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쳐 제출해야 하는 독서보고서도 충분한 부담감이 되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단지 교수님의 강의나 교재에 나온 강의뿐만 아니라 매번 교수님들이 내 주시는 독서보고서에서 많은 가르침을 받는다는 것이다. 솔직히 이런 과제가 없었다면 내가 일부러 빌려서 읽을 책들은 아닌 것을 인정한다. 그리고 내가 진정 십자가의 증거자가 되고 싶다는 꿈이 없다면 관심도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먼저 나는 존 스토트에 대해 2가지 마음이 생겼다. 십자가에 대해 수백페이지에 달하는 묵상을 할 수 있다는 경외감이 들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나에게 큰 열등감이 밀려왔다. 동일하게 나도 창조된 인간인데 존 스토트만큼 나는 왜 묵상하지 못하는가, 혹시 나는 버림받은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들을 하게 되었다.
일단 존 스토트가 묵상한 십자가를 많은 사람이 신뢰하고, 아직까지도 권장도서로 남아있다는 점에서 나는 이 책을 신뢰하며 읽어보기로 했다. 정말 짧지만 십자가 사건 하나에 대해서 너무나도 자세히 서술해놓은 이 책은 나에게 새로운 도전을 주게 되었다.
십자가는 인간에게 있어 하루의 삶을 살아가는 단순한 한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에는 너무나도 큰 계획이 있었다는 점이 나를 놀라게 했다. 가끔 나는 인간의 죄에 대해서 고민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할 때, 꼭 저래야 돼? 라는 질문들을 던지곤 했다. 그러면서 십자가의 사건들 하나하나에 태클을 걸으며 살아왔는데, 이 책을 읽으며 느낀 것은 하나님은 정말 징할정도로 완벽하시다는 점이었다.
참, 먼저 십자가를 생각하기 전에 내가 간과했던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죄】이다. 죄는 무엇이지? 라는 나의 질문에 나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냥 좀 미안한 거 좀 잘못한 것 정도로만 느끼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자동차를 타고 시골길을 지나가다가 농장을 만나게 되면, 그곳에서 풍겨오는 악취를 맡는 순간 매우 고통스러워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그 농장에 오랫동안 머무른다면, 어느새 우리는 그 악취를 잊어버리게 되며 그것에 더 이상 고통스러워하지 않는다. 문제는 우리는 그 악취가 가득한 곳에 있다는 것이다.
죄에 대한 나의 반응들을 보면서, 지금까지의 내 삶을 바라보면서 내 상태가 매우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것에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다지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서 묵상하면 할수록, 너무 놀라운 것은 그분은 죄와 공존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힘 겨루기식의 문제가 아니라, 죄는 그분 앞에 존재할 수가 없는 속성인 것이다. 이 말은 죄를 지은 인간은 하나님과 공존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태워질 수밖에 없는 존재인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이것을 해결하시려고 얼마나 고민하셨을까? 그 고민의 깊이를 묵상하면 할수록 그분께 미안한 마음이 가득 밀려온다. 그리고 인간으로서는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게 처절히 느껴진다.
죄인인 우리를 구하시려고 예수님을 보내셨다. 그런데 그분은 죄가 없으신 분이다. 그분이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 모든 인간의 죄를 담아내기에는 우리는 담아낼 수 있는 존재가 못된다. 그런데 그 죄를 담당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담당해야한다. 그래서 이 죄를 해결하기 위해 예수님이 오셨다.
그러니까 이 십자가는 한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노력과 고통이 쏟아진 결과이며 과정인 것이다. 이정도 일줄 몰랐다. 나는 십자가에 대해서 좀 더 깊이 묵상했다는게 고작 십자가를 지고 올라가시는 예수님의 고통을 공감해보려는 노력이 고작이었는데, 하나님의 선택과 계획이 치밀했다는 사실은 나로서는 받아들이기도 민망한 감사의 고백이었다.
참 유치한 상상을 해보았다. 나였으면 그냥 바로 사단을 멸해버렸을텐데, 그럼 인간은 죄를 안 짓게 될 것 아니야. 이런 생각 속에 들게 된 생각은, 인간은 죄인이라는 것이다. 속성 자체가 죄인이라서 가만 둬도 알아서 죄를 짓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렇게 했더라면, 아마 선악과 사건은 매일 수십 건씩 생겼을지도 모른다. 하나님은 실패하시는 분이 아니다.
또 다른 상상은 인간이 죄를 못 짓도록 하면 되는 거 아닌가? 그런데, 이렇게 되면 인간을 창조하신 이유 자체를 부정하셔야 하는데, 이건 더 이상 하나님도 아니요 굳이 표현하자면 불완전한 신인데, 이런 창조주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수많은 질문을 던지는데, 십자가만한 대안이 없다. 사실 십자가에 대해서 모든 것을 답할 순 없지만, 나에게 있어 저것만한 대답은 없다. 세월이 흐른다고 해도 저 대답을 부인할 방법은 없다. 내가 이것을 확실하게 주장할 수 있는 것은 나는 수많은 이단교리에 대해서 듣고 그들의 속죄방법에 대해서 들었지만, 나의 수많은 질문에 대해서 답을 주었지만, 그것은 나의 머리를 만족시키는 것들이었다. 내 중심을 변화시키는 답들은 아니었으며 그 답들을 곰곰이 묵상해볼수록 인간의 이기심과 죄성이 창조해낸 결과물이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십자가가 아니었다면, 예수님이 그냥 인간이었다면, 지금 내가 살아온 삶은 비참이 극에 이르는 삶일 것이다. 왜냐면 나는 세상에서 제일 무의미한 행동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이 일을 값지게 여길 수 있는 이유는 십자가 때문이다.
십자가 안에는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전지전능한 하나님, 이전과 나중이 확실한 하나님, 나의 행위가 아닌 나의 중심을 바라보시는 하나님, 내 평생 사는 이유를 가지고 계신 하나님이 드러나기에 나에게는 십자가가 너무 값지다. 나의 삶은 매일매일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교차하는 교차로 속에 있는데, 십자가 또한 나와 함께 교차로에 있기 때문이다. 나의 삶속에 십자가가 기쁨과 즐거움으로 가득차기도 하고 아픔으로 때론 기대로 가득 차게 할 것이다. 나중에 다시 어느 정도 성숙했을 때는 지금 나의 고백보다 더 크고 많은 고백들이 넘쳐흐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밀려온다.
십자가가 아니었으면, 나는 세상에서 제일 보잘것없는 존재일 것입니다. 나는 십자가로 인해, 눈을 감는 이날을 가장 행복할 날로 고백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는 고백을 내 마지막 날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책을 읽으면서 먼저 나는 존 스토트에 대해 2가지 마음이 생겼다. 십자가에 대해 수백페이지에 달하는 묵상을 할 수 있다는 경외감이 들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나에게 큰 열등감이 밀려왔다. 동일하게 나도 창조된 인간인데 존 스토트만큼 나는 왜 묵상하지 못하는가, 혹시 나는 버림받은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들을 하게 되었다.
일단 존 스토트가 묵상한 십자가를 많은 사람이 신뢰하고, 아직까지도 권장도서로 남아있다는 점에서 나는 이 책을 신뢰하며 읽어보기로 했다. 정말 짧지만 십자가 사건 하나에 대해서 너무나도 자세히 서술해놓은 이 책은 나에게 새로운 도전을 주게 되었다.
십자가는 인간에게 있어 하루의 삶을 살아가는 단순한 한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에는 너무나도 큰 계획이 있었다는 점이 나를 놀라게 했다. 가끔 나는 인간의 죄에 대해서 고민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할 때, 꼭 저래야 돼? 라는 질문들을 던지곤 했다. 그러면서 십자가의 사건들 하나하나에 태클을 걸으며 살아왔는데, 이 책을 읽으며 느낀 것은 하나님은 정말 징할정도로 완벽하시다는 점이었다.
참, 먼저 십자가를 생각하기 전에 내가 간과했던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죄】이다. 죄는 무엇이지? 라는 나의 질문에 나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냥 좀 미안한 거 좀 잘못한 것 정도로만 느끼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자동차를 타고 시골길을 지나가다가 농장을 만나게 되면, 그곳에서 풍겨오는 악취를 맡는 순간 매우 고통스러워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그 농장에 오랫동안 머무른다면, 어느새 우리는 그 악취를 잊어버리게 되며 그것에 더 이상 고통스러워하지 않는다. 문제는 우리는 그 악취가 가득한 곳에 있다는 것이다.
죄에 대한 나의 반응들을 보면서, 지금까지의 내 삶을 바라보면서 내 상태가 매우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것에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다지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서 묵상하면 할수록, 너무 놀라운 것은 그분은 죄와 공존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힘 겨루기식의 문제가 아니라, 죄는 그분 앞에 존재할 수가 없는 속성인 것이다. 이 말은 죄를 지은 인간은 하나님과 공존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태워질 수밖에 없는 존재인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이것을 해결하시려고 얼마나 고민하셨을까? 그 고민의 깊이를 묵상하면 할수록 그분께 미안한 마음이 가득 밀려온다. 그리고 인간으로서는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게 처절히 느껴진다.
죄인인 우리를 구하시려고 예수님을 보내셨다. 그런데 그분은 죄가 없으신 분이다. 그분이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 모든 인간의 죄를 담아내기에는 우리는 담아낼 수 있는 존재가 못된다. 그런데 그 죄를 담당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담당해야한다. 그래서 이 죄를 해결하기 위해 예수님이 오셨다.
그러니까 이 십자가는 한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노력과 고통이 쏟아진 결과이며 과정인 것이다. 이정도 일줄 몰랐다. 나는 십자가에 대해서 좀 더 깊이 묵상했다는게 고작 십자가를 지고 올라가시는 예수님의 고통을 공감해보려는 노력이 고작이었는데, 하나님의 선택과 계획이 치밀했다는 사실은 나로서는 받아들이기도 민망한 감사의 고백이었다.
참 유치한 상상을 해보았다. 나였으면 그냥 바로 사단을 멸해버렸을텐데, 그럼 인간은 죄를 안 짓게 될 것 아니야. 이런 생각 속에 들게 된 생각은, 인간은 죄인이라는 것이다. 속성 자체가 죄인이라서 가만 둬도 알아서 죄를 짓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렇게 했더라면, 아마 선악과 사건은 매일 수십 건씩 생겼을지도 모른다. 하나님은 실패하시는 분이 아니다.
또 다른 상상은 인간이 죄를 못 짓도록 하면 되는 거 아닌가? 그런데, 이렇게 되면 인간을 창조하신 이유 자체를 부정하셔야 하는데, 이건 더 이상 하나님도 아니요 굳이 표현하자면 불완전한 신인데, 이런 창조주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수많은 질문을 던지는데, 십자가만한 대안이 없다. 사실 십자가에 대해서 모든 것을 답할 순 없지만, 나에게 있어 저것만한 대답은 없다. 세월이 흐른다고 해도 저 대답을 부인할 방법은 없다. 내가 이것을 확실하게 주장할 수 있는 것은 나는 수많은 이단교리에 대해서 듣고 그들의 속죄방법에 대해서 들었지만, 나의 수많은 질문에 대해서 답을 주었지만, 그것은 나의 머리를 만족시키는 것들이었다. 내 중심을 변화시키는 답들은 아니었으며 그 답들을 곰곰이 묵상해볼수록 인간의 이기심과 죄성이 창조해낸 결과물이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십자가가 아니었다면, 예수님이 그냥 인간이었다면, 지금 내가 살아온 삶은 비참이 극에 이르는 삶일 것이다. 왜냐면 나는 세상에서 제일 무의미한 행동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이 일을 값지게 여길 수 있는 이유는 십자가 때문이다.
십자가 안에는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전지전능한 하나님, 이전과 나중이 확실한 하나님, 나의 행위가 아닌 나의 중심을 바라보시는 하나님, 내 평생 사는 이유를 가지고 계신 하나님이 드러나기에 나에게는 십자가가 너무 값지다. 나의 삶은 매일매일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교차하는 교차로 속에 있는데, 십자가 또한 나와 함께 교차로에 있기 때문이다. 나의 삶속에 십자가가 기쁨과 즐거움으로 가득차기도 하고 아픔으로 때론 기대로 가득 차게 할 것이다. 나중에 다시 어느 정도 성숙했을 때는 지금 나의 고백보다 더 크고 많은 고백들이 넘쳐흐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밀려온다.
십자가가 아니었으면, 나는 세상에서 제일 보잘것없는 존재일 것입니다. 나는 십자가로 인해, 눈을 감는 이날을 가장 행복할 날로 고백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는 고백을 내 마지막 날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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