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 해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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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간의 막후의 치열한 외교전이 전개되던 1914년 7월27일, 터키로부터 여객선이 도착하였고, 라오후·베이는 8월2일 오전8시에 전함을 인도한다 - 라는 통지를 받았습니다. 8월1일에는 마지막 포가 함에 탑재되어 조준장치도 장착될 것이었지요. 그러나.......7월31일, 독일에서 프랑스에게 최후통첩이 교부되었고 해군장관 처칠은 이에 결단합니다.
이 전함 1척이 터키에 넘어가서, 왕립 해군에 적대하는 일이 생긴다면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3척의 전함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물론 앞으로의 급박한 정세변화는, 단지 지중해에서의 오스만함대 따위를 견제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확실히 그들을 두드려 잡기 위해서 그 만큼의 전력차이가 필요한 것이다......만약 오스만인들이, 이것을 그대로 빌헬름스하펜(독일 대양함대의 해군기지)에 반입하면 어떻게 될 것인지........그런 일은 상상조차 하고싶지 않다. - 고 말이지요 ㅡ.ㅡ;
해군성은 암스트롱사에 통지합니다. 「 유력한 전함「술탄·오스만 1세」를 제국과 외교상 거취가 분명하지 않은 외국정부의 손에 맡길 수 없다. 우리 대영제국 해군성이 본함을 접수한다. 아무쪼록 협력해 주셨으면 싶다」ㅡㅡ;;
8월1일 정오... 전함의 인도까지 24시간이 채 안 남은 시점에서 조선소에 군대가 파견되어 요소를 경비함과 함께, 전함에 남아 있던 오스만사람들을 추방했습니다. 이 투르크인들은 함을 인도받기 위해 오스만 본국에서 보내진 여객선 「네시드·파샤」 Neshid Pasha 로 보내졌습니다.
이런 강제적인 임검에 영국측은 일언 아무런 논평조차도 내지 않았습니다..... 라오후·베이 제독은 강력히 반발했고 함의 인도를 다시한번 요청했지만 처칠의 태도는 완고했습니다.......「이 전함, 술탄 오스만 1세와 오스만제국에 매각예정인 다른 1척 모두 영국 해군이 접수한다.... 금전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차후, 양국 정부 레벨에서 서로 이야기 하게 될 것이다....」라는 짤막한 통지만 보냈을 뿐이었지요. 처칠은 무엇하나 귀를 기울이지도 않았고, 항의문서를 받으려고 조차하지 않았습니다. 통지를 받은 오스만 투르크 정부도 격앙했지만, 사실상 그들이 구체적으로 취할 수 있는 방책은 없었습니다. 이제 암스트롱사라고 해도 어깨를 움츠릴 수 밖에 없는 레벨로 넘어간 것이었지요....
곧이어.....독일은 러시아에 대해 전쟁을 개시했습니다. 다음날인 8월2일에는 벨기에의 중립을 일방적으로 깨고 국경을 넘어서 프랑스로 침공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정도의 격변은 상상하고 있지 않았고, 대부분의 나라는 준비도 없는 채로 전쟁에 돌입했습니다. 그리고 누구나가, 이 전쟁은 길어도 수 개월 단기간으로 끝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요.
이 갑작스런 전쟁의 발발로, 지중해에 있던 독일의 순양전함 「괴벤」또한 본국 귀환의 기회를 상실했습니다. 독일은 귀중한 순양전함 전력중에서 사용가능한 말을 하나 잃게 된 것이었지요......... 「괴벤」으로써는 아드리아해에 진입해서 오스트리아 해군과 행동을 같이
한다는 정도의 대책밖에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괴벤」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교묘히 영국해군의 추격함대를 뿌리치고 콘스탄티노플로 도망쳐 버립니다. 중립국 오스만제국은본래라면 24시간 이내에 교전국의 전함을 국외로 추방하거나,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억류한다는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독일은, 이 기회를 최대한으로 이용했습니다. 카이저는 유력한 순양전함「괴벤」을 오스만 제국에 공짜로 양도해 버렸던 것이었지요!!!!!!!!!!.
전함의 건조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서 가두 모금을 실시하고....그 때문에 머리카락을 판 여성까지 있던 오스만제국에서는 영국 정부의 전함 접수에 대해서 반감이 최대치에 이른 상태였고...이 와중에 호기롭게 최신예의 순양전함을 선물해준 독일에 대해서 매우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게 되었고....이는 결국 오스만제국이 독일측으로 넘어가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됩니다.본래 영국측이 자국 함대를 증강시켜 전쟁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외교상 유래가 없는 일을 단행했지만「술탄」과 「레샤디에 - 에린」의 접수는, 대신 오스만에 넘어간「괴벤」이라고 하는 존재에 의해 결과적으로는 화근의 씨앗이 되어 버린 셈이 되었지요........
..또다시 이름을 잃어버린 대전함에는, 적막한 가운데 13,14번째의 12인치포가 탑재되었습니다. 전함은 정식으로 영국 해군에 편입되고 영국 해군의 제식 사양에 맞추기 위한 변경이 검토됩니다. 터키어의 명판을 벗겨 보면, 뒤에는 포르투갈어의 문장이 조각되어 있었던 것이었지요...... 명판은 다시 새롭게 만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가장 큰 문제점은, 영국 해군 제식 장비로써의 방위반이 장비되지 않았다는 점이었습니다. 게다가 이 전함은 그것이 장비될 예정도 없었고, 무엇보다도 7포탑 14문을 관제하는 사격 통제장치 등은 타국에 수출될 이 전함에는 애초에 생각되지 않은 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찌되었건.....왕립 해군에 편입된 이상 개량작업은 재빨리 진행되었고, 이윽고 전함의 새로운 이름이 발표됩니다.
「에이진코트 - (아쟁쿠르)」 Agincourt.
 
그럭저럭..........유서가 있는, 백년전쟁에서의 영국왕 헨리 5세의 전승지의 이름입니다. 본래 건조예정인 신형전함의 이름으로 예정되어 있던 이름이었고, 그 건조가 전쟁의 발발에 의해 캔슬되었기 때문에 어차피 남은 이름이라는 심정이었을까요~ ㅡ.ㅡ;.
이렇게 해서................브라질의 야망 「리오·데·자네이로」는, 터키의 자랑 「술탄·오스만 1세」를 거쳐, 대영제국 해군 전함 「에이진코트」가 되었습니다. 불과 1년여 사이에 세 개의 나라의 손을 거친다고 하는 유사이래 드문-_-존재인 이 전함은.....게다가 주포탑의 수에서도 단연 아직까지도 전함으로써는 최고의 숫자를 자랑하고 있지요...
여담이지만, 다행이라고 해야할까요.... 본함의 유일한 실전 참가 전적인 1916년 5월 31일의 유틀란드 해전에서는,144발의 주포탄, 111발의 부포탄을 투사했다고 합니다. 그 일제 사격의 광경은, 마치 거대한 전함이 폭팔하는 듯이 포효했다고 전해지고 있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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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43페이지
  • 등록일2010.04.25
  • 저작시기2005.1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6027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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