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8000미터 엄홍길 교수님
본 자료는 7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해당 자료는 7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7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히말라야 8000미터 엄홍길 교수님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순수하고 겸허한 마음을 갖고 순리에 따를 때만이 산은 우리를 받아주죠.” 교수님이 산을 오를 때 갖는 마음이다. 언덕 몇 개를 지나도 최정상 부근이 보이지 않았다. ‘얼마나 더 가야 하나.’ 곧 나타날 것 같던 정상이 계속 걸어가도 나타나지 않자 교수님은 이제 체력이 바닥나 더 이상 나아갈 여력이 없다고 느꼈다. 그들은 그러한 상태로 약 1시간 반을 더 등반했다. “여기는 정상이다. 이제 더 이상 올라갈 산이 없다.” 7월 31일 오전 6시 30분, 등반대장 교수님은 떨리는 목소리로 무전기를 통해 베이스캠프에 정상 정복을 알렸다. 교수님에게는 15년간의 긴 여정에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었다. 그 동안의 원정들이 파노라마처럼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갔다. K2 정상에서 다른 히말라야 고봉들이 발 아래로 펼쳐져 보였다. 교수님은 그렇게 약 30분 동안을 그곳에서 머물렀다. 그는 히말라야에 도전하면서 그동안 가슴에 묻어야 했던 8명의 동료 사진들을 K2 정상 눈 속에 묻었다. “그래 고맙다. 너희들이 있었기에 오늘 내가 이 자리에 올라설 수 있었다. 이젠 마음 놓고 좋은 데로 가길 바란다.” 대원들은 정상에 오른 지 이틀 만인 8월 2일 기진맥진한 상태로 베이스캠프로 되돌아옴으로써 43일간의 긴 원정을 끝마쳤다. 교수님의 히말라야 도전은 죽음과 마주서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그는 히말라야 고봉에 30여 차례 도전했지만, 절반은 실패였다. 하지만 스물다섯부터 마흔까지 젊음을 바친 세월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 있는 삶의 과정이었다고 그는 확신한다.
열네 번째 K2
파키스탄령 카슈미르지방 카라코룸산맥 중앙부에 있는 봉우리. 해발고도 8611m. 바르톨로빙하의 북쪽, 고드윈오스틴빙하의 원두부(源頭部) 가까이에 솟아 있다. 1858년 인도측량국의 T.G.몽고메리가 카슈미르의 하라무크(4877m) 지점에서 처음으로 측량, 2년 뒤 자료를 정리한 결과 세계 제 2 위의 높은 봉우리였다. 산 이름은 1861년 처음으로 바르톨로빙하를 탐험한 고드윈 오스틴과 연관지어 고드윈오스틴산이라 불렀으나 현재는 인도측량국의 피크번호인 K2라는 호칭이 일반화되어 널리 쓰이고 있다. 1892년 영국 등산가 M.콘웨이가 바르톨로빙하 지역에 들어가 K2 주변을 정찰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그 뒤 1902년 O. 에케슈타인 일행이 시험등정을 하였고 1909년 유명한 이탈리아의 아브루치공의 대규모 원정대가 도전하였으나 실패하였고 29년 이탈리아의 스폴레토공이 이끄는 등산대도 실패하였다. 38년 미국등정대가 시도하였으나 7925m 지점에서 퇴각하였으며, 39년·53년 거듭 도전하였으나 역시 성공하지 못하였다. 54년 7월 31일 이탈리아등정대(대장 A.데도) 일행이 아브루치능선(남동능선)을 타고 처음 등정에 성공하였다. 77년 일본산악협회대가 제2,3등정을 하였다.
K2, 가셔브롬, 브로드피크 베이스캠프등지로 트레킹을 가기위해서는 일단 길기트에서 스카르두로 들어가야한다. 스카르두에서 K2가 있는 산악지역으로 트레킹을 가려면 허가를 받아야 들어갈 수 있으며 정규버스노선이 없으므로 JEEP을 렌트해야 한다. 이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든다고 한다.
이번 과제를 하면서 교수님이 쓰신 책들과 인터넷 자료, 기사검색 등을 하면서 등산에 대한 많은 지식을 쌓을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된 것 같다.
교수님 교수님은 처음에는 그냥 산이 좋아 등반을 시작했는데 계속하다보니 남들이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도전정신, 모험심, 꼭 해내고야말겠다는 목표가 자꾸 생기더라고 하셨다.
교수님 교수님이 두 명의 동료들의 죽음에 좌절해서 등반을 포기했다면 그건 그냥 무모한 등반의 실패담으로만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정신적인 고통을 이겨내고 등반에 성공했기 때문에 죽은 동료들의 죽음도 헛되지 않을 수 있었던 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교수님이 이유 없이 산을 좋아했고 나중엔 산에 미쳐 죽음까지도 불사하며 자신의 목표를 향해가는 모습은 나에게 큰 자극과 감동을 주었다.
나도 교수님처럼 내 꿈을 위해 피눈물나는 목숨까지 건 고통을 감수하고 목표에 도달해서 눈물을 쏟아 낼 정도의 노력을 할 자세가 되었는지 묻고 싶다.
너무 편안한 길만 찾아다니면서 제대로 정해진 목표도 없이 정처 없이 인생의 산을 오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니 맴돌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나도 교수님처럼 목표를 확실하게 설정하고 철저한 준비를 통해 그 어떤 어려운 난관에 부딪쳐도 극복해 나갈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다.
그리고 최근 환경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는 교수님은
'에베레스트 등정 20주년' 기념식에서 "더 오를 산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기후변화로 말미암아 예전 눈과 빙하로 덮인 산이 사라졌기 때문에 환경운동 일을 시작한다"며 새 출발을 선언했다.
그는 "요즘 학생들은 '올라갔다 곧 다시 내려올 걸 뭐하러 힘들여 올라가느냐'고 말하는데 조금만 생각을 바꿔 산을 오르면 새로운 느낌을 받을 것"이라며 "나는 정상으로 가는 길에 핀 꽃을 관찰하고 힘들어하는 동료를 부축하며 자연을 사랑하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배우게 됐다"고 말했다.
엄 씨는 "산의 본래 색깔, 바람의 느낌 등을 아는 사람은 함부로 자연을 파괴하지 못한다"며 "아이들이 자연의 변화와 움직임을 이해하고 자연과 어울려 놀 수 있는 시간이 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히말라야로부터 받은 '은혜'를 되갚고자 엄씨는 지난해부터 히말라야 산간오지의 교육, 의료, 보건환경 개선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후원금 등을 모아 지상에서 가장 높은 해발 3천800m에 있는 팡보체 마을에 어린이 학교를 짓는 중이다.
교수님은 "지상에서 가장 숭고한 지역인 히말라야는 네팔인들에게는 미래며 우리에게는 희망인 곳"이라며 "우리 모두 기후변화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면서 보호해 나가자"고 힘주어 말했다.
등산을 하며 극기복례를 익힐 뿐 아니라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느끼며 지구온난화 등 자연환경 문제가 심각한 오늘날 그러한 문제까지 심각하게 생각해 보고 보존을 위해 노력하시는 교수님의 모습에 상명인임에 대한민국 국민임에 자부심을 느끼고 존경을 표한다.
  • 가격3,000
  • 페이지수21페이지
  • 등록일2009.10.18
  • 저작시기2009.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57299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