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불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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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불교 유입전의 중국의 역사적 배경

2. 중국의 불교유입과 그 특성

3. 중국불교의 비중과 중요성

4. 불교의 전래(후한시대)

5. 중국불교의 정착과 연구(남북조시대)
(1) 남북조시대의 사회적 배경
(2) 불교의 지배이데올로기화
(3) 유교가 유입된 한역경전들의 특성과 한계

6. 중국불교의 발전기(수, 당의 시대)
(1) 구마라습과 불교의 교학체계 정립
(2) 백련사 운동과 민중불교정신
(3) 남북조의 불교사조와 법난
(4) 교학불교의 번영과 14개 종파
(5) 중국왕조의 불교에 대한 이중정책

7. 중국의 불교문화와 유적

8. 새로운 불교운동(선불교)
(1) 새로운 종교개혁
(2) 선불교의 성립배경과 특징
(3) 선종의 전통성 주장
(4) 선불교의 파격적인 수행법
(5) 삼계교의 민중불교운동

9. 중국불교의 쇠퇴기(당대이후- 송, 원, 명, 청)
(1) 귀족불교의 몰락 과정
(2) 민중불교의 대명사, 백련교와 백운교

10. 중국불교의 현재

본문내용

알고 있는 그는 불교를 지배체제의 통치가능한 범위 내로 흡수하는 한편, 조직적인 민중기반을 갖고 있는 백련교, 백운종, 명존교 등을 모두 탄압하였다. 종교적 힘을 기반으로 했던 그가 도리어 종교탄압에 앞장서는 아이러니였다.
명은 다시 여진족의 침입으로 망하고 청(1616-1912)이 성립되었다. 청은 그들의 지배체제를 유지하고자 유교를 계승하였고 '태평천국의 난'을 통하여 종교의 민중결집력을 인식한 청조는 불교를 비롯한 모든 종교를 탄압하였다. 불교의 침체는 불교인의 철저한 반성을 촉구하였으며 승려와 거사들에 의한 불교재건운동을 일으키게 되었다. 청은 막강한 세를 갖고 있었지만 후반기에 오면서 서구열강들의 침입으로 다시 혼란기를 거듭하다 오늘의 중화인민공화국이 형성되었다.
(2) 민중불교의 대명사, 백련교와 백운교
5대 10국 이후에는 불교가 몰락하였다고 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불교가 민중과 가장 긴밀하게 밀착되었던 시기라고도 볼 수 있다. 선불교는 번쇄하고 비현실적인 논리에 문제를 제기하고 출발하였으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 자신 역시 비현실적이고 관념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지식층은 불교가 국가정책적으로 탄압을 받게 되자 대부분 불교를 외면하였다. 오로지 민중들에 기반을 둔 불교만이 살아남아서 민중들의 해방을 위해 노력하였으며 민중지향적인 입장에서 투신하는 불교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 시기의 가장 대표적인 민중의 불교는 백련교와 백운교였다. 백련교는 여산혜원의 백련사 운동의 맥을 계승하였다고도 볼 수 있지만, 남송초기에 자조자원이 시작한 것으로 백련채라고도 부른다. 이는 정토신앙에 바탕을 한 종교결사로서 철저한 계행을 수행하는 염불결사이기도 하다. 교세가 번성하자 탄압을 당해 결사는 금지되고 자원은 유배되었다. 원대에도 백련교는 사교로 계속 금지되었으나 보도는 현정호법에 더욱 힘썼다. 명의 말기에는 미륵신앙이 혼합되면서부터 더욱 강화되어, 미륵의 하생을 선전하면서 민중들을 규합하여 홍건적이라고 불리는 반란군 세력으로 결집하기에 이른다. 청조에서도 백련교도들은 계속해서 반란의 주역으로 그 명맥을 유지하여 갔다. 백운교는 북송말에 공청각이 백운암에서 제창한 민중불교의 한 종파이다. 유,불, 도 삼교의 일치를 주장한 재가집단이었는데 전통적인 여러 종파에서 이단시되고 관헌으로부터도 탄압을 받았다.
10. 중국불교의 현재
근세 중교불교의 특징중의 하나는 지식인과 사배부의 사이에서 이해와 수용된 거사불교(居士佛敎)가 융성하여 근세불교의 명맥을 유지하는데 기여했다.
1840년 아편전쟁과 1850년 태평천국의 난 등을 거치며, 청조가 붕괴되고, 1911년 신해혁명 이후 민국정부가 수립, 구문화배척운동 등 혁신운동이 일어나, 이는 반종교운동으로 발전되었다. 이에 불교계가 자극받아 경안, 태허 등을 중심으로 자체정비에 서두르고 불교연구에 매진하였으나,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의 공산정권이 수립되어 '티벳'에서 달라이라마가 추방되었고, 모택동정권의 문화혁명으로 전국의 사찰과 불상이 파괴되고 개인의 신앙의 자유가 박탈되어 중국불교는 암흑기를 겪어왔다. 그러나 지금의 새로운 중국은 대체로 불교를 신봉하고 있다.
새로운 중국이 불교를 존중하는 이유는 첫째, 불교가 고대 중국의 찬란한 문화유산을 남겼다는 점과 둘째, 불교를 신봉하고 있는 아시아의 여러 민족과 유대를 강화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세 번째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중국의 민중들이 불교를 신앙하고 있다는데 있다.
중국불교의 변화 바람은 우선, 승려교육에서 찾아볼 수 있다. 1956년 9월 설립된 중국불학원(中國佛學院)은 문화대혁명 시기(1966년~1976년)에 전혀 활동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중국불학원은 각 지역의 분원(分院)을 통해 승려 배출과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분원은 전국 주요 사찰에 설치돼 있다. 분원은 보통 4년간 승려교육을 진행하면서 불교교리와 불교사, 경전 학습 등을 통해 승려 교육의 산실로 부상하고 있다.
장쑤성, 저장성, 안휘성 지역에서는 구화산분원, 보타산분원, 천태산분원, 난징의 서하사분원 등 대부분 주요 사찰에 분원이 설립돼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불학원 입학 자격이 학력과 연령에서 더욱 엄격해지고 있고, 경쟁률도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독신(獨身)과 고등학교 졸업은 필수이며, 면접과정을 통해 발심과 출가동기를 통해 신입생 합격 여부를 가리고 있다. 보타산분원은 지난해 신입생 200명 모집에 2000여명이 응시해 10대1의 경쟁률을 보였다. 승려 교육과 함께 신도 교육도 크게 강화되고 있다. 신도 교육을 위한 교재 발간과 각종 홍보물 제작이 진행되고 있다. 쑤저우(蘇州) 한산사는 신도들의 불교 공부를 위해 사찰에 도서관을 건립 운영중이며, 천주산 삼조사는 사찰 회보를 통해 불교 소식과 교리를 담당하고 있다. 이밖에도 중국 동남부 주요 사찰들은 사찰의 각종 게시 공간을 활용해 신도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 10년간 중국 불교의 가장 큰 변화는 사찰의 가람불사다. 문화대혁명을 거치면서 파괴된 사찰의 전각들이 1980년 후반을 거치면서 재건되기 시작했다. 가람불사의 주체도 변화고 있다. 초기 사찰들의 재건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를 중심으로 한 재원 지원이 크게 기여했으며, 일본 등 불교국가들의 지원도 한 몫을 했다. 그러나 최근 중국의 가람불사는 자체 신도들의 기부와 참여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 항저우(杭州)의 상전축사는 앞으로 3년간 진행될 가람불사에 사용될 예산의 대부분을 신도들이 내는 불사금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가람불사를 통해 탑과 전각 등 5개 이상의 건물이 새롭게 조성된다. 물론, 중국불교의 변화는 현재 지역적 편차를 크게 보이고 있다. 중국 4대 불교성지인, 오대산, 아미산, 보타산, 구화산을 중심으로 크게 활성화되고 있으며, 경제발전 속도가 빠른 중국 동남부 지역의 변화가 특히 심하다. 이러한 불교의 민중구원의 실천은 오늘날 중국권에 의해서도 배척할 수 없는 힘으로 남아 불교 신앙의 자유를 인정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1. 참고자료
정순일, 중국불교사, 경서원
키무라 키요타카, 중국불교사상사, 민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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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09.19
  • 저작시기200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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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428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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