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고대-중세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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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역사속의 전쟁

Ⅱ. 유럽사에 획을 긋는 전쟁들
1. 페르시아 전쟁
(1)페르시아전쟁의 개요
(2)페르시아 전쟁의 원인
(3)페르시아전쟁의 영향
2. 펠레폰네소스 전쟁
(1)펠레폰네소스 전쟁의 개요
(2)펠레폰네소스 동맹과 델로스 동맹
(3)펠레폰네소스 전쟁의 결과
3. 포에니 전쟁
(1)포에니 전쟁의 개요
(2)포에니 전쟁이 로마에 끼친 영향
4. 십자군 전쟁
(1)십자군의 성립
(2)십자군의 경과
(3)십자군의 의미

Ⅲ. 결론

본문내용

작용하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 이탈리아의 상인들은 십자군을 이용하여 동방 무역의 확대를 꾀하였다.
(2)십자군의 경과
서유럽 각국에서 모여 온 제후,기사,농민 들은 가슴에 십자가 표시를 하고 성지 회복을 위한 원정길에 올랐다.
제1회 십자군(1096~1099)은 일단 목적을 달성하여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예루살렘왕국을 세웠다. 얼마 후, 예루살렘이 셀주크 투르크의 위협을 받아 제2회 십자군(1147~1149)이 파견되었고, 다시 예루살렘이 점령한 이집의 살라딘을 치기 위하여 제3차 십자군(1189~1192)이 출정했으나, 모두 실패하고 돌아왔다.
제4회 십자군(1201~1204)은 동방 무역의 패권을 잡으려느 베네치아 상인들의 책동에 말려들어 엉뚱하게도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공략하였다.
제5회 십자군(1228~1229)은 이슬람 교도의 내분을 틈타 예루살렘을 점령하였으나 그것도 오래 가지 못하였다.
제6회(1248~1254)와 제7회(1270)는 예루살렘이 아닌 이집트와 튀니스를 원정하고 돌아왔다.
이처럼 십자군의 원정은 7회까지 거듭되었는데, 일시적이나마 목적을 달성한 것은 두 번뿐이었다. 날이 갈수록 종교적인 순수성을 잃고 정치적 야심이나 경제적 이익 추구에 기울어져, 마침내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였다.
(3)십자군의 의미
십자군 원정이 있은 2세기 동안 기독교의 서유럽과 비잔틴 제국, 이슬람의 근동 지역 사이의 접촉은 크게 강회되었다. 이는 레반트 지역에 1096년부터 1291년까지 존속한 기독교 공국들이 ‘우트르 메르 바다 건너편
’국가들과 유럽 사이의 여행이 지속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많은 서유럽인들이 역사상 처음으로 서로 다른 문화 사이의 이질성과 유사성을 경험하게 되었다. 또 공동의 적에 대한 전쟁의 결과로서 서부 유럽의 주민들은 점점 더 그들이 ‘기독교 왕국’이 라는 하나의 공동체속에 속해 있음을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의미가 있다. 유럽사에서 처음으로 다양한 지역으로부터 로마 기독교도의 거대한 무리가 함께 모였던 것이다. 그들은 고귀한 이상의 수호 이외에도 다른 동기가 작용하고 통치자들과 ‘백성들’이 서로 다른 속셈을 갖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게다가 그들은 서로 얼마나 많이 다른지를 직접 경험했다. 즉 ‘거만한’프랑스인, ‘탐욕스러운’게르만인, '부정직한‘이탈리아인 식으로 말이다. 십자군 원정의 연대기에는 당시 형성되고 있던 상투적인 문구들로 가득하다. 십자군 원정을 기독교 문화라는 하나의 세계가 자체의 힘과 능력을 증명해 보였던 종교적 보편주의의 최고의 순간으로도 볼 수 있으면서도, 그 원정은 동시에 그러한 세계 속에서도 차기 존재하며 그것이 점점 증가하고 있음을 많은 유럽인들에게 각성시켰다.
Ⅲ. 결론
전쟁은 정복의 개념이기에 거칠고 위협적으로 와 닿는다. 한편 문화라는 이미지는 부드럽게 다가온다. 하지만 전쟁의 양식도 문화의 한 단면이고 그 안에서 이전 사회의 곯았던 부분이 터지거나 이해관계가 대립되는 두 세력의 승부에 의해 문화의 우위가 결정되기도 한다. 하지만 결코 전쟁의 승리만이 문화의 우위나 역사성의 우위를 두지는 않는다. 많은 정복왕조들이 전쟁을 통해 다른 국가를 삼키고도 문화적으로는 지배당하는 경우를 우리는 동서양의 여러 예를 통해서 익히 보고 있기 때문이다.
새롭게 싹트는 국가가 역사의 중심에 서기 위해서는 전쟁이 필수적인 조건이었다. 아테네는 페르시아 전쟁을 통해서 도시국가에서 역사의 전면에 등장할 수 있었고, 로마는 포에니 전쟁을 통해서 지중해 패권을 장악하고 대제국을 이루는 기초를 마련하였다.
그러하기에 우리의 역사 속에는 전쟁이 끓이지 않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전쟁의 역사를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강한 경제력과 군사력이 뒷받침 되어 있어야 하며 또한 안정적인 사회적 기반과 기술력, 애국심도 있어야 했다. 그것들이 모두 합쳐져 시너지를 발휘했을 때 전쟁의 승리를 통해 더 크고 굳건한 국가로의 발전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서양 고,중세사에서 뽑아 약술한 네 개의 전쟁 -페르시아 전쟁, 펠로폰네소스 전쟁, 포에니 전쟁, 십자군 전쟁- 은 새로운 역사 주도세력의 등장과 교체를 의미한다. 몰락되어지는 세력과 새롭게 부상되어지는 세력이 교체되어지는 전쟁을 통해 강한국가를 이룩해야 하는 이유를 추론해본다.
<참고문헌>
Peter Rietbergen 유럽 문화사 (지와 사랑, 2006 )
민석홍 西洋史槪說 (삼영사, 2002)
고지기 세계사 (청년정신,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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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8.02.12
  • 저작시기2008.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5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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