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예견된 실패 , 예견된 눈물 : 조광조의 이상주의와 좌절
목 차
1. 들어가는 글
2. 시대 인식
3. 도덕주의적 이상 사회
4. 왕도정치
5. 군자와 소인의 구분
6. 왕과의 충돌 그리고 좌절
7. 맺음말
목 차
1. 들어가는 글
2. 시대 인식
3. 도덕주의적 이상 사회
4. 왕도정치
5. 군자와 소인의 구분
6. 왕과의 충돌 그리고 좌절
7. 맺음말
본문내용
불충분함에서 오는 것일 테지만, 현실의 측면에서 보자면 현실에 안주하고 싶은 자기 자신의 욕구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고, 개혁을 반대하는 세력의 저항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다. 어떻든 그 간극은 누구나 일반적인 마음의 공부만으로 자연스럽게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마음을 갈고 닦는 공부가 선행되어야 함은 물론 단호한 결단과 확고한 의지 등이 수반되어야 한다. 조광조의 표현을 빌리자면, 중요한 것은 마음을 강직하게 쓰는 데 있다. 마음씀이 진실로 강직하다면 선을 하기는 어렵지 않다.44)
조광조가 정치적 사안을 두고 늘 왕에게 결단을 요구하고 촉구한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이렇게 되면 개혁이라는 것은 왕의 인격 수양과 이로 인한 자발적인 동의에 의해서 추진되는 것이 아니라 왕과의 대립, 나아가 왕과의 투쟁을 통해서 쟁취하는 것이 된다. 이념적인 왕은 이상 사회로 가는 길의 동반자이고 후원자이지만 현실의 왕은 그 길에서 넘지 않으면 안 되는 장애물인 것이다. 실제로 조광조의 개혁 정치는 훈구 세력과의 투쟁, 나아가 왕과의 투쟁을 통해서 진행되었다. 소격서의 철폐45)가 그렇고 정국공신의 개정이 그렇다.
정국공신의 개정 문제 역시 개혁파와 왕의 대립이라는 형태로 진행되었다.46) 조광조는 공신록을 개정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익의 근원(利源)이 열리는 것은 국가의 고질병입니다. … 만약 이익의 근원을 통렬하게 막지 않으면 사람들이 이욕에 쉽게 빠져 반드시 차마 말할 수 없는 일이 있게 될 것입니다.47)
대개 공신을 중하게 여기면 공을 탐하고 이익을 탐해서 왕을 시해하고 나라를 빼앗는 일이 이로 말미암아 일어나게 됩니다. 임금이 만약 나라를 잘 다스리고자 한다면 이익의 근원을 막아야 합니다.48)
이 일(위훈 삭제의 일)은 정사의 잘못과 같지 않아 사람마다 다만 이익만이 있는 것을 알고 인의가 있는 것을 알지 못하게 됩니다. 이것으로 풍속을 이루게 되면 장차 이르지 못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49)
공신록을 개정해야 하는 이유를 밝힌 위 언급은 서로 다른 세 가지 차원의 의미가 착종되어 있다.
첫째는 이처럼 공신을 개정하자는 주장은 이욕의 제거와 의리의 추구라는 명분으로 제기되었다. 이 차원에서 보면 공신 개정을 둘러싼 대립은 선(의리)과 악(이욕)의 대립이다.
둘째는 악의 제거는 실제로 그 악의 담지자인 공신을 정치 영역에서 배제시키는 것이다. 선과 악의 대립은 실질적으로 사림 세력과 훈구 세력의 대립이고 투쟁이다.
셋째는 공신록의 개정을 왕에게 요구한다는 것이다. 개정하지 않으면 궁극적으로 나라가 망하게 된다는 것은 왕에게 정치적인 결단을 촉구하는 것인데, 이는 대립의 구도가 현실적으로 사림 세력과 왕 사이에 형성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질적으로는 훈구 세력의 제거라는 정치적 목적이 있었지만, 이념적으로는 선과 악의 투쟁이고,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왕과의 투쟁이다. 사림 세력과 훈구 세력의 대립은 실제로 사림과 왕의 대립이라는 형태로 진행이 된 것이다. 조광조등이 일곱 번 상소를 올렸으나50) 중종이 거부하였고, 이에 대간들은 사직을 하였으며, 중종의 여러 차례에 걸친 권유에도 불구하고 복직을 거부했던 그 일련의 과정이 이를 말해 준다.
7. 맺음말
조광조의 이상주의는 일차적으로 이상적인 사회를 도덕적인 사회로 설정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인의라고 하는 도덕적 가치가 실현되는 요순 시대가 그것이다. 그리고 그 이상주의의 두 번째 의미는 군주의 도덕성에 의지하여 그 이상 사회를 실현해 간다는 방법론에 있다. 이러한 이상주의는 인간을 도덕적인 인간으로 보는 유학, 그 가운데서도 주자학의 인간관에 근거한다. 그러나 주자학의 이론에서도 지적하듯이 현실의 인간은 본연의 성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기질을 함께 가지고 있는, 그래서 현실적으로 기질의 성만을 가진 존재이다. 본연의 성은 글자 그대로 본래의 성, 즉 이상으로만 존재하는 성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상 사회의 건설은 본연의 성이 아니라 기질의 성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현실적인 의미가 있다.
조광조과 제시하고 있는 도학적 이상주의는 단순화 해서 말하자면 군주가 본연의 성을 회복하면, 백성들도 역시 이에 감화를 받아 본연의 성을 회복할 수 있다는 낙관주의가 전제되어 있다. 실제로 군주가 본연의 성을 회복한 성인이 된다는 것은 가능한 일이 아니며, 모든 인간이 그럴 수 있다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인간은 기질을 가진 존재, 즉 몸을 가진 존재이고 욕망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을 간과하고 인간의 도덕적 본성
만을 과도하게 과장한 주자학의 인간관은 이미 정치적 이상주의를 배태하고 있었다.
조광조가 정치 일선에 나섰을 때, 정치 현실은 훈구 세력과 사림 세력, 그리고 왕권이 이중 삼중으로 충돌하는 권력의 장이었다. 그것은 욕망이 충돌하는 장이었고, 의리의 실현 역시 하나의 권력으로 하나의 욕망으로 작동하는 공간이었다. 이 공간에서 임금의 도덕적 성취와 이것에 의한 도덕적 감화, 그리고 도덕적 사회의 건설은 그저 이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조광조가 현실 정치에서 선택했던 방법은 단순히 임금의 도덕적 성취에만 의존했던 것이 아니다.
군자와 소인의 분별하고 소인을 퇴출시키는 적극적인 투쟁을 선택하기도 했고, 나아가 왕과의 투쟁도 불사하지 않았다. 그러나 조광조가 마지막까지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은 군주에 의존하는 방식이었다. 왕과의 투쟁이라는 것도 그의 머릿속에서는 투쟁이 아니라 설득의 과정이고, 교감의 과정이었을 것이다. 왕에의 의존을 포기하고 왕을 넘어서는 길을 선택한다는 것은 그들이 그토록 비판해마지 않았던 반정이고 혁명이다. 그리고 그것은 정몽주, 길재로부터 김종직, 김굉필로 이어지는 그들의 존재 기반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것이다.
선비가 이 세상에 나서 믿는 것은 임금의 마음뿐입니다. 국가의 병통이 이익의 근원에 있다고 망녕되게 생각하였기 때문에 나라의 맥(脈)을 새롭게 하여 무궁하도록 하고자 했을 따름이지 다른 뜻은 전혀 없었습니다.51)
도학적 이상주의, 그것은 끝내 좌초할 수밖에 없는 꿈이었다.
예견된 좌초...
거기에는 마음을 갈고 닦는 공부가 선행되어야 함은 물론 단호한 결단과 확고한 의지 등이 수반되어야 한다. 조광조의 표현을 빌리자면, 중요한 것은 마음을 강직하게 쓰는 데 있다. 마음씀이 진실로 강직하다면 선을 하기는 어렵지 않다.44)
조광조가 정치적 사안을 두고 늘 왕에게 결단을 요구하고 촉구한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이렇게 되면 개혁이라는 것은 왕의 인격 수양과 이로 인한 자발적인 동의에 의해서 추진되는 것이 아니라 왕과의 대립, 나아가 왕과의 투쟁을 통해서 쟁취하는 것이 된다. 이념적인 왕은 이상 사회로 가는 길의 동반자이고 후원자이지만 현실의 왕은 그 길에서 넘지 않으면 안 되는 장애물인 것이다. 실제로 조광조의 개혁 정치는 훈구 세력과의 투쟁, 나아가 왕과의 투쟁을 통해서 진행되었다. 소격서의 철폐45)가 그렇고 정국공신의 개정이 그렇다.
정국공신의 개정 문제 역시 개혁파와 왕의 대립이라는 형태로 진행되었다.46) 조광조는 공신록을 개정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익의 근원(利源)이 열리는 것은 국가의 고질병입니다. … 만약 이익의 근원을 통렬하게 막지 않으면 사람들이 이욕에 쉽게 빠져 반드시 차마 말할 수 없는 일이 있게 될 것입니다.47)
대개 공신을 중하게 여기면 공을 탐하고 이익을 탐해서 왕을 시해하고 나라를 빼앗는 일이 이로 말미암아 일어나게 됩니다. 임금이 만약 나라를 잘 다스리고자 한다면 이익의 근원을 막아야 합니다.48)
이 일(위훈 삭제의 일)은 정사의 잘못과 같지 않아 사람마다 다만 이익만이 있는 것을 알고 인의가 있는 것을 알지 못하게 됩니다. 이것으로 풍속을 이루게 되면 장차 이르지 못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49)
공신록을 개정해야 하는 이유를 밝힌 위 언급은 서로 다른 세 가지 차원의 의미가 착종되어 있다.
첫째는 이처럼 공신을 개정하자는 주장은 이욕의 제거와 의리의 추구라는 명분으로 제기되었다. 이 차원에서 보면 공신 개정을 둘러싼 대립은 선(의리)과 악(이욕)의 대립이다.
둘째는 악의 제거는 실제로 그 악의 담지자인 공신을 정치 영역에서 배제시키는 것이다. 선과 악의 대립은 실질적으로 사림 세력과 훈구 세력의 대립이고 투쟁이다.
셋째는 공신록의 개정을 왕에게 요구한다는 것이다. 개정하지 않으면 궁극적으로 나라가 망하게 된다는 것은 왕에게 정치적인 결단을 촉구하는 것인데, 이는 대립의 구도가 현실적으로 사림 세력과 왕 사이에 형성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질적으로는 훈구 세력의 제거라는 정치적 목적이 있었지만, 이념적으로는 선과 악의 투쟁이고,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왕과의 투쟁이다. 사림 세력과 훈구 세력의 대립은 실제로 사림과 왕의 대립이라는 형태로 진행이 된 것이다. 조광조등이 일곱 번 상소를 올렸으나50) 중종이 거부하였고, 이에 대간들은 사직을 하였으며, 중종의 여러 차례에 걸친 권유에도 불구하고 복직을 거부했던 그 일련의 과정이 이를 말해 준다.
7. 맺음말
조광조의 이상주의는 일차적으로 이상적인 사회를 도덕적인 사회로 설정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인의라고 하는 도덕적 가치가 실현되는 요순 시대가 그것이다. 그리고 그 이상주의의 두 번째 의미는 군주의 도덕성에 의지하여 그 이상 사회를 실현해 간다는 방법론에 있다. 이러한 이상주의는 인간을 도덕적인 인간으로 보는 유학, 그 가운데서도 주자학의 인간관에 근거한다. 그러나 주자학의 이론에서도 지적하듯이 현실의 인간은 본연의 성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기질을 함께 가지고 있는, 그래서 현실적으로 기질의 성만을 가진 존재이다. 본연의 성은 글자 그대로 본래의 성, 즉 이상으로만 존재하는 성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상 사회의 건설은 본연의 성이 아니라 기질의 성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현실적인 의미가 있다.
조광조과 제시하고 있는 도학적 이상주의는 단순화 해서 말하자면 군주가 본연의 성을 회복하면, 백성들도 역시 이에 감화를 받아 본연의 성을 회복할 수 있다는 낙관주의가 전제되어 있다. 실제로 군주가 본연의 성을 회복한 성인이 된다는 것은 가능한 일이 아니며, 모든 인간이 그럴 수 있다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인간은 기질을 가진 존재, 즉 몸을 가진 존재이고 욕망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을 간과하고 인간의 도덕적 본성
만을 과도하게 과장한 주자학의 인간관은 이미 정치적 이상주의를 배태하고 있었다.
조광조가 정치 일선에 나섰을 때, 정치 현실은 훈구 세력과 사림 세력, 그리고 왕권이 이중 삼중으로 충돌하는 권력의 장이었다. 그것은 욕망이 충돌하는 장이었고, 의리의 실현 역시 하나의 권력으로 하나의 욕망으로 작동하는 공간이었다. 이 공간에서 임금의 도덕적 성취와 이것에 의한 도덕적 감화, 그리고 도덕적 사회의 건설은 그저 이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조광조가 현실 정치에서 선택했던 방법은 단순히 임금의 도덕적 성취에만 의존했던 것이 아니다.
군자와 소인의 분별하고 소인을 퇴출시키는 적극적인 투쟁을 선택하기도 했고, 나아가 왕과의 투쟁도 불사하지 않았다. 그러나 조광조가 마지막까지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은 군주에 의존하는 방식이었다. 왕과의 투쟁이라는 것도 그의 머릿속에서는 투쟁이 아니라 설득의 과정이고, 교감의 과정이었을 것이다. 왕에의 의존을 포기하고 왕을 넘어서는 길을 선택한다는 것은 그들이 그토록 비판해마지 않았던 반정이고 혁명이다. 그리고 그것은 정몽주, 길재로부터 김종직, 김굉필로 이어지는 그들의 존재 기반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것이다.
선비가 이 세상에 나서 믿는 것은 임금의 마음뿐입니다. 국가의 병통이 이익의 근원에 있다고 망녕되게 생각하였기 때문에 나라의 맥(脈)을 새롭게 하여 무궁하도록 하고자 했을 따름이지 다른 뜻은 전혀 없었습니다.51)
도학적 이상주의, 그것은 끝내 좌초할 수밖에 없는 꿈이었다.
예견된 좌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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