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김수영 시인의 민중적 자유모색
Ⅱ. 신동엽 시인의 민중현실과 정서통일
Ⅲ. 박목월 시인의 향수의 미학
1. 정신적 고향으로서의 자연
2. 생활의 기반으로서의 가정
Ⅳ. 김소월 시인의 언어구사
Ⅴ. 정지용 시인의 언어구사
참고문헌
Ⅱ. 신동엽 시인의 민중현실과 정서통일
Ⅲ. 박목월 시인의 향수의 미학
1. 정신적 고향으로서의 자연
2. 생활의 기반으로서의 가정
Ⅳ. 김소월 시인의 언어구사
Ⅴ. 정지용 시인의 언어구사
참고문헌
본문내용
지용이 발굴하고 발탁한 것이다. 새빨간 동백꽃, 지붕에서 타고 있는 아지랑이를 보니 문득 어질머리가 생긴다는 것이다. \'솜병아리\'는 알에서 깐 지 얼마 안 되는 어린 병아리를 가리키는데 솜뭉치 같다는 시각 연상에서 나온 말이다. 도시에 사는 젊은 세대에게는 생소한 말이요 점점 사라져가는 말 중의 하나인데 사실적 실감이 배어 있는 말이다.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 낱말이 \'서리까마귀\'이다. 노래로 많이 불려 얼마쯤 친숙한 말이 되었다.
하늘에는 석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 \'향수\' 중에서
정지용 시의 백미의 하나인 이 작품은 우리말의 보물 창고이기도 하다. \'석근\'은 한동안 추정과 논란이 많았지만 두시언해(杜詩諺解)에도 나오고 \'성긴\'이란 뜻임은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여기 나오는 \'서리까마귀\'에 대해서도 그 내력을 찾아서 이백의 시에 나오는 \'상오\'에서 연원을 찾는 견해도 있다. 그럴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말에는 \'서리병아리\'란 말이 있다. 이른 가을에 깬 병아리를 가리키는데 얼마쯤 추위를 타는 듯하다고 해서 맥없이 보이고 추레한 사람을 가리키기도 한다. 솜병아리를 아는 시인이 서리병아리를 몰랐을 리 없다. 서리병아리에서 자연스레 서리까마귀란 말이 떠올랐을 것이다. 아마도 음률상의 배려와 계절을 감안해서 서리까마귀란 말을 만들어 냈을 것이다. 유월소와 함께 정지용의 창의적 조어라고 생각한다. \'우지짖다\'는 새가 울며 지저귄다는 뜻의 \'우짖다\'의 옛말인 \'우지지다\'의 변형이다. 역시 음률성의 고려에서 골라 썼을 공산이 크다. \'우짖다\'를 창의적으로 변형하여 사용한 경우를 우리는 동시에 발견한다.
먼산에 진달래
울긋불긋 피었고
보리밭 종달새
우지우지 노래하면
아득한 저 산 너머
고향집 그리워라
버들피리 소리 나는
고향집 그리워라.
----- 윤복진, \'그리운 고향\' 전문
광복 직후 외국 가곡에 붙여서 많이 노래했던 동요이다. 작사자가 월북했기 때문에 그후 역시 윤복진 작사의 \'물새 발자욱\'과 함께 금지곡이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위의 동시에 \'우지우지\'는 \'우짖다\'의 변형이겠는데 작사자는 혹 의성음으로 적었는지도 모른다. 의성음으로는 정지용의 것이 한결 근사해 보인다.
삼동 내 얼었다 나온 나를
종달새 지리 지리 지리리...
왜 저리 놀려대누.
어머니없이 자란 나를
종달새 지리 지리 지리리...
왜 저리 놀려대누.
해바른 봄날 한종일두고
모래톱에서 나 홀로 놀자.
----- 정지용, \'종달새\', 전문
의성음이라고는 하지만 언어 일반의 경우에 기표(記標, signifiant)와 기의(記意, signifie)의 관계가 자의적인 것이듯 소리 표기와 실제 소리의 관계는 자의적이다. 우리는 뻐국새가 \'뻐국 뻐국\' 운다고 하지만 일본인들은 \'각꼬 각꼬\' 운다고 한다. 영어에서는 cuckoo라 적는데 이름처럼 \'쿠쿠우 쿠쿠우\' 운다는 것이다. 그러려니 하고 들으면 다 그럴싸하게 들린다. 그렇긴 하지만 종달새 울음소리를 \'지리 지리 지리리\'라 한 것은 절묘하고 창의적이다. 종달새의 울음소리로 고정되지는 않았지만 그 후에 창의적인 의성음 창출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정지용이 언어 조탁에 얼마나 힘썼는가 하는 것은 시의 퇴고 과정에 잘 드러난다. 김학동 교수의 저서 <정지용 연구>에는 처음 발표 당시와 시집 수록 당시에 달라진 점을 자상하게 대조해 보여 주고 있어 퇴고 과정에 들인 정성을 짐작하게 한다. 가령 2행시 \'겨울\'의 경우를 보자.
비 방울 나리다 누뤼알로 구을러
한밤중 잉크빛 바다를 건늬다.
이것이 시집에 수록된 전문이다. 1930년 \'조선지광(朝鮮之光)\'에 발표되었을 때는 \'우박알로 구을너\'로 되어 있었다. 우박알을 누뤼알로 고친 것이다. 충청도 지방에서는 얼마 전까지도 우박을 \'유리\' 또는 \'누뤼\'라 했고 \'유리 떨어진다\'고 흔히 말했다. 한자어인 우박 대신 토박이 사투리를 살린 것이다. 낯선 말 자체가 때로는 시적 효과를 빚는다. 그러나 누뤼알의 경우에는 그 이상의 뜻이 있다. 유음(流音)으로 된 \'누뤼알\'이란 말이 구을러란 말과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이 \'누뤼\'는 정지용이 애용해서 세 번인가가 시 속에 나온다.
동해(東海)는 푸른 삽화(揷畵)처럼 옴직 않고
누뤼 알이 참벌처럼 옮겨 간다.
----- \'비로봉\' 중에서
골작에는 흔히
유성(流星)이 묻힌다.
황혼(黃昏)에
누뤼가 소란히 싸히기도 하고
꽃도
귀향 사는 곳,
절터 드랬는데
바람도 모히지 않고
산(山)그림자 설핏하면
사슴이 일어나 등을 넘어간다.
----- \'구성동(九城洞)\' 전문
우박 떨어지는 소리가 소란히 들릴 정도로 조용하고 시간마저 정지한 듯이 보이는 초역사적 공간이 잠정적 낙원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여기 나오는 사슴은 거북이나 두루미처럼 장수 불로를 상징하는 십장생(十長生)의 하나이다. 노장적 무위(無爲)의 유토피아를 훔쳐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도 \'우박\'이 \'누뤼\'가 됨으로써 비경에 어울리는 비의(秘儀)적 함의마저 갖추고 있다.
이 밖에도 \'향수\'에 나오는 \'함부로 쏜 화살\'은 \' 되는대로 쏜 화살\'을 고친 것이요 \'유리창\'에 나오는 \'물 먹은 별\'은 \'물 어린 별\'을 고친 것이다. 조그만 차이지만 사실은 큰 차이이다. \'적정한 자리에 놓인 적정한 말\'이야 말로 시의 핵심을 이루는 것인데 정지용은 그런 면에서 반듯하게 시범을 보였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두고 기교주의라고 빈정대는 견해도 있으나 그런 \'기교주의\' 없이 시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은 20년대의 수많은 \'편내용(偏內容) 주의\' 시편들이 웅변으로 말해 주고 있다.
참고문헌
김희보, 한국의 명시, 종로서적
김혜니, 한국 현대 시문학사연구, 국학자료원, 2002
김종윤, 김수영 문학 연구, 한샘출판사, 1994
구중서, 신동엽-그의 삶과 문학, 온누리, 1983
문덕수, 한국현대 시인연구 상, 푸른사상, 2001
이종우, 청록파의 시 연구, 연세대 석사 논문, 1987
유해숙, 박목월 시 연구, 청랑어문교육학회, 1991
하늘에는 석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 \'향수\' 중에서
정지용 시의 백미의 하나인 이 작품은 우리말의 보물 창고이기도 하다. \'석근\'은 한동안 추정과 논란이 많았지만 두시언해(杜詩諺解)에도 나오고 \'성긴\'이란 뜻임은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여기 나오는 \'서리까마귀\'에 대해서도 그 내력을 찾아서 이백의 시에 나오는 \'상오\'에서 연원을 찾는 견해도 있다. 그럴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말에는 \'서리병아리\'란 말이 있다. 이른 가을에 깬 병아리를 가리키는데 얼마쯤 추위를 타는 듯하다고 해서 맥없이 보이고 추레한 사람을 가리키기도 한다. 솜병아리를 아는 시인이 서리병아리를 몰랐을 리 없다. 서리병아리에서 자연스레 서리까마귀란 말이 떠올랐을 것이다. 아마도 음률상의 배려와 계절을 감안해서 서리까마귀란 말을 만들어 냈을 것이다. 유월소와 함께 정지용의 창의적 조어라고 생각한다. \'우지짖다\'는 새가 울며 지저귄다는 뜻의 \'우짖다\'의 옛말인 \'우지지다\'의 변형이다. 역시 음률성의 고려에서 골라 썼을 공산이 크다. \'우짖다\'를 창의적으로 변형하여 사용한 경우를 우리는 동시에 발견한다.
먼산에 진달래
울긋불긋 피었고
보리밭 종달새
우지우지 노래하면
아득한 저 산 너머
고향집 그리워라
버들피리 소리 나는
고향집 그리워라.
----- 윤복진, \'그리운 고향\' 전문
광복 직후 외국 가곡에 붙여서 많이 노래했던 동요이다. 작사자가 월북했기 때문에 그후 역시 윤복진 작사의 \'물새 발자욱\'과 함께 금지곡이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위의 동시에 \'우지우지\'는 \'우짖다\'의 변형이겠는데 작사자는 혹 의성음으로 적었는지도 모른다. 의성음으로는 정지용의 것이 한결 근사해 보인다.
삼동 내 얼었다 나온 나를
종달새 지리 지리 지리리...
왜 저리 놀려대누.
어머니없이 자란 나를
종달새 지리 지리 지리리...
왜 저리 놀려대누.
해바른 봄날 한종일두고
모래톱에서 나 홀로 놀자.
----- 정지용, \'종달새\', 전문
의성음이라고는 하지만 언어 일반의 경우에 기표(記標, signifiant)와 기의(記意, signifie)의 관계가 자의적인 것이듯 소리 표기와 실제 소리의 관계는 자의적이다. 우리는 뻐국새가 \'뻐국 뻐국\' 운다고 하지만 일본인들은 \'각꼬 각꼬\' 운다고 한다. 영어에서는 cuckoo라 적는데 이름처럼 \'쿠쿠우 쿠쿠우\' 운다는 것이다. 그러려니 하고 들으면 다 그럴싸하게 들린다. 그렇긴 하지만 종달새 울음소리를 \'지리 지리 지리리\'라 한 것은 절묘하고 창의적이다. 종달새의 울음소리로 고정되지는 않았지만 그 후에 창의적인 의성음 창출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정지용이 언어 조탁에 얼마나 힘썼는가 하는 것은 시의 퇴고 과정에 잘 드러난다. 김학동 교수의 저서 <정지용 연구>에는 처음 발표 당시와 시집 수록 당시에 달라진 점을 자상하게 대조해 보여 주고 있어 퇴고 과정에 들인 정성을 짐작하게 한다. 가령 2행시 \'겨울\'의 경우를 보자.
비 방울 나리다 누뤼알로 구을러
한밤중 잉크빛 바다를 건늬다.
이것이 시집에 수록된 전문이다. 1930년 \'조선지광(朝鮮之光)\'에 발표되었을 때는 \'우박알로 구을너\'로 되어 있었다. 우박알을 누뤼알로 고친 것이다. 충청도 지방에서는 얼마 전까지도 우박을 \'유리\' 또는 \'누뤼\'라 했고 \'유리 떨어진다\'고 흔히 말했다. 한자어인 우박 대신 토박이 사투리를 살린 것이다. 낯선 말 자체가 때로는 시적 효과를 빚는다. 그러나 누뤼알의 경우에는 그 이상의 뜻이 있다. 유음(流音)으로 된 \'누뤼알\'이란 말이 구을러란 말과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이 \'누뤼\'는 정지용이 애용해서 세 번인가가 시 속에 나온다.
동해(東海)는 푸른 삽화(揷畵)처럼 옴직 않고
누뤼 알이 참벌처럼 옮겨 간다.
----- \'비로봉\' 중에서
골작에는 흔히
유성(流星)이 묻힌다.
황혼(黃昏)에
누뤼가 소란히 싸히기도 하고
꽃도
귀향 사는 곳,
절터 드랬는데
바람도 모히지 않고
산(山)그림자 설핏하면
사슴이 일어나 등을 넘어간다.
----- \'구성동(九城洞)\' 전문
우박 떨어지는 소리가 소란히 들릴 정도로 조용하고 시간마저 정지한 듯이 보이는 초역사적 공간이 잠정적 낙원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여기 나오는 사슴은 거북이나 두루미처럼 장수 불로를 상징하는 십장생(十長生)의 하나이다. 노장적 무위(無爲)의 유토피아를 훔쳐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도 \'우박\'이 \'누뤼\'가 됨으로써 비경에 어울리는 비의(秘儀)적 함의마저 갖추고 있다.
이 밖에도 \'향수\'에 나오는 \'함부로 쏜 화살\'은 \' 되는대로 쏜 화살\'을 고친 것이요 \'유리창\'에 나오는 \'물 먹은 별\'은 \'물 어린 별\'을 고친 것이다. 조그만 차이지만 사실은 큰 차이이다. \'적정한 자리에 놓인 적정한 말\'이야 말로 시의 핵심을 이루는 것인데 정지용은 그런 면에서 반듯하게 시범을 보였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두고 기교주의라고 빈정대는 견해도 있으나 그런 \'기교주의\' 없이 시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은 20년대의 수많은 \'편내용(偏內容) 주의\' 시편들이 웅변으로 말해 주고 있다.
참고문헌
김희보, 한국의 명시, 종로서적
김혜니, 한국 현대 시문학사연구, 국학자료원, 2002
김종윤, 김수영 문학 연구, 한샘출판사, 1994
구중서, 신동엽-그의 삶과 문학, 온누리, 1983
문덕수, 한국현대 시인연구 상, 푸른사상, 2001
이종우, 청록파의 시 연구, 연세대 석사 논문, 1987
유해숙, 박목월 시 연구, 청랑어문교육학회,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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