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서 언
2. 조선족의 정체성과 생존환경
3. 조선족 거주 촌락의 위상 및 인구구성
4. 중국정부의 공식적 행정조직 개편
5. 조선족의 비공식적 사회조직
6. 조선족과 한족과의 관계
7. 개혁개방 정책 및 '한국바람'에 따른 변화
1) 인구의 격감
2) 조선족 학교들의 통폐합과 그 함의
3) 촌락 행정조직체들의 규모 축소와 활동력 저하
4) 행정 간부들의 권위 저하 및 간부일에 대한 기피 경향
8. 결 론
참고문헌
2. 조선족의 정체성과 생존환경
3. 조선족 거주 촌락의 위상 및 인구구성
4. 중국정부의 공식적 행정조직 개편
5. 조선족의 비공식적 사회조직
6. 조선족과 한족과의 관계
7. 개혁개방 정책 및 '한국바람'에 따른 변화
1) 인구의 격감
2) 조선족 학교들의 통폐합과 그 함의
3) 촌락 행정조직체들의 규모 축소와 활동력 저하
4) 행정 간부들의 권위 저하 및 간부일에 대한 기피 경향
8. 결 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직을 겸임하게 되더니 1997년부터는 치보위원회 주임직까지도 동일인물이 겸직을 하게 되었다. 부녀주임직을 맡으려 드는 사람이 없어 현재의 부녀주임이 선출되는 데 어려움이 따랐음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다. 촌락 행정조직 개편의 핵심이 되는 직위로 만들어진 촌장직의 경우에도 1993년과 1994년, 또 1996년과 1997년에 걸쳐서는 촌민들 중에 맡으려 드는 사람이 없어 당지부 서기가 겸직을 하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 길림성 장재촌의 경우에도 1987년부터 당지부 서기가 촌장직을 겸임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신락촌의 역사상 1980년대까지는 전례가 없었던 일이다. 그리고 현재의 촌장은 한국에 취업 나갔다 막 돌아온 상태에서 촌장직을 맡게 되었다. 심지어는 당지부 서기직의 경우에 조차도 1995년에 서기였던 인물이 3년 임기도 못 채우고 한국으로 취업 나가는 바람에 일년만에 당지부 서기가 바뀌는 일도 있었다.
이같이 간부직을 맡기를 꺼려 하는 경향이 일반화됨에 따라 그에 대응하기 위해 간부들에게 지급되는 '공자'(보수)의 액수는 계속 인상되는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 이는 간부일을 하는 데 개인들이 많은 시간을 투여함에 따른 경제적 비용을 일부라도 보전해 주기 위한 조치이다. 그리하여 1993년까지만 해도 800위안으로 고정되어 있던 당지부 서기 및 촌장의 공자는 1994년에 1,200위안으로 인상되더니, 이후 계속 인상되어 현재는 4,000위안이 되었다고 한다. 또 부녀주임의 공자도 1997년에는 500위안이었으나 1998년에는 800위안으로 인상되었다. 하지만, 이같은 수준의 보수는 한국에 취업 나가거나 중국의 도시지역으로 가서 벌 수 있는 혹은 벌 수 있으리라고 보여지는 소득보다는 여전히 매우 낮은 수준이다. 가령 촌장의 연간 공자 4,000위안은 한국 돈으로 환산하면 약 60만원인데, 이는 한국으로 취업 나간다 할 경우 한두달이면 벌어서 저축할 수 있는 돈인 것이다. 또 인근 대도시인 하얼빈 시내에서 개인택시 운전하는 기사가 하루에 버는 총수입이 약 250-300위안, 한달이면 순수입만도 수천 위안에 달한다고 한다. 이런 현실을 고려할 때, 과연 촌락의 간부직을 맡을 수 있을 만한 능력과 진취성을 지닌 개인들에게 현재 수준 혹은 그보다 약간 높은 수준으로 인상된 공자의 액수가 간부직을 맡아 지속하고픈 의욕을 견지시킬 만한 유인이 될 수 있을지는 의문스럽다.
) 더구나 민락향 정부의 통계에 의하면, 향내 농가들의 1인당 평균소득이 1997년에 3,138 위안이며, 신락촌의 경우는 3,414 위안으로, 4인 가구로 환산했을 때 가구당 연간 소득이 13,600 위안정도인 만큼, 자신들도 농사를 지으면서 촌락 행정일을 보는 촌락 간부들에게 지급되는 공자가 현재의 수준보다 인상되는 것 자체에도 한계가 있다.
8. 결 론
중국조선족은 지난 세기에 중국에서 하나의 민족공동체, 민족사회로 형성되여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시적으로 엮어왔다. 하지만 개혁개방후 중반부터 여러 가지 원인으로 하여 조선족 농촌마을이 줄어들고 조선족의 인구성장이 마이너스로 나타나고 적지 않은 조선족학교가 무너지고 조선족문화가 엄청난 충격을 받고 있다. 이리하여 조선족의 인구위기, 교육위기, 언어위기, 도덕위기설이 거론되고 지어는 조선족 공동체 해체설도 나오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중국조선족이 자기의 발전과정에 엄중한 문제에 직면하고 있음을 말해 주고 있다.
하지만 이로하여 비관의 심연속으로 빠지거나 실망할 일은 없다. 왜냐하면 우리 조선족은 빛나는 전통과 저력이 있고 개혁개방의 절호의 기회를 만났고 정부의 민족정책이 있고 찬란한 문화와 막강한 경제력을 가지고 있는 한국을 비롯한 한반도가 있기 때문에 중국조선족은 전진의 길에 어려움이 적지 않지만 동화되지 않고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할 수 있을 것이다.
중한 수교에 따라 중국조선족에 대한 한국의 중시도가 높아지면서 적지 않은 배려를 돌려 왔다. 하지만 높은 차원에서 볼 때 적지 않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에 대비하여 몇가지 제언을 하는 바이다.
(1) 중국조선족은 "무한하고 창조적인 자원"이며 중·한 교류의 가교적 역할의 담당자라는 전향적인 인식을 갖고 중국조선족에 대한 각종 법적 장치 이를테면《재외동포법》,《재외동포취업보호법》등을 제정 혹은 완미화한 후 이를 바탕으로 각종 제도적 장치를 구축하면서 중국조선족의 발전에 역동적인 힘을 부여하여 주길 바란다.
(2) 조선족에 대한 자세에서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은 조선족이 한민족이면서도 국적이 중국이라는 것이다. 동북 3성에 대한 영토문제 제기 백두산 문제, 선교사들의 불법적 선교활동 등은 중국 정부를 자극하게 되어 중국조선족과 한국간의 관계는 물론 중국과 한국의 관계발전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따라서 중국조선족에 대한 정책은 이들이 중국의 소수민족 일원이라는 전제하에 중국내의 위상을 제고하는 한편 생활문화수준을 향상시킬수 있도록 각 방면의 지원과 협조를 아끼지 않는데 예각적 대응을 꾀해야 할 것이다.
이를테면 조선족학교에 대한 지원, 교사연수, 유학을 통한 조선족엘리트육성 조선족의 연구기관, 대학, TV, 라지오, 출판, 문화예술단체, 사회단체와의 교류와 지원의 확대, 민족관계나 중·한관계 각종 학술세미나와 각종 문화행사에 대한 지원책을 창출함이 절실히 요구된다. 이는 한국정부 차원의 지원보다는 민간주도의 지원이 더욱 중요한 것 같다.
(3) 중국동포의 한국방문 비자 발급 관계 수속을 좀더 간소화하고 그 발급시간을 단축하기를 바라며 중국조선족불법체류자에 대한 좀 더 융통성이 있는 정책이 요구된다.
참고문헌
이진산편, 중국 한겨례사회 어디까지 왔나?,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 2006. 6
서승환저, 부동산과 시장경제, 삼성경제연구소, 2006.7
중국 연변의 조선족:사회구조와 변화 /한상복.권태환/서울대학교출판부/1993
중국 흑룡강성 한인동포의 생활문화 /국립민속박물관/1998
흑룡강성 조선족의 도시경제발전 현황과 발전추세 및 발전 모식/조선학연구통신/1997
"의례와 신앙생활",중국 요녕성.길림성 한인동포의 생활문화 / 국립민속박물관(김광억)/1997
) 길림성 장재촌의 경우에도 1987년부터 당지부 서기가 촌장직을 겸임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신락촌의 역사상 1980년대까지는 전례가 없었던 일이다. 그리고 현재의 촌장은 한국에 취업 나갔다 막 돌아온 상태에서 촌장직을 맡게 되었다. 심지어는 당지부 서기직의 경우에 조차도 1995년에 서기였던 인물이 3년 임기도 못 채우고 한국으로 취업 나가는 바람에 일년만에 당지부 서기가 바뀌는 일도 있었다.
이같이 간부직을 맡기를 꺼려 하는 경향이 일반화됨에 따라 그에 대응하기 위해 간부들에게 지급되는 '공자'(보수)의 액수는 계속 인상되는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 이는 간부일을 하는 데 개인들이 많은 시간을 투여함에 따른 경제적 비용을 일부라도 보전해 주기 위한 조치이다. 그리하여 1993년까지만 해도 800위안으로 고정되어 있던 당지부 서기 및 촌장의 공자는 1994년에 1,200위안으로 인상되더니, 이후 계속 인상되어 현재는 4,000위안이 되었다고 한다. 또 부녀주임의 공자도 1997년에는 500위안이었으나 1998년에는 800위안으로 인상되었다. 하지만, 이같은 수준의 보수는 한국에 취업 나가거나 중국의 도시지역으로 가서 벌 수 있는 혹은 벌 수 있으리라고 보여지는 소득보다는 여전히 매우 낮은 수준이다. 가령 촌장의 연간 공자 4,000위안은 한국 돈으로 환산하면 약 60만원인데, 이는 한국으로 취업 나간다 할 경우 한두달이면 벌어서 저축할 수 있는 돈인 것이다. 또 인근 대도시인 하얼빈 시내에서 개인택시 운전하는 기사가 하루에 버는 총수입이 약 250-300위안, 한달이면 순수입만도 수천 위안에 달한다고 한다. 이런 현실을 고려할 때, 과연 촌락의 간부직을 맡을 수 있을 만한 능력과 진취성을 지닌 개인들에게 현재 수준 혹은 그보다 약간 높은 수준으로 인상된 공자의 액수가 간부직을 맡아 지속하고픈 의욕을 견지시킬 만한 유인이 될 수 있을지는 의문스럽다.
) 더구나 민락향 정부의 통계에 의하면, 향내 농가들의 1인당 평균소득이 1997년에 3,138 위안이며, 신락촌의 경우는 3,414 위안으로, 4인 가구로 환산했을 때 가구당 연간 소득이 13,600 위안정도인 만큼, 자신들도 농사를 지으면서 촌락 행정일을 보는 촌락 간부들에게 지급되는 공자가 현재의 수준보다 인상되는 것 자체에도 한계가 있다.
8. 결 론
중국조선족은 지난 세기에 중국에서 하나의 민족공동체, 민족사회로 형성되여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시적으로 엮어왔다. 하지만 개혁개방후 중반부터 여러 가지 원인으로 하여 조선족 농촌마을이 줄어들고 조선족의 인구성장이 마이너스로 나타나고 적지 않은 조선족학교가 무너지고 조선족문화가 엄청난 충격을 받고 있다. 이리하여 조선족의 인구위기, 교육위기, 언어위기, 도덕위기설이 거론되고 지어는 조선족 공동체 해체설도 나오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중국조선족이 자기의 발전과정에 엄중한 문제에 직면하고 있음을 말해 주고 있다.
하지만 이로하여 비관의 심연속으로 빠지거나 실망할 일은 없다. 왜냐하면 우리 조선족은 빛나는 전통과 저력이 있고 개혁개방의 절호의 기회를 만났고 정부의 민족정책이 있고 찬란한 문화와 막강한 경제력을 가지고 있는 한국을 비롯한 한반도가 있기 때문에 중국조선족은 전진의 길에 어려움이 적지 않지만 동화되지 않고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할 수 있을 것이다.
중한 수교에 따라 중국조선족에 대한 한국의 중시도가 높아지면서 적지 않은 배려를 돌려 왔다. 하지만 높은 차원에서 볼 때 적지 않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에 대비하여 몇가지 제언을 하는 바이다.
(1) 중국조선족은 "무한하고 창조적인 자원"이며 중·한 교류의 가교적 역할의 담당자라는 전향적인 인식을 갖고 중국조선족에 대한 각종 법적 장치 이를테면《재외동포법》,《재외동포취업보호법》등을 제정 혹은 완미화한 후 이를 바탕으로 각종 제도적 장치를 구축하면서 중국조선족의 발전에 역동적인 힘을 부여하여 주길 바란다.
(2) 조선족에 대한 자세에서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은 조선족이 한민족이면서도 국적이 중국이라는 것이다. 동북 3성에 대한 영토문제 제기 백두산 문제, 선교사들의 불법적 선교활동 등은 중국 정부를 자극하게 되어 중국조선족과 한국간의 관계는 물론 중국과 한국의 관계발전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따라서 중국조선족에 대한 정책은 이들이 중국의 소수민족 일원이라는 전제하에 중국내의 위상을 제고하는 한편 생활문화수준을 향상시킬수 있도록 각 방면의 지원과 협조를 아끼지 않는데 예각적 대응을 꾀해야 할 것이다.
이를테면 조선족학교에 대한 지원, 교사연수, 유학을 통한 조선족엘리트육성 조선족의 연구기관, 대학, TV, 라지오, 출판, 문화예술단체, 사회단체와의 교류와 지원의 확대, 민족관계나 중·한관계 각종 학술세미나와 각종 문화행사에 대한 지원책을 창출함이 절실히 요구된다. 이는 한국정부 차원의 지원보다는 민간주도의 지원이 더욱 중요한 것 같다.
(3) 중국동포의 한국방문 비자 발급 관계 수속을 좀더 간소화하고 그 발급시간을 단축하기를 바라며 중국조선족불법체류자에 대한 좀 더 융통성이 있는 정책이 요구된다.
참고문헌
이진산편, 중국 한겨례사회 어디까지 왔나?,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 2006. 6
서승환저, 부동산과 시장경제, 삼성경제연구소, 2006.7
중국 연변의 조선족:사회구조와 변화 /한상복.권태환/서울대학교출판부/1993
중국 흑룡강성 한인동포의 생활문화 /국립민속박물관/1998
흑룡강성 조선족의 도시경제발전 현황과 발전추세 및 발전 모식/조선학연구통신/1997
"의례와 신앙생활",중국 요녕성.길림성 한인동포의 생활문화 / 국립민속박물관(김광억)/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