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는 인간과 자연, 즉 인간의 자연적 본능이 담론의 주를 이룬다. 반면 유대 및 기독교의 헤브라이즘은 인간사회의 윤리가 중심이 된다. 이 같은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이 두 문화는 몇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로, 이성이 아닌 감성을 중시하는 헬레니즘적 인간의 생물적, 원초적 인간본능에는 원래 선악의 구분이 있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예수의 조건없는 사랑과 용서 앞에서도 의인과 조인의 구분은 무의미해진다.
둘째로 카르타시스의 효과가 있다. 그리스 신화의 여러 비극의 주인공들은 인간의 마음속에 잠재한 원초적 본능을 대신 실천하는 속죄양이다. 이런점은 기독교의 성경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성스러운 경전 안에는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온갖 흉악한 범죄가 다나온다. 이런 범죄를 저지른 이들은 우리들 마음속에 꿈틀거리는 시기와 심술을 풀어서 우리를 승화하는 속죄양이다. 이들의 대리 희생을 통하여 우리는 위안을 얻고 만족하며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
그리스 문화의 헬레니즘과 유대교 및 기독교의 헤브라이즘에서 다같이 모든 인간이 저지르는 가장 큰 죄는 도둑질, 살인, 거짓말, 증오 등이 아닌 바로 신에대한 도전이다. 그리스문화는 인간과 자연, 기독교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양자는 서로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둘은 결합함으로써 자연과 사회에서 다같이 우리의 인간성을 회복 할 수 있다. 그 처방전은 합리의 이성보다는 자연의 본능과 인간에 대한 사랑과 용서의 비합리적인 것에서 찾을 수가 있다.
그리스 문화. 기독교. 우리들
오늘을 사는 우리는 험한 산 두 개를 넘어야 한다. 하나는 권력과 무력의 조직을 파괴하고 그리스 신화의 세계를 회복하는 것이다. 그 곳은 사회적 억압이 아니라 자연의 본능이 살아 숨쉬는 곳이다. 동물같이 사랑과 연민에 못지않게 육욕과 질투, 증오와 살인도 난무하였다. 옛날 인간이 듬성하니 서로 떨어져 살고 그 수도 적었을 때는 인간 서로의 갈등관계는 문제가 더 적었을 수도 있다.
두 번째는 인간 사회의 증오와 갈등을 줄이는 일이다. 오늘날은 물론 옛날에도 유대사회가 그러했듯이 상업교환의 발달 및 생산력 증가로 인간사회가 복잡하고도 밀접해진 곳에서는 자연의 본성에만 따른다면 많은 문제의 소지가 있다. 그래서 선악, 빈부, 문화, 종교에 따른 사람의 차별, 증오, 갈등을 지양하고 사랑과 용서의 열린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인데, 이것은 바로 예수의 가르침이다.
첫째로, 이성이 아닌 감성을 중시하는 헬레니즘적 인간의 생물적, 원초적 인간본능에는 원래 선악의 구분이 있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예수의 조건없는 사랑과 용서 앞에서도 의인과 조인의 구분은 무의미해진다.
둘째로 카르타시스의 효과가 있다. 그리스 신화의 여러 비극의 주인공들은 인간의 마음속에 잠재한 원초적 본능을 대신 실천하는 속죄양이다. 이런점은 기독교의 성경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성스러운 경전 안에는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온갖 흉악한 범죄가 다나온다. 이런 범죄를 저지른 이들은 우리들 마음속에 꿈틀거리는 시기와 심술을 풀어서 우리를 승화하는 속죄양이다. 이들의 대리 희생을 통하여 우리는 위안을 얻고 만족하며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
그리스 문화의 헬레니즘과 유대교 및 기독교의 헤브라이즘에서 다같이 모든 인간이 저지르는 가장 큰 죄는 도둑질, 살인, 거짓말, 증오 등이 아닌 바로 신에대한 도전이다. 그리스문화는 인간과 자연, 기독교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양자는 서로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둘은 결합함으로써 자연과 사회에서 다같이 우리의 인간성을 회복 할 수 있다. 그 처방전은 합리의 이성보다는 자연의 본능과 인간에 대한 사랑과 용서의 비합리적인 것에서 찾을 수가 있다.
그리스 문화. 기독교. 우리들
오늘을 사는 우리는 험한 산 두 개를 넘어야 한다. 하나는 권력과 무력의 조직을 파괴하고 그리스 신화의 세계를 회복하는 것이다. 그 곳은 사회적 억압이 아니라 자연의 본능이 살아 숨쉬는 곳이다. 동물같이 사랑과 연민에 못지않게 육욕과 질투, 증오와 살인도 난무하였다. 옛날 인간이 듬성하니 서로 떨어져 살고 그 수도 적었을 때는 인간 서로의 갈등관계는 문제가 더 적었을 수도 있다.
두 번째는 인간 사회의 증오와 갈등을 줄이는 일이다. 오늘날은 물론 옛날에도 유대사회가 그러했듯이 상업교환의 발달 및 생산력 증가로 인간사회가 복잡하고도 밀접해진 곳에서는 자연의 본성에만 따른다면 많은 문제의 소지가 있다. 그래서 선악, 빈부, 문화, 종교에 따른 사람의 차별, 증오, 갈등을 지양하고 사랑과 용서의 열린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인데, 이것은 바로 예수의 가르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