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5.3.1. 민요 계통의 노래
5.3.2. 정치상황과 관련된 노래
5.3.3. 월명사와 충담사
5.3.4. 불교를 따른 노래
5.3.2. 정치상황과 관련된 노래
5.3.3. 월명사와 충담사
5.3.4. 불교를 따른 노래
본문내용
서 나날의 고난을 잊고자 하였을 것임을 알 수 있다. 노래의 작자를 광덕이라고 보았을 때 신을 삼으면서 민요가락을 흥얼거리고만 살 수 없다는 생각에서 불교가 받아들인 사뇌가의 전통을 체득하는 수련을 했고, 사뇌가를 지을 수 있게 되자 불교수행이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고 믿었을 것이며, 그 증거로 광덕의 아내가 그 노래를 엄장에게 들려주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천수대비가>(千手大悲歌) 또는 <도천수관음가>(禱千手觀音歌)라고 불리는 노래도 <원왕생가>와 관련시켜 이해할 수 있다. 사뇌가의 형식을 갖추고 있는 이 노래의 기원 역시 분황사에서 시작 되는데, 경덕왕 시절 희명의 아이가 눈이 멀자 “즈믄 손 즈믄 눈”을 가진 관음화상 앞에 가서 아이로 하여금 노래를 지어 빌게 하였더니, 눈을 뜨게 되었다고 전한다.
<우적가>(遇賊歌)는 원성왕 때에 영재(永才)스님이 지은것이다. 세상일에 구애되지 않고, 성격이 골계스럽다는 영재가 세상을 피해 남악으로 숨으러 가다가 도적떼를 만났는데, 도적들은 처음에는 영재에게 반감을 보이다가 영재의 노래를 듣고 감복했다고 한다. 이것은 살기가 어려워 도적이 된 자들이 불만층에 대한 공감을 확인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한편, 영재는 이름에 ‘사(師)’라는 말이 들어가지 않았고, 화랑도와도 무관한 승려인데 향가를 잘 지어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었다는 점에서 월명사나 충담사와는 다른 성향의 시인이 신라 말에 나타났음을 알 수 있다.
<우적가>는 창작 능력을 제대로 갖춘 전문가의 작품이어서 수준이 저하되거나 변질되지 않으면서, 사뇌가에서 줄곧 추구하던 숭고를 골계로 바꾸는 일타를 보였다.
<천수대비가>(千手大悲歌) 또는 <도천수관음가>(禱千手觀音歌)라고 불리는 노래도 <원왕생가>와 관련시켜 이해할 수 있다. 사뇌가의 형식을 갖추고 있는 이 노래의 기원 역시 분황사에서 시작 되는데, 경덕왕 시절 희명의 아이가 눈이 멀자 “즈믄 손 즈믄 눈”을 가진 관음화상 앞에 가서 아이로 하여금 노래를 지어 빌게 하였더니, 눈을 뜨게 되었다고 전한다.
<우적가>(遇賊歌)는 원성왕 때에 영재(永才)스님이 지은것이다. 세상일에 구애되지 않고, 성격이 골계스럽다는 영재가 세상을 피해 남악으로 숨으러 가다가 도적떼를 만났는데, 도적들은 처음에는 영재에게 반감을 보이다가 영재의 노래를 듣고 감복했다고 한다. 이것은 살기가 어려워 도적이 된 자들이 불만층에 대한 공감을 확인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한편, 영재는 이름에 ‘사(師)’라는 말이 들어가지 않았고, 화랑도와도 무관한 승려인데 향가를 잘 지어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었다는 점에서 월명사나 충담사와는 다른 성향의 시인이 신라 말에 나타났음을 알 수 있다.
<우적가>는 창작 능력을 제대로 갖춘 전문가의 작품이어서 수준이 저하되거나 변질되지 않으면서, 사뇌가에서 줄곧 추구하던 숭고를 골계로 바꾸는 일타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