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음주문화와 음주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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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중국의 음주문화>
1. 중국의 술의 역사
2. 중국의 술의 종류
3. 중국의 음주문화
1) 중국의 음주습관
2) 중국의 음주예절
4. 중국과 한국의 음주문화 비교

<중국의 음주문학>
1. 이태백(이백)
1) 이백의 시
2. 두보
1) 두보의 시
3. 이태백과 두보의 비교

본문내용

또한 술을 즐기지 않으면
地應無酒泉 지응무주천 어찌 술샘이 있으리요
天地旣愛酒 천지기애주 天地가 하냥 즐기었거늘
愛酒不傀天 애주불괴천 술을 좋아함을 어찌 부끄러워하리
已聞淸比聖 이문청비성 맑은 술은 聖人에 비하고
復道濁如賢 복도탁여현 흐린 술은 또한 賢人에 비하였으니
聖賢旣已飮 성현개이음 성현도 이미 마셨던 것을
河必求神仙 하필구신선 헛되이 신선을 구하는가
三盃通大道 삼배통대도 석잔술은 大道에 통하고
一斗合自然 일두합자연 한말 술은 自然에 합하거니
俱得醉中趣 구득취중취 모두 취하여 얻는 즐거움을
物謂醒者傳 물위성자전 깨인 사람에게 이르지 말라
달빛 아래에서의 술 마시는 즐거움을 노래한 시.
2. 두보(712-770)
-> 그의 시를 성립시킨 것은 인간에 대한 위대한 성실이었으며, 성실이 낳은 우수를 바탕으로 일상생활에서 제재를 많이 따서, 널리 인간의 사실, 인간의 심리, 자연의 사실 가운데서 그 때까지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감동을 찾아내어 시를 지었는데, 표현에는 심혈을 기울였다. 장편의 고체시(古體詩)는 주로 사회성을 발휘하였으므로 시로 표현된 역사라는 뜻으로 시사(詩史)라 불린다.
단시정형(短詩定型)의 금체(今體)는 특히 율체(律體)에 뛰어나 엄격한 형식에다 복잡한 감정을 세밀하게 노래하여 이 시형의 완성자로서의 명예를 얻었다. 그에 앞선 육조(六朝) ·초당(初唐)의 시가 정신을 잃은 장식에 불과하고, 또 고대의 시가 지나치게 소박한 데 대하여 두보는 고대의 순수한 정신을 회복하여, 그것을 더욱 성숙된 기교로 표현함으로써 중국 시의 역사에 한 시기를 이루었고, 그 이후 시의 전형(典型)으로 조술(祖述)되어 왔다. 최초로 그를 숭배했던 이는 중당기(中唐期)의 한유(韓愈) ·백거이(白居易) 등이지만, 그에 대한 평가의 확정은 북송(北宋)의 왕안석(王安石) ·소식(蘇軾) 등에게 칭송됨으로써 이루어졌으며, 중국 최고의 시인이라는 인식은 오늘날에도 여전하다.
1) 두보의 시
취시가(醉時歌)
諸公袞袞登臺省 제공곤곤등대성 관료들 줄줄이 높은 벼슬 오르는데
廣文先生官獨冷 광문선생관독냉 광문선생 벼슬만이 홀로 쓸쓸하고
甲第紛紛厭粱肉 갑제분분염량육 즐비한 고급저택 고량진미 넘치는데
廣文先生飯不足 광문선생반부족 광문선생 끼니조차 잇기 어렵구나
先生有道出羲皇 선생유도출희황 선생의 덕 복희씨 보다 뛰어나고
先生有才過屈宋 선생유재과굴송 재주는 굴원과 송옥을 뛰어 넘는데
德尊一代常坎軻 덕존일대상감가 덕은 일세 제일이나 항상 불우하니
名垂萬古知何用 명수만고지하용 이름만 만고에 날린들 무엇하리
杜陵野老人更嗤 두릉야노인경치 두릉의 촌 늙은이 사람들이 비웃으니
被褐短窄빈如絲 피갈단착빈여사 베옷마져 초라하고 머리칼은 헝클어져
日적太倉五升米 일적태창오승미 태창미 닷 되를 사 하루하루 연명하며
時赴鄭老同襟期 시부정노동금기 때때로 정노인과 마음을 나누네
得錢卽相覓 득전즉상멱 돈이라도 생기면 서로를 찾고
沽酒不復疑 고주부복의 술을 사는 데는 눈치보는 일이 없이
忘形到爾汝 망형도이여 겉치레를 버리고 너나하는 사이지만
痛飮眞吾師 통음진오사 흠뻑 취함에는 진정 나의 스승이네
淸夜沈沈動春酌 청야침침동춘작 밤은 깊어 가는데 술잔을 나누니
燈前細雨첨花落 등전세우첨화락 등잔 앞에 가랑비 처마 아래 지는 꽃
但覺高歌有鬼神 단각고가유귀신 소리 높여 노래하니 귀신이 흥 돋우고
焉知餓死塡溝壑 언지아사전구학 굶어 죽어 구덩이에 묻힐 걱정 잊었네
相如逸才親滌器 상여일재친척기 재주 있는 사마상여 잔 씻는 일을 했고
子雲識字終投閣 자운식자종투각 유식한 자운은 몸을 던져 죽었으니
先生早賦歸去來 선생조부귀거내 선생도 일찌감치 귀거래사 읊으시게
石田茅屋荒蒼苔 석전모옥황창태 자갈밭 황폐하고 이끼 띠 집 덮기 전에
儒術於我何有哉 유술어아하유재 유학이 우리에게 무슨 소용인가
孔丘盜蹠俱塵埃 공구도척구진애 공자도 도척도 모두 티끌 먼지 된 걸
不須聞此意慘慘 부수문차의참참 이말 듣고 슬퍼할 것은 없으니
生前相遇且銜杯 생전상우차함배 살아 만나는 동안 술잔이나 나누세
3. 이태백과 두보의 비교
->이백에게는 모든 것이 시의 소재가 되었다. 반면에 두보는 온갖 것을 시로 엮어 내는 고심과 재치가 남달랐다. 이태백과 두보에게는 우열이 있을 수 없다. 굳이 비교한다면 각자의 특색이 있을 따름이다. 이태백이 연꽃처럼 청순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환상적으로 그려내 우리를 높고 우아한 정신세계로 이끌었다면, 두보는 뼈를 깎는 학습과정과 노력으로 인생과 사회를 반영하면서 우리를 넓고도 광활한 현실사회로 인도하였다. 그러므로 이태백이 낭만적이라면 두보는 사실적이다. 이태백이 유미 주의적이라면 두보는 현실주의적이다.
이태백이 개인주의적이라면 두보는 사회주의적이다. 이태백이 귀족적이라면 두보는 평민적이다.
이태백이 하늘을 거니는 신선(神仙)이었다면 두보는 인간 세상의 모든 고통을 짊어지고 가시밭길을 걸었던 성인(聖人)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태백의 작품은 광할하게 시작하여 섬세한 부분으로 진행하고, 두보는 섬세한 부분에서 시작하여 광활한 세계로 독자를 이끌어 간다.
이태백의 작품은 청신하고도 표일한 맛이고, 두보는 침울한 가운데 비장하다.
아내 넷을 두고 어느 누구에게도 정을 주지 않았던 이백과 달리, 두보는 첩을 둔 적 없는 애처가였다. 그는 황태자 소속 호위부대의 인사계라는 천직으로 관계에 나섰고, 막내아들이 아사(餓死)하는 등 호강과는 거리가 멀었다. 저자는 개인적 불운을 인간 전체에 대한 동정으로 승화시킨 두보에 대해 ‘박애(博愛)라는 단어로도 그의 숭고함을 표현할 수 없다’고 높게 평한다. 고래로 제기돼 온 ‘이두우열론(李杜優劣論)’에 대해, “두보는 이백처럼 표일(飄逸·마음 내키는 대로 하여 세속에 얽매이지 않음)한 정취가 있는 시를 지을 수 없고, 이백은 두보처럼 침울한 시를 지을 수 없다”는 남송 시대 엄우(嚴羽)의 설명에 동조한다. 속박되지 않은 정열과 에너지(이백), 대지에 뿌리 둔 든든한 건조물 같은 의지와 구성력(두보) 등, 둘은 전혀 다른 색채를 전개했다.
두보는 시 이외에는 모든 것이 서툰 악문(惡文)이었지만 격(格)에 맞춘 칠언율시에 특히 능했고, 이백은 주색(酒色)을 소재로 한 작품을 많이 남겼지만 칠언가행·칠언절구에 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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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0.03.02
  • 저작시기200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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