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드의 종교 이해와 그 한계
본 자료는 4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해당 자료는 4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4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목차

1. 프로이드 무신론의 기원
1) 그의 부모의 영향
2) 반종교적 경험들
3) 학문적 과정

2. 종교에 대한 프로이드의 이해
1) 종교의 기원
2) 종교의 본질

3. 종교 이해에 있어서 프로이드의 한계
1). 프로이드의 종교기원에 대한 설명
2). 정신분석은 어린 시절의 영향

4. 결론

본문내용

기술은 종말론적 공포에 이르게까지 하는 어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퍼치고 있다. 과학 그 자체는 인간의 비물질적 욕구를 만족시킬 수 없고 인간의 삶을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만들어주는 그리고 진정 인간으로 만들어 주는 그런 가치들을 줄 수 없다는 것을 프로이드는 맹신적인 과학에 대한 믿음 때문에 볼 수 없었다.
프로이드는 모험정신을 지닌 성실한 인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가 만든 가정 때문에 즉 종교는 거짓이고, 과학은 매우 중요하고 따라서 정신분석 안에 인간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열쇠가 있다는 가정 때문에, 그는 극히 좁은 세계 안에서 그의 삶을 마쳤다. 특별한 방향에 대한 그의 지나친 관심은 우주의 많은 부분을 배제시켰다. 오디프스 콤플렉스로서 인류 종교현상을 모두 해명하려고 한 것은 비약이라고 보여진다.
왜 소망하는 것이 허락될 수 없는가? 인류나 개인의 삶이 단지 자연의 비정한 법칙이나 우연성이나 적자생존의 법칙에 지배를 받고, 모든 것은 무(nothingness)로 죽어간다는 생각에 오히려 혐오를 느낄 수 있지 않는가? 프로이드의 무신론은 가정이다. 프로이드 자신도 이것을 저 마음 깊은 곳에서 잘 인식하고 있었다. 또한 사람은 누구나 질문한다: 삶이란 무엇이고, 도대체 죽음이후에는 무엇이 일어나는가? 이런 질문에는 병리학적인 어떤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집단 신경증의 존재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단지 인간은 생각할 수 있는 힘이 있고 자연스럽게 질문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프로이드는 그가 생각하는 과학이 대답할 수 없는 이러한 질문의 중요성을 인정하기를 거부했다. 오히려 인간에게 있어서 이런 중요한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추구하는 것은 종교의 한 근원이고 인간의 정상적인 경험의 한 부분이다. 프로이드는 이 경향을 무시하던지 또는 그것을 비정상인 것으로 취급했다. 이것이 그의 종교이해의 또 다른 한계이다.
4. 결론
비록 나는 프로이드의 종교 이해를 비판할지라도, 그의 개척자적인 작업과 인간 그 자신에 대한 존경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종교는, 그의 문명 비판론에서 보듯, 본능 억압과 승화를 통해 사회와 문명이 파멸되지 않도록 지키는 역할을 하는데, 이 과정에서 종교라는 이름아래 너무 많은 억압이 있어 인간 스스로 성숙해짐을 막아왔고 오히려 불행하게도 만들어 왔다는 것에 부분적이지만 공감을 한다. 프로이드는 심층심리학의 관점으로부터, 인간의 편에서 종교, 교회 혹은 신 자신에 의한 억압이나 지배에 대항하여 인간을 자유롭게 하고 성숙한 인간성을 추구하려고 진지하게 노력했음을 본다. 이것은--인간의 성숙--비록 프로이드와는 접근 방법이 다르다 할지라도 우리가 함께 추구해 나가야 할 방향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프로이드가 종교를 취급하는 가운데 보여준 약점에도 불구하고 그의 주장의 일부는 사실이라는 것이 시인되어야 한다. 즉 많은 사람들의 종교적 신념이 잘못된 투사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크리스챤의 하나님 이미지는 어린 시절 인상 남던 아버지의 이미지에서,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형성된다. 때론 고의적으로 그들의 자녀를 훈련시키기 위해 교육의 방법으로 부모에 의해 벌하시는 아버지-하나님이 남용되기도 하는데, 장기적인 안목에서, 이것은 아이들에게 종교에 대해 부정적 결과를 갖고 올 수 있다. 또 종교가 소원 성취에만 의존할 때, 본질적 진리가 아니라 그것은 순수한 욕구의 만족으로 환원되어진다. 그런 종교는 유아적 소원으로의 퇴행이다. 또한 종교가 어떤 형식, 의식, 종교적 개념의 강박적 반복가운데서 문자에만 매달리게 될 때, 종교적 개념들은 강박적 의례적 반복에서 오는 만족으로 빠지게 된다. 마치 뜻도 모르고 그저 반야심경을 의미 없이 외우는 것처럼. 이렇게 부적절하게 동기 되어진 종교적 행위는, 강박 신경증 환자의 개인 의례에서 처럼, 어떤 유혹이나 벌에 대한--가끔 무의식적인--두려움, 공포감에 의해 이루어지는 방어 대책이다. 이처럼 프로이드의 비판을 통해서 우리는 자칫 빠지기 쉬운 종교의 모순을 벗어나서 건강한 종교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프로이드의 실수는 모든 것이 파악되고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리꿔가 지적한대로, 정신분석은 구습타파에 필요한 것 이상은 넘어갈 수 없다. 신에 대한 신앙은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태도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을 수 있지만, 이것이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결과적으로 문제는 신에 대한 믿음이 심리학적으로 설명되어질 수 있다는 사실에 있는 것이 아니다. 심리학적 관점으로부터 신에 대한 믿음은 언제나 투사의 구조를 나타내거나 단순한 투사로 의심받을 수도 있다.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연인들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그/그녀 자신의 이미지를 반드시 투사한다. 그렇다면 이것이 사랑하는 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자신의 투사의 도움으로 그/그녀는 오히려 단지 객관적인 관찰자로 밖에서 상대를 판단하려고 하는 사람보다 더 심오하게 상대를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므로, 단순한 투사의 사실이 그것이 언급하는 대상의 존재나 비존재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심리학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고 해서 그것이 실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다.
다시 말해, 프로이드는 종교 개념의 심리학적 본질에만 (환영으로서) 관심이 있었지, 그들의 진리 내용(실재로서) 에는 관심이 없었다. 예수의 말씀과 삶에 대한 관심보다 그의 형상이 상징하는 심리적인 것에만 관심을 두었다. 이점에서, 게이(Peter Gay)도 프로이드가 구약의 아모스, 이사야의 신학이나 신명기 신학 등에는 관심이 없고, "억압된 것의 복귀"(return of the repressed) 개념의 심리학적 관점에서만 구약의 하나님을 본다고 지적한다.
* 참고 문헌
이인정.최해경. 1998. 2003. 인간행동과 사회환경. 서울: 나남출판.
김규수역. 2002. 인간행동과 사회환경. 서울: 나눔의 집.
이정균.김용식. 2001. 정신의학. 서울: 일조각.
김동배.권중돈. 2004. 인간행동이론과 사회복지실천. 서울: 학지사

추천자료

  • 가격5,000
  • 페이지수13페이지
  • 등록일2009.02.13
  • 저작시기2008.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19000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