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제4장 용서와 상담- 용서와 치유
제5장 부부 상담
제5장 부부 상담
본문내용
위의 네 가지 말을 할 때마다 고무줄을 하나씩 손목에 걸어 보라, 비난하지 말고 미소 지으며 말하라, Soothing 해결하려 하지 말고, 마음을 진정시켜 주어라, 지혜자의 혀를 달라고 기도하라.(잠12:18), 칭찬과 격려를 하루에 열 번 이상씩 하라- 격려는 성령님의 언어다.
결론/ 자신, 교회, 가족에 대해 생각하고 느낀점, 적용에 이르기까지
1. 용서와 치유에 대하여
본서의 내용을 읽으면서 많은 부분이 정리가 되어졌다.
나는 불신가정에서 자랐다. 조금 심하게 말하자면 술과 도박과 싸움이 판을 치는 환경이었다. 특히 싸움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가정이다보니까 마음에 간절한 소원이 생겼는데 그것은 좀 화평한 가정이되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학교에 갔다 돌아오면 ‘우리 아버지가 술 안드셨으면’하는 것이 유일한 소원이었다. 그러다 보니까 내가 대학을 다닐 때까지 부친에 대한 미워하는 감정이 깊었었다. 부산에서 자취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싸우는 날이면 모친의 전화가 오곤 했다. 그러면 불난 집에 물을 낀 얹은 듯 분노의 감정이 더 세차게 불타올랐다. 그러던 때에 나의 인생에 잊을 수 없는 큰 사건 하나가 일어났다. 나에게 그토록 힘이 되고 의지가 되던 형의 갑작스런 죽음이었다. ‘급성심근경색’이 병명이었다. 함께 자취생활을 하며 살던 형의 죽음은 내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나는 인생의 참으로 소중한 질문하나를 던지게 된다.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었다. 인생의 죽음 앞에서 나의 마음은 교회로 향하는 은혜를 입었다. 그런데 예수를 믿으면서도 내게 떠나지 않는 숙제 하나가 있었다. 고향의 부친을 향한 미워하는 마음이었다. 도무지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교회는 다니고 있었지만 교회는 교회고, 부친의 행동(술, 싸움)은 여전히 나로 하여금 미워하는 마음을 떠나지 못하게 막았다. 그러던 나에게 하나님께서는 한가지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 그것은 하나님의 비밀인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만남이었다. 그러자 나에게는 이상한 변화가 왔다. 이상하게도 주변 환경은 그대로 였는데 그 환경을 보는 나의 시각이 변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전 같으면 그저 그렇게 행동하는 부친에 대한 미워하는 감정이 앞섰는데 주께서 복음의 눈을 열어주시니까 환경은 그대론데 부친에 대한 이해의 마음이 생기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수년이 흘렀다. 누님의 가족을 제외하고는 가족 대부분은 주의 몸된 교회로 향하는 은혜를 입었다. 지나고나서 내가 깨달은 것은 이러했다. 십자가는 먼저 나의 변화에 초점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후에는 주변의 환경도 바꾸어 간다는 진리였다. 일찌기 예수님 말씀에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2)하셨는데 그 말씀대로였다. 용서는 십자가를 경험하고 복음의 비밀에 눈이 열리면 자연스럽게 되어진다.
2. 부부 상담에 대하여
결혼하고 10년이 넘어섰다. 뒤돌아보면 참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나에게는 지금도 풀리지 않는 비밀이 하나 있다. 그것은 남자의 사고체계와 여자의 사고체계가 너무 다르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께서 실수하신 것 아닌가? 할 정도롤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 많았다. 일테면 쇼핑하나만해도 그러하다. 나는 시장 다니는 것은 딱 질색이다. 살 것이 있으면 그냥 딱 사서 와 버리면 되는 것인데 여자들은 다리 아프게 왜 그리 돌아다니는지 나로서는 이해가 불가하다. 그런데 이렇게 무지몽매하던 나에게 이 세계에 대해 눈이 조금 열리는 계기가 있었다. 그것은 부산의 두란노서원에서 하던 가정행복학교 세미나를 통해서였다. 전혀 이해가 되지 않던 것들이 조금씩 객관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아내에게만 있는 현상이 아니라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의 보편적인 여성의 정서라는 것이었다. 나는 참 속이 좁은 사람이다. 그런 이유로 아내가 10여년을 함께 살면서 참 힘이 들었을 터인데 여태껏 함께 살아주는 것만해도 나는 큰 은혜를 입었음을 자부한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하게 되었다. 역지사지라고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보는 것이다. 아내역시 옛날 같으면 몇 번 소박을 받아야 맞아야하는 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살고 있는 것은 크나큰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여인임에 틀림이 없다. 나도 이제 60년이 지나면 꼭 100살이 된다. 나이가 든 것일까? 아내가 불쌍하다. 또 고맙다. 조금 더 눈을 들어 하늘을 보면, 하나님의 은혜가 온 우주에 넘쳐난다.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다.
2007. 10. 18.
감사합니다.
결론/ 자신, 교회, 가족에 대해 생각하고 느낀점, 적용에 이르기까지
1. 용서와 치유에 대하여
본서의 내용을 읽으면서 많은 부분이 정리가 되어졌다.
나는 불신가정에서 자랐다. 조금 심하게 말하자면 술과 도박과 싸움이 판을 치는 환경이었다. 특히 싸움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가정이다보니까 마음에 간절한 소원이 생겼는데 그것은 좀 화평한 가정이되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학교에 갔다 돌아오면 ‘우리 아버지가 술 안드셨으면’하는 것이 유일한 소원이었다. 그러다 보니까 내가 대학을 다닐 때까지 부친에 대한 미워하는 감정이 깊었었다. 부산에서 자취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싸우는 날이면 모친의 전화가 오곤 했다. 그러면 불난 집에 물을 낀 얹은 듯 분노의 감정이 더 세차게 불타올랐다. 그러던 때에 나의 인생에 잊을 수 없는 큰 사건 하나가 일어났다. 나에게 그토록 힘이 되고 의지가 되던 형의 갑작스런 죽음이었다. ‘급성심근경색’이 병명이었다. 함께 자취생활을 하며 살던 형의 죽음은 내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나는 인생의 참으로 소중한 질문하나를 던지게 된다.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었다. 인생의 죽음 앞에서 나의 마음은 교회로 향하는 은혜를 입었다. 그런데 예수를 믿으면서도 내게 떠나지 않는 숙제 하나가 있었다. 고향의 부친을 향한 미워하는 마음이었다. 도무지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교회는 다니고 있었지만 교회는 교회고, 부친의 행동(술, 싸움)은 여전히 나로 하여금 미워하는 마음을 떠나지 못하게 막았다. 그러던 나에게 하나님께서는 한가지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 그것은 하나님의 비밀인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만남이었다. 그러자 나에게는 이상한 변화가 왔다. 이상하게도 주변 환경은 그대로 였는데 그 환경을 보는 나의 시각이 변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전 같으면 그저 그렇게 행동하는 부친에 대한 미워하는 감정이 앞섰는데 주께서 복음의 눈을 열어주시니까 환경은 그대론데 부친에 대한 이해의 마음이 생기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수년이 흘렀다. 누님의 가족을 제외하고는 가족 대부분은 주의 몸된 교회로 향하는 은혜를 입었다. 지나고나서 내가 깨달은 것은 이러했다. 십자가는 먼저 나의 변화에 초점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후에는 주변의 환경도 바꾸어 간다는 진리였다. 일찌기 예수님 말씀에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2)하셨는데 그 말씀대로였다. 용서는 십자가를 경험하고 복음의 비밀에 눈이 열리면 자연스럽게 되어진다.
2. 부부 상담에 대하여
결혼하고 10년이 넘어섰다. 뒤돌아보면 참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나에게는 지금도 풀리지 않는 비밀이 하나 있다. 그것은 남자의 사고체계와 여자의 사고체계가 너무 다르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께서 실수하신 것 아닌가? 할 정도롤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 많았다. 일테면 쇼핑하나만해도 그러하다. 나는 시장 다니는 것은 딱 질색이다. 살 것이 있으면 그냥 딱 사서 와 버리면 되는 것인데 여자들은 다리 아프게 왜 그리 돌아다니는지 나로서는 이해가 불가하다. 그런데 이렇게 무지몽매하던 나에게 이 세계에 대해 눈이 조금 열리는 계기가 있었다. 그것은 부산의 두란노서원에서 하던 가정행복학교 세미나를 통해서였다. 전혀 이해가 되지 않던 것들이 조금씩 객관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아내에게만 있는 현상이 아니라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의 보편적인 여성의 정서라는 것이었다. 나는 참 속이 좁은 사람이다. 그런 이유로 아내가 10여년을 함께 살면서 참 힘이 들었을 터인데 여태껏 함께 살아주는 것만해도 나는 큰 은혜를 입었음을 자부한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하게 되었다. 역지사지라고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보는 것이다. 아내역시 옛날 같으면 몇 번 소박을 받아야 맞아야하는 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살고 있는 것은 크나큰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여인임에 틀림이 없다. 나도 이제 60년이 지나면 꼭 100살이 된다. 나이가 든 것일까? 아내가 불쌍하다. 또 고맙다. 조금 더 눈을 들어 하늘을 보면, 하나님의 은혜가 온 우주에 넘쳐난다.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다.
2007. 10. 18.
감사합니다.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