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폴라니에 대한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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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칼 폴라니에 대한 분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케인스, 하이에크, 마르크스 그리고 폴라니

2. 인류의 역사에서 시장의 존재란

3. 산업혁명과 기계제

1. 자기조정 시장

2. 허구적 상품

3. 노동법의 기원

4. 공장의 탄생과 스핀햄랜드 제도

5. 자유주의, 자기조정시장을 움직이는 법칙

본문내용

에서 한쪽이 승리한 것이라고만 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계급이 사회를 결정하는 게 아니라 사회가 계급을 결정한다는 게 폴라니의 주장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주장일 수 있다. 하지만, 19세기 유럽인들에게 이런 생각은 새로운 것이었다. 시장이나 제도로 어찌할 수 없는 최소한의 기반이 있다는 생각이다. 잠시 군대 시절을 떠올려 보자. 군대에는 FM(야전교범)이라는 게 있다. 원칙대로라면, 군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FM을 따라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가. FM은 그저 FM일 뿐이다. 이걸 곧이곧대로 적용하려 들면, 군대 조직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없다. 공개적으로 인정하건 안 하건 많은 지휘관들이 속으로는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다.
사람이 모여 있는 사회에서 규율과 제도를 엄격하게 적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 이런 명백한 사실을 인정하는 게 폴라니의 사상이다. 스스로 균형을 찾아가는 자기조정 시장은 규율과 제도를 극단적으로 엄격하게 적용 해야만 작동할 수 있는데 이런 규율과 제도를 강요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 그래서 결국 자기조정 시장은 불가능한 꿈일 수밖에 없다는 게 폴라니의 주장이다.
다시 노동자들이 노동력 상품화에 맞서 자신들을 보호하려는 움직임을 취한다는 이야기로 돌아가자. 노동자들은 결국 사회입법을 통해 최저임금을 설정하고 노동시간을 줄였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산업 자본가 입장에서는 비용이 늘게 됐다. 이들이 가만히 있을까. 그렇지 않다. 이들 역시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내놓게 된다. 노동자들의 요구가 사회정치적 방식을 띤 것처럼 이들 역시 정부를 향해 대책을 요구하게 된다. 어떤 대책이 있을까. 결국 금융, 재정 정책이다. 돈 쓸 일이 늘었으니, 돈을 풀어달라는 것이다. 이는 금본위제에 대한 저항인 셈이다.
이런 식으로 서로 다른 집단의 시장에 대한 대응은 서로 맞물려 있다. 이는 결국 자기조정 시장을 구성하는 제도들을 허무는 움직임으로 나타난다.
이런 움직임을 거치면서 19세기 유럽인들이 자기조정 시장을 구현하기 위해 쏟았던 노력은 엉뚱한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 제국주의와 세계대전이다.
"헌정주의, 금본위제, 자기조정 시장, 세력 균형"…19세기 유럽의 꿈은 결국…
자기조정 시장을 구현하려 애썼던 19세기 유럽인들이 꿈꿨던 세상을 국내 정치, 국내 경제, 국제정치, 국제경제 등 네 항목으로 설명하면 이렇다.
우선 국내 정치에서 이들은 헌정주의 국가를 만들려 했다. 선거에 의해 구성된 의회 민주주의가 핵심이다. 국민에 의해 선출된 의원들이 헌법에 따라 예산을 짜서 재정을 집행한다. 이렇게 되면, 돌발적인 재정 지출을 막을 수 있다. 예컨대 전제 군주는 갑작스런 전쟁 선포 등을 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아무도 예상치 못한 결과로 재정 지출이 늘어나고 해당 국가 화폐 가치가 떨어진다. 의회 민주주의 정치가 갖는 경제적 의미는 화폐 가치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떨어지는 일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국제 경제에서 금본위제를 채택한 것과 맞물린다. 화폐가치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게 금본위제의 핵심이다. 이 과정에서 해당 국가 산업은 부침을 거듭하겠지만, 결국 균형을 이루리라는 게 당시 유럽인들의 믿음이었다. 이런 믿음은 다시 국내 경제에서 자기조정 시장을 구현하려 한 것과 맞물린다. 모든 자원의 분배를 시장 원리에 맡기는 것이다.
이런 시스템이 안정적으로 작동하려면 큰 전쟁이 없어야 한다. 이는 국제 정치에서 세력 균형을 도모한 것으로 나타난다. 특정 국가가 갑자기 팽창하거나 군사력을 늘리면 나머지 국가들이 응징하는 것이다. 국내 정치, 국제경제, 국내 경제, 국제정치 등에서 이뤄진 이런 시도에는 19세기 유럽인들의 꿈이 담겨 있다. 이런 방식으로 그들은 유럽이 평화와 풍요를 달성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결과는 어땠나. 제국주의 전쟁이었다. 이렇게 된 과정을 다시 국내 정치, 국제경제, 국내 경제, 국제정치 등으로 돌아보자.
우선 국내 경제. 자기조정 시장을 꿈꿨던 이들의 기대와 달리, 자기조정 시장은 점증하는 실업에 대한 해법을 내놓지 못했다. 실업이 늘어나자 정부는 돈을 풀어야 했는데, 금본위제로 인해 한계가 있었다. 화폐 가치가 떨어지지 않는 선을 지켜야 했던 것이다.
결국 수출을 통해 금을 들여오는 수밖에 없다. 또 값싼 원료를 통해 금 지출을 줄여야 했다. 원료 공급처 확보와 수출이 대외 경제 정책의 핵심이 됐다.
하지만, 기존 시장에는 한계가 있다. 서구 국가들이 택한 것은 아직 근대적인 틀을 갖추지 않은 나라를 힘으로 제압하는 것이었다.
미국이 일본을 강제로 개항했을 때, 미국이 요구한 게 관세 철폐였다. 일본은 문명국가가 아니므로 관세를 매길 수 없다는 게 미국 측 논리였다. 야만국가에게 관세를 허용하면 제멋대로 관세를 매겨서 무역질서가 망가진다는 것.
이후 일본의 역사는 '우리도 문명국가다'라는 것을 서구 세계에 인정받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유럽인들이 국내 정치, 국제경제, 국내 경제, 국제정치 등에서 꿈꿨던 것들을 일본은 기를 쓰고 달성하려 했다. 이런 노력은 위에서부터 이뤄졌고, 그래서 일본 헌법은 제헌 헌법이 아니라 흠정 헌법이다. 서구 국가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메이지 천황이 만들어낸 헌법이라는 게다. 이런 노력의 끝이 러일전쟁이었다. 국제정치 영역에서 문명국가의 기준은 '세력균형'의 한 축이 되는 것인데, 이는 군사력을 통해서만 보장되는 것이다. 균형을 깨뜨리는 세력을 무력으로 응징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만 '세력균형'의 한 축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결국 일본은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며 러시아와 전쟁을 해야 했다. 그리고 이 전쟁에서 이긴 뒤에야 제국주의 열강의 식민지 경쟁에 참여할 수 있었다. 조선을 집어 삼킨 것 역시 그 결과였다.
일본은 가까스로 제국주의 경쟁에 끼어든 경우였지만, 나머지 비서구 국가들은 그렇지 못했다. 서구 국가들의 상품 판매처, 값싼 원료 공급처로 전락하는 운명을 피할 수 없었다. 심지어 중국마저 이런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자기조정 시장을 믿었던 19세기 유럽인들의 꿈은 비서구인들의 눈물로 막을 내렸다. 그리고 이는 다시 유럽 사회의 혼란과 전쟁으로 되돌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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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0.03.28
  • 저작시기20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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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5947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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