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교제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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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가 응답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기도가 하나님 말씀의 원리에 맞고 그 내용이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공의를 세우고, 정의가 실현되는 합당한 내용일 때 그 기도가 응답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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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기도가 항상 소망을 잃지 않고 반드시 이루어지기 위한 세 가지 근거는 함께 가야만 합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성에 의지하고,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드리는 기도, 하나님의 공의에 합당한 내용의 기도는 항상 기도할 수 있는 기도가 되고, 소망 가운데 응답을 맛보는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에 의지하지 않고 어느 것 하나라도 빠져 버린다면 기도 응답이 없습니다.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이 아무리 열렬히 끈질기게 기도한다고 응답이 되겠습니까?
하나님과의 관계성은 있지만 끈질기게 기도하지 않고 그것도 자기 만족만을 바라고 있다면 그 기도가 이루어지겠습니까?
이렇게 어느 하나를 빠뜨리고 기도하다보면 응답도 없고 그러다보니 기도의 재미도 잃게 되고, 항상 기도하는 것에 대해서 회의를 느끼게 됩니다.
“기도해도 별 수 없구나, 아무런 응답도 없는 기도를 왜 하는 거야” 기도는 하지만 응답을 기대하지도 않고 그저 자기 만족감에 의해서 기도합니다....
이렇게 하니까 기도가 힘을 잃어버리고, 기도해도 아무런 역사가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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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예수님은 비유를 말씀하시기 이전에 종말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종말에 대한 말씀에 이어 오늘 비유가 나왔기 때문에 오늘 비유는 종말과 관계가 있습니다.
마지막 8절에도 보면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처럼 결국 오늘 비유도 종말론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이것은 종말의 때에 예수님께서 믿음을 찾으실 것인가? 하는 말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믿음을 보겠느냐? 믿음을 찾겠느냐?”했는데....
이 말은 믿음을 찾는다는 말일까요? 아니면 믿음을 못 찾는다는 말일까요?
종말의 때에 믿음을 못 찾는다는 말입니다. 믿음을 찾기 어렵다는 겁니다.
왜 이런 해석이 가능할까요?
우리말 성경이나 영어성경을 보면 정확하게 나와 있지 않습니다. 단지 “믿음을 찾겠느냐? 믿음을 보겠느냐?” 이렇게만 되어 있어서 믿음을 찾는다는 말인지, 믿음을 찾지 않는다는 말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헬라어 성경을 보면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이 질문의 문장 속에 “ara”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뜻은 “그러므로”이지만, 이 “ara”를 쓸 때는 항상 뒤에 부정적인 답변을 기대하는 의문문일 때,
그 때 이“ara”가 쓰여 집니다.
그러니까 “ara”가 나오는 의문문이라는 것은 부정적 답변이 따라 나오기 마련입니다.
인자가 올 때 세상에서 믿음을 찾겠느냐?
찾는다는 말입니까, 찾지 않는다는 말입니까?
찾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찾으려고 해도 못 찾는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마지막 때에 성도들의 믿음을 보시는 것이 당연한데 그걸 보지 않고 그러면 다른 것을 보신다는 말일까요?
왜 믿음을 찾지 않는다고 말하는 겁니까?
이 말은 그만큼 종말의 때에 믿음을 찾기가 어렵다는 말입니다. 믿음을 찾지 않는다고 할 만큼 믿음을 찾기가 힘이 든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을 찾으려고 해도 그 만큼 믿음을 지키는 사람들이 적고, 믿음을 지키기가 어렵기 때문에 믿음을 찾지 않는다는 겁니다. 결국 믿음을 못 찾는다는 말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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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비유에 나오는 과부는 어디 하나 의지할 데 없는 처량한 신세였습니다. 얼마나 답답했으면 불의한 재판관에게라도 가서 간청하고 매달렸겠습니까?
그런데 종말을 맞이하는 우리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으로 살려고 하다보면 우리 주위에 의지할 만한 사람들이 없어집니다.
누가복음 21장 16-17절에
“심지어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벗이 너희를 넘겨주어 너희 중에 몇을 죽이게 하겠고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부모나 형제, 친척이나 벗까지도 우리를 죽음에 넘겨준다는 겁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인해 모든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 의지할 만한 사람들까지도 모두 우리의 적으로 바뀌고, 과부처럼 이느 곳에도 우리가 붙잡을 만한 사람들이 없어집니다.
그럴 때 우리가 누구를 바라보아야 합니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너희 머리털 하나도 상치 아니하리라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우리는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주님을 바라볼 때, 주님이 우리를 붙잡아주셔서
결코 우리의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않을 것입니다.
세상은 우리를 외면하고 우리를 대적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를 지키시는 분이 되셔서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종말이 다가오는 그 때에라도....세상 모두가...심지어 가족과 친척과 친구가 우리를 외면해 버릴 그 때라도 ...항상 기도하며 결코 소망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그 관계성에 의지해서,
그리고 끊임없이 계속해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기도의 지속성으로,
하나님의 공의에 합당한, 하나님의 말씀의 원리에 합당한 간구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할 때
“내가 속히 너희에게 공의를 베풀 것이다. 속히 너의 원한을 풀어줄 것이다.”
하나님께서 오래 참지 않으시고 속히 우리에게 응답하시는 그런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놀라운 은혜와 역사가 저와 여러분의 삶 가운데 날마다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기도는 인류가 가질 수 있는 최대의 능력이다.” - 콜러리지(Coleridge) -
참고도서
김남준, 깊은 기도를 경험하라, 생명의 말씀사, 1997.
브루스 윌킨슨, 야베스의 기도, 디모데성경연구원, 2002.
양승헌, 양승헌과 함께 떠나는 창세기 여행, 도서출판 디모데, 2002.
이진희 역, 무릎으로 사는 그리스도인, 생명의 말씀사, 1981.

키워드

하나님,   교제,   기도,   능력,   고독
  • 가격3,000
  • 페이지수33페이지
  • 등록일2010.04.07
  • 저작시기2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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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597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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