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 신사참배[神社參拜] 거부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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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일제시대 신사참배[神社參拜] 거부운동

<신사참배>
<내용>
<거부운동>
<거부운동의 의의>

본문내용

나 가정에 가미다나를 설치하기까지 하였으나, 이에 대한 민족적 반감을 깊이 느끼고 있었다. 각 가정에 모시도록 행정기관을 통하여 나누어 준 ‘신궁대마(神宮大麻:가미다나에 넣어 두는 일종의 신주 내지 부적)’도 바로 폐기하거나 형식적으로 벽에 밥풀 ·압핀 등으로 붙여두는 경우가 많았다. 1944년 가을 일제의 어용단체인 국민총력조선연맹에서 충남지역 농가를 대상으로 이에 대한 실태를 조사한 결과 주민들은 대부분이 ‘왜놈의 귀신’, ‘일본의 귀신’이라 하여 이를 별도로 취급하거나, 방치 폐기하고 있었다.
이러한 반감 때문에 1945년 8월 광복이 되자마자 대부분의 신사들이 민간인들에 의해 불타거나 파괴되었다. 이들 신사는 대부분 8월 15~16일에 방화 파괴되었으며 그 터는 대부분 공원이나 학교 ·교회 등 공공장소로 이용되었다. 이상과 같은 신사참배 거부운동은 우상숭배를 거부하고 기독교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려 하였다는 점에서 교회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뿐만 아니라 ‘천황제’ 이데올로기를 중심으로 한 일본적 체제를 부정하고, 일제의 이른바 ‘황민화정책’ 내지 ‘민족 말살정책’에 대한 저항적 성격을 지녔다는 점에서 민족사적 의의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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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4페이지
  • 등록일2010.05.31
  • 저작시기2004.0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615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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