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국가형성론
1) 국가의 성립
- 한국사 내의 국가 발전론
초기국가단계
삼국의 형성
한국 고대의 신분제와 관등제
신라 중대 사회
신라장적에 대해서
신라 하대 사회
1) 국가의 성립
- 한국사 내의 국가 발전론
초기국가단계
삼국의 형성
한국 고대의 신분제와 관등제
신라 중대 사회
신라장적에 대해서
신라 하대 사회
본문내용
새로운 귀족을 체제 내 포섭하여 기존 귀족을 견제
① 골품제에 편성 : 백제, 고구려의 왕족, 귀족을 골품제 체제에 편입
- 백제는 최고 7등급인 일길찬까지 주고 고구려 안승에게 보덕국을 인정하면서 신라 왕실에서 新김씨를 하사(3등급 소판으로 임명)
② 행정조직의 단일화 : 9주 5소경제도(신라, 고구려, 백제에 각각 3주를 두고 가야에 1개, 고구려, 백제에 2개의 소경을 둠)
③ 9서당 설치 : 신라, 고구려, 백제, 말갈인 모두 포함
④ 명산대천에 대한 제사제도를 정비하여 고구려, 백제, 신라의 제사체제 융합(정신적 측 면에 있어서 융합을 꾀함)
신라장적에 대해서
- 1933년 일본 동대사 정창원에서 나온 화엄경에 덧댄 종이에서 서원경의 사정을 알려주 는 자료가 나타남
- 일본에서 연구되었고 신라장적, 민정문서, 촌락문서, 신라국관문서, 균전성책으로 불림
- 작성년대가 乙未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755년(경덕왕 14년), 815년(헌덕왕 7년), 875년 (헌강왕 원년)등 다양한 추정이 나타나고 있다.
- 내용 - 각 촌락의 호구수가 기록되어 있고 우마수, 유실수의 그루수가 상세히 기록
- 추기 형식으로 변동사항이 적혀 있다.(3년마다 한번씩 호구조사 한 것으로 유추)
→ 이들은 청주와 청주인근지역으로 유추되나 그에 대한 반론도 있다.
- 인구수 : 서원경 관할촌락이 10호정도이며 인구는 106명정도, 1인당 10결 7부의 토 지소유(사해점촌 10호, 살하지촌 15호, ◎◎촌은 8호=> 442명 정도 살았다.
cf. 당나라의 향리제 - 100명을 1향(1향=5리) 이렇게 인위적으로 편성
=> 편성된 것으로 유추했으나 자연촌락설이 지배적
- 戶- 烟戶 : 농민의 1가족
- 孔烟 - ① 식구수가 10명이 넘기 때문에 자연 가호
- ② 국가가 행정적 목적으로 임의로 묶어 둔 것
=> 여러가구를 묶은 연으로 신라가 일정한 기준으로 나눈 것으로 유추
구분 기준을 ① 人丁(가용 노동력층)에 기준
② 토지기준설(토지를 통한 지배)
③ 재산 기준설(토지와 여러 기준에 근거)
- 計烟 : 운영상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각 가호마다 노동력을 착출하기 위해 가호단위가 아니라 노동력 부과에 기준이 되는 烟(中上烟을 1로 해서) 각 호에 1/6을 곱해 노동력 착출
=> 인구수는 성별, 연령별로 등급을 매김(민정문서 작성은 민정 부과의 근거로 파악)
老公, 除公, 丁, 幼者, 追子, 小子로 나누고 丁을 파악하고자 함
=> 인구수를 보면 남자보다 여주가 많고 이는 남자가 공역으로 착출됨으로 평균수명이 여성보다 짧기 때문이다.
- 노비수는 촌락인구의 5% 차지(노예제 사회는 아닌 듯)
- 우마수는 1가구당 말은 한 마리, 소는 한 마리 이상 나타나고 매매가 이루어짐
- 유실수는 공물로서 일반 백성들이 관리
- 토지는 연수유전답, 촌주위답(96.25% - 촌주 직역의 대가, 개인적 성격
- 촌주위답이 연수유전답과 같은 맥락에서 파악되는 것으로 보아 촌주는 그 지방의 제 지세력으로 유추가능
내시령답(내시령 직전), 관모전답(관청 경비조달), 마전(공동으로 마 경작) 공공적 성격을 가진 토지로 나눈다.
→ 토지의 증감변동사항은 전혀 기재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토지는 노동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게 생각되는 것으로 보임
→ 매호당 18결 정도의 토지를 가지고 휴한의 방법으로 경작된 것으로 보임
→ 촌주라는 제지세력을 통한 간접지배가 이루어 졌다.
-> 촌주위답, 연수위전답과 같은 경제력
-> 우, 마등을 기르는 것을 보아 병마등을 소지가능
-> 민병조직을 가지고 있음
=> 이러한 조건들을 기반으로 신라하대 중앙정치가 문란해지면서 촌주가 호족으 로 대두할 수 있었다.
신라 하대 사회
- 무열왕계에 의한 진골왕통 -> 내물왕 방계출신이 등장하여 왕위를 가지는 경우가 생김
- 상대등의 권한 강화 : 상대등= 유력한 왕위계승 후보
- 골품제도의 모순이 심각하게 나타남 : 왕위계승다툼이 나타남, 진골이 급증하여 왕의 친 족이 낮은 지위를 가지고 있기도 함
- 신라경제체제 붕괴 : 녹읍제를 통한 인신지배 가능, 고리대, 목장 경영, 사적 예속민소유
=> 군사적 기반 확충, 개간, 매입을 통한 田莊확대
- 6두품의 진골에 대한 도전 : 당시 기술, 행정직 수행, 장관이 될 수 없는 차관급으로 차별 유학적 소양을 갖춘 지식계층 -> 골품제 때문에 능력의 발휘 가 어려워지자 이에 불만을 가지고 1) 선종을 공부하여 9산선 문을 개창 2) 반신라적 자세를 보임(최승우, 최언위, 왕거인등)
① 골품제에 편성 : 백제, 고구려의 왕족, 귀족을 골품제 체제에 편입
- 백제는 최고 7등급인 일길찬까지 주고 고구려 안승에게 보덕국을 인정하면서 신라 왕실에서 新김씨를 하사(3등급 소판으로 임명)
② 행정조직의 단일화 : 9주 5소경제도(신라, 고구려, 백제에 각각 3주를 두고 가야에 1개, 고구려, 백제에 2개의 소경을 둠)
③ 9서당 설치 : 신라, 고구려, 백제, 말갈인 모두 포함
④ 명산대천에 대한 제사제도를 정비하여 고구려, 백제, 신라의 제사체제 융합(정신적 측 면에 있어서 융합을 꾀함)
신라장적에 대해서
- 1933년 일본 동대사 정창원에서 나온 화엄경에 덧댄 종이에서 서원경의 사정을 알려주 는 자료가 나타남
- 일본에서 연구되었고 신라장적, 민정문서, 촌락문서, 신라국관문서, 균전성책으로 불림
- 작성년대가 乙未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755년(경덕왕 14년), 815년(헌덕왕 7년), 875년 (헌강왕 원년)등 다양한 추정이 나타나고 있다.
- 내용 - 각 촌락의 호구수가 기록되어 있고 우마수, 유실수의 그루수가 상세히 기록
- 추기 형식으로 변동사항이 적혀 있다.(3년마다 한번씩 호구조사 한 것으로 유추)
→ 이들은 청주와 청주인근지역으로 유추되나 그에 대한 반론도 있다.
- 인구수 : 서원경 관할촌락이 10호정도이며 인구는 106명정도, 1인당 10결 7부의 토 지소유(사해점촌 10호, 살하지촌 15호, ◎◎촌은 8호=> 442명 정도 살았다.
cf. 당나라의 향리제 - 100명을 1향(1향=5리) 이렇게 인위적으로 편성
=> 편성된 것으로 유추했으나 자연촌락설이 지배적
- 戶- 烟戶 : 농민의 1가족
- 孔烟 - ① 식구수가 10명이 넘기 때문에 자연 가호
- ② 국가가 행정적 목적으로 임의로 묶어 둔 것
=> 여러가구를 묶은 연으로 신라가 일정한 기준으로 나눈 것으로 유추
구분 기준을 ① 人丁(가용 노동력층)에 기준
② 토지기준설(토지를 통한 지배)
③ 재산 기준설(토지와 여러 기준에 근거)
- 計烟 : 운영상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각 가호마다 노동력을 착출하기 위해 가호단위가 아니라 노동력 부과에 기준이 되는 烟(中上烟을 1로 해서) 각 호에 1/6을 곱해 노동력 착출
=> 인구수는 성별, 연령별로 등급을 매김(민정문서 작성은 민정 부과의 근거로 파악)
老公, 除公, 丁, 幼者, 追子, 小子로 나누고 丁을 파악하고자 함
=> 인구수를 보면 남자보다 여주가 많고 이는 남자가 공역으로 착출됨으로 평균수명이 여성보다 짧기 때문이다.
- 노비수는 촌락인구의 5% 차지(노예제 사회는 아닌 듯)
- 우마수는 1가구당 말은 한 마리, 소는 한 마리 이상 나타나고 매매가 이루어짐
- 유실수는 공물로서 일반 백성들이 관리
- 토지는 연수유전답, 촌주위답(96.25% - 촌주 직역의 대가, 개인적 성격
- 촌주위답이 연수유전답과 같은 맥락에서 파악되는 것으로 보아 촌주는 그 지방의 제 지세력으로 유추가능
내시령답(내시령 직전), 관모전답(관청 경비조달), 마전(공동으로 마 경작) 공공적 성격을 가진 토지로 나눈다.
→ 토지의 증감변동사항은 전혀 기재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토지는 노동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게 생각되는 것으로 보임
→ 매호당 18결 정도의 토지를 가지고 휴한의 방법으로 경작된 것으로 보임
→ 촌주라는 제지세력을 통한 간접지배가 이루어 졌다.
-> 촌주위답, 연수위전답과 같은 경제력
-> 우, 마등을 기르는 것을 보아 병마등을 소지가능
-> 민병조직을 가지고 있음
=> 이러한 조건들을 기반으로 신라하대 중앙정치가 문란해지면서 촌주가 호족으 로 대두할 수 있었다.
신라 하대 사회
- 무열왕계에 의한 진골왕통 -> 내물왕 방계출신이 등장하여 왕위를 가지는 경우가 생김
- 상대등의 권한 강화 : 상대등= 유력한 왕위계승 후보
- 골품제도의 모순이 심각하게 나타남 : 왕위계승다툼이 나타남, 진골이 급증하여 왕의 친 족이 낮은 지위를 가지고 있기도 함
- 신라경제체제 붕괴 : 녹읍제를 통한 인신지배 가능, 고리대, 목장 경영, 사적 예속민소유
=> 군사적 기반 확충, 개간, 매입을 통한 田莊확대
- 6두품의 진골에 대한 도전 : 당시 기술, 행정직 수행, 장관이 될 수 없는 차관급으로 차별 유학적 소양을 갖춘 지식계층 -> 골품제 때문에 능력의 발휘 가 어려워지자 이에 불만을 가지고 1) 선종을 공부하여 9산선 문을 개창 2) 반신라적 자세를 보임(최승우, 최언위, 왕거인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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