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론 - 김춘수
본 자료는 8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해당 자료는 8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8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목차

김춘수(金春洙,1922.11.25.-2004.11.29), 호: 대여(大餘) 한국의 시인

1. 시적 순수성의 옹호
2. 의미와 무의미를 선회하는 시 세계
1)의미에서 무의미로
2)무의미에서 의미로
3. 절대시, 신기루와 인공 낙원 사이
4. 꽃의 시인 일생 마감
5. 주요저서

자아와 대상의 소멸
주체 파멸과 주체 현존의 변증법
명상의 시간성과 영원성에의 지향

金 春 洙
1. 약력
2. 김춘수 詩의 변천사(意味에서 無意味까지)
가) 意味의 시기
나) 意味에서 無意味로
다) 無意味詩
3. 김춘수 詩에 있어서의 개인적 상징
4. 인간 김춘수

본문내용

없는 전체적이며 동시적인 어떤 '연상(聯想)의 순간'과 같은 개념으로 보는 것으로 이러한 것을 '무의미 시'로 지칭한다.
다) 無意味詩
김춘수는 image를 image 그 자체가 목적인 서술적 심상과 관념을 전달하는 수단인 비유적 심상으로 나누고, 서술적 심상을 다시 대상을 가진 서술적 심상과 대상을 놓친 서술적 심상으로 나누면서, 바로 이 대상을 놓친 서술적 심상에서 無意味시가 탄생한다고 하였다.
시인의 표현을 직접 빌리면
[나에게 있어 무의미란 무엇일까?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노력이다. 할 수 있다…… 그러니까 무의미시는 관습이나 기성 관념의 입장에서 보면 '허무'가 된다. 허무는 일체의 의미를 거부한다. 그것은 이 세계를 의미 이전의 원점으로 돌리는 일이 된다.]
고 하여 그의 시를 지탱시키는 현상학적 에너지가 '허무'임을 이야기한다. 즉 李箱의 경우처럼 대상과 사물과 관념을 제거시키고난 어떤 방심상태, 그 자유스러운 유희의 상태가 곧 '무의미시'라는 것이다. 따라서 무의미시는 전혀 유사성이 없는 image들을 비논리적으로 결합시킨 대상을 놓친 절대 심상인 것이다.
다른 시인들은 image를 얻으려는데 비해 김춘수는 image를 버리려 한다. image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image의 명중성, 의미성, 상징성 따위를 파괴하려는 것이다. 대상의 구속을 받는 의식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언어 행위와 사고 행위가 빚어내는 무의미시, 곧 탈image의 리듬과 쾌감으로부터 구원을 얻고자 하는 것이 그의 시이다.
3. 김춘수 詩에 있어서의 개인적 상징
김춘수의 시가 난해한 이유는 기법상의 초현대성과 함께 보편성이 없는 개인적 상징을 그의 시어에 부여하기 때문이다.
그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바다>, <꽃> 같은 시어들은 그의 시 속에서 특수한 의미로 표현되는데 특히 <처용단장>의 주된 맥을 이루는 <바다>에 대한 시인의 말을 인용하면
[바다는 '병'이고 '죽음'이기도 하지만, 바다는 또한 '회복'이고 '부활'이기도 하다. 바다는 내 '유년'(幼年)이고 또한 내 '무덤'이다.]
라고 했다. 곧 시인은 <바다>에서 여러 가지 개인적인 특수한 의미를 부여하고 이러한 의미간의 무상관성 때문에 시는 자연히 보편성을 잃고 난해해지는 것이다.
4. 인간 김춘수
김춘수는 충무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세상 물정을 모르고 자라난 귀공자였다. 그의 유년기 시절은 자전적인 그의 소설 <처용>에 비교적 자세히 소개되고 있는 편이다. 그러한 그의 생활이 장년이나 노년이 된 이후에도 그를 현실에서 좀 떨어진 고고한 위치에 서 있게 하는지도 모른다.
그는 또한 양복 윗도리를 매일 갈아입는 멋쟁이였으며, 미식가였고, 사람을 사귐에 있어서도 선별적으로 사귈 만큼 성격에 융통성이 있는 편은 아니었다. 허약해 보이는 체구와 여자의 손처럼 희고 깨끗한 손, 거울 같은 구두에 드러나는 그의 결벽성은, 여러 제자들과 술자리에 어울렸다가 제자들이 술집 여자로 접대하려하면 가차없이 내쫓아버리는 공선생 같은 면모와 맞아 떨어졌다. 무엇보다도 신체의 결정적 결함이었던 대머리를 감추기 위해 한 때는 가발을 쓰고 다니기도 했지만 딸들의 절대적인 반대에 부딪쳐, 계절에 맞게 여러 개의 모자로 대신하기로 했다. 한때는 위장병이 악화되어 수전증까지 일으켰지만 수술 후에는 오히려 몸이 불어나 얼굴에는 윤기가 나고 배가 앞으로 나올 만큼 풍체가 좋아졌으며 자연히 수전증도 사라졌다. 그의 결단력 또한 대단해 수술 후에 결연히 금연을 해 동료 흡연가들을 놀라게 했다.
집안에서 그는 전기 휴즈도 하나 갈아끼우지 못하는 사람이었고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에도 7,8년간 사진 한 장 찍어보지 못할 만큼 세상살이에는 무관했으며 심지어 카메라의 셔터가 어느 것인지도 모르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거기다 그는 고소 공포증이 심각해서 74년에 새로 집을 지을 당시 2층 계단에도 올라서지 못할 정도여서 옆집에 살던 동료 교수가 대신 감독을 해 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국회의원 시절 의원 사절단으로 세계 일주를 다녀오면서 그 심각한 고소 공포증을 고쳤다고 하니 국회의원이 좋기는 좋은 모양이다.
그는 예술가답게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18년간 제자 양성에 정성을 기울인 경북대를 떠나 영남대로 자리를 옮긴 것도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겠지만, 무엇보다도 악명높던 K총장과 그 주변 인물이 무슨 심의위원회란 것을 만들어 직,간접으로 여러 가지 제약을 가한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고 여겨진다.
또한 그는 시인이지만 그림에도, 조각에도, 꽃에도 조예가 깊다. 벽에 걸린 탈이나 그림을 늘 즐거이 바라보고 아끼고 사랑한다. 지금도 그의 집 안마당에는 전라(全裸)의 여인상이 자리하고 있고 수많은 기화요초가 향기를 품고 있으며 값의 고하를 막론하고 마음에 들면 즉석에서 구입하는 분재들이 즐비하게 놓여있다.
대학에서 행한 그의 강의는 언제나 열강이었다. 국문학과 전공 강의인 <시론>시간에는 학년 정원의 3배를 웃도는 수강생으로 북적였으며 늘 시간이 끝나는 것도 모르고 강의를 계속해 다음 시간의 교수를 복도에 오래 세워 놓기도 했다.
제 5공화국 출범과 동시에 전국구 국회의원이 되어 정계로 진출한 뒤 그는 어느 신문기자와의 대담에서 정치와는 관련이 없던 시인이 의원 생활을 하는 것에 대해 "내게 있어 시는 최선의 도덕적 결백을 위한 윤리요, 의지라고 말할 수 있다면, 정치란 최선을 우선하다 차선, 삼선의 여지로서 운영되는 현실에 대한 나의 참여이다."라고 자신의 견해와 입지를 밝히기도 했다.
시인이요, 교수요, 국회의원이기 이전에 인간 김춘수는 겉으로 보기엔 차갑고 냉담한 느낌의 외모를 가졌지만, 드넓은 통영 앞바다를 사계절 지켜 보며 자란 까닭에 깊고 담담한 인품과 경상도 남자답게 표현에 능숙하지 못한, 조금은 어리숙하고 세상 물정에 어두운 한 사람의 인간이었다.
참고자료
김준오, {시론}
김준오 <처용시학> - 김춘수의 무의미시. {부대논문집} 1980
조남익 {한국 현대시 해설} 미래문화사
권기호 외 {김춘수 시 연구} 흐름사
부산대 {국어국문학지} 1986년호
{김춘수 시선집} 문학세계사
  • 가격3,000
  • 페이지수23페이지
  • 등록일2007.12.27
  • 저작시기2007.1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44869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