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론
1. 주제 설정 동기
2. 성서와 이스라엘
Ⅱ. 본론
1. 성서 속의 이스라엘 역사
1.1 이스라엘 민족의 형성
1.2 이스라엘 건국의 기적과 성서와의 일치
1.3 이스라엘의 수난의 역사
1.4 이스라엘의 독립
2. 현재 이스라엘의 모습
2.1 이스라엘의 경제적 특징
2.2 선진국이 된 이스라엘
2.3 미국 내 유태인의 영향력
3. 이스라엘의 미래와 성서
3.1 번성하는 이스라엘과 성서의 예언
3.2 성서에서의 앞으로 이스라엘의 모습
Ⅲ. 결론
참고문헌 및 사이트
1. 주제 설정 동기
2. 성서와 이스라엘
Ⅱ. 본론
1. 성서 속의 이스라엘 역사
1.1 이스라엘 민족의 형성
1.2 이스라엘 건국의 기적과 성서와의 일치
1.3 이스라엘의 수난의 역사
1.4 이스라엘의 독립
2. 현재 이스라엘의 모습
2.1 이스라엘의 경제적 특징
2.2 선진국이 된 이스라엘
2.3 미국 내 유태인의 영향력
3. 이스라엘의 미래와 성서
3.1 번성하는 이스라엘과 성서의 예언
3.2 성서에서의 앞으로 이스라엘의 모습
Ⅲ. 결론
참고문헌 및 사이트
본문내용
성서에서의 앞으로 이스라엘의 모습
복음이 이방인에게로 넘어간 것은 이스라엘을 시기 나게 함(11:11-24)
'넘어짐'은 소망 없는 완전한 실패를 뜻하고, '실족'은 재기가 불가능한 실족이 아니라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순간적인 실수를 말한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넘어짐, 이스라엘의 잠정적 실패가 이방인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한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반드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일으키실 것이다. 이스라엘은 구원사의 뿌리이다. 이스라엘의 구원은 온 인류의 구원이다. 이방인의 구원과 이스라엘의 구원, 이 두 가지가 맞아떨어져야 역사의 마지막 때가 온다. 그래서 이스라엘 선교가 세계 선교의 '끝'이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미래에 대한 계획이다.
이스라엘이 발을 잘못 디딘 것은 도미노 현상과 같다. 이스라엘이 실족하여 넘어지면서 이방인이라는 도미노를 친 것이다. 망하는 쪽으로 넘어진 것이 아니라 이방인 쪽으로 넘어진 것이다. 그래서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게 된 것이다. 이스라엘의 실패가 없었더라면 이방인의 구원도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목적에 있어서 이방인들의 구원은 신32:21(롬10:19에서 인용됨)의 성취이다. 유대인과 이방인에 대한 바른 관점을 가진 바울 팀이 안디옥에서 파송 받고, 이방을 향하여 복음 전하면서 일어난 일을 행13:48에서 기록하고 있다.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그런데 그 앞에 46절에, "... 너희가 버리고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라고 분명하게 언급되어 있다.
11:12, 이스라엘의 실패가 세상의 부유함이요 이스라엘의 넘어짐은 이방인의 부유함이 되었다면 이스라엘의 충만함은 어떤 결과를 낳겠는가? 즉 역사의 마지막 때에 그들이 일어날 것이다. 역사를 완성하기 위하여 이스라엘은 반드시 회복되게 되어 있다. 이것이 롬11장의 결론이요, 구원의 완성이요, 세계 복음화의 성취이다.
11:13-14, 사도 바울은 이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부탁한다. 제발 나의 동족을 '시기 나게'해 달라고. 어떻게 말인가? 11:15, 저희를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었다면 그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부활이 아닌가? 부활의 축복에 해당되지 않는가?
11:15-16, 모든 이방인들의 구원의 뿌리는 이스라엘이다. 뿌리를 생각하지 않고 자긍하는 것은 교만이다. 영적인 자만에 빠진 것이다. 떡덩이가 거룩해서 가루가 거룩한 것이 아니라, 첫 열매 즉 가루가 거룩하기 때문에 떡덩이가 거룩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이 복음을 받아 거룩해졌듯이 이제 복음을 받은 이방인이 거룩한 것이라는 의미이다. 아울러 거룩케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므로 현재 이스라엘의 실족을 보고 이방인들이 교만해서는 안됨을 이미 바울은 경고하고 있었던 것이다.
11:17-18, 이스라엘이 꺾이지 않았다면 이방인은 접붙임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방인들은 시간이 갈수록 자신들이 잘났기 때문에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오만하거나 교만해서는 결코 안될 것이다. 가지가 우선이 아니다. 뿌리가 우선 이다. 가지가 거룩해서 뿌리가 거룩한 것이 아니다. 뿌리 때문에 가지가 사는 것이다. 이스라엘 때문에 이방인이 산다. 지금까지 2,000년 기독교 역사는 모두 이방인의 구원받는 역사였다. 이스라엘은 온 인류, 열방의 이방인을 위한 구원의 희생양이 되었던 것이다. 예수님이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희생양이 된 것처럼,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해지도록 하기 위해 잠시 이스라엘을 희생시킨 것이다(11:19). 그들은 지금까지 이방인의 숫자가 충만하게 차기까지 기다리고 있는 지 모른다. 이방인이 돌아오고 이스라엘이 회개하면 역사가 완성된다. 이방인의 충만한 숫자가 차기까지 이스라엘은 이방을 대신하여 고통을 겪으면서 기다리고 있다. 이스라엘을 많은 국가 중 하나로 보지 말아야 할 이유가 이것이다. 영적으로 이스라엘을 보아야 하고, 세계 복음화 차원에서 세계사, 특히 이스라엘에 접근해야 한다. 이스라엘은 온 인류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서 남겨 두신 마지막 카드가 될 것이다.
11:20-22, 따라서 이방인들에게 제일 필요한 것은 이스라엘에 대한 영적인 시각과 함께 겸손이다. 유기적인 선택에 대한 교만에 다시금 빠져서는 안 된다. 다시 왜곡과 아픔의 역사가 되풀이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방인을 구원하기 위해 이스라엘을 희생시켰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신 것이다. 이제 이방인이 스스로의 힘으로 구원을 얻을 수 없었기에 유대인을 통하여(유대인의 거절을 통하여) 구원을 주셨듯이, 이스라엘은 이방인을 통하여 구원받을 것이다.
11:23-24, 이스라엘이 다시 믿으면 접붙임을 얻을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시키실 줄로 믿고 있다. 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다시 건져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구원은 개인의 구원에서 시작되어 민족 구원을 넘어서서 온 인류의 구원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된다. 이방인의 구원은 이스라엘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구원은 이방인을 통해서 얻게 하실 것이다. 이것이 온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세계 복음화의 완성에 대한 그림이다
Ⅲ. 결론
앞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성서와 이스라엘은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다. 그냥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만을 조사해 보아도, 성서만을 따로 놓고 보아도 둘은 필연적이게 연결 지어 진다. 오늘날 이스라엘에 부유한 나라, 막강한 경제력, 군사력... 이라는 이러한 수식어가 따르는 것이 성경에서 나온 대로 ‘내가 너로 꼬리가 되지 않고, 머리가 되게 하리라....’ 한 말씀의 실현인가. 한 번쯤은 생각해 볼만한 문제이다. 성서 속의 이스라엘의 과거와 현재가 일치 했다면, 일치 하고 있다면 이스라엘의 미래도 과연 일치할 것인가. 이것 역시 우리가 지켜 볼만한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참고 문헌 및 사이트
http://my.dreamwiz.com/jutkim/history/histo-frm.html
http://bibleistrue.com.ne.kr
www.empas.co.kr
복음이 이방인에게로 넘어간 것은 이스라엘을 시기 나게 함(11:11-24)
'넘어짐'은 소망 없는 완전한 실패를 뜻하고, '실족'은 재기가 불가능한 실족이 아니라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순간적인 실수를 말한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넘어짐, 이스라엘의 잠정적 실패가 이방인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한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반드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일으키실 것이다. 이스라엘은 구원사의 뿌리이다. 이스라엘의 구원은 온 인류의 구원이다. 이방인의 구원과 이스라엘의 구원, 이 두 가지가 맞아떨어져야 역사의 마지막 때가 온다. 그래서 이스라엘 선교가 세계 선교의 '끝'이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미래에 대한 계획이다.
이스라엘이 발을 잘못 디딘 것은 도미노 현상과 같다. 이스라엘이 실족하여 넘어지면서 이방인이라는 도미노를 친 것이다. 망하는 쪽으로 넘어진 것이 아니라 이방인 쪽으로 넘어진 것이다. 그래서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게 된 것이다. 이스라엘의 실패가 없었더라면 이방인의 구원도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목적에 있어서 이방인들의 구원은 신32:21(롬10:19에서 인용됨)의 성취이다. 유대인과 이방인에 대한 바른 관점을 가진 바울 팀이 안디옥에서 파송 받고, 이방을 향하여 복음 전하면서 일어난 일을 행13:48에서 기록하고 있다.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그런데 그 앞에 46절에, "... 너희가 버리고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라고 분명하게 언급되어 있다.
11:12, 이스라엘의 실패가 세상의 부유함이요 이스라엘의 넘어짐은 이방인의 부유함이 되었다면 이스라엘의 충만함은 어떤 결과를 낳겠는가? 즉 역사의 마지막 때에 그들이 일어날 것이다. 역사를 완성하기 위하여 이스라엘은 반드시 회복되게 되어 있다. 이것이 롬11장의 결론이요, 구원의 완성이요, 세계 복음화의 성취이다.
11:13-14, 사도 바울은 이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부탁한다. 제발 나의 동족을 '시기 나게'해 달라고. 어떻게 말인가? 11:15, 저희를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었다면 그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부활이 아닌가? 부활의 축복에 해당되지 않는가?
11:15-16, 모든 이방인들의 구원의 뿌리는 이스라엘이다. 뿌리를 생각하지 않고 자긍하는 것은 교만이다. 영적인 자만에 빠진 것이다. 떡덩이가 거룩해서 가루가 거룩한 것이 아니라, 첫 열매 즉 가루가 거룩하기 때문에 떡덩이가 거룩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이 복음을 받아 거룩해졌듯이 이제 복음을 받은 이방인이 거룩한 것이라는 의미이다. 아울러 거룩케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므로 현재 이스라엘의 실족을 보고 이방인들이 교만해서는 안됨을 이미 바울은 경고하고 있었던 것이다.
11:17-18, 이스라엘이 꺾이지 않았다면 이방인은 접붙임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방인들은 시간이 갈수록 자신들이 잘났기 때문에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오만하거나 교만해서는 결코 안될 것이다. 가지가 우선이 아니다. 뿌리가 우선 이다. 가지가 거룩해서 뿌리가 거룩한 것이 아니다. 뿌리 때문에 가지가 사는 것이다. 이스라엘 때문에 이방인이 산다. 지금까지 2,000년 기독교 역사는 모두 이방인의 구원받는 역사였다. 이스라엘은 온 인류, 열방의 이방인을 위한 구원의 희생양이 되었던 것이다. 예수님이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희생양이 된 것처럼,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해지도록 하기 위해 잠시 이스라엘을 희생시킨 것이다(11:19). 그들은 지금까지 이방인의 숫자가 충만하게 차기까지 기다리고 있는 지 모른다. 이방인이 돌아오고 이스라엘이 회개하면 역사가 완성된다. 이방인의 충만한 숫자가 차기까지 이스라엘은 이방을 대신하여 고통을 겪으면서 기다리고 있다. 이스라엘을 많은 국가 중 하나로 보지 말아야 할 이유가 이것이다. 영적으로 이스라엘을 보아야 하고, 세계 복음화 차원에서 세계사, 특히 이스라엘에 접근해야 한다. 이스라엘은 온 인류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서 남겨 두신 마지막 카드가 될 것이다.
11:20-22, 따라서 이방인들에게 제일 필요한 것은 이스라엘에 대한 영적인 시각과 함께 겸손이다. 유기적인 선택에 대한 교만에 다시금 빠져서는 안 된다. 다시 왜곡과 아픔의 역사가 되풀이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방인을 구원하기 위해 이스라엘을 희생시켰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신 것이다. 이제 이방인이 스스로의 힘으로 구원을 얻을 수 없었기에 유대인을 통하여(유대인의 거절을 통하여) 구원을 주셨듯이, 이스라엘은 이방인을 통하여 구원받을 것이다.
11:23-24, 이스라엘이 다시 믿으면 접붙임을 얻을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시키실 줄로 믿고 있다. 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다시 건져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구원은 개인의 구원에서 시작되어 민족 구원을 넘어서서 온 인류의 구원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된다. 이방인의 구원은 이스라엘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구원은 이방인을 통해서 얻게 하실 것이다. 이것이 온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세계 복음화의 완성에 대한 그림이다
Ⅲ. 결론
앞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성서와 이스라엘은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다. 그냥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만을 조사해 보아도, 성서만을 따로 놓고 보아도 둘은 필연적이게 연결 지어 진다. 오늘날 이스라엘에 부유한 나라, 막강한 경제력, 군사력... 이라는 이러한 수식어가 따르는 것이 성경에서 나온 대로 ‘내가 너로 꼬리가 되지 않고, 머리가 되게 하리라....’ 한 말씀의 실현인가. 한 번쯤은 생각해 볼만한 문제이다. 성서 속의 이스라엘의 과거와 현재가 일치 했다면, 일치 하고 있다면 이스라엘의 미래도 과연 일치할 것인가. 이것 역시 우리가 지켜 볼만한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참고 문헌 및 사이트
http://my.dreamwiz.com/jutkim/history/histo-frm.html
http://bibleistrue.com.ne.kr
www.empa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