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선교신학적 이슈에 대한 이해와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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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휘튼부터 로잔까지

Ⅲ. 로잔대회로부터 마닐라대회까지
1. The Lausanne Covenant
2. Consultation on Simple Life-Style
3. 복음전도와 사회적 책임의 관계
1). 역사적 배경
2). 특별한 상황과 은사
3). 세 종류의 관계성
4). 으뜸의 문제
5. Consultation on the Church in Responce to Human Need
1). 기독교인의 사회 참여
6. 사회 정의와 자비
7. The Manila Manifesto
8. 복음과 사회적 책임성

Ⅳ. 복음주의 대회를 통한 복음전도와 사회운동에 대한 이해의 변화와 전망

참고문헌

본문내용

행동의 밀접한 통합으로 부름 받았다. 자기 비하의 정신 속에서 우리는 설교해야 하고 가르쳐야 하며, 병든 자를 돌보며, 굶주린 자를 먹여야 하고 옥에 갇힌 자를 돌아보며, 불이익을 당한 자와 장애 있는 자를 돕고, 억압받는 자를 구해야 한다. 우리가 영적 은사와 소명, 그리고 처한 상황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반면, 우리는 또한 복음과 선한 행위는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확언한다.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그 나라와 함께 일치될 수 없는 모든 것에 대한 예언자적 고발을 요구한다. 우리가 통탄해하는 악의 세력이 파괴적인 폭력, 구조적으로 표현된 폭력과 정치적 부패를 포함한 인간과 세상을 착취하는 모든 형식, 가족 관계를 손상시키는 것, 인간 권리의 훼손 속에 있다. 우리는 또한 수백만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비인간적인 상황에 대해 분노한다.
사회 운동에 대한 우리의 지속적인 헌신은 기독교화 된 사회와 하나님의 나라를 혼동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성서적 복음이 불가피하게 사회와 밀접한 관련 속에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다. 진정한 사역은 항상 화육되어야 한다. …
Ⅳ. 복음주의 대회를 통한 복음전도와 사회운동에 대한 이해의 변화와 전망
우리는 복음주의 진영의 대회 속에서 이미 그들이 성서적으로 복음전도와 사회 운동의 밀접한 관련성을 짚었던 것을 기억한다. 이제 복음주의 진영의 이런 변화를 간단하게 간추려보자.
로잔대회에서 선언했던 제5항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 부분을 다시 짚어보자.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종족, 종교, 피부색, 문화, 계급, 성과 연령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타고난 존엄성을 지니고 있으며 따라서 사람은 존경받고 섬김 받아야 하며, 착취당해서는 안 된다. 이 점을 우리는 등한시하여 왔고, 때때로 전도와 사회 참여가 서로 상반되는 것으로 잘못 생각한데 대하여 참회한다. 사람과의 화해가 곧 하나님과의 화해가 아니며, 사회 운동이 곧 전도는 아니며, 정치적 해방이 곧 구원은 아닐지라도 전도와 사회-정치적 참여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의무의 두 가지 부분이라는 것을 우리는 인정한다. 왜냐하면 이 두 가지는 다같이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우리의 교리, 우리 이웃을 위한 우리의 사랑,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순종의 필수적 표현들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작된 복음주의 진영의 사회참여에 대한 시각들이 갈수록 구체적으로 표현된다. 물론 이들은 "인류의 3분의 2 이상에 해당하는 27억 이상의 인구가 아직도 전도를 받아야 한다"고 하는 점을 잊지 않고 있다. 그러나 복음주의자들은 곧바로 Consultation on Simple Life-Style 이란 주제로 열렸던 1980년 High Leigh대회에서 "우리는 강요된 빈곤은 하나님의 선함에 대항하는 범죄임을 확언한다"고 고백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복음전도의 우선성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1982년 Grand Rapids에서 열린 대회 속에서 우선성을 논하면서 이것은 "개념적인 것이며, 실제로는 예수의 공생애 속에서 이 둘은 최소한 개방된 사회 속에서는 분리될 수 없었다"고 표현함으로 현실 사회 속에서 이론적 우선성을 논하는 것 자체가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인정하며 나아가 이 둘을 결혼관계로 비유함으로 복음전도와 사회참여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하나임을 선언한다. 따라서 1983년 휘튼 대회에서 그들이 "다른 기독교인은 증가하는 빈곤과 비극, 권세있는 자들에 의한 사나운 억압과 착취…점점 커지는 폭력 등의 실재에 직면해 비관적으로" 되었고, "결과적으로, 그들이 세상을 외면하고, '여기 지금'에 참여함에 마비되었지만" 우리는 결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결단으로 나아가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이것은 1989년 마닐라 대회에서 "우리는 정의와 평화의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는 것이 개인적이고 구조적인 불의와 억압에 대한 고발을 요구한다는 것을 확언한다. 우리는 이런 예언자적 증거를 회피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선언으로 재확인된다.
복음주의자들은 다만 1983년 휘튼 대회에서 지적했듯이 인간이 스스로의 죄성을 인정하지 못하고 이 땅 위에 유토피아를 건설할 수 있다고 하는 몽상을 배격하는 것이며, 이는 성경이 가르치는 바람직한 태도인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복음주의자들의 변화가 물론 컨실리아 진영의 영향임을 인식한다. 이 두 진영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어왔으며, 지금도 그러하다. 컨실리아 진영이 인간의 죄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19세기처럼 낙관적 세계관을 펼친다면 분명 복음주의자들은 이러한 잘못에 대해 맹렬한 비난과 충고를 아끼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마닐라 대회에서 "사회 운동에 대한 우리의 지속적인 헌신은 기독교화 된 사회와 하나님의 나라를 혼동하는 것이 아니라"고 분명하게 못박는다. 그러나 사회 운동이 낙관적 세계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사는 기독교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소명으로 인식한다면 이 부분에서 이 두 진영은 동일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미 복음주의자들은 사회의 구조악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으며 이는 컨실리아 진영과 동일하다.
우리는 복음주의 진영과 컨실리아 진영이 서로 비판하면서, 그리고 서로 보완하면서 앞으로 다가올 21세기 교회와 세계를 복음으로 구원해낼 수 있음을 확신한다. 복음전도와 사회운동이 서로 뗄레야 뗄 수 없는 하나됨의 결혼관계로 표현된 것처럼 이 두 진영은 서로를 필요로 하는 한 몸인 것이다.
참고문헌
New Directions in Mission & Evangelization 1. Baic Statements 1974-1991, Edited by James A. Sherer & Stephen B. Bebans, S.V.D. (Orbis Books : Maryknoll, New York, 1992)
조동진, '베를린에서 로잔까지', 월간목회 163호. 90년 3월호.
'Why The Berlin Congress', Christianity Today (November 11, 1966), 「복음전도, 구원, 사회정의」
조종남, 전도와 사회참여, 서울: 생명의 말씀사,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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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9.02.18
  • 저작시기20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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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519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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