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역사란 무엇인가
2. 역사연구의 흐름
3. 한국사학 발달과정
4. 한국역사의 시대구분론
5. 고대의 역사의식
(1) 고조선 (단군신화)
(2) 삼국시대의 역사서술
(3) 통일신라시대의 역사서술
6. 삼국유사와 삼국사기를 통해 본 고려의 역사인식
7. 우리나라 식민주의 사학의 비논리성과 허구성
8. 맺음말
2. 역사연구의 흐름
3. 한국사학 발달과정
4. 한국역사의 시대구분론
5. 고대의 역사의식
(1) 고조선 (단군신화)
(2) 삼국시대의 역사서술
(3) 통일신라시대의 역사서술
6. 삼국유사와 삼국사기를 통해 본 고려의 역사인식
7. 우리나라 식민주의 사학의 비논리성과 허구성
8. 맺음말
본문내용
어려운 서술방법을 취하였다. 원칙적으로 「삼국사기」가 기존사료의 편찬인 것임은 분명하지만, 때로 필요에 따라서 본문의 서술 자체를 편찬자의 목적에 맞추어 수정가필(修正加筆)하고 있다. 이것은 「해동고승전」이나 「역옹패설」에서도 마찬가지여서 당시의 일반적인 경향이었다.
이에 대해서 「삼국유사」는 그와는 다른 독특한 서술방법을 취하였다. 자신의 의견을 말할 때에 그는 상지론지 의왈(議曰) 등으로 분명히 자신의 의견임을 밝히고 있다.
따라서 「삼국유사」의 편찬은 전거(典據)를 밝혀서 인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거기에 자신의 의견을 첨가하는 형식을 취하였다고 할 수가 있다. 이러한 방식을 취한 결과 일연은 자연히 많은 사료를 수집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자신의 논거를 굳게 뒷받침해 주려고 한데서 나온 것이었다.
史學史的 의의
「삼국사기」는 仁宗 23年(1145)에 고려 귀족문화를 정리하고 강렬한 國家意識을 표출하는 가운데 중국의 역사관을 수용하면서도 독자성과 융통성을 강조하여 현실긍정과 합리성이 두드러진 사서이다.
그런데 일연이 「삼국유사」전편을 통해 강조하는 신이(神異)는 민족 자주성과 문화의 優位性을 내세우고자 한 것이었다. 이는 외세의 압제에 대항하여 그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힘의 원천이 자기 전통이라는 강한 확신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이와같이 민족사를 파악하는 精神史觀에 의해 대단히 폭넓은 역사와 불교를 정리하였다. 一然이 각고 끝에 수집한 사료의 典據를 소박한 표현으로 명시하고 자신이 직접 답사하는 등의 용의주도한 노력으로 고증한 수많은 서목(書目)이 실린 「삼국유사」는 다양함이나 치밀함에서 「삼국사기」보다 훨씬 뛰어나며 원사료의 본모습을 더 많이 전해주어 그만큼 사료적 가치도 높다. 객관적 서술태도를 가지고 역사적 사실을 정확하게 파악하려는 撰述태도로 採錄한 많은 민간전승 자료들이 古代文化의 原型에 더욱 가깝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에 일연이 차지하는 史學史的 의의는 대단히 크다.
7. 우리나라 식민주의 사학의 비논리성과 허구성
식민주의 사학이란 한 마디로 일제의 한국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해 조작되고 왜곡된 歷史觀이라 말할 수 있으며 일제의 현실적,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 객관적 진실을 압살했기 때문에 정상적인 한국사 발전을 위해서는 타파되어야 할 史觀이다. 그 내용을 보면
⑴ 한국이 대륙에 붙어있는 작은 반도라는 지리적 조건으로 한국 역사는 대륙이나 섬나라에 의해 타율적으로 지배를 받는다는 주장으로 한국의 독립과 자유를 부정한다. 그러나 사실은 우리민족은 외세침략에 맞서 항쟁하는 역사를 갖고 있으며, 반도이면서도 그리스는 고대에 문화의 중심이 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틀린 주장이라 할 수 있다.
⑵ 한국이 벼농사 사회, 중앙분권 부재로 한국은 스스로 사회발전을 이룰 수 없는 정체성을 주장하지만, 유물론에 따른 사회발전 단계설을 보더라도 지금의 우리 민족의 발전상황을 보더라도 틀린 주장이다.
⑶ 한국민족이 선천적, 숙명적으로 당파적 민족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주장이나, 조선후기의 사화당쟁은 일부 권력층의 권력투쟁의 산물일 뿐이므로 이 역시 틀린 주장이다.
8. 맺음말
이상으로 한국사학의 전체적인 발달과정과 역사서를 통한 고대의 역사인식, 식민주의 사학 등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역사의식의 이해는 기록성의 의미보다 그 시대 정신과의 결부속에서 찾아야 할 것이며, 획일적인 성격규정을 피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한 시대의 성격은 前시대를 계승한 복합적인 사회성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꾸준한 사료의 발굴로부터 그 시대의 정신적 성격을 추출하는 지속적인 역사적 관심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해서 「삼국유사」는 그와는 다른 독특한 서술방법을 취하였다. 자신의 의견을 말할 때에 그는 상지론지 의왈(議曰) 등으로 분명히 자신의 의견임을 밝히고 있다.
따라서 「삼국유사」의 편찬은 전거(典據)를 밝혀서 인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거기에 자신의 의견을 첨가하는 형식을 취하였다고 할 수가 있다. 이러한 방식을 취한 결과 일연은 자연히 많은 사료를 수집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자신의 논거를 굳게 뒷받침해 주려고 한데서 나온 것이었다.
史學史的 의의
「삼국사기」는 仁宗 23年(1145)에 고려 귀족문화를 정리하고 강렬한 國家意識을 표출하는 가운데 중국의 역사관을 수용하면서도 독자성과 융통성을 강조하여 현실긍정과 합리성이 두드러진 사서이다.
그런데 일연이 「삼국유사」전편을 통해 강조하는 신이(神異)는 민족 자주성과 문화의 優位性을 내세우고자 한 것이었다. 이는 외세의 압제에 대항하여 그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힘의 원천이 자기 전통이라는 강한 확신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이와같이 민족사를 파악하는 精神史觀에 의해 대단히 폭넓은 역사와 불교를 정리하였다. 一然이 각고 끝에 수집한 사료의 典據를 소박한 표현으로 명시하고 자신이 직접 답사하는 등의 용의주도한 노력으로 고증한 수많은 서목(書目)이 실린 「삼국유사」는 다양함이나 치밀함에서 「삼국사기」보다 훨씬 뛰어나며 원사료의 본모습을 더 많이 전해주어 그만큼 사료적 가치도 높다. 객관적 서술태도를 가지고 역사적 사실을 정확하게 파악하려는 撰述태도로 採錄한 많은 민간전승 자료들이 古代文化의 原型에 더욱 가깝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에 일연이 차지하는 史學史的 의의는 대단히 크다.
7. 우리나라 식민주의 사학의 비논리성과 허구성
식민주의 사학이란 한 마디로 일제의 한국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해 조작되고 왜곡된 歷史觀이라 말할 수 있으며 일제의 현실적,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 객관적 진실을 압살했기 때문에 정상적인 한국사 발전을 위해서는 타파되어야 할 史觀이다. 그 내용을 보면
⑴ 한국이 대륙에 붙어있는 작은 반도라는 지리적 조건으로 한국 역사는 대륙이나 섬나라에 의해 타율적으로 지배를 받는다는 주장으로 한국의 독립과 자유를 부정한다. 그러나 사실은 우리민족은 외세침략에 맞서 항쟁하는 역사를 갖고 있으며, 반도이면서도 그리스는 고대에 문화의 중심이 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틀린 주장이라 할 수 있다.
⑵ 한국이 벼농사 사회, 중앙분권 부재로 한국은 스스로 사회발전을 이룰 수 없는 정체성을 주장하지만, 유물론에 따른 사회발전 단계설을 보더라도 지금의 우리 민족의 발전상황을 보더라도 틀린 주장이다.
⑶ 한국민족이 선천적, 숙명적으로 당파적 민족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주장이나, 조선후기의 사화당쟁은 일부 권력층의 권력투쟁의 산물일 뿐이므로 이 역시 틀린 주장이다.
8. 맺음말
이상으로 한국사학의 전체적인 발달과정과 역사서를 통한 고대의 역사인식, 식민주의 사학 등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역사의식의 이해는 기록성의 의미보다 그 시대 정신과의 결부속에서 찾아야 할 것이며, 획일적인 성격규정을 피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한 시대의 성격은 前시대를 계승한 복합적인 사회성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꾸준한 사료의 발굴로부터 그 시대의 정신적 성격을 추출하는 지속적인 역사적 관심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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