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석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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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관계 의식이 유야하고 ‘순진’했다.
장면이 최고지도자로서 포용력과 그로 인한 인간적 유대로 다져지는 정치적 조직력도 빈곤한 지도자였던 거 같다. 그래서 그는 제2공화국 최고지도자로서 같은 당의 구파를 제대로 거두지 못했고, 분당 이후에도 당내에서 원활한 통합조정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는 혼란기에 자기 세력 양성의 중요성을 확실하게 인식하지 못한 정치인이었다. 그리고 그는 주위의 엘리트들과 의기투합하거나 팀웍을 유지하는 기술이 부족했기 때문에 정치인으로서 효율적인 조직관리에 한계까 있었던 것이다.
2) 미흡했던 경찰과 군에 대한 통제
장면 총리는 정치적 타결을 모색하지 못한 채 각 단위의 권력기구와 그 구성원들에 대해 최고지도자로서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며 챙기지 못하고 자유주의적으로 방치함으로써 스스로 정권 자체의 붕괴를 재촉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장면정부는 경찰을 보다 적극적으로 챙기지 않고 법적으로 합당하게 주어진 역할만 해주기를 독촉했다. 그리고 장면정부로부터 기대한 만큼의 ‘보호’를 받지 못하자 경찰은 사보타지를 했다. 주요 정치적 사안과 관련된 업무에 대해서도 적극 협조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장면정부는 경찰을 비롯한 행정기관의 적극적인 협조를 받지 못했고 나라 안에는 새로운 위기가 도래했다거나 제2의 419가 머지않았다는 소문이 계속 퍼지고 있었다.
다른 한편 장면 총리는 군도 효과적으로 장악하지 못했다. 장면은 취임하면서 경제제일주의에 비중을 두었고 또 군작전권을 쥐고 있던 미국을 크게 믿고 있었기 때문에, 한국군 자체의 봉기 가능성에 대해서는 ‘무심했다’
장면정부의 군정책이 안이하고 일관성이 없었기 때문에 군부를 장악할 수 없었고, 예방할 수도 있었던 쿠데타를 촉발했던 것이다. 군을 어떻게 다루느냐는 정치안정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는 법인데, 이때의 정치인들은 군사문제에 대해 무관심했던 것이다.
3) 정보력 부족과 대미의존
장면 총리가 정국을 제대로 장악하지 못하고 소기의 정책을 정상적으로 집행하지 못한 채 파국을 맞을 수밖에 없었던 한 원인은, 장면총리가 정권안보 차원에서 필요하고 믿을 만한 정보를 획득할 수 있는 채널을 제도적으로 확보하지 못한 데 있다.
1961년 봄부터 장면 총리는 10여 차례나 쿠데타 정보를 보고받거나 입수했다. 그러나 단 한 차례도 진지하게 대응책을 마련한 적이 없다. 정권차원의 비상대책을 세우지도 않았고 용의자들에 대한 철저한 조사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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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11.28
  • 저작시기2007.1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39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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