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수용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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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죽음의 수용소에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강제수용소에서의 체험

2. 고테라피의 기본개념

3. 비극 속에서의 낙관

본문내용

사람을 웃게 하고 싶으며 그 사람에게 웃을 수 있는 이유를 제공하면 된다.
로고테라피에서는 그런 행동 패턴을 '과잉의도'라고 부른다.
사람이 일단 의미를 찾는 데 성공하면, 그것이 그에게 행복을 가져다줄 뿐 아니라 시련을 견딜 수 있는 힘도 준다. 반면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이 허사로 돌아갔을 경우에는 아주 치명적인 결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
삶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정신병의 발병요인에서 점점 더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로고테라피 치료 전문가들만이 아니다. 스탠포드 대학의 얼빈 D. 얄롬은 <<실존적 심리치료>>에서 "정신과 외래병동에서 연속적으로 치료를 받았던 40명의 환자 중에서 12명이 삶의 의미와 관련된 문제로 인해 병을 얻게 되었다고 보고하고 있다.
삶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원인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사람은 살아야 할 이유가 없어도 충분히 살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의미는 없지만 수단은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한 개인이 처한 사회경제적 상황이 원인이 되는 실업 신경질환과 함께 정신의학이나 생화학적 조건이 원인이 되는 또 다른 유형의 우울증이 있다. 따라서 정신치료와 약물치료는 각각 별도로 실시되어야 한다. 하지만 삶이 무의미하다는 생각과 관련이 있는 경우에는 그것 자체가 병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점, 자기가 인간이라는 것을 증명해 주는 어떤 신경질환의 표시나 징후라는 점을 간과하거나 잊어서는 안 된다. 비록 병적인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병적인 증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우울증이 모두 다 삶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고, 또 자살이 항상 실존적 공허감 때문에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모든 자살행위가 무의미하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만약 그가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는 어떤 의미와 목적을 알았다면 자기 생명을 빼앗으려는 충동을 극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로고테라피의 치료라는 각도에서 보면, 의미와 그 의미에 대한 인식은 허공에 떠 있다거나 상아탑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현실에 발을 딛고 있어야 한다는 문제가 제기된다. 간단하게 말해서 나는 의미에 대한 의식을 카를 뷜러의 개념과 같은 노선에 있는 아하 경험과 베르트하이머 이론의 노선에 있는 게슈탈트 지각 사이의 중간쯤에 놓고 있다. 의미에 대한 지각은 고전적인 개념의 게슈탈트 지각과는 다르다. 게슈탈트 지각은 어떤 토대에서 어떤 형태를 갑자기 인식한다는 것을 뜻한다. 반면에 의미에 대한 지각은 현실에 깔려 있다. 가능성을 깨닫도록 만든다. 보다 쉽게 말하자면 주어진 상황에서 어떤 일이 행해져야 하는가를 깨닫게 한다는 말이다.
에디트 바이스코프 요엘슨은 로고테라피에 대한 희망을 다음과 같이 피력했다.
"로고테라피가 오늘날 미국 문화가 지니고 있는 건전하지 못한 성향을 근절시키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오늘날 미국에는 자신의 시련을 자랑스러워하거나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그것을 품위 있는 것으로 만들 기회를 거의 갖지 못한 치유 불가능한 환자들이 많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불행할 분만 아니라 자신이 불행하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고 있다."
인간이 시련을 가져다주는 상황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그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수는 있다.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시련을 가져다주는 상황을 창조적으로 변화시키는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 시련에 대처하는 방법을 아는 것이 무엇보다 더 중요하다.
적절하게 행동할 기회와 의미를 성취할 수 있는 잠재력은 실제로 우리 삶이 되돌이킬 수 없는 것 이라는 사실에 영향을 받는다. 물론 잠재적 가능성 그 자체도 큰 영향을 받는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 기회를 써버리자마자 그리고 잠재적인 의미를 실현시키자마자 단번에 모든 일을 해버린 것이 되기 때문이다. 시련 속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이라는 견지에서 보자면 삶의 의미는 절대적인 것이다. 적어도 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는 그렇다. 그리고 그 절대적인 의미는 각 개인이 지니고 있는 절대적인 가치의 보조를 같이 하고 있다. 바로 이것이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해 주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 심지어는 가장 비참한 상황에서도 삶이 잠재적으로 의미 있는 것으로 남아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각 개인의 가치는 언제나 그 사람과 함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 사람이 과거에 실현시킨 가치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그 사람이 쓸모 있느냐 없느냐 하는 조건에 기반을 둔 것은 절대적이다.
인간의 존엄성을 단순한 유용성과 혼동하는 것은 개념상의 혼동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런 개념상의 혼동은 현재 대학 캠퍼스는 물론 정신분석 치료실까지 널리 퍼져 있는 현대의 허무주의는 그 근원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심지어는 정신분석을 훈련하는 과정에서도 그런 세뇌작업이 이루어질 수 있다.
인간에 대한 기본 개념과 로고테라피에 고유한 인생철학의 원칙에 충실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다음과 같은 사실로 비추어 볼 때, 로고테라피가 그런 충실함을 유지하는 것이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엘리자베스 S.루카스는 "정신치료의 역사상, 로고테라피만큼 독단적이지 않은 학파는 이제까지 없었다"고 말했다. 그런가하면 나는 제1회 로고테라피 세계대회에서 정신치료를 다시 인간중심적인 것으로 돌려 놓아야한다고 역설하면서 '로고테라피의 탈지도자화'를 주장하기도 했다.
여러분은 우리가 굳이 '성자'에 대해 얘기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질 것이다. 그저 훌륭한 사람에 대해 얘기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그런 사람들일 소수인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그런 사람들은 언제나 소수일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나는 소수의 반열에 합류하려는 도전의지를 본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지금 아주 좋지 않은 상태에 있고, 우리 각자가 최선을 다 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더욱 더 나빠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 경계심을 갖자, 두 가지 측면에서의 경계심을, 아우슈비츠 이후로 우리는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히로시마 이후로 우리는 무엇이 위험한지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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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9.10.12
  • 저작시기2009.9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56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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