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머릿말
2.김정일의 성장과 권력에의 등장
3. 권력장악과 후계체제의 확립
4. 1980년대 이후 - 유일지도체계의 확립
5. 맺음말
2.김정일의 성장과 권력에의 등장
3. 권력장악과 후계체제의 확립
4. 1980년대 이후 - 유일지도체계의 확립
5. 맺음말
본문내용
련지역 혁명사적지 조성과 같은 일련의 사업이 전개되었다. 그리고 신문에서 김정일의 이름이 다른 지도자와 그 크기가 구분하여 큰 활자로 인쇄되기 시작하였다.
김정일의 개인숭배 작업은 두가지 측면에서 전개되었는데, 그것은 생래적 정통성 강화의 측면과 김정일 개인치적에 대한 찬양 측면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중 김정일의 치적찬양에 있어서는 일정한 한계를 지니고 있었는데, 김정일이 전면적으로 활동한 196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에 이르는 시기는 북한의 저발전과 침체의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김정일에 대한 생래적 정통성 선전은 다른 측면에 비해 더욱 주목하여 볼 필요가 있다. 그의 정통성에 대한 선전의 요지는 항일유격대장 김일성과 유격대전사 김정숙의 아들이라는 ‘혁명적 가문’의 혈통을 지님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백두산 밀영탄생”에 대한 공식화이다. 이는 1987년부터 구호나무 문헌 학습이라는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전개하면서 시작되었다. ‘구호나무’란 항일유격대원 들이 김정일의 탄생을 즈음하여 미래의 민족지도자(즉 백두광명성)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나무껍질에 김정일을 칭송하는 글을 써놓은 것이 고목이 되어 남아있다는 나무를 말한다. 김정일은 이를 통해 자신이 미래 민족지도자가 되리라는 것을 존경하는 하일선열들이 이미 예언하였다는 담화를 북한주민들에게 주입하고자 하였다.
이외에 김정일은 자신의 ‘생가’라 주장하는 소백수골을 대대적으로 정비하여 원래의 집모양을 복원하고, 구호나무 발굴과 더불어 혁명사적지로 조성하여 주민들의 집단참관을 실시하였다. 그리고 구호문헌과 관련하여 인민들의 혁명전통 교양사업과 후계체계 공고화작업을 전개하고 있으며 1989년 12월 21일에는 평양에서 구호문헌에 대한 중앙 연구 토론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5. 맺음말
심각한 경제난과 식량난, 미국의 압박과 공산권의 몰락에도 북한 체제가, 더 정확하게는 김정일 체제가 유지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정일은 왜 대내적인 정치적 도전을 받지 않고 있는가?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지금까지 김정일의 북한 내 권력장악 과정을 살펴보았다. 앞서 살펴본 대로 김정일은 대학을 졸업한 1960년대 중반 이후 북한 정치에 입문하기 시작했으며, 70년대를 통해 후계자로의 지위를 확보해나가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는 적지 않은 북한 내의 갈등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김일성과 빨치산혁명 1세대들의 지원으로 김정일 후계구도는 본격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이러한 지원뿐만 아니라, 김정일 자신이 직접 김일성의 유일사상, 유일지도체계를 더욱 강화하는데 앞장섬으로써 자신의 지위도 함께 상승하는 효과를 보았다. 또한 유일사상체계 구축의 과정에서 김정일은 노동당과 군대, 행정기관의 권력을 확고하게 장악했으며, 나아가 인민들의 사상과 생활 깊숙히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켰다. 이러한 움직임은 80년대 이후 더욱 강화되어, 김일성의 업무와 권한을 상당부분 넘겨받고, 마침내 대내외에 후계자로서의 위치를 공고화하게 되었다.
이렇게 김정일은 김일성의 적극적인 지원에 더하여, 20여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북한의 권력을 차례로 장악해나갔다. 70년대가 권력장악기라면 80년대는 권력의 공고화기였다. 즉, 김정일의 권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따라서 그의 권력기반은 긴 기간동안 숙성되어 현재까지도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러한 김정일과 그가 이끌어가는 북한 체제에 대한 보다 객관적인 이해는 앞으로 통일에 대해 구상하고, 북한과의 관계를 논의해나가는데 우선적으로 풀어야할 과제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 김정일에 대해 알려진 정보는 극히 제한적으로 그나마도 탈북자, 귀순자들의 증언에 의존하고 있다. 사람의 증언은 다분히 주관성을 내포하고 있고, 기억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따라서 보다 객관적이고 풍부한 정보수집과 그에 따른 연구를 기대하면서 본 보고서를 마치고자 한다.
♠참고문헌
이찬행, 《김정일》, 백산서당, 2001.
브루스 커밍스, 《한국현대사》, 창작과 비평사, 2001
이종석, 《현대북한의 이해》, 역사비평사, 2000.
서대숙, 《현대 북한의 지도자 -김일성과 김정일》, 을유문화사, 2000
정창현, 《곁에서 본 김정일》, 김영사, 1999.
황장엽, 《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 한울, 1999.
최성, 〈김정일 후계체제의 형성과정에 관한 연구〉,《북한연구》18호, 1994
전현준, 〈김정일의 권력승계기반과 정책방향에 관한 연구〉,《통일연구논총》1권, 1992.
김정일의 개인숭배 작업은 두가지 측면에서 전개되었는데, 그것은 생래적 정통성 강화의 측면과 김정일 개인치적에 대한 찬양 측면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중 김정일의 치적찬양에 있어서는 일정한 한계를 지니고 있었는데, 김정일이 전면적으로 활동한 196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에 이르는 시기는 북한의 저발전과 침체의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김정일에 대한 생래적 정통성 선전은 다른 측면에 비해 더욱 주목하여 볼 필요가 있다. 그의 정통성에 대한 선전의 요지는 항일유격대장 김일성과 유격대전사 김정숙의 아들이라는 ‘혁명적 가문’의 혈통을 지님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백두산 밀영탄생”에 대한 공식화이다. 이는 1987년부터 구호나무 문헌 학습이라는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전개하면서 시작되었다. ‘구호나무’란 항일유격대원 들이 김정일의 탄생을 즈음하여 미래의 민족지도자(즉 백두광명성)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나무껍질에 김정일을 칭송하는 글을 써놓은 것이 고목이 되어 남아있다는 나무를 말한다. 김정일은 이를 통해 자신이 미래 민족지도자가 되리라는 것을 존경하는 하일선열들이 이미 예언하였다는 담화를 북한주민들에게 주입하고자 하였다.
이외에 김정일은 자신의 ‘생가’라 주장하는 소백수골을 대대적으로 정비하여 원래의 집모양을 복원하고, 구호나무 발굴과 더불어 혁명사적지로 조성하여 주민들의 집단참관을 실시하였다. 그리고 구호문헌과 관련하여 인민들의 혁명전통 교양사업과 후계체계 공고화작업을 전개하고 있으며 1989년 12월 21일에는 평양에서 구호문헌에 대한 중앙 연구 토론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5. 맺음말
심각한 경제난과 식량난, 미국의 압박과 공산권의 몰락에도 북한 체제가, 더 정확하게는 김정일 체제가 유지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정일은 왜 대내적인 정치적 도전을 받지 않고 있는가?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지금까지 김정일의 북한 내 권력장악 과정을 살펴보았다. 앞서 살펴본 대로 김정일은 대학을 졸업한 1960년대 중반 이후 북한 정치에 입문하기 시작했으며, 70년대를 통해 후계자로의 지위를 확보해나가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는 적지 않은 북한 내의 갈등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김일성과 빨치산혁명 1세대들의 지원으로 김정일 후계구도는 본격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이러한 지원뿐만 아니라, 김정일 자신이 직접 김일성의 유일사상, 유일지도체계를 더욱 강화하는데 앞장섬으로써 자신의 지위도 함께 상승하는 효과를 보았다. 또한 유일사상체계 구축의 과정에서 김정일은 노동당과 군대, 행정기관의 권력을 확고하게 장악했으며, 나아가 인민들의 사상과 생활 깊숙히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켰다. 이러한 움직임은 80년대 이후 더욱 강화되어, 김일성의 업무와 권한을 상당부분 넘겨받고, 마침내 대내외에 후계자로서의 위치를 공고화하게 되었다.
이렇게 김정일은 김일성의 적극적인 지원에 더하여, 20여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북한의 권력을 차례로 장악해나갔다. 70년대가 권력장악기라면 80년대는 권력의 공고화기였다. 즉, 김정일의 권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따라서 그의 권력기반은 긴 기간동안 숙성되어 현재까지도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러한 김정일과 그가 이끌어가는 북한 체제에 대한 보다 객관적인 이해는 앞으로 통일에 대해 구상하고, 북한과의 관계를 논의해나가는데 우선적으로 풀어야할 과제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 김정일에 대해 알려진 정보는 극히 제한적으로 그나마도 탈북자, 귀순자들의 증언에 의존하고 있다. 사람의 증언은 다분히 주관성을 내포하고 있고, 기억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따라서 보다 객관적이고 풍부한 정보수집과 그에 따른 연구를 기대하면서 본 보고서를 마치고자 한다.
♠참고문헌
이찬행, 《김정일》, 백산서당, 2001.
브루스 커밍스, 《한국현대사》, 창작과 비평사, 2001
이종석, 《현대북한의 이해》, 역사비평사, 2000.
서대숙, 《현대 북한의 지도자 -김일성과 김정일》, 을유문화사, 2000
정창현, 《곁에서 본 김정일》, 김영사, 1999.
황장엽, 《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 한울, 1999.
최성, 〈김정일 후계체제의 형성과정에 관한 연구〉,《북한연구》18호, 1994
전현준, 〈김정일의 권력승계기반과 정책방향에 관한 연구〉,《통일연구논총》1권,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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