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개요
Ⅱ. 한국 인쇄술의 역사
Ⅲ. 목판인쇄술
Ⅳ. 목판인쇄술의 한지제조과정과 판각과정
1. 한지제조과정
2. 판각과정
3. 목판인쇄 판각 및 박아내는 법
Ⅴ. 활자인쇄술
Ⅵ. 활자인쇄술의 목활자 종류
1. 서적원자(書籍院字)
2. 동국정운자(東國正韻字)
3. 을유자체자(乙酉字體字)
4. 훈련도감자(訓練都監字)
5. 실록자(實錄字)
6. 교서관(校書館) 필서체자(筆書體字)
7. 생생자(生生字)
8. 학부(學部) 인서체자(印書體字)
9. 기타 목활자
참고문헌
Ⅱ. 한국 인쇄술의 역사
Ⅲ. 목판인쇄술
Ⅳ. 목판인쇄술의 한지제조과정과 판각과정
1. 한지제조과정
2. 판각과정
3. 목판인쇄 판각 및 박아내는 법
Ⅴ. 활자인쇄술
Ⅵ. 활자인쇄술의 목활자 종류
1. 서적원자(書籍院字)
2. 동국정운자(東國正韻字)
3. 을유자체자(乙酉字體字)
4. 훈련도감자(訓練都監字)
5. 실록자(實錄字)
6. 교서관(校書館) 필서체자(筆書體字)
7. 생생자(生生字)
8. 학부(學部) 인서체자(印書體字)
9. 기타 목활자
참고문헌
본문내용
후기 무렵까지 지속되었다. 인쇄하려는 책이 늘어나자 옛 금속활자의 글자체를 본뜬 각종 목활자를 만들어 다양하게 책을 찍어냈는데, 이들 활자를 총칭하여 \'훈련도감자\'라 부른다. 구체적으로 표현할 때는 \'갑인자체 훈련도감자\', \'경오자체 훈련도감자\', \'을해자체 훈련도감자\' 등으로 글자체별 활자 명을 붙여 부른다. 본 활자로 찍은 인본들은 다양한 글자체에 따라 현재 적지 않게 전해 오고 있다.
5. 실록자(實錄字)
실록자는 임진왜란으로 인해 각 사고에 보관해 오던 왕조실록이 전주 사고 본을 제외하고는 모두 소실되자, 전란 직후 실록청에서 태조에서 명종까지의 13대 실록을 전주 사고 본에 의해 새로 찍기 위해 사용한 목활자이다. 실록처럼 귀중한 문적은 통상 금속활자로 찍어야 했음에도 전란으로 대부분의 금속활자가 소실되어 버린 탓에 옛 갑인자와 을해자를 수집하는 한편, 부족한 많은 활자들은 훈련도감 병사들을 데려 와 목활자로 만들어 보충하였던 것이다. 이 때 찍은 태백산 사고 본을 살펴보면 태조부터 명종까지의 실록은 기존의 금속활자에다 새로 만든 목활자를 보충하여 갑인자와 목활자 또는 을해자와 목활자로 찍었으며, 선조부터 효종까지의 실록은 목활자를 주로 하여 찍었는데, 이때 사용된 목활자를 총칭하여 \'실록자\'라고 일컫고 있다.
6. 교서관(校書館) 필서체자(筆書體字)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쳐 인조 말기에 이르러 비로소 국가의 인쇄 업무가 옛날과 같이 교서관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자 훈련도감에서 활자 만들기와 판짜기 등의 인쇄 기법을 경험한 장인들이 교서관으로 옮겨와서 인쇄 업무를 재개하게 되었다. 이 무렵부터 현종 때 무신자(戊申字)가 주조되어 중앙 관서의 금속활자 인쇄 업무가 다시 원활하게 수행되기까지의 사이에 교서관이 갑인자와 을해자의 필서체를 답습한 목활자로 책을 찍어 공급하였는데, 이때 사용된 목활자를 \'교서관 필서체자\'라고 한다. 교서관 필서체자는 또한 숙종 대에 들어와 만들어진 목활자도 있는데, 이는 초기의 활자보다 크기가 작고 단정한 모양을 띄고 있다. 옆의 사진은 무신자 초기 인본인 잠곡선생유고(潛谷先生遺稿)로, 후기 인본에 비해 인쇄가 정교하다.
7. 생생자(生生字)
생생자는 정조 16년(1792) 청나라의 사고전서(四庫全書)에 들어 있는 취진판 강희자전(康熙字典)의 글자를 글자 본으로 삼고 황양목을 사용하여 만든 목활자로 크고 작은 활자가 32만 여자에 이른다. 이 활자는 조선 시대 때 만들어진 목활자 중 가장 대규모로 관서에서 제조한 목활자인데, 철종 8년(1857)의 주자소 화재로 인해 대부분 소실되고 말았다.
8. 학부(學部) 인서체자(印書體字)
고종 31년(1894)의 갑오경장으로 관제 개혁으로 생긴 부서 중 하나가 교육을 담당하는 학부(學部)였다. 학부 편집국에서는 당시의 새로운 문물과 근대화 의식을 수용하기 위해 교과서의 개편 작업이 시급했는데, 그 결과 무쇠로 만들어 쓰다가 마모되어 방치해 둔 후기 교서관 인서체자와 이를 바탕으로 인서체 목활자를 만들어 개편된 교과서를 다량으로 찍어냈다. 이 때 사용한 목활자를 \'학부 인서체자\'라 부르며, 특히 한글을 찍기 위해 만든 활자를 \'학부 인서체자 병용 한글자\' 또는 \'학부 한글자\'라 일컫는다. 야소삼자경자는 19세기말에서 20세기초에 기독교 선교를 위해 어린이용 훈몽삼자경의 체제를 본 떠서 만든 야소삼자경을 찍기 위해 만든 목활자이다. 인본은 한자로 번역한 기독교 교리의 중요 대목을 큰 한자 밑에 작은 한글자로 훈과 음을 표시하고 끝에는 한글로 토를 달아 인쇄해 냈다. 이를 총칭하여 \'야소삼자경자\'라고 하며, 구체적으로는 한자 큰 자를 \'야소삼자경 대자\', 한글 작은 자를 \'야소삼경 한글자\'로 일컫는다.
9. 기타 목활자
그외 임진왜란 이전 목활자로 현재 전해오는 것에는 중종 때 나주목에서 만든 \'금성자(錦城字)\', 명종 때 대제학을 지낸 정사룡(鄭士龍)이 만든 \'호음자(湖陰字)\', 광해군 때 평양에서 만든 \'추향당자(秋香堂字)\', 그리고 선조 18년(1585)에 교정청에서 <효경대의>를 찍기 위해 만든 \'효경대자(孝經大字)\'의 인본 등이 있다. 한 조선 후기에는 민 관에서 다양한 목활자를 만들어 각종 서책이나 문집, 족보 등을 인 출하는데 사용하였다. 선조 41년(1608)부터 광해군 7년(1615)까지의 사이에 내의원의 의관(醫官)들이 의서를 찍어내기 위해 만든 \'내의원자(內醫院字)\', 광해군 13년(1621)에 경상도 관찰사였던 정조(鄭造)가 그의 친구인 문계박에게 의뢰해 만든 \'문계박자(文繼朴字)\', 17세기 후반에 나주목에서 만든 \'나주자(羅州字)\', 정조 21년(1797)에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을 인출하면서 사용한 \'춘추강자(春秋綱字)\', 동왕 22년(1798)에 김한동(金翰東)이 조상의 문집을 찍기 위해 평남 성천에서 만든 \'성천자(成川字)\' 등이 있다. 이후에도 많은 목활자가 개인들에 의해 사사로이 만들어졌는데, 순조 10년(1810)에 장훈이 사적으로 책을 찍기 위해 소형 목활자로 만든 \'장혼자(張混字)\', 동왕 15년(1815)에 예조판서 등을 지낸 남공철(南公轍)이 자신의 저서를 찍기 위해 만든 중간 자와 작은 자의 \'금릉취진자(金陵聚珍字)\', 동왕 25년(1825)에 박병은(朴秉殷) 등이 <증주삼자경>을 인출하기 위해 만든 \'훈몽삼자경자(訓蒙三字經字)\', 그리고 고종 6년(1869)에 양주의 보광사에서 불서를 찍어내기 위해 만든 \'보광사자(寶光寺字)\'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의 많은 목활자가 있었으며, 이들의 인본 또한 다양하게 전해 오고 있다
참고문헌
◈ 김창옥, 인쇄문화의 새로운 이해. 학연문화사. 1999.
◈ 김청, 인쇄의 역사. 포장산업. 2005
◈ 이종호, 세계 최고의 우리 문화유산. 컬처라인. 2001.
◈ 천혜봉, 라려 인쇄술의 연구, 경인문화사, 1996.
◈ 한국출판협회 편, 인쇄출판문화의 기원과 발달에 관한 연구 논문집. 청주고인쇄박물관. 1996.
◈ 한국 고 활자 학술회의, 청주 고 인쇄 박물관. 한국 고 활자 학술회의. 2002.
◈ T.F카터, 강순애·송일기 역, 인쇄문화사. L.C. 구드리히 개정. 아세아 문화사. 1995.
5. 실록자(實錄字)
실록자는 임진왜란으로 인해 각 사고에 보관해 오던 왕조실록이 전주 사고 본을 제외하고는 모두 소실되자, 전란 직후 실록청에서 태조에서 명종까지의 13대 실록을 전주 사고 본에 의해 새로 찍기 위해 사용한 목활자이다. 실록처럼 귀중한 문적은 통상 금속활자로 찍어야 했음에도 전란으로 대부분의 금속활자가 소실되어 버린 탓에 옛 갑인자와 을해자를 수집하는 한편, 부족한 많은 활자들은 훈련도감 병사들을 데려 와 목활자로 만들어 보충하였던 것이다. 이 때 찍은 태백산 사고 본을 살펴보면 태조부터 명종까지의 실록은 기존의 금속활자에다 새로 만든 목활자를 보충하여 갑인자와 목활자 또는 을해자와 목활자로 찍었으며, 선조부터 효종까지의 실록은 목활자를 주로 하여 찍었는데, 이때 사용된 목활자를 총칭하여 \'실록자\'라고 일컫고 있다.
6. 교서관(校書館) 필서체자(筆書體字)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쳐 인조 말기에 이르러 비로소 국가의 인쇄 업무가 옛날과 같이 교서관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자 훈련도감에서 활자 만들기와 판짜기 등의 인쇄 기법을 경험한 장인들이 교서관으로 옮겨와서 인쇄 업무를 재개하게 되었다. 이 무렵부터 현종 때 무신자(戊申字)가 주조되어 중앙 관서의 금속활자 인쇄 업무가 다시 원활하게 수행되기까지의 사이에 교서관이 갑인자와 을해자의 필서체를 답습한 목활자로 책을 찍어 공급하였는데, 이때 사용된 목활자를 \'교서관 필서체자\'라고 한다. 교서관 필서체자는 또한 숙종 대에 들어와 만들어진 목활자도 있는데, 이는 초기의 활자보다 크기가 작고 단정한 모양을 띄고 있다. 옆의 사진은 무신자 초기 인본인 잠곡선생유고(潛谷先生遺稿)로, 후기 인본에 비해 인쇄가 정교하다.
7. 생생자(生生字)
생생자는 정조 16년(1792) 청나라의 사고전서(四庫全書)에 들어 있는 취진판 강희자전(康熙字典)의 글자를 글자 본으로 삼고 황양목을 사용하여 만든 목활자로 크고 작은 활자가 32만 여자에 이른다. 이 활자는 조선 시대 때 만들어진 목활자 중 가장 대규모로 관서에서 제조한 목활자인데, 철종 8년(1857)의 주자소 화재로 인해 대부분 소실되고 말았다.
8. 학부(學部) 인서체자(印書體字)
고종 31년(1894)의 갑오경장으로 관제 개혁으로 생긴 부서 중 하나가 교육을 담당하는 학부(學部)였다. 학부 편집국에서는 당시의 새로운 문물과 근대화 의식을 수용하기 위해 교과서의 개편 작업이 시급했는데, 그 결과 무쇠로 만들어 쓰다가 마모되어 방치해 둔 후기 교서관 인서체자와 이를 바탕으로 인서체 목활자를 만들어 개편된 교과서를 다량으로 찍어냈다. 이 때 사용한 목활자를 \'학부 인서체자\'라 부르며, 특히 한글을 찍기 위해 만든 활자를 \'학부 인서체자 병용 한글자\' 또는 \'학부 한글자\'라 일컫는다. 야소삼자경자는 19세기말에서 20세기초에 기독교 선교를 위해 어린이용 훈몽삼자경의 체제를 본 떠서 만든 야소삼자경을 찍기 위해 만든 목활자이다. 인본은 한자로 번역한 기독교 교리의 중요 대목을 큰 한자 밑에 작은 한글자로 훈과 음을 표시하고 끝에는 한글로 토를 달아 인쇄해 냈다. 이를 총칭하여 \'야소삼자경자\'라고 하며, 구체적으로는 한자 큰 자를 \'야소삼자경 대자\', 한글 작은 자를 \'야소삼경 한글자\'로 일컫는다.
9. 기타 목활자
그외 임진왜란 이전 목활자로 현재 전해오는 것에는 중종 때 나주목에서 만든 \'금성자(錦城字)\', 명종 때 대제학을 지낸 정사룡(鄭士龍)이 만든 \'호음자(湖陰字)\', 광해군 때 평양에서 만든 \'추향당자(秋香堂字)\', 그리고 선조 18년(1585)에 교정청에서 <효경대의>를 찍기 위해 만든 \'효경대자(孝經大字)\'의 인본 등이 있다. 한 조선 후기에는 민 관에서 다양한 목활자를 만들어 각종 서책이나 문집, 족보 등을 인 출하는데 사용하였다. 선조 41년(1608)부터 광해군 7년(1615)까지의 사이에 내의원의 의관(醫官)들이 의서를 찍어내기 위해 만든 \'내의원자(內醫院字)\', 광해군 13년(1621)에 경상도 관찰사였던 정조(鄭造)가 그의 친구인 문계박에게 의뢰해 만든 \'문계박자(文繼朴字)\', 17세기 후반에 나주목에서 만든 \'나주자(羅州字)\', 정조 21년(1797)에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을 인출하면서 사용한 \'춘추강자(春秋綱字)\', 동왕 22년(1798)에 김한동(金翰東)이 조상의 문집을 찍기 위해 평남 성천에서 만든 \'성천자(成川字)\' 등이 있다. 이후에도 많은 목활자가 개인들에 의해 사사로이 만들어졌는데, 순조 10년(1810)에 장훈이 사적으로 책을 찍기 위해 소형 목활자로 만든 \'장혼자(張混字)\', 동왕 15년(1815)에 예조판서 등을 지낸 남공철(南公轍)이 자신의 저서를 찍기 위해 만든 중간 자와 작은 자의 \'금릉취진자(金陵聚珍字)\', 동왕 25년(1825)에 박병은(朴秉殷) 등이 <증주삼자경>을 인출하기 위해 만든 \'훈몽삼자경자(訓蒙三字經字)\', 그리고 고종 6년(1869)에 양주의 보광사에서 불서를 찍어내기 위해 만든 \'보광사자(寶光寺字)\'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의 많은 목활자가 있었으며, 이들의 인본 또한 다양하게 전해 오고 있다
참고문헌
◈ 김창옥, 인쇄문화의 새로운 이해. 학연문화사. 1999.
◈ 김청, 인쇄의 역사. 포장산업. 2005
◈ 이종호, 세계 최고의 우리 문화유산. 컬처라인. 2001.
◈ 천혜봉, 라려 인쇄술의 연구, 경인문화사, 1996.
◈ 한국출판협회 편, 인쇄출판문화의 기원과 발달에 관한 연구 논문집. 청주고인쇄박물관. 1996.
◈ 한국 고 활자 학술회의, 청주 고 인쇄 박물관. 한국 고 활자 학술회의. 2002.
◈ T.F카터, 강순애·송일기 역, 인쇄문화사. L.C. 구드리히 개정. 아세아 문화사.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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