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조선 후기 사회와 천도교 경전의 이해 [동경대전과 용담유사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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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조선 후기 사회와 천도교 경전의 이해 [동경대전과 용담유사를 중심으로] 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9세기 조선 후기 사회와 천도교 경전의 이해
– 동경대전과 용담유사를 중심으로


1. 머리말
2. 시대적 상황
3. 동경대전
4. 용담유사
5. 맺음말


참고문헌

본문내용

성은 사회에서 소외된 계층으로 차별과 억압을 받고 살았는데 이는 동학이 그 시대에 새로운 사상이었음을 발견하게 한다.
요악한 고인물이 할말이 바이없어
서학이라 이름하고 온동내 외는말이
사망년 저인물이 서학에나 싸잡힐까
그모르는 세상사람 그거로사 말이라고
추켜들고 하는말이 용담에는 명인나서
범도되고 용도되고 서학에는 용터라고
종종걸음 치는말을 역력히 못할러라
거룩한 내집부녀 이글보고 안심하소
소위서학 하는사람 암만봐도 명인없데
서학이라 이름하고 내몸발천 하렸던가
여기에서는 서양인을 적(敵)으로 보았는데 최제우는 그들의 종교가 전통적인 윤리나 신앙과 크게 대립되는 것으로 보고 유교적 전통을 파괴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리고 이는 곧 국조선사회의 위기로 보고 서학을 반대하였다. 이진호 “개화기 가사의 개화 수용 태도-<용담유사(龍潭遺詞)>를 중심으로” 5p
또한 《권학가(勸學歌)》에서는 조금 더 구체적인 서학(천주교)과의 갈등 속에서 우리의 옛 전통에 대한 도전과 파괴의 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하원갑 경신년에 전해오는 세상말이
요망한 서양적이 중국을 침범해서
천주당 높이세워 거소위 하는도를
천하에 편만하니 가소절창 아닐런가
증전에 들은말을 곰곰히 생각하니
아동방 어린사람 예의오륜 다버리고
남녀노소 아동주졸 성군취당 극성중에
허송세월 한단말을 보는듯이 들어오니
무단히 한울님께 주소간 비는말이
삼십삼천 옥경대에 나죽거든 가게하소
우습다 저사람은 저의부모 죽은후에
신도없다 이름하고 제사조차 안지내며
오륜에 벗어나서 유원속사 무삼일고
부모없는 혼령혼백 저는어찌 유독있어
상천하고 무엇하고 어린소리 말았어라
그말저말 다던지고 한울님을 공경하면
아동방 삼년괴질 죽을염려 있을소냐
허무한 너희풍속 듣고나니 절창이오
보고나니 개탄일세
제사를 지내지 않는 천주교를 두고 오륜에 벗어나서 예의도 모르고 부모를 공경할 줄 모르는 것으로 본다. 이는 조선 전통 윤리를 파괴하는 것으로 최제우는 이에 대해 강력한 비판을 보여주고 있다. 용담유사에서도 동경대전과 같이 사회에 대한 인식이 드러나 있다. 하지만 동경대전과는 그 차이가 있는데 용담유사에는 좀 더 직접적이고 분명하게 비판을 하고 있는데 특히 민중이 일상생활에서 부딪히게 되는 것들, 예를 들면 제사 문제와 같은 것을 쉽게 말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5. 맺음말
동경대전과 용담유사는 동학의 경전으로 동학의 교조인 최제우의 사상을 담고 있다. 앞에서 밝혔듯이 동학은 최제우가 사회의 모순과 문제점을 새로운 도를 찾음으로써 해결하려는 것에서 출발하였다. 그러므로 동학의 경전인 동경대전과 용담유사에는 최제우가 그 시대의 사회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대한 설명이 드러나고 있다. 최제우 자신은 그의 사상이 유교와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비판하고 더 나은 방도를 찾는 것이라 하였지만 받아들이는 일반 민중과 권력층에게는 너무나도 새로운 사상이었다. 그러한 이유로 최제우는 결국 사형을 당하고 2대 교주인 최시형이 동학을 이끌어 나가게 된다. 그리고 사회적인 성향은 잠시 미루어두고 동학을 하나의 ‘종교’로서 굳건하게 세우려고 하지만 전봉준의 주도로 일어난 동학농민운동으로 동학은 다시 한 번 위기를 맞는다. 그 후에 3대 교주인 손병희 때에도 진보회를 만들어 사회 운동을 하다가 결국 사회 참여와 정치적인 관심은 배제하고 종교로서의 동학에 전념하게 한다.
이렇듯 동학이 사회 인식에서 출발했듯이 동학의 경전인 동경대전과 용담유사에서는 최제우가 조선사회를 어떻게 인식하였느냐를 알 수 있었다. 서양과 서학, 천주교에 대한 강한 반감과 함께 사회에 가득한 모순을 비판하였다. 그리고 한울님을 모셔 마음을 닦으면 새로운 시대가 올 것을 말함으로써 일반 민중에게 더욱 빠르게 흡수될 수 있었다. 동경대전은 한문으로, 용담유사는 한글로 쓰여져서 사람들에게 퍼져나갔으며 이를 통해 후세에까지 천도교의 사상이 전해지고 있다. 경전이 한 종교의 교리를 담고 있어서 사회와 관련성이 없을 것 같지만 동학은 그 사회적 배경을 가지고 창도된 만큼 다른 경전과는 다른 면들이 발견되었다.
참고문헌
고건호, “한말 신종교의 문명론: 동학 천도교를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박사논문, 2002
최동희 “<동경대전>의 종교철학적인 이해”
이강옥 “<龍潭遺詞>에 대한 一考察”
이진호 “개화기 가사의 개화 수용 태도-<용담유사(龍潭遺詞)>를 중심으로”
최동희 “동경대전의 종교철학적인 이해”
문명숙 “<동경대전>과 <용담유사>에 나타난 동학의 종교사상-최제우의 신체험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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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4.10
  • 저작시기2013.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385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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