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영화의 황금기에 관한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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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일본영화의 50년대의 황금기 이전의 역사
가) 태동
나) 태동기의 일본 영화들과 전통극
다) 무성영화시대 - 변사영화의 시대
라) 관동대지진 전후
마) 군국주의시대 ~ 미군정시대

2. 일본영화의 황금기

3. 황금기의 대표감독
1) 구로사와 아키라 (1910~1998)
가) 아키라의 성장배경과 데뷔
나) 구로사와영화의 특징
다) 작품세계
라) 일본 영화사에 미친 영향
마) 작품소개
라쇼몽 (1950)
살다 (1952)
칠인의 사무라이 (1954)
2) 오즈 야스지로 (1903~1963)
3) 미조구찌 겐지 (1898~1956)

본문내용

적 묘사에 중점을 하게 된다. 이와 같은 그의 대화중심의 쇼트 구성이 그의 영화적 특징이 되었으며, 독특한 영화표현양식의 기초를 이루는 초석이 된다.
그는 영화 속에서 갖는 표현의 진실성이란 소시민의 생활을 진솔하게 그리면서도 그것이 더욱 자연스러운 모습으로서 자기 영화에 표현되기를 희망하였으며 그것은 감독이 생각하는 ‘영화의 진실성’으로 생각하였다. 따라서 소시민이 갖는 생활의 진실함을 소재적 특성으로 생활의 ‘고난’ 그리고 ‘극복’의 형태로서 30년대와 50년대의 오즈영화에 중점적 주제로서 나타난다.
오즈작품의 드라마적 배경은 현실의 일본가정과 함께 ‘학교’라고 하는 극적배경과 ‘회사’가 주로 등장한다. 이들 극적 배경에 등장하는 인물 간에는 전통적으로 인간적인 감정이 존재하고 있다. 즉 가정과 사회의 동일적 시각, 학교와 자기의 동일적 시각, 또는 가정적 동질성을 추구하는 집단의 단위적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그러면서 이들의 극적배경 속에살아가는 인간들의 붕괴, 특히 인간의 집단적 최소단위인 ‘가정의 붕괴’를 나타내는 오즈의 독창적인 감정적 측면을 나타내는 세계가 있다. 따라서 그의 작품 중에는 행복한 가정의 묘사가 적게 나타난다.
‘만추’, ‘초여름’ 은 딸이 결혼을 하여 홀아버지혹은 홀어머니를 떠나는 것으로 가족의 이별을 나타내고 있으며 ‘동경이야기’는 노부부중, 처가 사망하여 부부간에 이별을 다루고 있다.
오즈영화에 있어서 표현방법 중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영화표현기법의 사용이 극도로 제한되어 사용되는 것이 그 특징이며, 그 영화적 구성에 있어 서도 아주 규칙적으로 묘사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즉 정면으로 고정된 카메라의 위치에 의한, 피사체에 대한 카메라의 정면성이나, 각 시퀀스 사이에 나타나는 풍경 쇼트의 삽입, 또는 이동촬영의 억제. 동일 카메라 위치의 반복 사용. 쇼트와 쇼트 사이에서 표현되는 180도 혹은 90도의 비약적인 공간이동 등의 특수한 표현기법이 그의 영화 속에 나타나는 특수한 조건들이라 말 할 수 있다.
카메라의 각도는 대개 수평을 유지하는 각도를 선택하고 있으나 높이에 있어서도 대개가 로우 앵글을 사용하는가 하면, 카메라의 움직임은 모두 정지된 상태에서 촬영하고 있다. 특히 영화의 평면적 공간을 유지하기 위한 특수한 조건으로 표준렌즈만을 사용하고 있다.
대부분의 카메라가 피사체에 대하여 향하는 방향은 정면이 지배적이다. 실내전경 쇼트의 경우에는 카메라는 실내 공간 네 방면에 대하여 정대적인 방향을 취하고 있으며 동시에 같은 공간은 반대 측에서도 촬영되어 표현하는 예가 많다.
이와 같은 형식은, 특히 실내 공간미의 구성에 있어서 일본식의 생활공간의 협소함을 시각적으로 확대시켜 주는 역할로 기여하게 된다.
미조구찌 겐지
1896년에 태어나 고베에서 그림을 배우고 고베소식신문사에서 광고 디자인을 했다. 1919년 도쿄로 돌아온 그는 닛카쓰 영화사의 배우가 되었다가 영화를 연출했다. 그의 영화 <거리의 스케찌>(1925), <종이 인형이 속삭이는 봄>(1926), <도쿄행진곡 >(1929), <도회교향악>(1929) 등은 대부분 흥행에 성공했다. 그는 1930년대 중반부터 독창적인 영화들을 찍기 시작했다. <기원의 자매>(1936), <나니와 엘레지>(1936) 등은 현대 일본 사회에서 거부되는 전통적 가찌에 대해서 다루었다.
1939년 <마지막 국화이야기>를 시작으로 메이지 시대를 배경으로 한 연작 시대극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전쟁과 관련된 이야기를 되도록 피하려고 했으며, 전후 일본 근대 사회의 문제를 다룬 영화를 주로 찍었다. 그는 남성의 사회 속에서 꿋꿋하게 살아가는 여성이나 남성 때문에 고생하며 살아가는 여성들을 주로 다루었다. 그가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의 탐미주의적 작품 경향 때문이다. 카메라와 등장 인물 사이에 먼 거리를 두고 찍는 롱 테이크 촬영기법은 일본적인 탐미적 경향을 더욱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미조구찌의 촬영기법은 1940년대 오손 웰스, 루키노 비스콘티, 막스 오퓔스 등보다 이전에 독자적인 경지를 확보하였다.
<오하루의 일생>(1952)은 일본판 <여자의 일생>으로 기생 오하루의 일생을 관조적으로 그려냈다. 이 영화는 독자적이고 세련된 스타일로 독창적인 영화 세계를 구축한 미조구찌 감독이 처음으로 베니스 영화제에서 수상한 작품으로 미조구찌에게 세계적인 명예를 안겨 주었다.
미조구찌의 대표적 시대극 <우게쯔 이야기>(1953)는 특유의 탐미적 리얼리즘을 통해 3년 연속 베니스영화제의 은사자상을 수상하는 기록을 세웠다. 누벨바그 앙드레 바쟁은 미조구찌의 ‘원 신 원 쇼트’의 카메라기법을 진정한 리얼리즘의 모범이라고 극찬하였다.
이 영화에서 가족들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자신의 욕망을 쫓아 떠나는 아버지, 남편 들의 모습은 미조구찌 감독 본인의 아버지의 기억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미조구찌 감독이 7살 때 그의 아버지가 사업실패로 거액의 빚을 떠안게 되어 미조구찌 감독의 누나는 기생으로 팔려가고 가족들은 모두 아사쿠사의 빈민가에서 생활해야 했다고 한다. 미조구찌 감독의 거친 성격은 바로 그 빈민가 생활을 통해 형성된 것이라고 한다)
<산쇼 다이유>는 배우로 영화에 입문해 영화사의 인력부족 문제로 우연히 연출을 하게 되어 거장이 된 감독 미조구치의 미학이 그대로 드러나는 영화이다. 절제되면서도 정적인 롱 테이크 기법을 동양적인 자신만의 기법으로 확립했다. 어느 장면을 빼내어 보아도 한폭의 기록화 같은 느낌이 들만큼 수려해 황폐한 삶의 모습까지도 시각적으로는 아름답다.
<산쇼 다이유>의 마지막 장면에선 여주인공은 남동생을 살리기 위해 호수에 빠져 자살하는데 자살 장면은 보이지 않고 호수에 퍼지는 동심원만으로 자살을 암시했다. 그는 호수 주변의 황폐하고 몽환적인 풍경을 통해 슬픔과 아름다움, 숭고함의 감정을 탐미적으로 추구했다.
- 참 고 문 헌 -
르네 프레달 <세계영화 100년사>
제프리 노웰스미스 편, <옥스퍼드 세계영화사>
젝C. 엘리스, <세계영화사>
막스 테시에, <일본영화사>
미쉘 메닐, <미조구찌 겐지의 영화세계>
최영철, <영화 감독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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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8.04.11
  • 저작시기2008.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606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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