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차례>
Ⅰ. 들어가며
Ⅱ. 일본여행기의 성격
Ⅲ. 군왜
Ⅳ. 의구와 갈등
Ⅴ. 은성(殷盛)과 정제(整齊)
Ⅵ. 서적의 보급
Ⅶ. 천황의 위치
Ⅷ. 나오며
Ⅰ. 들어가며
Ⅱ. 일본여행기의 성격
Ⅲ. 군왜
Ⅳ. 의구와 갈등
Ⅴ. 은성(殷盛)과 정제(整齊)
Ⅵ. 서적의 보급
Ⅶ. 천황의 위치
Ⅷ. 나오며
본문내용
오며
조선 시대 사람들이 일본에 관한 지견을 얻고 전달을 한 가장 중요한 매체는 조선 통신사의 사행과 그들이 저술한 『해사록』류의 일기들이었다. 사행들이 여행 기록들을 쓰게 된 목적은 상부에 대한 보고와 차후 사행 갈 사람에 대한 참고 대조의 용도, 그리고 일반 식자들의 관심과 호기심을 채워주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보고참고용 기행문들은 극히 제한된 일부 관계관과 후일의 사행자에게 알려졌을 따름이며 일반적인 유포는 극히 적었다.
이러한 기행문은 모두가 공식 사행의 일원으로 갔던 사람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그 내용에서 틀을 넘어서 자유스러운 견해와 인상의 표명이 적다는 제약도 지니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임란에서 입은 피해로 말미암은 적개증오의 마음과 유교적 기준에서 내린 평가에서 나온 멸시우월의 생각도 조선 통신사들이 일본이나 일본인을 객관적으로 보는 것을 방해했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조선 통신사는 일본이나 일본인을 무시하고 그들의 예를 금수와 같다고 비난하고 있다. 일부 일본을 낙토낙원으로 찬미하고 기화요초들을 즐거워하는 태도도 없지는 않으나 대체로 일종의 트집과 같은 감정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않고 있다.
조선 사행은 일본 문물에 대해서는 거의 무관심하였다. 이 또한 일본에 대한 조선 통신사의 견해를 반영하는 것이다. 영정 시대 주국으로 사행 갔던 사람들 사이에서 자기들이 견문한 청조의 실용적인 문물제도를 배우자고 하는 ‘북학’의 논의가 일어났던 것에 비해, 일본의 제도나 문물은 좋고 훌륭하다고 인정은 하더라도 유교적인 우월감과 편견으로 말미암아 그것 것을 도입할 생각은 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조선 시대 사람들이 일본에 관한 지견을 얻고 전달을 한 가장 중요한 매체는 조선 통신사의 사행과 그들이 저술한 『해사록』류의 일기들이었다. 사행들이 여행 기록들을 쓰게 된 목적은 상부에 대한 보고와 차후 사행 갈 사람에 대한 참고 대조의 용도, 그리고 일반 식자들의 관심과 호기심을 채워주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보고참고용 기행문들은 극히 제한된 일부 관계관과 후일의 사행자에게 알려졌을 따름이며 일반적인 유포는 극히 적었다.
이러한 기행문은 모두가 공식 사행의 일원으로 갔던 사람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그 내용에서 틀을 넘어서 자유스러운 견해와 인상의 표명이 적다는 제약도 지니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임란에서 입은 피해로 말미암은 적개증오의 마음과 유교적 기준에서 내린 평가에서 나온 멸시우월의 생각도 조선 통신사들이 일본이나 일본인을 객관적으로 보는 것을 방해했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조선 통신사는 일본이나 일본인을 무시하고 그들의 예를 금수와 같다고 비난하고 있다. 일부 일본을 낙토낙원으로 찬미하고 기화요초들을 즐거워하는 태도도 없지는 않으나 대체로 일종의 트집과 같은 감정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않고 있다.
조선 사행은 일본 문물에 대해서는 거의 무관심하였다. 이 또한 일본에 대한 조선 통신사의 견해를 반영하는 것이다. 영정 시대 주국으로 사행 갔던 사람들 사이에서 자기들이 견문한 청조의 실용적인 문물제도를 배우자고 하는 ‘북학’의 논의가 일어났던 것에 비해, 일본의 제도나 문물은 좋고 훌륭하다고 인정은 하더라도 유교적인 우월감과 편견으로 말미암아 그것 것을 도입할 생각은 하지 못하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