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서론
2. 조선 건국은 진실한 이념에 바탕을 두었는가?
1) 권력의 정당성에 대한 물음
2) 조선은 성리학에 기반 하였는가?
3. 정치철학의 출발점: 인간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사단칠정과 인물성동이 논쟁
1) 사단칠정론과 보편논쟁
2) 인물성동이론과 새로운 시대의 가능성
4. 현실정치의 논리
- 철학적 사색의 종말 그리고 다시 힘의 논리로
5. 결론
2. 조선 건국은 진실한 이념에 바탕을 두었는가?
1) 권력의 정당성에 대한 물음
2) 조선은 성리학에 기반 하였는가?
3. 정치철학의 출발점: 인간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사단칠정과 인물성동이 논쟁
1) 사단칠정론과 보편논쟁
2) 인물성동이론과 새로운 시대의 가능성
4. 현실정치의 논리
- 철학적 사색의 종말 그리고 다시 힘의 논리로
5. 결론
본문내용
도덕세계를 뒀지만, 율곡은 지극히 현실중심적 사상을 전개했고, 이것이 곧 힘과 제도의 논리로 흘러갔기 때문이다.
율곡의 사상을 차용한 서인은 결국 광해군을 내쫓았고, 신하가 군주를 폐위한 데서 예송논쟁과 당파싸움이 비롯되었다. 이것은 서인과 동인, 그리고 향후 노론과 소론의 대립으로 연결됐으며, 각 당파는 국가를 위해 존재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이익에 봉사하는 이익집단으로 변질되어 갔다. 그 극명한 예가 당파의 이익을 위해 국제정세를 무시한 친명반청 정책이었고, 이것은 병자호란이라는 국가적 재앙을 초래하게 되었다.
저자는 이런 서인에 대해 ‘속으로는 벌거벗은 욕망을 간직한 채 겉으로는 강상윤리를 몽둥이 삼아 상대를 치는 자’라고 혹평하고 있다. 앞의 사람, 앞의 책, p. 169.
이런 평가는 저자의 가치관 혹은 학문관과 연관이 있는 듯하다. 실제로 저자는 『조선의 역사와 철학의 모험』에서 시종일관 ‘진실성’에 대해 중요시 하고 있다. 국가의 창건, 사상의 태동, 철학의 내용, 논쟁의 맥락 등에 있어서 그 주역들이 진실한가, 그렇지 않은가를 끊임없이 묻고 있는 것이다.
서인, 더 나아가 왜곡된 붕당에 대한 저자의 저런 평가를 매우 타당해 보인다. 시대에 따라 구체적인 상황이 다를 수도 있고, 따라서 그 해결책을 제시하는 진영 간에 입장차는 있을 수 있다. 즉, 붕당 그 자체의 존재는 용인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어떤 정치적 격랑이나 논쟁 혹은 투쟁 등이 단지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 벌이는 것이라면 그것은 추호의 진실성이 없는 것이 된다. 따라서 이런 이들은 철학을 하는 척하는 데 지나지 않고, 정치를 하는 척하고 있을 뿐이다. 실제로 그들은 철학을 이용해 수탈을 정당화 하고, 정치를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행위와 모든 사상을 평가하는 데 있어 진실성 여부를 잣대로 삼는 저자의 시각은 평가할 만한 것이 된다.
성리학이 바탕으로 삼는 유학에서는 이익을 좇는 사람을 소인이라 평가하고, 의로움을 추구하는 사람을 군자라고 칭한다. 그런데 서인 등의 붕당은 오로지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에만 집착함으로써 스스로 소인을 자처하고 만 것이다. 비록 그들 스스로는 자신의 붕당을 군자당이라고 주장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서인 등의 붕당이 왜곡해놓은 것은 비단 정치질서에만 그치지 않는다. 저자의 평가대로 그들은 ‘벌거벗은 욕망’을 감춰두고서 ‘강상윤리’로 억압의 도덕정치를 펼쳤기 때문이다. 즉, 그들이 내세우는 강상윤리는 백성들의 생활과 사고마저 규율 지음으로써 폐쇄적이고 비뚤어진 ‘거짓 성리학’ 국가로서의 조선을 창조해낸다. 그래서 백성들은 오직 성리학적 가치만이 옳다는 좁은 세계관에 빠져들었고, 외부 세계에 대해 불관용의 태도를 가지게 된 것이다.
서인 등의 붕당이 백성들에게 이식해놓은 ‘거짓 성리학’은 결국 조선의 붕괴와 민족의 수난을 불러왔다. 구한말, 급박하게 돌아가는 세계정세 앞에서 오직 조선 반도만을 바라봄으로써 망국의 늪으로 빠져들고 만 것이다.
붕당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데 대해서 이견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황이 주창한 도덕세계, 참된 성리학 국가에 대한 계승의 의지를 저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다. 이것은 도덕의 원리보다는 힘의 논리를 택한 것이며, 참된 가치보다 거짓 가치를 선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쇠잔해져갔던 조선의 운명은 이미 그 내부에 잠재돼 있던 것이었다.
5. 결론
그동안 철학이라고 하면 소크라테스, 플라톤 등의 서양철학자들의 이름만 떠올렸고, 동양의 철학자라고 해도 공자, 맹자 등의 중국인들밖에 없는 줄 알았다. 이 땅에도 우리 고유의 철학이란 것이 있는 것조차 몰랐음을 이 책을 읽어가면서 부끄럽게 여겼다. 특히 조선의 철학자들이 사유했던 대상이 매우 현실적인 대상이었으며, 그 목적의식이 백성을 위하는 데 있다는 민본주의를 발견하게 된 점을 소득이라 생각한다.
또한, 이 책은 독자로 하여금 철학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볼 수 있게 도와준다. 조선의 철학자들이 가졌던 문제의식은 대부분 오늘날에도 적용되는 것이며, 그러한 문제의식을 함께 생각해보는 사이에 철학의 중요성에 대해 눈뜨게 된 것이다.
조선조에는 정치인이 곧 철학자였고, 왕 역시 철학교육을 받아야 했다. 그런 점에서 조선은 가치지향적 국가였던 셈이다. 하지만 이런 철학적 전통은 오늘날 맥이 끊기고 말았다. 그 누구도 철학에 대해 얘기하지 않고, 철학이 일반인의 생활에서 선도적인 위치에 있지도 않다. 옛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철학 대신 경제적인 지표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풍토가 이렇기에 어쩌면 이 땅의 철학자에 대해 하나도 몰랐던 사실이 자연스러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조선의 철학자들이 모두 옳았던 것은 아니다. 그들은 때론 철학의 이름을 팔아 권력을 샀고, 철학자로 둔갑하여 백성을 옭아맸다. 그리고 그 대가로 조선은 몰락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적어도 성리학의 본질에 충실했던 ‘참된 철학자’들은 이상국가를 지향했다는 데 있다. 비록 현실은 녹록치 않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이상을 부여잡고 역사를 돌파해 온 게 조선의 철학자들이었다. 그 덕분에 조선은 도덕을 가장 위에 뒀고, 이익은 그 다음에 놓았다. 참된 문화를 이룩했다는 점에서 오늘의 우리와 퍽 거리감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오늘날 모든 사람이 성리학자처럼 살란 것도 아니고, 대한민국이 조선처럼 성리학 국가가 되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점점 도덕의 구심점을 잃어가고, 가치 대신 이익만 논하는 시대를 앞에 두고서 철학적 전통이 살아 숨 쉰 조선을 향수한다. 우리를 선도할 가치와 규범이 반드시 성리학이어야 할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철학적 사색과 고뇌가 묻어난 것이길 원한다면 지나치게 이상적인 바람일까?
역사는 반복된다. 조선이 철학과 가치 대신 힘의 논리에 경도되었을 때 패망의 길을 걸었다. 이런 역사가 대한민국에도 반복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조선의 역사와 철학 속으로 모험을 끝낸 후, 내 앞에 펼쳐진 대한민국의 초상화는 너무나 허위문화로 가득 차 있다. 이 땅에 다시 철학이 살아나고, 철학적 논쟁이 부활하여 허위문화를 치유하길 기대해본다.
율곡의 사상을 차용한 서인은 결국 광해군을 내쫓았고, 신하가 군주를 폐위한 데서 예송논쟁과 당파싸움이 비롯되었다. 이것은 서인과 동인, 그리고 향후 노론과 소론의 대립으로 연결됐으며, 각 당파는 국가를 위해 존재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이익에 봉사하는 이익집단으로 변질되어 갔다. 그 극명한 예가 당파의 이익을 위해 국제정세를 무시한 친명반청 정책이었고, 이것은 병자호란이라는 국가적 재앙을 초래하게 되었다.
저자는 이런 서인에 대해 ‘속으로는 벌거벗은 욕망을 간직한 채 겉으로는 강상윤리를 몽둥이 삼아 상대를 치는 자’라고 혹평하고 있다. 앞의 사람, 앞의 책, p. 169.
이런 평가는 저자의 가치관 혹은 학문관과 연관이 있는 듯하다. 실제로 저자는 『조선의 역사와 철학의 모험』에서 시종일관 ‘진실성’에 대해 중요시 하고 있다. 국가의 창건, 사상의 태동, 철학의 내용, 논쟁의 맥락 등에 있어서 그 주역들이 진실한가, 그렇지 않은가를 끊임없이 묻고 있는 것이다.
서인, 더 나아가 왜곡된 붕당에 대한 저자의 저런 평가를 매우 타당해 보인다. 시대에 따라 구체적인 상황이 다를 수도 있고, 따라서 그 해결책을 제시하는 진영 간에 입장차는 있을 수 있다. 즉, 붕당 그 자체의 존재는 용인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어떤 정치적 격랑이나 논쟁 혹은 투쟁 등이 단지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 벌이는 것이라면 그것은 추호의 진실성이 없는 것이 된다. 따라서 이런 이들은 철학을 하는 척하는 데 지나지 않고, 정치를 하는 척하고 있을 뿐이다. 실제로 그들은 철학을 이용해 수탈을 정당화 하고, 정치를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행위와 모든 사상을 평가하는 데 있어 진실성 여부를 잣대로 삼는 저자의 시각은 평가할 만한 것이 된다.
성리학이 바탕으로 삼는 유학에서는 이익을 좇는 사람을 소인이라 평가하고, 의로움을 추구하는 사람을 군자라고 칭한다. 그런데 서인 등의 붕당은 오로지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에만 집착함으로써 스스로 소인을 자처하고 만 것이다. 비록 그들 스스로는 자신의 붕당을 군자당이라고 주장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서인 등의 붕당이 왜곡해놓은 것은 비단 정치질서에만 그치지 않는다. 저자의 평가대로 그들은 ‘벌거벗은 욕망’을 감춰두고서 ‘강상윤리’로 억압의 도덕정치를 펼쳤기 때문이다. 즉, 그들이 내세우는 강상윤리는 백성들의 생활과 사고마저 규율 지음으로써 폐쇄적이고 비뚤어진 ‘거짓 성리학’ 국가로서의 조선을 창조해낸다. 그래서 백성들은 오직 성리학적 가치만이 옳다는 좁은 세계관에 빠져들었고, 외부 세계에 대해 불관용의 태도를 가지게 된 것이다.
서인 등의 붕당이 백성들에게 이식해놓은 ‘거짓 성리학’은 결국 조선의 붕괴와 민족의 수난을 불러왔다. 구한말, 급박하게 돌아가는 세계정세 앞에서 오직 조선 반도만을 바라봄으로써 망국의 늪으로 빠져들고 만 것이다.
붕당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데 대해서 이견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황이 주창한 도덕세계, 참된 성리학 국가에 대한 계승의 의지를 저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다. 이것은 도덕의 원리보다는 힘의 논리를 택한 것이며, 참된 가치보다 거짓 가치를 선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쇠잔해져갔던 조선의 운명은 이미 그 내부에 잠재돼 있던 것이었다.
5. 결론
그동안 철학이라고 하면 소크라테스, 플라톤 등의 서양철학자들의 이름만 떠올렸고, 동양의 철학자라고 해도 공자, 맹자 등의 중국인들밖에 없는 줄 알았다. 이 땅에도 우리 고유의 철학이란 것이 있는 것조차 몰랐음을 이 책을 읽어가면서 부끄럽게 여겼다. 특히 조선의 철학자들이 사유했던 대상이 매우 현실적인 대상이었으며, 그 목적의식이 백성을 위하는 데 있다는 민본주의를 발견하게 된 점을 소득이라 생각한다.
또한, 이 책은 독자로 하여금 철학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볼 수 있게 도와준다. 조선의 철학자들이 가졌던 문제의식은 대부분 오늘날에도 적용되는 것이며, 그러한 문제의식을 함께 생각해보는 사이에 철학의 중요성에 대해 눈뜨게 된 것이다.
조선조에는 정치인이 곧 철학자였고, 왕 역시 철학교육을 받아야 했다. 그런 점에서 조선은 가치지향적 국가였던 셈이다. 하지만 이런 철학적 전통은 오늘날 맥이 끊기고 말았다. 그 누구도 철학에 대해 얘기하지 않고, 철학이 일반인의 생활에서 선도적인 위치에 있지도 않다. 옛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철학 대신 경제적인 지표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풍토가 이렇기에 어쩌면 이 땅의 철학자에 대해 하나도 몰랐던 사실이 자연스러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조선의 철학자들이 모두 옳았던 것은 아니다. 그들은 때론 철학의 이름을 팔아 권력을 샀고, 철학자로 둔갑하여 백성을 옭아맸다. 그리고 그 대가로 조선은 몰락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적어도 성리학의 본질에 충실했던 ‘참된 철학자’들은 이상국가를 지향했다는 데 있다. 비록 현실은 녹록치 않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이상을 부여잡고 역사를 돌파해 온 게 조선의 철학자들이었다. 그 덕분에 조선은 도덕을 가장 위에 뒀고, 이익은 그 다음에 놓았다. 참된 문화를 이룩했다는 점에서 오늘의 우리와 퍽 거리감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오늘날 모든 사람이 성리학자처럼 살란 것도 아니고, 대한민국이 조선처럼 성리학 국가가 되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점점 도덕의 구심점을 잃어가고, 가치 대신 이익만 논하는 시대를 앞에 두고서 철학적 전통이 살아 숨 쉰 조선을 향수한다. 우리를 선도할 가치와 규범이 반드시 성리학이어야 할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철학적 사색과 고뇌가 묻어난 것이길 원한다면 지나치게 이상적인 바람일까?
역사는 반복된다. 조선이 철학과 가치 대신 힘의 논리에 경도되었을 때 패망의 길을 걸었다. 이런 역사가 대한민국에도 반복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조선의 역사와 철학 속으로 모험을 끝낸 후, 내 앞에 펼쳐진 대한민국의 초상화는 너무나 허위문화로 가득 차 있다. 이 땅에 다시 철학이 살아나고, 철학적 논쟁이 부활하여 허위문화를 치유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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