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신학(에밀 부루너, 칼 바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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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 론

Ⅱ. 본 론
1. 부르너와 바르트의 논쟁 초점
1) 인간의 전적타락
2) 인간의 계시의 수용능력-접촉점
3) 계시의 일방성
2. 부르너와 바르트의 차이점
1) 인간과 하나님 형상 이해
2) 계시 이해
3) 보존의 은총 이해
4) 규례 이해
5) 접촉점 이해
6) 은총 이해
7) 자연과 은총 이해
3. 부르너와 바르트의 공통점
1) 계시의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
2) 보존의 은혜
4. 지금-여기서!의 시대정신

Ⅲ. 결 론

본문내용

수 있다.
2) 보존의 은혜
부르너와 바르트는 하나님께서 타락하고 멀어진 피조물까지도 거부 하지 않고 돌보고 도우며 함께하신다는 뜻에서는 일치하고 있다. Ibid., p.94.
창조는 참 하나님의 진장 자유롭게, 값없이 주시는 은혜이며 행위인 동시에 지속되는 돌보심이라는 것이다. 이는 거듭 회개의 기회를 주시고 끊임없이 참아 오셨다는 사실과 인간과 그 세계를 후원하고 지키셨다는 것을 동의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그리스도와 교회와 선택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한 것 Ibid., p.95.
이라는데 일치점을 보인다.
4. 지금-여기서!의 시대정신
부르너와 바르트는 지금-여기서의 삶의 자리를 인식 하고 있었다. 18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이르기 까지 유럽은 자유주의 신학의 주류에 있었고 계몽운동의 영향아래 인간의 이성능력과 낙관주의가 팽배했었다. 이런 상황에 나타난 바르트의 신학은 하나님과 인간, 이성과 계시사이의 모순을 지적하고 철저한 그리스도 중심의 신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자연계시와 특별계시의 입장에서 부르너와 바르트는 입장이 달라짐으로 서로 같은 기반에서 다른 해석을 하였다고 보여 진다. 바르트는 절대 그리스도 중심적 신학을 전개하였고 신학의 중심에는 그리스도가 있었다. 물론 부르너도 예수는 하나님의 계시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의 성경의 권위와 인간의 유한성과 죄성, 신앙의 본질과 계시에 있어 접촉점의 문제에서 방향이 달랐다. 부르너는 바르트의 철저한 그리스도 중심주의를 거부한 것이다. 여기서 둘은 모두 시대 정신과 대안을 신학적으로 재시하려 하였고 오늘 까지 논란점을 가져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하나님 나라를 향한 열정과 성령의 역동성 안에 있는 임재성, 그리고 타협하지 않는 대안적 삶은 본받을 점이라 할 수 있겠다.
나는 여기서 두 입장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바르트는 부르너에게 명확한 반대 입장을 표명한다. 이유는 미래의 신학이 타협적 Ibid., p.79.
이 될 것을 염려하고 있기 때문이었고 부르너는 타협의 선두에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부르너 신학의 위험성을 인식한 바르트의 예리한 분석이다. “어떤 사람이라도 성경의 제자가 되지 않고서는 올바른 교리를 알 수 없음” Ibid., p.119.
음을 통해 바르트는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나서는 결코 계시를 이해할 수 없고 하나님도 인식할 수 없다는 분명한 기준을 가진다. 성서는 교회와 세상에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이며 삶의 기준이다. 즉 케논으로서 세상과 교회의 하나님의 진리의 잣대인 것이다. 이는 부르너도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다.
Ⅲ. 결론
나! 그리고 우리는 오늘 이 시대에 지금-여기서!의 부르심과 소명 앞에 있다. 이 소명은 세상을 향한 책임이며 동시에 하나님 나라를 향한 책임이다. 세상과 하나님이 이원론적인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 역사 속에서 역동적이며 희망과 힘으로 오늘 여기서 나의 삶의 대안이 되는 것이다. 바르트와 부르너의 자연신학 논쟁은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 하나님의 지식에 이를 수 있는가의 문제였다. 하나님은 이 시간에도 구원의지로 이 세상을 보존하시고 섭리가운데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향해 지금도 시대의 개혁자로 부르신다. 여기서 나의 응답과 결단 그리고 용기 있는 삶의 발걸음이 요구 되어진다. 이것은 ‘나의’가 아닌 ‘하나님의’ 능력으로 가능한 것이다.
바르트도 부르너도 서로 입장의 차이가 있었지만 이러한 책임감과 시대정신 그리고 신학의 바른 방향을 추구하려는 열심에 있었다고 평가 하고 싶다. 그러나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이외의 철저히 파괴된 인간의 이성으로서 완벽한 계시의 수용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 시대의 초월자인 동시에 아니 오히려 역사 속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이성의 자신감이 팽배하였던 계몽주의 시기에도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의 기준으로서 여전히 하나님의 주권을 타협하지 않고, 여전히 인간의 한계를 선포하였다.
그러므로 바르트의 주장처럼 인간 주체의 성서 해석이나 지향이 아니라 철저한 예수그리스도 중심적 성경말씀과 신학이 되어야 그 시대의 대안이 될 것이다. 인간과 근본적인 질적 차이가 있는, 전적 타자인 하나님을 인간 사고의 연속선상에서 만날 수 있다는 부르너의 입장은 인본주의적이다. 나에게 보다 철저한 신본주의로의 회귀를 요구하고 있는 듯하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다원화 시대에 과학과 인간과 자연이 모두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으며 나에게 주어진 신학의 과제 앞에 보다 철저함과 엄숙함의 무게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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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8.02.13
  • 저작시기200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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