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서의 친일적 국민문학론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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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최재서의 친일적 국민문학론 연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최재서의 연대 및 문학세계
2. 서구적 지성론자에서 천황숭배론자로의 변절
3. 친일문학지 {국민문학}의 창간과 친일적 국민문학론의 수립
4. 천황숭배론자로의 전락

본문내용

알 수 있다. 일제의 탄압에 못이겨 어쩔 수 없이 했던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이 무렵 최재서의 친일활동은 글에서뿐만 아니라 문단활동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그는 1943년 8월에 열린 제2회 대동아문학자대회에 참가하기도 하였고 [대동아의식에 눈뜨며]라는 일문으로 된 참관기를 1943년 9월 {국민문학}지에 발표하였다. 대동아문학자대회는 대동아의 문예부흥을 목표로 이른바 대동아공영권 내 각국의 문학자가 참가한 회의인데 이는 일본문인보국회 주최로 1942년 이후 매년 열리는 것이었다. 그는 이 회의에서 행한 '조선문학운동의 보고'라는 강연에서 징병제와 해군특별지원병제의 시행으로 조선은 전쟁방관자적 태도가 일소될 것이고 이는 조선문학에 절대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논리적인 차원을 떠나 심정적인 차원으로 넘어가면서 그는 무조건적인 친일활동을 하게 되었고 이것의 극적인 표현은 '천황'에 대한 무한한 숭배로 드러났다. 이는 [대동아의식에 눈뜨며]에서 시작되어 그 후 계속 이어져 [받들어 모시는 문학]이라는 글에 이르면 그 최고조에 이르게 된다. 그는 이 글에서 '천황'을 받들어 모시고 있는 것의 행복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태어날 때부터 만세일계의 천황을 모시고 있는 우리들의 행복은 새삼스럽게 어느 누구에 비길 수도 없이 대견하고 고마운 일이다.
이 정도에 이르면 논리의 문제가 아니라 심정의 문제로서 최재서의 친일활동이 어느 정도에 도달했는가를 잘 알 수 있다. 최재서는 중일전쟁 이후 막연하게 동요하다가 파리 함락을 계기로 자신이 그나마 견지해 오던 모든 근대적 지성의 노력을 포기하고 전체주의와 국가주의로 전환하여 전쟁옹호론자로 바뀌었다. 그 후 일본의 국가주의에 맞는 '국민문학론'을 제창하고, 이어서 '지방문학으로서의 조선문학'을 국민문학의 일부로서 규정 짓기에 이르렀다. 그 후 그는 더 이상 논리로는 안 되는 문제, 즉 일본인이 되는 것을 스스로 실행하기 위해 いしろ로 창씨개명까지 하면서 천황숭배론자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문단활동 역시 비평가로서의 문학활동 못지 않게 그의 친일행각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이상의 그의 글과 행적은 일제의 탄압에 못이겨 어쩔 수 없이 친일을 하는 것과 종류가 다름은 물론이고, 그 이후 그가 문단활동을 하지 않고 강단에서 학문활동을 했다는 것만으로 면제받을 수 없는 그런 성격의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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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6페이지
  • 등록일2010.05.04
  • 저작시기2010.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607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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