 개인주의, 그것도 추상적 人性 파악에 기초한 과도한 개인주의에서 비롯한 것이겠지만, 개인의 절대적 자유를 내세움으로써 신경향파 문학비평에 유일하게 대항하였고, 문학예술의 영원성 같은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신경향파 문학비평이 해결하여야 할 문학적 가치와 연관된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점에서 나름의 의의는 있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개인이 사회와 맺고 있는 관계를 일방적으로 파기하여 그것을 극단화시키고 과도한 퇴폐적 경향으로 몰고감으로써 오히려 스스로의 입지를 좁히고 말았다.
이 시기에 입을 다물고 있던 ‘기성’ 문학자들이 자신의 견해를 논리적으로 드러낼 수 있게 된 계기는 역설적이게도 박영희가 프롤레타리아문학의 독자성을 공개적으로 인준받기 위해 자리를 마련했던 ?계급문학 시비론?에서였다. 이 자리에서 김동인은(?藝術家 自身의 막지 못할 藝術慾에서?) 계급 공기나 계급 음료수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계급문학도 존재치 못할 것이라는, 야유 섞인 비유를 들어 계급문학을 부정하는바, 그러나 그 논리는 계급이 사회적 개념이고 계급문학이 결코 제재상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몰각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응력이 없다. 하지만 김동인이 정작 하고 싶었던 말은 표면적 발언 이전에 있어 보인다. 곧 계급문학이란 아예 고려하고 있지도 않다는 것, 이것이 그의 심중진언으로 보인다. 따라서 논리적인 대응은 아니다. 그리고 그는 예술이란 “예술가 자신의 막지 못할 예술욕 때문”에 나오는 것이라 하여 문학적 행위의 究竟에 작가 개인이 놓여 있음을 주장한다. 이광수는(?階級을 超越한 藝術이라야?) 몇 달 전에 했던, “국가뿐 아니라 모든 단체생활에서는 다 각기 그 단체의 정신(사상과 감정)을 표현하는 문학을 존중하는 것이니” 사회주의 문학이나 프롤레타리아문학이라는 것도 “이러한 범주에서 나온 것”이라는 발언과는 달리, 계급문학을 독자의 취향에 연결시키면서, 모든 계급에게 감동을 주는(즉 “계급을 초월한”) 문학예술이 참다운 것이라 진술한다. 言外言으로 계급문학이란 이류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고 있으니 역시 계급문학에 맞대응하는 것이라 볼 수는 없다. 그 또한 비유로써 작가 우선주의적 태도를 내보인다. 비유와 短文 그리고 無視로 특징지어지는 이 둘과 달리 논리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인물이 염상섭이다(?作家로서는 無意味한 말?). 그는 우선 계급문학이 무산계급문학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정리한 뒤, 그것을 세 가지로 정의한 다음 각각에 대해 문학의 독립성, 제재 제한의 불가능과 작가 재능 제한의 불가, 문학예술의 저속화 우려의 이유를 내세워 이들을 작가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고 한다. “계급문학이 출현되지 못하리라는 것도 아니요, 또 그 출현이 불합리하다는 것도 아니나 다만 일종의 적극적 운동으로 이를 무리히 형성시키려고 애를 쓸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필요가 없다는 것보다도 그리 함은 문학의 根本義에 어그러진다는 말이다”(54면)라는 것이다. 요약컨대 계급문학을 ‘용인’할 수는 있으나 ‘강요’하지는 말라는 것이다. 논리적으로 개진되고는 있으나 그 근본적인 근거는 김동인이나 이광수의 문예론과 같다. 곧 창작은 작가의 개인적 자유에 의존한다는 작가 우위론적 관점이요 개인주의적 사고의 발로라 할 수 있겠다.
결국 임노월까지 포함하여 총괄적으로 말해서 이 시기에 신경향파 문학비평에 대립하였던 논자들은 그 방패로서 개인주의를 내세웠던 것이지 그 어떤 사회적 이데올로기를 내걸지 않았음을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이 시기 벽두에 임정재의 ?문사 제군에게 여하는 일문?으로 신경향파 문학비평의 전면에 나섰던 아나키즘 문학론은 이 시기에는 더 이상 별다른 발전을 보여주지 못한다. 황석우, 원종린, 김기진 등이 아나키즘에 관해 의견을 개진하고는 있지만, 모두 다 문학론 자체는 아니다. 또한 아나키즘을 적극적·긍정적으로 기술하고 있는 것은 아나키스트 원종린의 글 정도이다. 하지만 이들 글이 공통적으로, 아나키즘과 볼쉐비즘(맑시즘)이 사회주의의 두 주류이며, 이들이 서로 대립적인 성격을 갖고 있고, 그 각각의 대립쌍이 개인-조직/국가, 자유주의-전체주의 등이라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는 점 등은 눈여겨 둘 필요가 있다. 아나키즘 문학론이 이처럼 독자성을 확립하지 못하고 미약한 양상을 노정하고 있는 것은 당시 사회주의 운동에서 아나키즘이 차지하는 몫 자체가 크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신경향파 문학이 문학운동의 수준까지 올라서지 않았다는 것에서 기인한다. 신경향파 문학이 어느 정도 문학운동의 성격을 띠게 되는 다음 시기에 가서는, 지금 시기에 운동 일반의 차원에서 준별된 맑스주의와의 차별성이 극히 미약하나마 문학론적으로도 나타나고, 마침내 신경향파 문학이 종료되는 시점에 이르러서는 프롤레타리아문학 지도 이념의 문제를 둘러싸고 문학론적·조직적 분화를 전면화시키게 되는 데서도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끝으로 지적하고 넘어가야 할 것은, 주목할 만하게도 이 시기에 신경향파의 문학 이념을 자신의 이념적 구성 원리로 삼는 문학 단체가 출현하였다는 사실이다. 곧 염군사와 파스큐라의 결성이다. 각각 1923년 10월과 1925년 1월 경에 조직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두 단체는 다음 시기에 카프로 통합된다. 카프와 같이 전 문단적으로 결집된 수준은 아니고 분산적이기는 했지만, 집단적인 방식으로 전개되기 시작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은 적지않은 의미를 지닌다. 비록 써클적인 차윈이기는 하지만 이제 신경향파 문학이 개별자의 선이 아니라 ‘운동’의 선에서 이루어질 가능성을 담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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