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주의사학과 식민사학]민족주의사학과 식민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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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민족주의사학과 식민사학]민족주의사학과 식민사학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식민사학의 정의 및 특성

2. 식민사학의 내용과 종류
(1) 일선동조론
(2) 타율성론
(3) 정체성론
(4) 당파성론

3. 일제 식민사관의 역사
(1) 일본의 한국사 형성
(2) 조선총독부의 한국사 서술
(3) 근현대 한국사 서술

4. 민족주의 사학의 정의 및 특성

5. 민족주의 사학의 역사
(1) 근대의 기점론
(2) 19세기말 (1876년 이후)
(3) 1910년대 박은식의 역사학
(4) 1920년대 신채호의 사론
(5) 1930년대
(6) 1940년대
(7) 1950년대
(8) 1960년대

6. 북한의 한국사 인식

7. 결론

8. 참고자료

본문내용

는 것을 주장하였다. 그러면서, 전통역사서에 대한 비판도 가해졌는데, 우선 정확성이 기해지지 않은 것(시간지명인명)을 비판하였고, 주체성이 상실된 중국중심의 역사 기술을 또한 비판하고 있다.
신채호의 역사에 대한 견해를 정리해보면, 역사의 주체로 민족이 강조되고, 민족 속에서 민중이 의식되어야 한다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5) 1930년대
1930년대는 정인보안재홍문일평이라는 세사람을 중요시 할 수 있다. 정인보는 한학자로 동아일보에 「오천년간의 조선의 얼」을 연재하였고, 고조선에서 삼국시대까지를 연구한「朝鮮史硏究(상하)」를 저술하였는데 그의 영향은 다음과 같이 정리 할 수 있다.
① 고대사를 민족사라는 입장에서 체계화하였다.
② 한사군론을 전면 부정하였다.
③ 단재 신채호의 이론을 완성하였다.
안재홍은 역사연구를 독립투쟁의 방법으로 고대사 연구에 몰두한 사람이다. 저서로서는 「朝鮮上古史鑑(상하)」이 있다. 신채호와 정인보의 고대사연구를 한층 더 심화하고 체계화 하였으며, 일본 관학자들의 역사 왜곡을 폭로하였다(단군조선~삼국시대를 고조선 사회의 발전과정으로 성립되었음을 논리적으로 개진하였다). 그의 연구방법적인 특징은 이전의 고대사의 언어적인 접근에 더하여 사회발전단계로 고대사를 규명하였다. 또한 신민족주의 이론을 주창하였다. 이것이 민족사학의 기층논리로 작용하였다고 보고 있다.
문일평은 언론을 통해 역사연구를 하였고, 민중을 계몽하는데 힘썼다. 그는 역사의식과 역사학에 있어서 신채호가 제시한 문제를 구체적으로 취급하고 해결하려 하였다.
(6) 1940년대
이 시기에는 홍이섭, 손진태, 이인영 등을 들 수 있다. 홍이섭은 기술사의 범위를 넘어선 문화일반을 체계화한 문화사인 「朝鮮科學史」를 저술하였고,「韓國史 硏究方法論」,「日帝侵略史」등도 저술하였다. 그는 역사의 주체는 민중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친 사람이 이끌어야한다고 주장하였다.
손진태는 「朝鮮民族史槪論」과「국사대요」를 저술하였는데 세계적, 개방적, 친화적인 신민족주의 이론으로 우리의 역사를 설명하였다. 그는 민족성장의 논리와 사회발전의 문제로 역사를 파악하려고 하였다.
이인영은 민족주의 입장에서 「한국만주관계사(1948)」과「국사요론(1950)」을 저술하였는데 자유와 평등에 큰 관심을 보였고, 이에 입각한 민족사관의 수립을 주장하였다.
(7) 1950년대
* 민족사학 ① 민족주의사학자 → 납북
② 사회경제사학(마르크스주의 역사학) → 월북
③ 실증사학(문헌고증사학)
▽ 사회경제사학
; 30년대 유입된 역사학, K. Marx의 역사학을 도입 - 박남운이청원김광진이북만
1) 박남운
「조선사회경제사」(1933년) 저술, 식민사관의 정체성타율성이론을 반동성과 반과학성을 가진다고 지적하였다. 한국사적 역사로 세계사적 일원론의 역사법칙에 으해 다른 나라와 똑 같은 역사 발전을 해나간다고 주장.
「조선봉건사회경제사」(1937년) 저술. K. Marx의 역사학으로 조선에 봉건주의가 존재했음으로 과학적으로 증명
40년대 조선학술원조선과학자동맹민족문화역사연구소 등을 설치
조선사회와 일제시대의 사회구조를 해명
* K. Marx의 역사관
① 경제적 결정론 - 한나라에는 정치종교예술 등의 다양한 제도가 있으나, 경제적 조건이 모든 것을 좌우한다는 이론
② 계급투쟁이론 - 사회구성체 내에는 상부하부로 나뉨.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투쟁에서 승리한다는 이론
상부(지배계급) → 부르조아
↑↓ 투쟁
하부(피지배계급) → 프롤레타리아 <투쟁에서 승리한다>
③ 공산주의 필연성 - 세계는 노동자농민 계급이 승리함으로써 전세계가 언젠가 공산주의가 된다는 이론 (cf. 공산주의 - 재산이나 새산수단을 공동으로 하기 위하여 혁명 또는 폭력을 사용하는 것)
∇ 실증사학
; 1934년, 이병도신석호이홍렬김상기 → 「진단학회」조직
식민사학 계승, 사관이나 이론은 배제하고 역사적 사실이 있는가 하는 것만을 탐구하는 사학
조선사편수회에 가담한 사람들이 많다.
해방후, 이병도는 「한국사대관」에서 한국사를 호도.
(8) 1960년대
; 419의 영향으로 민족주의를 계승하고 재건하자는 움직임이 있었다.
① 식민사관의 비판 - 단재 신채호를 비롯한 민족주의 역사학자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짐
② 내재적 발전론 - 내부적으로 주체적창조적으로 우리 역사가 발전
③ 실증사학 비판
6. 북한의 한국사 인식
; 월북 Marx 역사주의자들이 「역사연구소」를 설치
▽ 1950년대
「조선통사(상하)」(1956, 1958) 저술.
① 한국사인식에 있어서 사대주의와 민족허무주의를 불식하고 애국주의에 입각해서 역사 진술
② 아시아적 생산양식론정체성론을 극복 →우리역사를 주체적과학적으로 재구성
▽ 1960년대
1962년,「조선통사(상하)」전면개정, 역사의 시대구분문제에서 역사왜곡이 나타남
고조선사회 : 노예제로 봄
삼국~조선사회 (1886) : 농노제 사회로하여 하나로 묶음
1866년 ~ 1945년 : 식민지 반봉건사회
1945년 이후 : 사회주의 사회
1960년대 중반에서 1970년대
주체노선→ 주체사상(유일사상 : 김일성 교시에 의해서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서술)
7. 결론
이렇듯 일제는 우리의 역사를 왜곡, 날조함으로 그들의 침략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민족 정신의 근본인 역사 그 자체를 부정하여 위축되고 나약한 식민 의식을 조선인의 마음에 뿌리 깊이 심었다. 그리고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 민족사학의 발전과정은 이러한 일제의 식민사관에 대항하는 입장에서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시대적으로 어려운 상황이 있음에도 우리를 지켜나가기 위한 수단으로 역사의 존재를 통해 국권을 회복하려는 노력을 보이는 것에 대해 역사를 바로 보고 바르게 세우는 것이 민족과 국가의 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것임을 스스로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되어진다. 더불어 아직도 남아있는 일제의 식민사관의 흔적을 척결하고 역사를 바로잡음으로써 민족의식과 자긍심을 고양해야 하겠다.
8. 참고자료
이기백, 한국사학의 방향, 일조각
허중권, 바로 보는 한국 근현대사, 학연문화사
한영우, 한국민족주의역사학사, 일조각
이만열, 한국 근대 역사학의 이해: 민족주의사학과 식민주의사학, 문학과 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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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0.03.01
  • 저작시기2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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