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序 論
Ⅱ. 本 論
1. 15세기의 역사인식과 역사편찬
2. 16세기의 역사인식과 역사편찬
3. 17~18세기의 역사인식과 역사편찬
4. 19세기의 역사인식과 역사편찬
Ⅲ. 結 論
▪ 參考文獻
Ⅱ. 本 論
1. 15세기의 역사인식과 역사편찬
2. 16세기의 역사인식과 역사편찬
3. 17~18세기의 역사인식과 역사편찬
4. 19세기의 역사인식과 역사편찬
Ⅲ. 結 論
▪ 參考文獻
본문내용
특히 한진서가 쓴 『해동역사』의「지리고」는 정약용의『아방강역고』와 더불어 역사지리 고증의 높은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홍석주는 삼국과 발해의 강역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동사세가(東史世家)』를 썼고, 또 우리가 중국인보다 더 정확한 중국사를 쓸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명사관견(明史管見)』이라는 새로운 명나라 역사서를 편찬하였다. 홍석주의 친족인 홍경모는 19세기 중엽『동사변의』에서 상고사의 의문점을 하나하나 고증하여 문헌고증학을 발전시켰으며, 그의 뒤를 이어 이원익은『동사약』을, 윤정기는『동환록』을, 박주종은『동국통지』를 각각 써서 고증적 역사서술의 전통을 이어갔다.
Ⅲ. 結 論
성리학을 국시로 하여 성립한 조선왕조는 도덕정치 구현에 일차적 목표를 두면서도 부국강병의 달성과 삼국유민의식(三國遺民意識)의 청산을 통한 민족 국가의 강화를 지향하면서 우리 역사를 국가사업으로 새롭게 정리하였다. 그 결과 고대사의 정리는『동국사략(東國史略)』『삼국사절요(三國史節要)』 등으로 나타나고, 고려 시대사 정리는 『고려사(高麗史)』『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로 마무리되었으며, 이를 합쳐 통사체계를 구성한 것이 『동국통감(東國通鑑)』이다. 15세기의 민족지향적, 도덕정치지향적 역사의식은 국호에도 반영되어 단군의 개국과 기자의 도덕성을 계승한다는 의미에서 조선(朝鮮) 이란 국호를 부활시켰으며, 단군 이래 한반도의 최고 명당으로 알려진 한양을 수도로 정한 것에도 주체성과 도덕성이 담겨있었다. 16세기에는 부국강병정책의 폐단이 나타나면서 이에 대한 반성으로 극단적인 도덕정치를 지향하는 왕도정치(王道政治)사상이 풍미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사서와 지리서가 편찬되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동국사략(東國史略)』과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이다. 이 시기 역사서술의 중요한 특징은 고대사의 중심무대를 한반도 안에서 찾고 만주 수복을 위한 북진정책을 비난한 것이다. 조선후기에는 왜란과 호란으로 인한 충격으로 민족의식이 강화되고 사회개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러한 역사의식을 반영하는 사서편찬이 사족층(士族層)사이에 널리 유행하였다. 특히 문헌고증(文獻考證)에 의한 역사역구는 조선후기의 중요한 변화이다. 18세기 후반의 『동사강목(東史綱目)』과 19세기 초에 편찬된『해동역사(海東繹史)』는 조선후기 역사연구의 성과를 집대성한 대표적 역사책이다. 조선후기 역사 서술의 중요한 특징은 고대사의 강역에 대한 역사지리 연구가 화발하게 전개되고 우리문화의 뿌리로서 동이문화권에 대한 인식이 깊어졌으며 우리역사를 정통론을 도입하여 체계화시켰다. 또한 문헌고증방법을 도입하여 역사연구가 심화되는 과정에서 사학(史學)이 경학(經學)에서 독립하여 전문화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參考文獻
한국사편찬위원회,『한국사특강』, 서울대출판부, 1990
조동걸 外, 『한국의 역사가와 역사학(上)』, 1994 창작과비평사,
강만길,『고쳐 쓴 한국근대사』, 창작과비평사, 1994
국사편찬위원회 編,『한국사 26』, 국사편찬위원회, 1995
노태돈 外,『시민을 위한 한국역사』, 창작과비평사, 1997
홍석주는 삼국과 발해의 강역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동사세가(東史世家)』를 썼고, 또 우리가 중국인보다 더 정확한 중국사를 쓸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명사관견(明史管見)』이라는 새로운 명나라 역사서를 편찬하였다. 홍석주의 친족인 홍경모는 19세기 중엽『동사변의』에서 상고사의 의문점을 하나하나 고증하여 문헌고증학을 발전시켰으며, 그의 뒤를 이어 이원익은『동사약』을, 윤정기는『동환록』을, 박주종은『동국통지』를 각각 써서 고증적 역사서술의 전통을 이어갔다.
Ⅲ. 結 論
성리학을 국시로 하여 성립한 조선왕조는 도덕정치 구현에 일차적 목표를 두면서도 부국강병의 달성과 삼국유민의식(三國遺民意識)의 청산을 통한 민족 국가의 강화를 지향하면서 우리 역사를 국가사업으로 새롭게 정리하였다. 그 결과 고대사의 정리는『동국사략(東國史略)』『삼국사절요(三國史節要)』 등으로 나타나고, 고려 시대사 정리는 『고려사(高麗史)』『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로 마무리되었으며, 이를 합쳐 통사체계를 구성한 것이 『동국통감(東國通鑑)』이다. 15세기의 민족지향적, 도덕정치지향적 역사의식은 국호에도 반영되어 단군의 개국과 기자의 도덕성을 계승한다는 의미에서 조선(朝鮮) 이란 국호를 부활시켰으며, 단군 이래 한반도의 최고 명당으로 알려진 한양을 수도로 정한 것에도 주체성과 도덕성이 담겨있었다. 16세기에는 부국강병정책의 폐단이 나타나면서 이에 대한 반성으로 극단적인 도덕정치를 지향하는 왕도정치(王道政治)사상이 풍미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사서와 지리서가 편찬되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동국사략(東國史略)』과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이다. 이 시기 역사서술의 중요한 특징은 고대사의 중심무대를 한반도 안에서 찾고 만주 수복을 위한 북진정책을 비난한 것이다. 조선후기에는 왜란과 호란으로 인한 충격으로 민족의식이 강화되고 사회개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러한 역사의식을 반영하는 사서편찬이 사족층(士族層)사이에 널리 유행하였다. 특히 문헌고증(文獻考證)에 의한 역사역구는 조선후기의 중요한 변화이다. 18세기 후반의 『동사강목(東史綱目)』과 19세기 초에 편찬된『해동역사(海東繹史)』는 조선후기 역사연구의 성과를 집대성한 대표적 역사책이다. 조선후기 역사 서술의 중요한 특징은 고대사의 강역에 대한 역사지리 연구가 화발하게 전개되고 우리문화의 뿌리로서 동이문화권에 대한 인식이 깊어졌으며 우리역사를 정통론을 도입하여 체계화시켰다. 또한 문헌고증방법을 도입하여 역사연구가 심화되는 과정에서 사학(史學)이 경학(經學)에서 독립하여 전문화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參考文獻
한국사편찬위원회,『한국사특강』, 서울대출판부, 1990
조동걸 外, 『한국의 역사가와 역사학(上)』, 1994 창작과비평사,
강만길,『고쳐 쓴 한국근대사』, 창작과비평사, 1994
국사편찬위원회 編,『한국사 26』, 국사편찬위원회, 1995
노태돈 外,『시민을 위한 한국역사』, 창작과비평사, 1997
추천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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