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의 성립과 광무개혁, 독립협회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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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머리말

Ⅱ. 대한제국의 성립

Ⅲ.광무개혁

Ⅴ. 맺 음 말

본문내용

다고 보는 것이 보다 설득력을 갖지 않는가 생각된다.
Ⅴ. 맺 음 말
이상 대한제국의 성립과 광무개혁, 독립협회에 대한 연구를 개관해 보았다. 이를 통해 대한제국기 각 분야의 연구가 다양하게 전개되어 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중에서 근래에는 대한제국기의 토지제도나 재정, 조세에 관한 연구가 주류를 이루고 있고, 앞으로도 한동안 성과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성과를 통해 대한제국기의 제도변화와 그 성격이 보다 정확히 규명되리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별달리 주목을 받지 못한 부분이 적지 않고, 기존 연구에서도 주제의 편향이나 접근방식, 해석 등에서 몇가지 보완되어야 할 점이 남아 있다.
첫째, 通時的 관점에서 대한제국의 성립과 그의 역사적 성격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점이 기본주제로 논의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조선왕조의 연장으로 보고 朝鮮末(혹은 李朝末期)이라고 칭하거나, 韓末舊韓國舊韓末19세기말 등으로 산만하게 지칭되는 사정을 감안할 때 보다 정확한 역사적 개념을 학계에서 정립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20세기 초(일제하)의 한국을 어떻게 연관시키는가 하는 문제와도 직결된다. 즉 1910년 이후는 ‘식민지조선’인가, ‘일제하조선’인가, 혹은 대한제국의 연장(대한민국 임시정부 등의 수립 이전까지)인가 등의 문제이다. ‘식민지조선’, ‘식민지한국’이 정확한 용어인지는 별도의 검토를 요하며, ‘朝鮮’이라는 명칭도 일제에 의해 강제로 부과된 것이었음에 비추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둘째, 대한제국기의 외압에 대한 인식과 평가의 문제이다. 흔히 주체와 내재적 이해를 강조하면서 정부나 독립협회의 이념과 사상의 한계로 개혁(운동)이 실패했고, 그 결과 국권이 상실되었다는 논리를 보게 된다. 그러나 당시 수많은 약소국가, 특히 한국과 같은 나라의 목전 현실을 좌우한 제1의 요소는 제국주의 국가의 물리력, 즉 정치군사경제 등의 압제였다. 일례로 청일전쟁과 로일전쟁이 한국문제와 직결되어 야기되었고, 그 결과가 한국의 국권상실이었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 양차에 걸친 전쟁 당사국의 이해와 한국의 국권문제, 나아가 내정문제는 어떠한 연관이 있는가. 보다 거시적 안목에서 한국근현대사를 바라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러한 점에 촛점이 모아져야 할 필요가 있다.
셋째, ‘내재적 접근방식’에의 편중도 고려되어야 할 문제점이다. 일례로 사회경제사적 접근방법이 지배층 위주의 역사인식을 극복할 수 있는 유용한 방법이기는 하지만, 어느 연구나 마찬가지로 다른 접근방법에 의해 보완될 필요가 있다. 그동안의 연구에서 흔히 보이듯 주체적, ‘내재적 이해’를 강조한 결과 정작 제국주의 국가들의 대한정책과 그 행태 등을 반영한 연구가 태부족이다. 그나마 다른 접근방법을 통한 연구나 인접 학문분야의 연구성과 조차 적절히 활용되지 못하고 있어, 학문간의 원활한 교류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한다. 연구의 시야가 국한될수록 ‘민족운동’ 내지는 ‘사회운동’ 등이 사실에 비해 확대 내지 과소평가로 귀결될 공산이 크고, 그 결과는 주체적 역사인식을 강조하면서도, 도리어 변질된 식민사관의 오류에 빠질 우려가 없지 않기 때문이다.
넷째, 共時的 관점에서 대한제국기 역사에 대한 비교사적 접근이 필요하다. 19세기말~20세기초 제국주의 국가의 침략위기에 놓여 있던 많은 다른 나라의 경우도 내부로부터 다양한 대응이 모색되었음은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대한제국의 선포, 대한제국기의 개혁(운동), 대한제국의 국권상실 등 그 당시 한국이 겪은 국내외적 경험은 단순히 한국만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이들 국가의 사례와 비교, 검토하는 것은 상기 주제의 내용과 의미를 보다 폭넓게 이해할 수 있는 분석방법도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섯째, 대한제국과 독립협회의 서술체제에 관한 문제이다. 거의 모든 일반 교과서의 편제에서 대한제국이란 항목은 독립협회의 그것에 부속되어 다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대한제국은 하나의 국가로서 1897년에서 1910년까지 13년간, 독립협회는 하나의 사회단체로서 1896년에서 1897년까지 약 30개월간 존속하였다. 다시말해 대한제국은 고려→조선→대한제국으로 이어지는 국가의 항목이고, 독립협회는 개화운동을 추진하던 일개의 사회단체이다. 그럼에도 독립협회를 다루는 항목에 대한제국의 선포나 그밖의 주제가 포함되어 있어, 대한제국이란 국가가 독립협회란 사회단체의 종속격으로 비쳐지는 문제점이 있다.
여섯째, 대한제국 정부나 독립협회의 개혁(운동)의 의도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당시는 청일전쟁과 로일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국권의 위기가 풍전등화와 같은 상황이었다. 단순히 황권의 강화만을 기도했다든가 지배층이 기득권만을 수호하려했다는 주장만으로는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순전히 근대화를 위한 애국적인 입장만에 의한 것이라는 해석도 설득력이 없다. 거기에는 여러 집단의 다양한 이해와 목표가 중첩적으로 작용하고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이해와 목표란 무엇이고, 그것을 구속한 조건은 무엇인가. 이러한 것들이 우선적으로 밝혀져야 할 것이다.
이 외에도 다양한 문제가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어떻든 전체적으로는 많은 성과가 있었지만, 대한제국의 성립이나 이후 정부권력의 추이, 사회 각 집단의 동향,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모두를 제약하고 있던 그 시대의 국제환경에 관한 연구 등이 특히 부진한 상태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한제국의 성격이나 개혁에 관한 결론은 앞으로의 연구결과에 따라 보다 정확한 귀결을 볼 것으로 생각되며, 가까운 장래에 그렇게 되기를 기대한다.
이상에서 대한제국의 성립, 광무개혁, 독립협회에 대한 연구성과를 개관해 보았다. 필자의 능력상 관련 연구를 충분히 소화하지 못하거나, 개중에는 누락된 연구도 적지 않을 것이다. 특히 외국학술지에 실린 연구나 국내의 연구라 할지라도 최근에 발표된 글이나 지방의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의 경우 더욱 그러할 것이다. 기타 서술의 우선순위에도 이견이 없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점에 대해서는 동학제현의 너그러운 양해를 구하는 바이다. 그러나 잘못된 이해와 분석에 대해서는 기탄없는 질정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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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6페이지
  • 등록일2009.03.23
  • 저작시기2009.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25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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