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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마음 레포트입니다.
본문내용
이다. 용서를 6편의 타이틀로 제기한 이유는 분노의 지속은 어느 모로 보나 마음과 몸을 망가뜨리기 때문이라고.
- 취재진은 전문가의 도움으로, 분노를 취급하는 2개의 인간 유형을 보여준다.
a type : 조급하고 화를 잘 내는 경우로, 신체 변화상은 혈압상승, 동맥벽 손상, 간에 c반응세포 분비, 심장질환. 대사증후군, 체중 증가, 혈당 지방 증가로 이어진다.
c type : 분노를 속으로 삭이는 경우로, 신체 변화상은 동맥벽손상, 간에 c반응세포 분비, 심장질환, 그리고 발암의 직접적 원인이 된다고 한다.
☞ 결과적으로 분노를 성급히 표출하거나, 숨기는 경우 둘다 심신을 상하게 한단 얘긴데 그럼 대체 분노 앞에 어떤 해법이 있느냐? 바로 ‘용서’라고 방송은 말한다. ex. 9년 전 거금을 떼어먹고 달아난 덕에, 월60만원에 수위 생활을 하며 지내는 한 60대 후반의 사내가 9년이 지난 후 돈을 떼어먹은 사람을 극적으로 만나 용서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장면은 참 감동적이었는데, 돈을 떼어먹었다는 사람의 인상도 너무 순해보였고, 말로 다 못한 속죄의 심정 때문에 고개를 숙여 흐느끼는 장면을 카메라가 포착했을 때는 눈시울이 뜨끈해질 정도였다. 용서의 당사자는 '이 문제가 분노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고 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프레드 러스킨 교수와 스탠포드 대학의 용서 프로그램(Luskin, Fred: Stanford Forgiveness Projects) : 상대방이 말하는 “안 돼!”를 용서하는 법에 관한 것이 주된 내용이란다. 러스킨 교수에 따르면 아이에게 ‘안 돼’라는 말은 큰 문제를 안 일으키지만 어른에게 ‘안 돼’라고 말해주면, 그건 18년간 마음의 상처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이때 안 돼라는 거절을 당한 사람은 스스로 감정을 다스려야 한다. 상대가 ‘안 돼’라는 무례(?)를 저질렀을 때 그것을 이해하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극복하는 훈련법은 몸을 평온하게 한 후, 심호흡을 하면서 자신에게 평소 친절했던 사람을 머리 속에 떠올리라고 한다. (나의 경우는 우리집 개들을 떠올리면 될 거 같다!)
☞ 더 자세한 용서법 by F. Luskin
우선. 당신에게 고의로 상처주려는 사람은 없다(고의가 아니거나 이해심이 부족해서 일 뿐)는 사실을 상기하라. (설마 고의로 상처주려는 악한이 없을 턱이 있겠는가 만은~ -_-;;)
그 다음. 화가 나면 숨을 깊게 들이쉬고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린다. 몸이 이완될 것이다. (사랑하는 반려동물을 떠올려도 될 테지. -_-;;)
끝으로. 이게 가장 중요한 포인트인데, "모든 것은 나에게 달려있다"는 점을 상기한다.
- 용서 프로그램의 효과가 적용된 사례로, 가정 폭력의 피해자(여자와 아이들)가 자신들이 당한 폭력에 대한 분노를 다스리도록 도와주는 장면이 소개되었는데, 그들이 그동안 당한 수모를 들어주기가 너무 딱했다.
ex. 박종효, 서울대 교육연구소는 용서전문가는 일단 ‘분노를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한다.
- 에베레트 워딩턴(Dr. Everett L. Worthington) : 분노의 대상이 되었던, 가해자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용서를 통해서 자기를 위로하는 것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피해를 준 상대방을 이해하는 수준에 이르는 게 된다고 한다.
☞ 오클라호마 폭파범, 티모시 맥베이의 사형집행 직후, 피해 가족 대부분은 그 결과(사형집행)로 인해 위안을 얻지는 못했다는 진술들이 나옴. 따라서 진정한 위안은 ‘용서’를 통해 가능할 거라는 가설을 제시한다.
- 결론: 취재진은 용서의 정의를 다음과 같이 내린다. 분노의 상황을 기억은 하되, 마음을 놓아버리는 것이라고. 즉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을 만큼 집착하지 말란 충고일 테다.
- 6편은 한때 개인사에서 걷잡을 수 없는 분노에 사로잡혔던 적이 있는 내게, 많은 부분 호소력이 있는 지적과 충고였다. 도움이 많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과연 공영방송다운 결론이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공영방송이 분노의 해법으로 응징을 대놓고 피력하진 못할테니 말이다. 더욱이 방송 끝 장면에 정진석 주교까지 등장시켜 용서의 가치를 강조시킨 건 좀 심했다. 종교적 색채를 뒤집어 쓸때 연구의 결과가 얼마나 손상을 입을지, 혹은 불쾌한 결과가 초래될지는 일단 접어두기로 하겠다. 왜냐하면 헤아릴 수 없는 종교의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상처받은 이에게 종교의 긍정적 위안은 인정할 부분이 분명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용서의 필요성을 느끼는 나조차 이따금 용서의 권유에 인색하거나 또한 회의감을 접을 수 없는 다른 이유는, 용서를 통해 피해자가 마음의 안정을 얻어, 과거의 불운에서 벗어나 정상적 생활을 도모할 정신적 플랫폼을 얻을 수야 있겠지만, 불운한 과거(의 원인)를 캐묻지 않는 무조건적 용서가 ‘사회적 선’이라는 관점에서 타당한가하는 점 때문이다. 이건 사형제도 폐지논란을 착잡한 심정으로 바라보는 나의 혼란과도 연결되어 있다. 만일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의 공생을 위해 용서가 학습되어야 한다면, 대한민국의 영원한 정치적 화두인 과거사 문제는 과연 이런 요구 앞에서 자유로운지도 물어야 할지 모른다. 역사가 저지른 횡포에 대한 분노는 개인의 횡포와는 질이 다른걸까? 또 6편에서 예시된 아내에게 살인적 폭력을 가하고도 고작 벌금형을 받은 가해 남성을 단지 사법적 판단에만 맡기고 피해자는 그를 '인간으로서' 용서함으로써 마음의 위안을 얻는 것이 당사자나 가해자 모두에게 현명한 것인지(혹은 사회적 선에 부합되는 것인지) 솔직히 의문이다. 즉 무능하고 기계적인 사법적 판단이 아닌, 중한 죄에 대해서 응징을 통해, 상처의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불법의 굴레'에는 갇혀있지만 여전히 분노의 전근대적 해법으로 그 가능성을 남겨둬야할 지도 모르겠다. 법치주의에서 그런 해법이 적법하지 않다는 건 알지만 말이다. 알게 모르게 상대에게 하루에도 작고 큰 상처를 너무도 많이 주고 사는 세상사이다 보니, 그 잡다한 갈등의 차선책으로 용서를 권유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출처] KBS 마음 _ 6편 당신을 용서합니다.|작성자 반이정
- 취재진은 전문가의 도움으로, 분노를 취급하는 2개의 인간 유형을 보여준다.
a type : 조급하고 화를 잘 내는 경우로, 신체 변화상은 혈압상승, 동맥벽 손상, 간에 c반응세포 분비, 심장질환. 대사증후군, 체중 증가, 혈당 지방 증가로 이어진다.
c type : 분노를 속으로 삭이는 경우로, 신체 변화상은 동맥벽손상, 간에 c반응세포 분비, 심장질환, 그리고 발암의 직접적 원인이 된다고 한다.
☞ 결과적으로 분노를 성급히 표출하거나, 숨기는 경우 둘다 심신을 상하게 한단 얘긴데 그럼 대체 분노 앞에 어떤 해법이 있느냐? 바로 ‘용서’라고 방송은 말한다. ex. 9년 전 거금을 떼어먹고 달아난 덕에, 월60만원에 수위 생활을 하며 지내는 한 60대 후반의 사내가 9년이 지난 후 돈을 떼어먹은 사람을 극적으로 만나 용서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장면은 참 감동적이었는데, 돈을 떼어먹었다는 사람의 인상도 너무 순해보였고, 말로 다 못한 속죄의 심정 때문에 고개를 숙여 흐느끼는 장면을 카메라가 포착했을 때는 눈시울이 뜨끈해질 정도였다. 용서의 당사자는 '이 문제가 분노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고 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프레드 러스킨 교수와 스탠포드 대학의 용서 프로그램(Luskin, Fred: Stanford Forgiveness Projects) : 상대방이 말하는 “안 돼!”를 용서하는 법에 관한 것이 주된 내용이란다. 러스킨 교수에 따르면 아이에게 ‘안 돼’라는 말은 큰 문제를 안 일으키지만 어른에게 ‘안 돼’라고 말해주면, 그건 18년간 마음의 상처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이때 안 돼라는 거절을 당한 사람은 스스로 감정을 다스려야 한다. 상대가 ‘안 돼’라는 무례(?)를 저질렀을 때 그것을 이해하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극복하는 훈련법은 몸을 평온하게 한 후, 심호흡을 하면서 자신에게 평소 친절했던 사람을 머리 속에 떠올리라고 한다. (나의 경우는 우리집 개들을 떠올리면 될 거 같다!)
☞ 더 자세한 용서법 by F. Luskin
우선. 당신에게 고의로 상처주려는 사람은 없다(고의가 아니거나 이해심이 부족해서 일 뿐)는 사실을 상기하라. (설마 고의로 상처주려는 악한이 없을 턱이 있겠는가 만은~ -_-;;)
그 다음. 화가 나면 숨을 깊게 들이쉬고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린다. 몸이 이완될 것이다. (사랑하는 반려동물을 떠올려도 될 테지. -_-;;)
끝으로. 이게 가장 중요한 포인트인데, "모든 것은 나에게 달려있다"는 점을 상기한다.
- 용서 프로그램의 효과가 적용된 사례로, 가정 폭력의 피해자(여자와 아이들)가 자신들이 당한 폭력에 대한 분노를 다스리도록 도와주는 장면이 소개되었는데, 그들이 그동안 당한 수모를 들어주기가 너무 딱했다.
ex. 박종효, 서울대 교육연구소는 용서전문가는 일단 ‘분노를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한다.
- 에베레트 워딩턴(Dr. Everett L. Worthington) : 분노의 대상이 되었던, 가해자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용서를 통해서 자기를 위로하는 것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피해를 준 상대방을 이해하는 수준에 이르는 게 된다고 한다.
☞ 오클라호마 폭파범, 티모시 맥베이의 사형집행 직후, 피해 가족 대부분은 그 결과(사형집행)로 인해 위안을 얻지는 못했다는 진술들이 나옴. 따라서 진정한 위안은 ‘용서’를 통해 가능할 거라는 가설을 제시한다.
- 결론: 취재진은 용서의 정의를 다음과 같이 내린다. 분노의 상황을 기억은 하되, 마음을 놓아버리는 것이라고. 즉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을 만큼 집착하지 말란 충고일 테다.
- 6편은 한때 개인사에서 걷잡을 수 없는 분노에 사로잡혔던 적이 있는 내게, 많은 부분 호소력이 있는 지적과 충고였다. 도움이 많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과연 공영방송다운 결론이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공영방송이 분노의 해법으로 응징을 대놓고 피력하진 못할테니 말이다. 더욱이 방송 끝 장면에 정진석 주교까지 등장시켜 용서의 가치를 강조시킨 건 좀 심했다. 종교적 색채를 뒤집어 쓸때 연구의 결과가 얼마나 손상을 입을지, 혹은 불쾌한 결과가 초래될지는 일단 접어두기로 하겠다. 왜냐하면 헤아릴 수 없는 종교의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상처받은 이에게 종교의 긍정적 위안은 인정할 부분이 분명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용서의 필요성을 느끼는 나조차 이따금 용서의 권유에 인색하거나 또한 회의감을 접을 수 없는 다른 이유는, 용서를 통해 피해자가 마음의 안정을 얻어, 과거의 불운에서 벗어나 정상적 생활을 도모할 정신적 플랫폼을 얻을 수야 있겠지만, 불운한 과거(의 원인)를 캐묻지 않는 무조건적 용서가 ‘사회적 선’이라는 관점에서 타당한가하는 점 때문이다. 이건 사형제도 폐지논란을 착잡한 심정으로 바라보는 나의 혼란과도 연결되어 있다. 만일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의 공생을 위해 용서가 학습되어야 한다면, 대한민국의 영원한 정치적 화두인 과거사 문제는 과연 이런 요구 앞에서 자유로운지도 물어야 할지 모른다. 역사가 저지른 횡포에 대한 분노는 개인의 횡포와는 질이 다른걸까? 또 6편에서 예시된 아내에게 살인적 폭력을 가하고도 고작 벌금형을 받은 가해 남성을 단지 사법적 판단에만 맡기고 피해자는 그를 '인간으로서' 용서함으로써 마음의 위안을 얻는 것이 당사자나 가해자 모두에게 현명한 것인지(혹은 사회적 선에 부합되는 것인지) 솔직히 의문이다. 즉 무능하고 기계적인 사법적 판단이 아닌, 중한 죄에 대해서 응징을 통해, 상처의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불법의 굴레'에는 갇혀있지만 여전히 분노의 전근대적 해법으로 그 가능성을 남겨둬야할 지도 모르겠다. 법치주의에서 그런 해법이 적법하지 않다는 건 알지만 말이다. 알게 모르게 상대에게 하루에도 작고 큰 상처를 너무도 많이 주고 사는 세상사이다 보니, 그 잡다한 갈등의 차선책으로 용서를 권유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출처] KBS 마음 _ 6편 당신을 용서합니다.|작성자 반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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