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목 차
1. 박서보
1) 개관
2. 박서보의 생애
1) 생애
2) 작품 정리
3. 회화의 변천
1) 전기
2) 후기
4. 참고문헌
1. 박서보
1) 개관
2. 박서보의 생애
1) 생애
2) 작품 정리
3. 회화의 변천
1) 전기
2) 후기
4. 참고문헌
본문내용
오지 않았기에 수목화를 배울 교수가 전혀 없는 상태로 불가피하게 서양학과로 전과하게 된다.
비록 전쟁의 포화를 피해서 내려간 부산이기는 했지만 박서보는 의도치않게 은사를 만나게 된다. 홍익대학교 서양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던 수화 김환기와 부산 피난학교에서 처음 만나게 되었고 김환기로부터 사사한 현대미출의 최초 인식은 이후 박서보가 전개할 작업의 세계에 상당한 영감을 제공했다고 추론할 수 있다.
2) 작품 정리
(1) 양지
대학에 졸업한 직후 제작된 작품 중 공식적 작품은 양지라고 하는 그림이 있다. 이 작품은 현존하는 박서보의 최초 작품이라고 기록되고 있는데, 진지구축의 용도로 사용되던 군용 흙 포대의 아사천을 캔버스 천 대용품으로 사용했고 제봉선을 뜯어서 평평하게 펼친 다음에 각목에 씌워서 제작했다. 이 작품은 대상의 형체가 뚜렷하게 드러나고 이미지의 구조적 배치도 역시 돋보이며, 명암의 대비가 선명한 구상작업에 해당한다.
작품에는 성별을 추론할 수 없는 중성적 이미지로 처리된 두 명의 사람이 등장하고 서로 얼굴을 맞대고 비듬히 앉아서 어떠한 대화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2) 여인좌상
양지를 제외하면 대부분 대학졸업 직후의 작업은 화집으로만 접할 수 있다. 55년 여인좌상은 의자에 앉은 한복차림의 여인을 묘사하고 있는 작품으로 여인의 우울한 표정이나 의복의 필선 등이 돋보이는 구상작업이기도 하다.
어두운 밀실을 떠오르게 하는 검정색조의 배경색 위로는 노란색 계열의 한복이 도드라지게 부각되고 있다. 그리고 살짝 거친 오른발 사이에는 의자 모퉁이 부분을 노출하고 의복이 접하는 부분의 색을 흰색을 사용해서 음영처리 하는 등의 기법을 사용해 입체감을 살렸다.
(3) 길
흑백사진으로만 전해서 사실 색감을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원과 간결한 선만을 이용해서 인체를 묘사하고 배경이 되는 구조도 역시 함축적인 상징성을 가진 색면, 터치로 처리하고 있다. 향후 박서보 작업의 추상화로의 변이를 보여주는 형상적 코드를 포착할 수 있는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4) 닭
화면의 전면에 생동감이 느껴지는 닮의 걸음을 호방한 필치로 그린 그림이다. 붉은 배경을 깔고 뒤로 검정색으로 묘사된 닭은 후측을 향해서 걸어가고 있고, 고개를 돌려서 좌측을 응시하는 모습을 보인다. 목과 날개 그리고 다리 골격을 주위로 발달한 근육은 왼편으로 돌리는 머리의 움직임과는 대치를 이룬다.
미묘하게 다른 각도로 틀어진 앞다리 방향과 활짝 펼쳐진 닭의 날개로 미루어 보았을 때 방향을 바꾸어 뛰어오르기 이전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머리와 다리의 움직임이 도드라지게 강조됨으로 인해서 전체적인 화면의 역동성을 부여한다.
3. 회화의 변천
1) 전기
(1) 추상표현주의
전기는 박서보가 추상표현주의의 경향 작업을 전개한 57년에서 70년까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때 세부적으로 보면 프랑스 출국 이전의 시기를 수업기, 프랑스 경험을 기점으로 66년기를 원형질 시기, 그리고 66년에서 70년까지를 유전질 시기라고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박서보는 57년을 시작으로 적극적인 반대의지를 표출하는 전위운동의 선두에서 국전 반대 의사를 분명하게 하였다. 이와 같은 전위운동과 동시에 기존의 아름다움에 대한 가치를 뒤집는 파괴, 표현의 장으로 참혹한 전쟁의 상흔을 고스란이 담는 일련의 작품을 선보이면서 관습적인 예술에 관련한 거부감을 작업을 통해서 표출한 것으로 보인다.
박서보는 서구 미술사조의 한국 유입상황에서 국제미술계로 차츰 관심의 폭을 확장했다. 61년에 약 1년 정도의 프랑스 체류경험은 현대미술의 방법론에 목말라있던 자신의 지적 영역을 확장하는 촉매제가 되었고, 자신의 작업 한계에 대해 인식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박서보는 당시에 세계 현대미술의 중심지에 해당하던 프랑스에서 다양한 미술 사조를 접하면서 이를 기반으로 본인의 작업에 대한 본격적인 변화를 모색하였다.
귀국 직후였던 최초 개인전 원형질전을 개최하고 작업을 이어가기는 하지만 이미 앵포르멜 작업의 한계성을 느낀 작가는 필연적 작업변화의 움직임을 어느 정도 감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서보의 관심은 기존의 사회적 현상과 체계 등에 대한 저항적 표현에서 점차적으로 인간의 내면에 관련한 관심으로 변화하게 된다.
어떠한 생명의 진화 이전의 형태를 보여주는 원형질은 한국 전쟁을 경험했던 세대들이 느껴야 했던 절망이나 무기력증 그리고 허무주의 등으로 응축된 정신적 상처를 화폭에 표현하고 있었다. 그럼에서 원형질은 전쟁 자체
비록 전쟁의 포화를 피해서 내려간 부산이기는 했지만 박서보는 의도치않게 은사를 만나게 된다. 홍익대학교 서양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던 수화 김환기와 부산 피난학교에서 처음 만나게 되었고 김환기로부터 사사한 현대미출의 최초 인식은 이후 박서보가 전개할 작업의 세계에 상당한 영감을 제공했다고 추론할 수 있다.
2) 작품 정리
(1) 양지
대학에 졸업한 직후 제작된 작품 중 공식적 작품은 양지라고 하는 그림이 있다. 이 작품은 현존하는 박서보의 최초 작품이라고 기록되고 있는데, 진지구축의 용도로 사용되던 군용 흙 포대의 아사천을 캔버스 천 대용품으로 사용했고 제봉선을 뜯어서 평평하게 펼친 다음에 각목에 씌워서 제작했다. 이 작품은 대상의 형체가 뚜렷하게 드러나고 이미지의 구조적 배치도 역시 돋보이며, 명암의 대비가 선명한 구상작업에 해당한다.
작품에는 성별을 추론할 수 없는 중성적 이미지로 처리된 두 명의 사람이 등장하고 서로 얼굴을 맞대고 비듬히 앉아서 어떠한 대화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2) 여인좌상
양지를 제외하면 대부분 대학졸업 직후의 작업은 화집으로만 접할 수 있다. 55년 여인좌상은 의자에 앉은 한복차림의 여인을 묘사하고 있는 작품으로 여인의 우울한 표정이나 의복의 필선 등이 돋보이는 구상작업이기도 하다.
어두운 밀실을 떠오르게 하는 검정색조의 배경색 위로는 노란색 계열의 한복이 도드라지게 부각되고 있다. 그리고 살짝 거친 오른발 사이에는 의자 모퉁이 부분을 노출하고 의복이 접하는 부분의 색을 흰색을 사용해서 음영처리 하는 등의 기법을 사용해 입체감을 살렸다.
(3) 길
흑백사진으로만 전해서 사실 색감을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원과 간결한 선만을 이용해서 인체를 묘사하고 배경이 되는 구조도 역시 함축적인 상징성을 가진 색면, 터치로 처리하고 있다. 향후 박서보 작업의 추상화로의 변이를 보여주는 형상적 코드를 포착할 수 있는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4) 닭
화면의 전면에 생동감이 느껴지는 닮의 걸음을 호방한 필치로 그린 그림이다. 붉은 배경을 깔고 뒤로 검정색으로 묘사된 닭은 후측을 향해서 걸어가고 있고, 고개를 돌려서 좌측을 응시하는 모습을 보인다. 목과 날개 그리고 다리 골격을 주위로 발달한 근육은 왼편으로 돌리는 머리의 움직임과는 대치를 이룬다.
미묘하게 다른 각도로 틀어진 앞다리 방향과 활짝 펼쳐진 닭의 날개로 미루어 보았을 때 방향을 바꾸어 뛰어오르기 이전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머리와 다리의 움직임이 도드라지게 강조됨으로 인해서 전체적인 화면의 역동성을 부여한다.
3. 회화의 변천
1) 전기
(1) 추상표현주의
전기는 박서보가 추상표현주의의 경향 작업을 전개한 57년에서 70년까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때 세부적으로 보면 프랑스 출국 이전의 시기를 수업기, 프랑스 경험을 기점으로 66년기를 원형질 시기, 그리고 66년에서 70년까지를 유전질 시기라고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박서보는 57년을 시작으로 적극적인 반대의지를 표출하는 전위운동의 선두에서 국전 반대 의사를 분명하게 하였다. 이와 같은 전위운동과 동시에 기존의 아름다움에 대한 가치를 뒤집는 파괴, 표현의 장으로 참혹한 전쟁의 상흔을 고스란이 담는 일련의 작품을 선보이면서 관습적인 예술에 관련한 거부감을 작업을 통해서 표출한 것으로 보인다.
박서보는 서구 미술사조의 한국 유입상황에서 국제미술계로 차츰 관심의 폭을 확장했다. 61년에 약 1년 정도의 프랑스 체류경험은 현대미술의 방법론에 목말라있던 자신의 지적 영역을 확장하는 촉매제가 되었고, 자신의 작업 한계에 대해 인식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박서보는 당시에 세계 현대미술의 중심지에 해당하던 프랑스에서 다양한 미술 사조를 접하면서 이를 기반으로 본인의 작업에 대한 본격적인 변화를 모색하였다.
귀국 직후였던 최초 개인전 원형질전을 개최하고 작업을 이어가기는 하지만 이미 앵포르멜 작업의 한계성을 느낀 작가는 필연적 작업변화의 움직임을 어느 정도 감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서보의 관심은 기존의 사회적 현상과 체계 등에 대한 저항적 표현에서 점차적으로 인간의 내면에 관련한 관심으로 변화하게 된다.
어떠한 생명의 진화 이전의 형태를 보여주는 원형질은 한국 전쟁을 경험했던 세대들이 느껴야 했던 절망이나 무기력증 그리고 허무주의 등으로 응축된 정신적 상처를 화폭에 표현하고 있었다. 그럼에서 원형질은 전쟁 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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