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개요
Ⅱ. 초현실주의의 기원
Ⅲ. 초현실주의의 전개 및 의의
Ⅳ. 초현실주의 미술 기법
Ⅴ. 초현실주의 미술의 대표적 화가
1. 큐비즘 (Cubism)
2. 살바도르 달리 (Salvador Dali, 1904-1989)
참고문헌
Ⅱ. 초현실주의의 기원
Ⅲ. 초현실주의의 전개 및 의의
Ⅳ. 초현실주의 미술 기법
Ⅴ. 초현실주의 미술의 대표적 화가
1. 큐비즘 (Cubism)
2. 살바도르 달리 (Salvador Dali, 1904-1989)
참고문헌
본문내용
989)
살바도르 달리는 초현실주의와 더불어 일화가 많은 사람이었다. 그의 작품(흐물하게 늘어진 시계, 개미들, 목발 모양의 버팀대)들만큼이나 행동(물탱크 속에서 뛰노는 17명의 나체의 요정들과 런던에서 잠수복 차림으로 강연하기도 하였고 로마에서는 엄청난 크기의 알에서 나와 기자 회견을 하기도 하였다.)에서도 특이한 사건을 일으켰다. 그의 상상력은 가히 천재적이라고 할 수 있으며 사건을 만드는 악동이었다. 또한 그만큼 속물이기도 했다. 그에게 있어서 가장 영향을 끼친 두 사람은 피카소와 갈라였다. 피카소는 1926년에 바르셀로나를 여행중 22살의 달리가 그린 [처녀의 등]을 보고 매우 감격하였다. 3년후 미로의 주선으로 파리에 가게 된 달리는 피카소를 만나게 된다. 달리는 피카소를 교향처럼 여겼으며 피카소 또한 달리의 완전한 후견인이 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달리의 명성은 피카소의 그것과 대등하게 되면서부터 달리는 공공연히 피카소를 모욕하고 다녔다. 그에 따르면 피카소는 현대미술을 죽여 버렸으며 20세기의 가장 악질적인 파괴자라는 주장을 하였다. 그에 대해 달리는 \"그의 도움은 결정적이었다. 그러나 나의 상황은 진퇴양난이었다. 그가 나의 정신적인 아버지였으니까 친아버지에게 반발했던 것처럼 그의 권위를 부정할 수밖에 없었다. \" 그는 피카소의 커다란 그늘에서 벗어나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리고 달리에게 있어서 중요한 만남은 갈리였다. 당시 갈리는 막스 에른스트와 엘뤼아르의 여자였다. 초현실주의자들이 달리의 그림에 반하여 그를 찾아갔을 때 갈리를 만나게 된다. 이때의 만남을 그는 \'꼭 벼락을 맞는 것 같았다. \'라고 표현하고 있다. 당시 성교 불능의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달리의 그림에 음경의 소약하고 왜곡된 형체를 지탱하고 있는 목발과 포오크의 의미가 이러한 설명하고 있다. 갈리는 달리를 길들이고 가르치며 이러한 모든 공포와 두려움에서 해방시켰으며 돈 많은 미술 애호가들이 그의 그림에 사족을 못쓰고 달리 부부가 유럽의 사교계를 좌우하는 소위 달리 현상을 만들어 냈다. 또한 달리의 글을 발굴해 내어 위대한 실천가인 동시에 이론가로 만들어 내게 한다.
1930년 달리가 미노토르사에 기고한 글은 야릇하고 기발하기까지 한 상상력으로 예술계를 떠들썩하게 한다. 그는 [밀레의 만종]에 대하여 하루의 일을 마치고 감사 기도를 드리고 있는 부부의 경건한 모습을 부르조아 사회의 성적 억압을 본보기로 묘사한 사례라고 주장하였다. 그의 주장은 문제의 그림 속에 있는 남자 옆에 박혀 있는 쇠스랑과 여자 뒤에 주둥이가 벌어진 사과 자루들을 싣고 있는 손수레는 의심할 바가 없이 성기의 상징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이 작품이 엄청나게 인기 있는 이유는 부르조아 사회의 이데올로기, 잠재적인 성을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프로이드의 이론에 따르면 부르조아 사회는 그 존속을 위하여 성을 억압하므로 그것이 잠재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초현실주의의 근본은 부르조아 사회의 극복과 영구 혁명을 지향한다는 사실에 있어서 성의 해방이 중요한 과제였던 것이다. 그는 유명해지기 위해서 아니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였다. \"유명해 지기 위해서는 어떠한 수단을 써도 된다고 믿어요. 다른 사람들 눈에 안 뜨이는 것만큼 나를 절망시키는 사건도 없지요. 그리고 나는 지나치게 유명하다고해서 번민하거나 자살하는 바보는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그렇게 유명하다는 사실은 즐겁기 짝이 없죠.\" 그의 이러한 생각은 기상천외한 물건을 제작하기도 하거나 마치 어릿광대처럼 연기하거나 그의 특유의 콧수염 등에서 잘 나타난다. 그의 이러한 성격의 다분히 피카소의 영향(그림보다는 성격적인 측면에서)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아무튼 그의 이러한 일화는 이때까지의 조금은 보수적이던 미술계를 초현실주의라는 보다 개방적이고 발전적인 사고로 변화시키는 중요한 몫을 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참고문헌
◎ 달바도르 달리. 달리, 나는 천재다!. 다빈치.
◎ 시간과 언어. 모더니즘 이후의 미술.
◎ 이화현대미술연구회 엮음. 현대미술의 동향2. 눈빛. 1994.5.
◎ 클라우스 라이홀트, 베른하르트 그라프. 세계를 움직인 그림들. 중앙M&B. 2003.3
◎ 한길아트. 다다와 초현실주의. 2001.
◎ 현대미술의 기원.
◎ artworld. 초현실주의 (超現實主義)
◎ S.알렉산드리안, 이대일. 초현실주의 미술. 열화당. 1984.
살바도르 달리는 초현실주의와 더불어 일화가 많은 사람이었다. 그의 작품(흐물하게 늘어진 시계, 개미들, 목발 모양의 버팀대)들만큼이나 행동(물탱크 속에서 뛰노는 17명의 나체의 요정들과 런던에서 잠수복 차림으로 강연하기도 하였고 로마에서는 엄청난 크기의 알에서 나와 기자 회견을 하기도 하였다.)에서도 특이한 사건을 일으켰다. 그의 상상력은 가히 천재적이라고 할 수 있으며 사건을 만드는 악동이었다. 또한 그만큼 속물이기도 했다. 그에게 있어서 가장 영향을 끼친 두 사람은 피카소와 갈라였다. 피카소는 1926년에 바르셀로나를 여행중 22살의 달리가 그린 [처녀의 등]을 보고 매우 감격하였다. 3년후 미로의 주선으로 파리에 가게 된 달리는 피카소를 만나게 된다. 달리는 피카소를 교향처럼 여겼으며 피카소 또한 달리의 완전한 후견인이 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달리의 명성은 피카소의 그것과 대등하게 되면서부터 달리는 공공연히 피카소를 모욕하고 다녔다. 그에 따르면 피카소는 현대미술을 죽여 버렸으며 20세기의 가장 악질적인 파괴자라는 주장을 하였다. 그에 대해 달리는 \"그의 도움은 결정적이었다. 그러나 나의 상황은 진퇴양난이었다. 그가 나의 정신적인 아버지였으니까 친아버지에게 반발했던 것처럼 그의 권위를 부정할 수밖에 없었다. \" 그는 피카소의 커다란 그늘에서 벗어나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리고 달리에게 있어서 중요한 만남은 갈리였다. 당시 갈리는 막스 에른스트와 엘뤼아르의 여자였다. 초현실주의자들이 달리의 그림에 반하여 그를 찾아갔을 때 갈리를 만나게 된다. 이때의 만남을 그는 \'꼭 벼락을 맞는 것 같았다. \'라고 표현하고 있다. 당시 성교 불능의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달리의 그림에 음경의 소약하고 왜곡된 형체를 지탱하고 있는 목발과 포오크의 의미가 이러한 설명하고 있다. 갈리는 달리를 길들이고 가르치며 이러한 모든 공포와 두려움에서 해방시켰으며 돈 많은 미술 애호가들이 그의 그림에 사족을 못쓰고 달리 부부가 유럽의 사교계를 좌우하는 소위 달리 현상을 만들어 냈다. 또한 달리의 글을 발굴해 내어 위대한 실천가인 동시에 이론가로 만들어 내게 한다.
1930년 달리가 미노토르사에 기고한 글은 야릇하고 기발하기까지 한 상상력으로 예술계를 떠들썩하게 한다. 그는 [밀레의 만종]에 대하여 하루의 일을 마치고 감사 기도를 드리고 있는 부부의 경건한 모습을 부르조아 사회의 성적 억압을 본보기로 묘사한 사례라고 주장하였다. 그의 주장은 문제의 그림 속에 있는 남자 옆에 박혀 있는 쇠스랑과 여자 뒤에 주둥이가 벌어진 사과 자루들을 싣고 있는 손수레는 의심할 바가 없이 성기의 상징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이 작품이 엄청나게 인기 있는 이유는 부르조아 사회의 이데올로기, 잠재적인 성을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프로이드의 이론에 따르면 부르조아 사회는 그 존속을 위하여 성을 억압하므로 그것이 잠재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초현실주의의 근본은 부르조아 사회의 극복과 영구 혁명을 지향한다는 사실에 있어서 성의 해방이 중요한 과제였던 것이다. 그는 유명해지기 위해서 아니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였다. \"유명해 지기 위해서는 어떠한 수단을 써도 된다고 믿어요. 다른 사람들 눈에 안 뜨이는 것만큼 나를 절망시키는 사건도 없지요. 그리고 나는 지나치게 유명하다고해서 번민하거나 자살하는 바보는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그렇게 유명하다는 사실은 즐겁기 짝이 없죠.\" 그의 이러한 생각은 기상천외한 물건을 제작하기도 하거나 마치 어릿광대처럼 연기하거나 그의 특유의 콧수염 등에서 잘 나타난다. 그의 이러한 성격의 다분히 피카소의 영향(그림보다는 성격적인 측면에서)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아무튼 그의 이러한 일화는 이때까지의 조금은 보수적이던 미술계를 초현실주의라는 보다 개방적이고 발전적인 사고로 변화시키는 중요한 몫을 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참고문헌
◎ 달바도르 달리. 달리, 나는 천재다!. 다빈치.
◎ 시간과 언어. 모더니즘 이후의 미술.
◎ 이화현대미술연구회 엮음. 현대미술의 동향2. 눈빛. 1994.5.
◎ 클라우스 라이홀트, 베른하르트 그라프. 세계를 움직인 그림들. 중앙M&B. 2003.3
◎ 한길아트. 다다와 초현실주의. 2001.
◎ 현대미술의 기원.
◎ artworld. 초현실주의
◎ S.알렉산드리안, 이대일. 초현실주의 미술. 열화당.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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